우리 동네 야구팀-159화
"....음?"
운선은 헛스윙을 한 자세를 풀고는 고개를 돌려서 미트를 쳐다봤다. 그러자 한참 바깥쪽으로 빠져있는 미트. 운선은 그제서야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쯧 하고 혀를 찼다.
'아 맞다, 슬라이더...'
그도 어제 정보를 봐왔던 터라 슬라이더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오고, 직구를 보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슬라이더라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것이 낭패였다.
압도적인 직구, 그리고 그걸 걷어낸 기억, 그 두가지 때문에 슬라이더는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슬라이더는 대처를 안한건가...'
덕아웃에 있던 용식은 운선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처음에 공을 걷어내면서 좀 공략하나 했더니, 이내 슬라이더에 그대로 당해버렸다.
용식으로는 아쉬움이 남을수밖에 없었다. 운선의 빠른 발이라면 분명히 상대의 신경을 흔들수 있었는데, 그러다보면 없던 빈틈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 좋은 기회를 그대로 놓쳐버렸다.
하지만 뛸 사람이 운선만 있는것은 아닌 상황, 용식은 이내 아쉬움을 접고는 타석에 들어간 선민을 쳐다봤다.
[1번 이운선 선수, 슬라이더에 제대로 당해버렸습니다. 그리고 2번타자, 오선민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음... 오선민 선수는 우타다 보니 이번에는 투수가 조금 부담을 가질수도 있겠습니다. 슬라이더를 어떻게 써먹느냐가 관건이 될겁니다]
한편, 선민이 타석에 들어서자 캐스터가 간단한 상활설명을 하고, 이어서 해설이 이번 승부의 핵심 포인트를 짧게 짚어줬다.
포수도 그걸 아는건지 입을 꾹 다문채로 선민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하다가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쪽 떨어지는 슬라이더. 크로스 함 유도해보자'
'콜'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수가 요구한 그립으로 바꿔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는 선민을 쳐다봤다.
'일단 위치상으로 유리하지만, 공을 건드릴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나도 운선이처럼 어떻게든 커트를...'
선민은 투수를 노려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될지 갈피를 잡고는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두 어깨에는 최대한 힘을 빼면서 가볍게 두었다.
선민이 모든 준비를 마치자 투수의 오른다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면서 같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양팔, 그러면서 오른다린가 앞으로 쭉 뻗고 지면을 밟는 순간, 왼팔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그대로 공을 뿌려버렸다.
슈욱-
투수의 손을 떠나간 공은 빠르게, 그리고 조금씩 휘기 시작하면서 날아갔다.
부우웅-
그와 동시에 선민의 배트도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공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어딘가를 노리는 것이 아닌, 어떻게든 갖다대기 위한 스윙이었던지라 배트의 속력은 그닥 빠르지 않았었다. 선민이 충분히 컨트롤할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스윙과 전혀 반대방향으로 공이 와서 크로스가 된다면, 그런 공은 누가 치더라도 절대로 맞추기 어렵게 되버린다.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 결과, 선민의 배트는 시원하게 허공을 갈라버렸다.
"후아..."
선민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정리한 다음에 침착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그 공은 구속뿐만 아니라 궤적부터가 너무 맞출수 있는 포인트가 짧고, 공이 나한테 밀려들어오는 느낌까지 들었어. 너무 위력적이야'
선민은 아까 공을 다시 복기하면서 앞에 있는 왼발로 타석의 흙을 비벼댔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될지 다시 한번더 생각했다.
'만약 저런공이 또 온다면 난 맞출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공이 와도 대처할수 있는 지금 상황이 가장 맞는거다. 고로, 그대로 간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선민은 투수에게 시선을 돌려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투수도 사인이 결정된건지 이미 던질 준비가 다 끝난 상황, 이제 공만 던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와라. 내가 못치는 공이 와도, 난 내가 할수있는 것을 최대한 발휘하면 그만이야. 나중에 탈출구는 감독님이나 수혁이가 찾아준다. 난 지금 내 할일만을 한다'
'...아까 내 공에 전혀 손을 못댔다. 여긴 동네야구, 프로가 아냐. 고로 계속 밀어붙인다'
투수는 아까 선민의 스윙을 떠올리면서 자기가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포수는 사인을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쪽으로 살짝 움직이고는 투수가 말한곳으로 미트를 내밀었다.
