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리 동네 야구팀-188화 (188/255)

우리 동네 야구팀-186화

종빈드 둘을 가만히 보고있는사이, 포수는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그런 다음에 입모양이 보이지 않도록 미트를 입에 재고는 투수에게 말했다.

"도대체 뭔가 문제길래 그래. 이상한 볼배합도 아니잖아?"

"...왜 슬라이더 사인은 안내?"

투수는 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잠시동안 가만히 있다가가 물어봤다. 그러자 들으면 안되는걸 들은 사람처럼 표정이 싹 변하는 포수, 그리고는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슬라이더가 좋은건 사실이긴 한데, 느낌이 불길하단 말야...'

타자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선수는 포수다. 그리고 그런 포수에게는 다른 선수들은 알수없는 뭔가 오묘하면서도 이상한 감이 가끔씩 느껴지고는 한다.

지금 포수가 느끼는 감이 딱 그 경우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느끼는 감은 슬라이더 사인이 나오면 왠지 커다란게 하나 나올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계속 슬라이더를 피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포수는 혼자 골똘히 생각을 하면서 투수를 곁눈질로 힐끔 쳐다봤다. 투수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여전히 포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일단 말하자'

포수는 일단 말하고는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투수를 쳐다봤다. 그동안 투수는 어깨를 간단히 돌리면서 어깨가 식는거를 방지하고 있었다.

"지훈"

"왜?"

"포수의 감이라고 들어봤냐?"

"포수의 감?"

투수는 갑자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포수를 쳐다봤다. 포수는 그런 투수를 보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슬라이더를 던지기에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적어도 내 감으로는 다른걸 던져야 할거같음"

"..."

포수의 솔직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내뱉은 말, 투수는 어느새 심각해진 표정으로 포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포수의 말이 다 끝나자 아무말없이 시선을 돌려서 타석에서 나와있는 종빈을 쳐다봤다.

"그래서 그런거였어?"

투수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픽 하고 실소를 지어버렸다. 그런 다음에 오른손으로 포수의 어깨를 세게 짚었다.

"나 못믿냐? 지금까지 이 슬라이더로 삼진먹은 타자들이 수십명이야. 허공을 가른 스윙 횟수도 수백번 정도 되는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하아...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근데 너무 불안하니까 그런거지"

포수는 여전히 불안한건지 오른손으로 뒷목을 긁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투수는 그런 포수를 잠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일단 투 스트라이크 전까지는 네 사인대로 따라갈게. 그리고 결정구는 슬라이더로 가자"

투수와 포수의 생각이 반반정도 섞인 절충안, 포수도 생각보다 나쁜 제안이 아닌거 같은지 잠시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정한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슬라이더가 보통 슬라이더냐. 그렇게 하자"

"오케이. 슬슬 눈치준다. 후딱 가봐"

"오케"

포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내려오라는 심판의 손짓을 보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쪽 직구. 스타트는 1회랑 똑같이 가자'

'흐음... 좋아'

투수는 잠시동안 가만히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천천히 와인드업을 하고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타자의 몸쪽으로 과감하게 찔러넣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후아..."

포수가 요구한 곳으로 완벽히 틀어간 타구, 종빈은 포구 위치를 확인하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실제로 보니까 장난 아닌데...? 이정도 구속에 제구까 잘 갖춰져 있으면... 이건 그냥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종빈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투수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봤다. 그런 다음에 배트를 다시 부여잡고는 자세를 잡은 다음에 투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몸쪽 공은 직접 경험해보니까 맞추기도 힘들어 보이고, 그냥 죽든간에 살던간에 바깥쪽을 노리고 가자. 그게 더 확률이 높아보여'

단 초구만에 몸쪽공을 확실하게 포기해 버리는 종빈, 아직 경기 초반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과감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기 초반이기 때문에 할수있는 선택. 아직 뒷 이닝들이 남아있고, 수혁의 투구를 믿기 때문에 과감하게 시도할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 만나는 투수, 그리고 그 투수가 위력적인 투수라면 어느정도의 실험은 필요해. 그리고 지금 내가 그 실험을 직접 해보는 거라고 생각하자'

종빈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투수가 공을 던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뒤, 투수가 사인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왼다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갔다.

