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61화
그뒤로 경기는 계속 흘러서 6회말 2아웃, 수혁이 운좋게 기습번트를 성공시키면서 주자는 2사 1루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지금 타석에 서있는 사람은 1번타자 운선. 운선은 배트를 가볍게 몇번 휘둘러 보고는 준비 자세를 잡았다.
"후우..."
투수는 아까 분명히 기습범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숨 한번만 푹 내쉬고는 별 내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놀라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아니면 그 주력으로 도루까지 할까봐 불안할수도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미동조차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엄청난 포커페이스, 강심장이다. 엄청나'
덕아웃에 있던 용식은 그런 투수를 살짝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빠른 구속과 확실한 변화구 하나를 가지고 있으며 스타일상 제구력도 그정도면 괜찮다고 할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강심장이라니, 왜 저런 투수가 야구부가 아니라 동네야구를 하고있는지 의심이 가는 용식이었다.
만약 지금 자신이 경동고 감독이라면 선수 자격이고 뭐고 관계없이 한번 스카웃해서 키워보고 싶은 스타일. 그러나 지금 그에게 자신은 적장일 뿐이었다. 일단 지금은 그를 공략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전혀 약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 어제부터 요주의 인물로 보고 데잍를 보면서 분석하고 또 분석해 봤지만 딱히 약점이라는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방법이라면 이정도 구속의 공을 상대로 홈런을 친적이 있는 산욱이 해결해 주는 방법법이 있었지만, 산욱이 오늘 컨디션이 안좋은건지 자신의 스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살짝 몸이 무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럼 남은건 지금 수혁이가 도루를 하거나 내야를 흔드는 수밖에 없다만, 쟤는 투수라...'
1루에 있는 수혁을 이용해서 내야를 흔들어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수혁이 투수인것이 계속 그를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현재 2아웃, 만약 수혁이 뛰어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금의 상황에서는 교체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고로, 수혁에게 도루 지시를 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좋지가 안았다.
'1사도 조금 불안하고, 무사라면 한번 해볼법도 한데, 하필 주자가 수혁이고...'
결국 용식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속이 타는지 옆에 물병을 짚고는 목구멍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음... 현재 주자는 2사 1루, 타석에는 이운선 선수가, 1루에는 안수혁 선수가 있습니다]
중계실에서는 캐스터가 현재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가만히 그라운드를 주시하는 해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마운드가 아닌, 1루 베이스 쪽이었다.
'흐음...'
해설은 그중에서 수혁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뭔가 있을것 같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현재 2사기도 하고, 투수이기도 하고... 작전은 잘 나오지 않을거 같다. 만약 도루가 나온다면 그건 선수의 단독도루겠지'
해설은 현재 용식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투수가 도루를 할까 말까인데.. 과연 할까... 안할까...'
[의원님, 투수가 초반에 비해서 제구가 조금씩 안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설이 한참 생각에 잠기면서 완전 집중한 도중, 갑자기 캐스터가 불쑥 끼어들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면서 캐스터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음... 여기 기록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예선을 보면 권찬진 선수가 약 6-7이닝 정도를 막고, 나머지 2-3이닝을 다른 투수들을 올려서 막는 식이었습니다]
[그럼 슬슬 체력이 다했다는 건가요?]
[현재 6회말, 거기다가 아까 성공한 기습번트의 영향도 있을테니까, 아무래도 지친것이 맞겠죠]
해설은 깔끔하게 대답을 한 다음에 다시 1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수혁을 바라보는 순간
[투수, 2구 던집니다]
캐스터의 목소리와 함께 수혁의 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투수의 발이 떨어지는 순간, 수혁은 2루쪽으로 중심을 확 옮기면서 빠르게, 더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제일 먼저 발각한건 타석쪽에 있는 운선과 포수. 하지만 운선은 공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된 대처를 할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대처하기 시작한건 포수, 몸은 벌떡 일어나면서 눈으로는 2루 에이스로 들어가는 유격수를 확인했다. 그다음 공이 미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숙여!"