포수가 준비를 마치자 투수는 눈을 조심스세 한번 깜빡였다. 그리고
파앙- 파앙-
"스으트라이크 삼진 아웃!"
계속 똑같은 공을 던지면서 선민을 완벽히 제압해버렸다.
"하아아..."
선민은 고개를 뒤로 젖힌채로 아쉬워 하다가 이내 힘없이 덕아웃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면서 막 타석으로 나가는 호진을 잠깐 불러세웠다.
"야 호진아"
"왜?"
호진은 부름에 가던 길을 멈추고는 선민을 쳐다봤다. 선민은 투수를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저 투수, 공 장난 아냐. 특히,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가 장난 아냐. 너가 갖다맞추데는 소질이 있는건 알고있지만, 방심하지마. 구속도 빨라"
"후아아.. 그렇게 빡세? 오늘 경기 힘들겠네..."
호진은 고개를 절레저레 저으면서 투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선민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는 오른쪽 타석으로 들어갔다.
[이호진 선수, 우투우타에 포지션은 유격수. 음... 유격수가 클린업에 배치되어 있군요?]
한편, 캐스터는 타석에 들어서는 호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고는 해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설은 그런 질문에 잠시 데이터를 살펴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호진 선수, 여태까지 경기들의 평가로 봐서는 매 경기마다 안타 하나쯤은 기록해줄만한 선수입니다. 꾸준히 쳐준다는 거죠]
[하지만 그래도 클린업인데, 파워가 조금 부족하지 않습니까?]
해설이 설명하는 도중, 캐스터가 뭔가 헛점을 발견했다 싶었는지 중간에 태클을 걸어왔다.
[허허, 하지만 D.라이더즈에서 거포 불릴만한 선수는 김산욱 선수가 유일하죠. 거기다가 이호진 선수에 대한 평가를 보자면, 생각보다 파워가 있는 타자입니다. 일명 중장거리 타자쪽에 가까운 타자라는 거죠. 타격도 좀 한다는 겁니다]
해설은 그런 태클을 털털하게 웃으면서 가뿐하게 넘겨버렸다.
[오오... 완벽한 수비에, 수준급 타격까지. 완전히 탐나는 유격수군요]
[네, 분명히 탐날만한 친구입니다. 물론, 프로가 되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캐스터는 그런 설명에 호진을 쳐다보면서 감탄했다. 하지만 해설은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험, 험, 그렇군요]
그러면서 잠시 살짝 끊긴듯한 분위기, 캐스터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면 우리같은 우타의 스윙과는 완전히 X자 모양, 크로스가 된다는 건데... 이거 공략 할수는 있는거야...?'
타석에 들어온 호진은 배트를 똑바로 잡고는 가만히 선채로 상대 투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아까 선민이 말해준 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정리해 보고 나니까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빠른 구속에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라, 확실히 쫄릴만도 했다.
'하지만, 슬라이더라면 분명히 직구보다는 느리겠지'
하지만 호진은 전혀 겁먹거나 그런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투구, 타구에 맞아본 경험이 약간이나마 있었고, 무엇보다 그런 파인 플레이를 밥먹듯이 하는 호진에게 공에 맞는거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었다.
'투구나 타구에 맞는거보단, 몸을 날려서 흙이 쓸리고, 넘어지는 충격을 받아내는게 더 아프다고. 게다가 난 원래 할수있는 보호대는 다 하고 오는 타입이니까 직구는 걷어내고 슬라이더만 노리면 될거 같은데...'
그렇게 대충 갈피를 잡은 호진, 그리고는 타격 자세를 잡은 다음에 투수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음... 그렇다면...'
포수는 그런 호진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는 바깥쪽으로 한참이나 움직이고는 사인을 보냈다.
'일단 하나 빼보자. 아까 그 두녀석과는 임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느낌이 뭔가 달라'
'테스트...'
투수는 사인을 받고는 잠시동안 생각을 하는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정한건지
'콜. 함 가보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오른다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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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루비양말즈 VS D.라이더즈(5)201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