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169화 (169/255)

우리 동네 야구팀-167화

"하아..."

"왜그래? 너무 한숨만 쉬지 말고. 뭐, 그런말도 있잖아"

"내가 성공하는게 최고의 복수다? 됐다, 됐어. 아직 그렇게까지 성공한 것도 아닌데 뭐"

"왜에~ 너 이미 스포츠 뉴스에도 도배됐는데"

"10대 여자애들 중에서 야구에 미쳐 사는 인간이 얼마나 없는지 잘 아는 사람이 그러냐"

"그건 그렇다만... 적어도 남자애들은 잘 알걸?"

"됐다 됐어. 그냥 갑시다 가요"

며칠뒤 7월 12일 토요일. 우리는 강남의 어느 한 초등학교 앞에 나란히 서있었다. 보통 언덕이나 고개가 많던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이쪽은 주로 평지이면서, 학교 면적도 매우 넓었다.

그러면서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아도 그때의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상이 찌푸려지려고 하는 찰나

"지금은 아무것도 보지마. 아무것도 떠올리지마"

작은 손이 내 눈을 가리면서 예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가자고 하면서 막상 오고나서는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떠올리지 말라니. 거참,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 오자고 한사람은 넌데"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자고 한거같아?"

"뭐... 애들 앞에서 남친이라고 속이거나 그럴려는 속셈이겠지. 한번속지 두번속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애꿎은 머리만 벅벅 긁어댔다. 그리고 예영이의 손을 떼어내려고 하는 순간

"트라우마"

예영이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단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올라가던 내 손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뭔가 짐각이 가기 시작하면서 무슨 뜻인지 일단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트라우마?"

"32강전 봤어. 그정도면 이미지도 잘 잡혔고, 임펙트도 충분해. 물론 실력은 원래부터 우승할수 있었다고 봐"

"그래서, 너가 생각한 핵심은 트라우마다. 이거야?"

"잘 아네"

예영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손을 덥석 잡고는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야, 나 이래뵈도 여친 있는데 막 손잡고 그러냐..."

"여친은 개뿔. 아직 고백도 안했으면서. 내가 모를줄 아냐"

"..."

나는 손을 떼어놓으려고 했으나 예영이가 계속해서 꽉 붙잡는 바람에 결국 손을 놓는것을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이젠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네.

그렇게 계속 운동장을 옆으로 한채 쭉 지나가고 나자 으리으리한 건물이 보였다. 대원중학교 건물 두개 이상을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건물. 내가 어렸을때랑 전혀 바뀐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아... 다시는 오늘일 따윈 없을줄 알았는데..."

"그냥 훈련이라고 생각해봐"

내가 작게 궁시렁대자 예영이는 신난건지 미소를 지은채로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느 학교와 별 다를바 없는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옛날과 지금의 이곳을 한번 비교해보려 했으나, 그 시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관계로 패스. 천천히 걸어가면서 멍하니 둘러봤다.

그러다가 예영이에게 시선을 돌리자 어렸을떄가 떠오르는건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같이 올라가는 입꼬리 예영이가 그러면서 다른곳으로 시선이 돌아가지를 않았다.

"음?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냐"

예영이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미소를 지어보이자 나는 급하게 다른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대충 둘러댔다. 그러면서 아까만해도 별 반응이 없었던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안수혁! 갑자기 왜이래?'

나는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서 급하게 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자 예영이의 발걸음이 멈추면서 덩달아 나도 같이 멈춰섰다.

"왜 멈춰?"

"다왔으니까 그렇지"

예영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들어서 여기가 어딘지 확인했다.

"3학년... 1반. 그때 거기네"

"그러게, 일부러 여기로 잡았나봐"

내 중얼거림에 예영이는 옛 생각이 떠오른건지 나랑 같은곳을 보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문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럼, 들어간다"

"..."

나는 아무런 말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영이는 그걸 확인하고는 나를 잡고있던 손을 놓은 다음에 문을 잡은 손을 오른쪽으로 밀면서 천천히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금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슥 문지르고는 예영이를 따라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세팅이 다 끝난건지 교실 한가운데에 책상들이 서로 마주본채 2열로 주르륵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들을 반정도 채우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빤히 쳐다봤다.

"어, 안수혁!"

"퍼펙트맨!"

"어, 진짜 그 퍼펙트맨이야?"

"헐 대박!"

"퍼펙트맨이 뭔데?"

"그때 걔 별명이었나?"

"그건 아닌걸로 아는데"

대부분 남자애들은 나를 보마마자 마치 연예인을 보는것처럼 그사이 생긴 내 별명을 부르면서 친근하게 다가왔다.

반면에 대부분 여자애들은 그게 뭔가 하면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히려 어느새 자리를 잡은건지 예영을 보면서 더욱 반가워하고 있었다.

이러고 보니까 왠지 스타가 된 기분이 드는건 좋네. 오는 놈들이 저딴놈들인건 별로지만.

"예영아, 너 왜이렇게 이뻐졌어?"

"옛날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더 그러네!"

"부럽다... 난 그냥 살만 뒤룩뒤룩 쪘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 다시 시끄러워지는 교실.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 둘이 있게 되었다.

예영이는 간만에 옛날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좋게 웃고 있었지만, 난 그저 무표정으로 최소한의 말만 하면서 저쪽 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옛날에는 거의 벌레취급하던 새끼들이 이제와서 왜 달라붙고 난리들이야'

나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면서 계속 들어오는 질문과 관심들에 대충, 아주 짧막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히 시간이 점점 지나자 애들은 하나 둘씩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더니 이내 예영이의 외모를 보고는 전부다 그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휴, 드디어 좀 떨어졌네'

마지막으로 나한테 관심을 보이던 녀석마자 저쪽으로 가버리고 혼자가 되자 나는 그제서야 조금 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저 멀리있는 예영이를 쳐다봤다.

예영이는 아까 여자들에 이어서 이제는 남자들까지 다 몰려들자 조금 난처한지 입은 웃으면서 눈으로는 살짝 힘들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트라우마는 무슨, 그냥 간만에 이러고 싶어서 가자고 했던거였나 보네'

나는 어이없다는듯이 픽 하고 웃으면서 책상에 오른판을 올려서 턱을 괴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채로 예영이를 쳐다봤다.

'바보, 좀전까지만해도 엄청 신나게 떠들더니. 이럴줄은 몰랐나보네. 쌤통이다'

예영이는 그렇게 계속 둘러싸인 와중에도 여전히 수많은 질문들에 일일히 대답해주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애들은 그때도 그랬던지라 지금도 별다른 생각없이 계속 예영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질문들을 퍼붓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 만난 운동선수나 한류스타의 모습과도 비슷해보였다.

아, 생긴건 그럴만도 하네.

"저, 저기 일단 손은 좀 놓고 얘기하자"

그러던 와중, 갑자기 한 남자애가 예영이의 몸에 손을 대기라도 한건지 그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예영의 난감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여자애들의 약간의 질투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방금 뭐라고...?'

그 순간, 나는 뭔가 하면서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수많은 애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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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동창회(3)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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