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76화
1회말이 끝나고, 나는 다시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로진백을 계속해서 주무르고 있었다.
"후우..."
그러면서 작게 새어나오는 한숨, 그다음 먼곳을 본채로 한번 더 내쉬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이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 경기는 0대 0. 점수만 보면 아직까진 승부는 양쪽의 사이, 한가운데에 있는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아까 그 삼진과 도루자로 인해서 분위기는 G.애플즈에게 완전히 넘어가버린 상황, 그 때문인지 아까 그라운드로 나가는 애들의 표정이 그닥 좋지 않아보였다.
야구는 분위기의 스포츠, 분위기를 타는 팀은 공수 양면에서 거침이 없어지며 승리가도를 달린다. 반면에,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상대의 분위기에 휩쓸린 팀은 말리고 꼬이면서 결국 경기에서 지게 되버린다.
거기다가 그 분위기가 그 경기에서만 끝나는게 아니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같은 곳에서 오래 지속된다면 그 다음경기, 혹은 일주일씩 가거나, 심하다면 달을 넘어서 아예 한 시즌까지 말아먹는 경우도 있었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해야될 일은 확실했다. 넘어간 분위기를 우리쪽으로 가져오는것.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조금은 위험할수 있겠지만, 조금은 과할수도 있겠지만, 지금 어떻게든 분위기를 가져와야만 했었다.
'후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 허리를 살짝 숙이고는 종빈이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종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금의 텀도 두지않고 재빨리 공을 던졌다.
슈욱- 파앙-
"스트라이크!"
내 손에서 떠나간 공은 빠르지 않게, 오히려 1회때보다 느린듯한 느낌을 주면서 포수의 미트로 날아가서 사인대로 잘 들어갔다. 종빈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건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별일 아니겠지라는 식으로 나에게 다시 공을 던져주었다.
터업-
나는 공을 받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다음에 한번더 사인을 주고는 잠깐 텀을 두었다가 공을 던졌다. 하지만 전력이 아닌, 거의 절반도 안되는 힘으로 공을 던졌다.
파앙-
이번에는 바깥쪽 한참 멀리 날아간공. 공은 확실히 존 안으로 들어갔지만, 타자의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 밖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때, 완벽하게 허를 찔린 기분이지?'
나는 타자를 쳐다본채로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였다. 그리고는 한번 더, 종빈이에게 사인을 보냈다.
'지금 타자는 매우 신중하고 배트가 잘 나오지 않는 성격, 초구는 거의 흘려보내고, 2구째도 거의 흘려보내는 타입이고, 넌 아마 이쯤에서 커브를 요구할거야. 맞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다시 내쉬었다. 그런 다음에 타자를 슬쩍 쳐다보고는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넌 완전히...'
그런 다음에 왼다리가 앞으로 쭉 뻗어 나오면서 오른팔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말려든거야!'
슈욱-
내 손을 떠나간 공은 앞에 두 공과는 차원이 다를정도로 빠르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의 공들보다 훨씬 더 빨리 종빈이의 미트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파앙-
"스트으라이크! 아웃!"
완벽히 들어간 투구, 뒤이어 심판의 시원한 콜이 들려왔다. 나는 몸이 돌아간채로 자신을 자책하는 타자를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쳐다봤다.
'후우... 오케이, 일단 한타자 처리 성공했다'
나는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짧고 굴게 딱 한번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종빈이가 던져주는 공을 받았다.
*
[안수혁 선수 삼진, 삼구삼진 입니다]
[허허... 안수혁 선수, 완급조절로 완벽하게 상대를 자기 흐름으로 끌고왔습니다]
한편, 중계실에서는 계속 중계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수많은 관중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여져서 엄청 커다란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평온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계방송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음... 아무래도 안수혁 선수가 상대에 대해서 잘 안게 아닐까요?]
[확실히 그런듯 합니다. 오는 정보가 있으면, 그걸 토대로 해서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것이죠. 게다가 투구와는 다르게 타격은 공이 오는순간 재빨리 반응해야 됩니다. 투수처럼 원하는 타이밍에 배트를 휘두를 수가 없죠. 안수혁 선수는 아무래도 그 점을 잘 파악한것 같습니다]
해설은 자신의 예측을 막힘없이 술술 내뱉으면서 화면에 단독으로 나오는 수혁의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그런 다음에 눈을 감은채로 살짝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안수혁... 확실히 머리도 좋고, 정보를 잘 활용할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안수혁 선수,두타자를 연속으로 삼수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심판의 삼진콜이 들려오더니 이내 캐스터가 조금 강한 말투로 수혁의 삼진소식을 힘있게 전달했다.
'...음? 벌써 삼진이라고?'
아직 타이밍이 조금 빠르다 싶을떄 또 나온 삼진. 거기다가 이번에도 삼구삼진이었다.
해설은 뭔가 하면서 그합게 눈을 뜨고 화면을 쳐다봤다. 그러자 다시보기가 나오는 화면, 그리고 수혁이 커브로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무슨 일인지 캐스터를 쳐다보자 그는 대단하다는 의미로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안수혁 선수, 두 타자연속 삼구삼진, 이러면 이젠 다음 타자도 삼구삼진으로 잡을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캐스터는 조금 흥분한건지 아까보다 살짝 더 올라간 목소리로, 그리고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해설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화면에선 수혁이 삼진을 잡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뚝 떨어지는 커브를 던진 수혁과, 허공을 속절없이 가르는 배트, 그리고 완벽한 블로킹과 뒤이은 태그. 완벽한 헛스윙 삼진이었다.
[안수혁 선수... 완전히 작정하고 나온것 같습니다]
그런 영상을 보던 해설은 잔잔한 목소리로 나지막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금 밖에 들리는 함성소리와는 정 반대의 모습,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요?]
[지금 안수혁 선수의 모습을 잘 보십시오]
[음... 그냥 사인을 보내고 있는거 같은데요?]
해설의 말에 캐스터는 화면을 잠시 쳐다본 다음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해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선두타자 삼진을 잡았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이건 안수혁 선수가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려고 퍼포먼스를 하는것 같아보입니다]
[퍼포먼스라뇨...?]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캐스터는 궁금해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해설을 쳐다봤다. 해설은 그런 캐스터의 시선을 슬쩍 쳐다본 다음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선... 두 타자 모두 삼구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첫 타자는 느린 타이밍, 느린 공으로 잡았다면, 두번쨰 타자는 빠르게, 더 빠르게 공략해서 잡았습니다. 완급을 조절하면서, 리듬을 타고, 그 리듬에 타자들을 끌어들여서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죠]
[하지만 그건 선발투수가 호투중에 쉽게 나오는 모습이 아닙니까?]
[하지만, 조금전 안수혁 선수의 모습을 보셨습니까? 임성빈 선수에게 미리 사인을 지시하는듯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네, 그렇죠]
해설의 말에 캐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안수혁 선수가 수싸움에 능하고 머리가 좋다는건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완급을 조절하면서 연속으로 삼구삼진을 잡는데, 자신이 직접 사인까지 낸다? 이러면 충분히 안수혁 선수가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팀의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려는 예측이 나올수도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아...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구요. 그렇다면, 안수혁 선수의 두번 연속 삼구삼진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는 건가요?]
[네, 그리고 아마 이번 타자도 삼구삼진으로 잡으리라고 봅니다]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예상을 덧붙였다. 그리고 해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이닝 체인지!"
삼진 콜을 외치는 심판과 함께 수혁이 마운드를 유유히 내려가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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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화-G.애플즈 VS D.라이더즈(7)201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