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62화
그렇게 다소 힘이 빠지면서 끝나버린 6회말, 지금 마운드에는 수혁이 오른손으로 로진백을 살살 문지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라운드에는 방금 막 들어온 야수들이 둘씩 짝을 지어서 캐치볼로 약간 식은 어깨를 다시 풀어주고 있었다. 수혁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면서 홈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경기 후반, 아직 내 투구수는 65개, 여유는 있다. 그리고 지금 어깨 상황도 괜찮은거 같고...'
수혁은 지금 상황을 현실적으로 판단하면서 어깨를 한번 돌려봤다. 어깨를 돌릴때 뭔가 뻐근하거나 힘든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듯이 매우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하긴, 지금부터 약 2-30개가 가장 공이 좋을때니까...'
수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로진백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그러면서 종빈이랑 눈이 마주치자 종빈이 그에게 공을 던져줬다.
수혁은 천천히 오는 공을 무난하게 받아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타석에 들어오는 타자를 쳐다봤다.
'아직 타자들은 내 공에 완전히 막혀있다. 지금까지 전혀 출루가 안된걸 보면 아예 꽁꽁 틀어막혀 있는게 분명해. 골드스타즈처럼 뭔가 숨기고 있나 했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딱히 느껴지는 분위기도 없었고 말야...'
지금까지 루비양말즈의 타선은 수혁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는 상황, 그 결과 6회까지 수혁에게 완전히 막히면서 1루를 단 한번도 밟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퍼펙트로 당하는 상황, 거기에다가 수혁이 빠르게 빠르게 승부하면서 투구수도 매우 효율적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퍼펙트와 경기 후반, 어떻게 보면 최상의 과정이지만, 그 최상의 과정 떄문에 지금 수혁에게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6회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던 부담감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슬슬 퍼펙트 게임이 의식되기 시작하고, 퍼펙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퍼펙트 상태다. 하지만 여기서 의식하고 긴장하게 되면 무너질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수많은 투수들이 그 찬스를 놓친 이유야. 그러니까 절대로 의식하지 말고 천천히, 지금까지 했던대로 맞춰잡자'
수혁은 숨을 길게 내쉬면서 자신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느껴지는 부담감을 최대한 견뎌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
'흐음...
한편, 종빈은 타석에 들어와있는 타자를 슬쩍 쳐다봤다.
지금 타자는 출루 한번도 못해보고 수혁에게 꽁꽁 막혀있는 상황, 그래서 그런지 어떻게든 출루하려고 배트를 짧게 잡고있었다.
'역시, 그렇게 나올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별 효과는 못볼텐데 말야'
종빈은 수혁에게로 시선을 돌리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수혁이 타자들을 상대한 횟수는 총 18번, 지금까지 모든 타자들과 두번씩의 승부를 본 셈이었다.
그 중에서 수혁이 삼진을 잡은 갯수는 고작 4번, 3분의 1도 안되는 수치였다. 보통 내야 땅볼이나 간혹 내야 플라이가 나오는 경우였다. 타구가 외야로 간적은 단 한번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타자가 어떻게든 맞추기 위해서 짧게 잡았다. 분명히 그럴만하긴 하지만, 거의 내야 땅볼로 타자들을 제압했던 수혁에게는 별 효과를 기대할수가 없는 방법이었다.
'이래서 땅볼러가 좋다고 하는거구만'
종빈은 살짝 웃음이 새어나온채로 수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수혁이 사인을 기다리는듯 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부랴부랴 사인을 보냈다.
'뭐, 패턴을 바꿀 필요는 굳이 없어보여. 바꿨다가는 쟤네들이 더 유리해질거 같기도 하고, 지금 이대로 가자. 우선 초구는 투심으로'
'그대로 가자는거네. 오케이, 간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막 쥐고있던 야구공을 투심 그립으로 바꿔쥐었다. 그다음 미트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다음 그 왼다리가 앞으로 쭉 나오면서 같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양판, 그리고 왼발을 땅에 디딘 순간 오른팔이 빠르게 앞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손에서 공이 떠나갔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미트를 향해서 쭉 뻗어나갔다. 그러면서 같이 나오는 타자의 배트, 그리고 거의 다 나왔을 즈음에 공이 타자의 몸쪽으로 공 두세개 정도로 휘면서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파앙-
"스트라이크!"
공이 미트에 들어가자 심판의 콜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타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멍하니 수혁을 쳐다봤다. 반면에 수혁은 종빈이 던져주는 공을 가볍게 받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종빈을 쳐다봤다.
'하아... 미치겠네. 뭔놈의 투심이 휘는 각이 뭐이리 크냐고!'
타자는 막막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금 수혁의 투심은 누가 봐도 탄성이 나올정도로 각도가 큰 편이었다. 애초에 투심은 보통 휘는 각이 그리 크지 않은 구종이었기 때문에 그랬었다.
근데 지금 수혁은 휘는 각도가 남들의 거의 두세배 정도나 되니까, 타자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것도 그럴만 했다.
'의식하지 말자, 이대로만 가는거야'
반면에 수혁은 무표정으로 타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제 슬슬 경기 후반에 지금까지 퍼펙트로 막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아까 초구를 꽂기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듯한 느낌, 그러면서 아까와는 다른 떨림이 오기 시작했다.
