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83화
'얘가 오늘 왜 이러지...?'
오늘따라 수혁이가 뭔가 이상하다. 내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말을 했던 애가 오늘따라 자꾸만 다른곳을 쳐다본다.
그리고 오늘따라 자꾸만 나 혼자 떠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은 수혁이가 말을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가거나, 서로 말이 왔다갔다 하면서 대화에 푹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수혁이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있고 나는 혼자 떠들면서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는 수혁이를 부를 뿐이었다.
뭔가 혼자 벽에다가 공을 던지는 듯한 기분. 공에 탄력도 없어서 자꾸만 공을 주우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이나 지금 수혁이는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시합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건가...?'
그러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전혀 알수가 없었다. 만날때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이가 나가는 대회에 대해서는 그닥 아는게 없었다.
내가 야구를 잘 모르는것 때문에 배려한다고 볼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것 치고는 너무 안했었다. 야구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앤데, 왜 여태까지 얘기를 안한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자 이제는 수혁이가 나에게 관심이 사라졌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봤을때만 해도 수혁이는 오히려 나를 보고 싶어해서 안달난 애였다.갑자기 이렇게 태도가 싹 바뀔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 사이 기간이 좀 된다고 쳐도 내 느낌으로 수혁이는 그렇게 갑자기 관심이 뚝 떨어질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건데, 지금은 아무리 물어봐도 말을 하지 않을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야구 문제라면 이미 주변에 상담할 사람들이 많을테고, 얼핏 들은바로는 지금 팀도 매우 잘 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야구에 관한 문제는 아닐거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수혁이를 그렇게까지 괴롭히는 걸까? 나는 수혁이를 빤히 쳐다본채로 가만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 미안. 내가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잠시뒤, 수혁이가 다시 정신을 차린건지 다시 내쪽을 바라보면서 한번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 괜찮은거야...? 정말로...?"
나는 걱정이 된다는 말투로 수혁이에게 한번더 물어봤다. 그러자 수혁이는 아주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팔을 뻗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마 한숨 푹 자고 나면 나아질거야"
"정말로...?"
나는 약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면서 수혁이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자 아까보다는 조금 더 환하게 웃는 수혁이. 하지만 그 미소에서 자꾸만 뭔가 알수없는 불길함이 들고 있었다.
뭔가 이제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는, 얼마 안가서 영영 헤어질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야, 야, 이거 봐봐"
강남의 어느 한 명문 중학교, 어느 한 남자가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를 향해서 돌아보는 남자. 그의 명찰에는 '김현' 이라는 이름이 박혀있었다.
"왜, 뭔일인데"
현은 자고 있었던건지 앞머리를 정리하면서 궁시렁 거리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는 그런 반응은 그대로 무시하고는 휴대폰을 몇번 두드리고는 그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요즘 여기 이 투수가 은근히 대세더라. 퍼펙트 게임에 실력도 좋은편이고, 거기다 사람들 말로는 겉보기엔 날카롭게 생겼는데 귀여운 면이 많이 보인다고 하더라"
남자는 공감하는건지 질투나 열등감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그 투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반면에 그 화면을 보는 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진채로 화면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름이 안수혁...? 그때 그 짜증나는 녀석 아냐?'
그러면서 그의 머릿속에서는 지난번에 시비가 붙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괜히 얕보다가 커브에 제대로 당해서 굴욕을 당한것까지. 그러면서 그의 입은 화를 삭히려는 듯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봤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털수 있는 새끼네, 저딴 놈이 뭐가 좋다고 그리 빠는건지..."
현은 짜증난다는 말투로 궁시렁 거리면서 화면을 다시 남자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혀를 한번 차고는 다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다음에 별 생각없이 SNS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평상시면 코웃음 한번 치고 지 얼굴이 더 잘났다고 할 녀석이 뭐저리 과격한 반응을 보인다냐..."
남자는 그런 현의 반응이 예상 외라고 생각되는지 잠시동안 그러는 현을 멍하니 쳐다봤다.
확실히 현의 얼굴은 피팅모델 제의가 종종 들어올 정도로 매우 잘생긴 편이었다. 거기다가 쭉쭉 뻗은 기럭지는 덤, 그런 그의 깔보는 반응을 예상하면서 보여줬던 그로서는 살짝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 웬일로 깔보지를 않고 그러냐, 잘난놈이 말야"
"아, 됐어. 그새끼 얘기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지마"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매몰찬 성질뿐. 결국 남자는 뭔가 일이 있는건가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
"요즘 이 투수가 빵 뜨고 있던데. 이거 재수없으면 우리랑 붙는거 아냐? 요즘 기세 장난 아니던데"
현이 수혁을 보고 잔뜩 인상을 찌푸릴 무렵, 다른 중학교에서 몇몇 남자애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다같이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보는 화면에는 수혁의 사진과 함께 그 밑에는 기사글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들 화면에 집중하면서 기사를 천천히 읽어나가는건지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감독님이 예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기사를 다 읽었을 즈음, 누군가 예전에 들은 말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에게 쏠리기 시작하는 관심,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기 D.라이더즈의 감독 특성상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상대팀들은 점점 더 힘들어질 거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 저렇게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오고 상승세를 타버린다면..."
"대진표상 우리랑 4강에서 만나고, 그러면 우리가 질수도 있다... 이 얘기야?"
"..."
중간에 끼어든 한마디로 인해서 갑자기 축 가라앉는 분위기, 그리고 모두들 갑자기 말에 끼어든 그 학생을 쳐다봤다.
"지혁아, 그래도 우리도 나름 우승후본데, 설마 그럴리가 있을까..."
"그래, 지금 우리 성적도 좋고,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데 뭘 그런소리를 하고 그래"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모두가 그래도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른 생각인지 무표정으로 아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할말이 생겼는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우리가 예선 마지막 경기를 저 팀하고 붙었잖아"
"응"
"그렇긴 하지"
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단 사실을 얘기하니까 딱히 뭐라고 할말은 없었다.
"내가 타석이나 포수 자리에서 느낀건데... 저 팀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많다는 느낌이 있었어"
"응?"
"어?"
그의 말에 이건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이는 나머지 사람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뭔가를 알아차린건지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아... 그럼..."
"그떄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맞을거야. 그리고 요즘 D.라이더즈도 엄청 뜨고 그래서 그쪽 애들 정보같은건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나온다고"
"어, 잠시만. 우리 그때 피시방에서 검색해봤지 않았어?"
"경종고 감독으로서 1년만에 우승을 만들어낸 감독..."
거기까지 추리를 해보자 이내 놀라기 시작하는 나머지 사람들, 그리고 그가 쌔기를 박듯이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만약 D.라이더즈가 8강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면, 4강은 우리 레드 타이거즈와 D.라이더즈의 리턴매치가 될거야. 그것도 엄청난 혈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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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호연 팔콘즈 VS D.라이더즈(1)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