크게 소리치고는 미트에 박힌 공을 꺼낸 다음에 2루를 향해서 강하게 뿌렸다.
슈우욱-
포수의 어깨가 좋은건지 공은 매우 빠르게 뻗어갔다. 단지 문제라면 각도가 조금 낮았는지 바닥에 한번 부딪히고서 향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번 바운드 되는 송구가 나쁜건 아니었다. 그 부딪히는 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다시 튀어오르는 각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야수가 훨씬 더 잡기 좋은 공이 될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도루저지라면 그닥 좋은 현상은 아닌 상황, 그럼에도 유격수가 앞으로 살짝 나와서 잘 받아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태그하려는 순간
타악-
"세이프!"
수혁의 손이 먼저 닿으면서 심판의 세이프 콜이 들려왔다.
"아..."
수혁이 살아남자 포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외마디 탄신을 내뱉었다. 그런 다음에 투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약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투수는 여전히 무표정을 지은채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괜찮다고 대답해줬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로진백을 주물럭 거리면서 운선을 빤히 쳐다봤다.
'현제 2사에 2스트라이크, 이제 내 역할은 거의 끝났다. 이쯤에서 꺼내도 되겠지'
투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잡고있던 그립을 바꿔쥐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음...? 아, 이제 막판이기도 하니까... 오케이'
포수는 사인을 받고는 살짝 의아해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미트를 낮게 내밀면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자, 마음껏 던져! 내가 어떻게든 다 막아 줄테니까!'
*
'수혁이의 도루로 2사에 2루... 그럼 어떻게든 공을 건드려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게 내 일이다'
한편, 운선은 2루에 있는 수혁을 보면서 자신이 할 일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평상시라면 별 생각없이 사는거같고 병신짓에 남들이 보면 웃기는 행동만 일삼는 그였지만, 그도 지금만큼은 시합에 매우 집중해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할일이 정리되자 배트를 꽉 쥐고는 투수를 노려는 운선, 그리고 거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만은 남겨놓았다.
'내야수만 넘기자'
'운선아,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내야만 넘겨줘. 그럼 내가 알아서 들어갈게'
수혁은 2루에서 꽤나 많이 떨어진채로 투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봐도 너무 많이 간것같다는 느낌이 들을 정도의 거리, 하지만 수혁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투수는 지금 지쳐보이고, 무엇보다 2루 견제를 하려면 몸을 돌려야한다. 작전이 나온다면 모를까, 지금 포수가 미트를 낮게 잡은걸 보면 그런 작전은 생각하지 않는거 같고'
수혁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잘 주시하면서 자신이 취해야될 행동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서 운선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냥 재미있고 병신짓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는 진지할때는 매우 진지해질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본 운선이는 그런 사람이었어'
수혁은 자신의 판단을 믿으면서 운선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투수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여차하면 3루 도루라도 할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
'이제...'
포수가 준비되자 투수는 운선을 슬쩍 쳐다본 다음에 미트로 시선을 돌리고는 천천히 오른다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다음 올린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면서 왼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이걸로 끝내자!'
슈욱-
그러면서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빠르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일직선이 아닌, 살짝 붕 뜬채로 뻗어가는 기분으로 뻗어나갔다.
'건드리자, 건드리자, 무조건 건드려서 내야수를 넘겨버리는거야!'
운선은 배트를 빠르게 내밀면서 어떻게든 공을 맞추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뭔가 느린공에 입가에 살짝 감돌기 시작하는 미소. 그리고 배트가 거의 다 나온순간
휘익-
공이 아래로 뚝 떨어지면서 당황의 입벌림으로 바뀌어버렸다.
부웅-
파앙-
그러면서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운선의 배트, 그리고 그대로 6회말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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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루비양말즈 VS D.라이더즈(7)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