[자, 이제 경기는 7회로 들어옵니다. 아까 안수혁 선수가 몸쪽 투심을 꽂으면서 현재 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노볼 상태입니다]
한편, 중계석에서는 캐스터가 현재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중계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와중에 해설은 캐스터의 말을 들으면서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현재 화면에는 보통 중계화면의 모습처럼 마운드에 서있는 투수와 타석에 있는 타자와 그 뒤에있는 포수와 심판이 나와있는, 중계방송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평범한 장면, 하지만 해설은 뭔가 발견한 점이라도 있는건지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현재 7회초, 그리고 퍼펙트로 상대를 막고있는 상황. 안수혁 선수가 지금 슬슬 의식하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루비양말즈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1루 베이스를 밟지를 못했군요!]
[네, 비록 동네야구 대회이고 단기전이긴 합니다만, 의미없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 프로선수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록이 퍼펙트 게임입니다. 절대로 의식이 안될리가 없죠]
해설은 거의 확인하는 말투로 말하고는 화면에 비치는 수혁이 아닌, 그라운드 위에 서있는 수혁을 쳐다봤다. 캐스터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와 같은곳을 쳐다봤다.
'후아아... 이제 진짜 슬슬 퍼펙트가 의식되긴 되나보네... 의식 안하려고 했는데 아까부터 의식이 되고있어...'
마운드 위에 서있는 수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이 자꾸만 뒷쪽 전광판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속 의식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럴때마다 자꾸만 힘없이 돌아가는 고개, 아무래도 엄청난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보니까 그런듯 싶었다.
"..."
종빈은 그런 수혁을 살짝 불안한 눈으로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혁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불길해. 흔들리고 있는거 같아'
종빈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심판에게 타임을 외친 다음에 수혁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마운드 위로 걸어올라가자 그의 예상대로 수혁은 긴장된건지 경직된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뭣하러 올라왔어"
수혁은 종빈이 오자 힘없이 웃으면서 물어봤다. 종빈은 아무런 말도없이 그런 수혁의 모자를 벗겨버렸다.
모자가 벗겨지자 모자에 눌린 수혁의 머리가 그대로 다 드러났다. 오늘 수혁이 수비를 빨리빨리 마치고 덕아웃에선 모자를 벗고 있었지만, 그래도 눌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야, 갑자기 왜그래?"
수혁은 살짝 놀란 눈으로 종빈을 쳐다봤다. 종빈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머리좀 환기시키고 인마, 너 지금 불안한거 다 보인다"
"...그러냐?"
수혁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내쉬었다. 종빈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봤다.
"쩝... 솔직히 이정도 왔는데 의식이 안될수는 없잖아..."
"역시, 넌 생각이 많아.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과감할땐 과감하지만, 꼭 이렇게 겁먹어서 생각이 많아지거나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니깐..."
"와우, 그건 또 언제 알았냐?"
"맨날 너 공받는데 그정도도 모를겠냐? 다 느껴지더라"
종빈은 놀란 수혁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에 수혁도 천천히 미소를 지으면서 종빈이 들고있던 모자를 가져와서 다시 머리위에 썼다.
그러자 종빈의 고개가 살며시 끄덕여졌다. 그리고는
"그럼 난 가본다. 정신 차리고"
이 한마디만 하고서 곧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시킨 결과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이닝 체인지!"
7회도 타자들을 완벽히 제압하면서 이닝을 마무리할수가 있었다.
*
7회초가 끝나고 7회말,
'현재 상황은 뭔가 팽팽해 보이는 느낌, 그러나 이제 경기 후반이고, 저쪽 투수는 아마 슬슬 교체될거라고 본다. 여기서부터 균형이 한번 휘청할거야. 우리가 치고 나갈때는 그때, 단 한번뿐이다'
용식은 덕아웃에서 말없이 상대편 덕아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쪽 선발투수의 어깨는 이미 아이싱을 하고 있는 상황, 교체를 의미한다는 뜻이었다.
'교체는 확실하다, 이제 완벽히 끝났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용식의 예상대로 현재 불펜장에는 다른 투수들에 몸을 풀고 있었다. 그게 확실해지자 용식은 곧바로 선민을 불러왔다.
선민은 용식이 부르자 시선을 돌리고는 용식에게 다가왔다. 용식은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선민아, 이번 이닝은 너부터 시작인거 알지?"
"네"
"그럼 이제부터는 무조건 스윙을 커다랗게 가져가는거다"
"...네?"
선민은 순간 당황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혼런타자도 아닌데 갑자기 스윙을 크게 가져가라니,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용식은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듯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산욱을 힐끔 쳐다봤다.
"저쪽팀은 선발이 에이스다. 그렇다고 불펜이 못하는것 아니야. 오히려 구속 면에서는 수혁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뒤지는 수준이야"
"그래서요?"
"너는 이번에 녀석들에게 한가지 인식을 심어주는거야"
용식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채로 선민을 쳐다본 상태로 잠시 텀을 둔 다음에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나오는 불펜 투수들은 딱히 특출난 변화구는 없다. 있어봐야 투심 좀 던지는 녀석 하나야. 너는 그런 애들한테 우리는 이렇게 작전을 바꿨다. 그런걸 커다란 스윙으로 표현하는거야"
"음... 그럼 그 뒤에 생각한 작전은 있는거죠?"
"당연하지, 그래도 감독인데, 생각없이 그러겠냐"
선민의 물음에 용식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선민의 등을 툭툭 치면서 타석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준비하고 있던 호진을 불렀다.
"호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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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루비양말즈 VS D.라이더즈(8)201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