슈욱-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그대로 쭉 뻗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종빈은 힘을 조금 덜 준채로 배트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궤적이 잘 맞지 않았던건지

티잉-

"파울!"

공은 배트 끝에 빚맞으면서 뒷쪽 그물을 건드리는 파울이 되어버렸다.

'...타이밍을 맞췄어?'

포수는 예상 외의 결과가 나오자 살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면서 종빈을 쳐다봤다.

오늘 경기에서 산욱을 제외하면 모두들 타이밍을 맞추기도 어려워했던 공이었다. 물론 산욱도 타이밍은 틀렸지만 힘으로 밀어내서 만든 안타였다. 오늘 그의 타이밍을 맞춘 타자는 종빈이 유일했다.

'뭐, 뭐지...? 얘네 에이스보다 빨라서 타이밍 맞추는데 시간 좀 걸릴텐데...'

포수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도 남아있던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맞는다면... 설마... 아니겠지. 존을 반으로 가르는 슬라이던데, 그걸 맞추기는 힘들거야'

포수는 그런 불길한 기운을 혼자 괜찮을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꾹꾹 눌러버렸다. 그런 다음에 조금전에 투수와 약속한대로 슬라이더 사인을 내밀었다.

'슬라이더. 늘상 하던대로 빠지면서 헛스윙 유도로'

'오케이!'

투수는 드디어 원하는 사인이 나와서 그런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입가에 실실 미소를 지으면서 타자를 쳐다봤다.

'느낌이 불길하다고? 내 슬라이더는 그런 느낌따위에 흔들릴 정도로 약한 놈이 아니라고'

'불리한 카운트... 몸쪽이 오면 버리고, 바깥쪽이 오면 존을 나가서라도 타격한다'

현재 불리한 카운트, 하지만 종빈은 평상시랑 다르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타석에 설때보다 더욱 침착해 보였다.

실험이라고 자기최면을 걸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어떻게 할지 정확하게 정해서 그런걸까, 종빈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없이 투수만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자... 그럼 슬슬 던져볼까'

반면에 표정에서부터 현재의 기분이 다 드러나는 투수.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슬라이더 그립을 집고는 포수가 내밀은 미트를 처다봤다.

그러면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는 왼다리, 이어서 들어올린 다리가 앞으로 쭉 나오고 뒤로 가있던 오른팔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온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종빈은 아까와 같이 힘을 조금 빼고서 시선은 공에 고정한채로 배트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수가 던진 공은 빠르게 뻗어가다가 바깥쪽으로 빠르게 휘어나가기 시작했다.

'오케이, 바깥쪽!'

보통 타자들이라면 깜짝 놀라면서 자세가 무저니면서 배트를 쭉 내밀었겠지만, 종빈은 자신이 예상했던 코스로 왔기 때문인지 오히려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저없이 배트를 쭉 내밀었다. 그리고 그 결과

까앙-

하고 맑으면서도 커다란 소리가 그라운드를 잔뜩 채워버렸다.

[임종빈 선수의 타구, 각도 좋습니다. 그리고 쭉쭉 뻗어갑니다...]

"어어어..."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방송을 하던 중계진도, 관중들도, 그리고 양측 선수단 모두다 종빈이 때린 타구에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 어...?"

그리고 그 와중에 감이 온건지 전력으로 뛰지 않고 천천히 뛰어가면서 타구를 멍하니 바라보는 종빈, 그리고 타구가 담장 바로 뒤에 떨어지는 순간

"와아아아아!"

[임종빈 선수, 2회초에 기선제압 투런포가 터집니다!]

"우와와와와!'

"임종빈! 임종빈! 임종빈!"

구장에 있는 절반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빈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잠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심판의 재촉에 그제서야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면서 각 베이스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

187화-호연 팔콘즈 VS D.라이더즈(4)2016.04.1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