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81화
"허억... 역시 우리학교 등교길은 더럽게 힘들어..."
성빈과 종빈이 힘없이 하늘만 멍하니 쳐다볼때, 수혁은 학교 정문 앞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어깨에 맨 작은 가방 안에서 글러브를 꺼내들었다.
"자, 그럼 이 학교에 온 진짜 목적을 실행하러 가보실까..."
그저께에 경기를 했었지만, 그날 수혁이 던진 공은 약 60여개, 타자들보다 한수 높은 구위와 빠른 승부로 상대타선을 완벽히 잠재운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하교때부터 어깨가 조금 근질했었던 수혁은 결국 조금만 가볍게 던지기로 하고 학교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하아... 진짜, 이놈의 집근처에는 던질곳이 하나도 없냐... 그래도 여긴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그렇게 혼자 궁시렁 거리면서 주로 차들이 다니는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수혁, 그리고 조금 오르다 보니까 운동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운동장 저 멀리, 구석에 앉아있는 쌍둥이와 훈련장비들이 가로등 불빛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음...? 쟤네 오늘 안가고 뭐한다냐..."
수혁은 뭔가 하면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무슨 일인가 하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가자 힘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두 사람이 보였다.
"얌마, 너네들 뭐하냐"
수혁은 뭔가 하면서 그 둘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둘을 슬쩍 보면서 그 옆에 같이 털썩 주저앉았다.
"뭐...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말야..."
수혁이 물어보자 종빈이 힘없이 대답했다. 성빈은 대답할 힘도 없는건지 그저 한숨만 내쉬면서 어두운 하늘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수혁은 잠시동안 그런 둘을 아무런 말도 없이 쳐다봤다. 그러면서 오늘 낮에 뭔가 갑자기 화장실에서 힘없이 있던 성빈을 떠올렸다.
'둘다 오늘 낮부터 왜들 그러는거지...'
낮부터 뭔가 힘없이, 그리고 멍하니 서있던 성빈을 눈치챘었던 그로서는 지금 성빈의 이런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종빈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 수혁은 무슨 이유에서 저러는가 하면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혹시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던건가...? 혹시 예선에서 떨어지고 야구 하지 말라고 했던... 아냐, 그러면 지금 이럴수도 없는데... 도대체 뭐지...'
수혁은 혹시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짐작이 가지 않는 이유, 결국 수혁은 잠시 생각하는걸 관두고 팔을 쭉 뻗으면서 하품을 쫙 내뱉었다. 그런 다음에 이번엔 둘과 같이 하늘에 시선을 두고는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야... 혹시 좋아하는 애한테 차인건가? 아냐, 그러면 둘다 이럴리가 없고... 아씨, 얘네가 계속 이러면 팀에도 분명 악영향이 올텐데...'
결국 수혁은 답답한건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훈련장비들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그때의 일이 번뜩 떠올랐다.
'아, 그때...!'
*
'하아... 그때 그일 때문이었냐...'
나는 다시 둘을 아련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쌍둥이의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찾아간날, 내가 내 입으로 했었던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성빈이랑 종빈이는 야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둘의 열정은 다른 야구팬들과는 다릅니다]
[단지 특정 야구팀을 좋아하고,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 특징등을 외우는 것. 그것들은 야구를 조금만 좋아한다면 1, 2년만에 익힐수 있는겁니다. 적어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그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 다른 야구팬들이 야구에 대해서 얘기할때면 다들 그냥 즐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빈이랑 종빈이는 달랐습니다. 자기도 하고 싶었다는 애잔함, 후회, 씁쓸함의 느낌이 느껴졌습니다. 말투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내가 그날 설득만을 목적으로 해서 그저 내 추측으로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 둘이 야구를 매우 좋아했던건 사실이었지만, 정말로 선수가 하고 싶을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정작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나조차도 그냥 선수가 되면 재밌을것 같다, 좋을것 같다는 푸념섞인 희망사항으로 얘기하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둘은 전혀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다. 평상시에 보이던 행동, 내가 했던 말들, 그리고 오늘 낮부터 쭉 그래왔던 모습들을 떠올리면 딱 들어맞는다.
지금 성빈이와 종빈이는, 야구를 본격적으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있는것이 분명했다.
'하아... 왠지 요즘에 너무 열심히 훈련한다 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살짝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에 헛기침을 두어번 하면서 다시 하늘을 쳐다봤다.
"그렇게 야구가 하고싶었냐?"
"...?"
"...?"
갑작스러럽게 툭 날려보느 한마디, 그러자 둘다 뭔가 하면서 내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역시, 이것 때문에 이렇게 푹 죽어있었던거였네.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여전히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뭔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예전에 야구선수가 되보고 싶다는 생각 참 많이했었어. 하지만 중1이라 너무 늦어서 포기했었지. 막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어서 별별 조사를 다 해보고, 부모님께도 말해봤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는 내가 스스로 포기했었어"
"..."
"그냥 무식하게 일단 도전해볼 엄두가 안났던거야. 만약 실패했을때 그 후유증이 너무나도 클것 같아서. 그때 난 그냥 어리고 어린 겁쟁이었지"
아, 괜히 그때가 생각나서 왠지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나는 그런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숨을 크게 푹 내쉬면서 잠시 텀을 두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그땐 그랬었지' 라고 하면서 그냥 웃음과 함꼐 넘겨버려. 그냥 어린시절, 한곳에 있었던 추억같이 그냥 한곳에 묻어둔거지. 뭐, 모두다 그런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거 아냐?"
"..."
"근데 말야, 지금 막 생각이 바뀌었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성빈이와 종빈이가 있는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봤다.
"야구를 진짜로, 진심으로, 제대로 하고싶어?"
"...어?"
"...응?"
둘은 갑작스런 내 질문에 살짝 놀라면서 잠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둘에게 다시 한번더 목소리를 높여서 물어봤다.
"정말로, 진짜로, 진심으로! 야구, 하고싶냐고"
"...응"
"하고싶어"
이번에는 제대로 대답하는 두사람, 나는 둘의 대답을 듣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막마갷서 내쉬는 한숨이 아닌, 뭔가 중대한 발표를 하기전에 각오를 다지는 힘찬 한숨이었다.
"우승하면 체육특기생 자격증 생기는거 알지?"
"...응"
"그랬었지"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응했다. 그리고는 얘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둘을 쳐다본채로 잠시 텀을 두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든 야구부로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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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어딘가 이상한 수혁(1)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