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92화
'일단 감독님 말씀대로 해보자. 지금까지 틀린적도 없었으니깐'
타석으로 돌아온 산욱은 포수를 한번 힐끔거리고는 배트를 가볍게 쥐고서 투수 뒤에 서있는 내야수들을 쳐다봤다.
야수들은 모두들 투수의 한참 뒤쪽으로 가있었다. 그들이 뒤로 빠진 거리가 그만큼 산욱의 장타력를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1루수와 3루수. 그래도 1루수는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서 비교적 앞으로 나와있었다. 하지만 3루수는 아예 베이스를 버리기라도 한건지 흙과 잔디의 경계선을 넘어서 거의 외야에 위치해 있었다.
'확실히, 이정도면 할만할지도...'
산욱은 그런 3루수를 보면서 왼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투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투수는 잠시 사인을 맞추는건지 자신이 있는 쪽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인이 맞춰진건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운드에 발을 갖다댔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자 산욱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긴장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여태까지 시합에서 단 한번도 한적 없는 번트, 타석에서는 늘상 자신의 괴력과 잠재력이 있었던 타격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힘차게 배트를 돌리기만 했었던 그였다.
번트는 그와 거리가 매우 멀었던 기술. 하지만 산욱의 얼굴에서 걱정되거나 그런 표정은 없었다. 오히려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한 것을 빼고는 매우 평온해보였다.
'어차피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거 아냐.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자고'
산욱은 그런식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뿌리는 순간 오른손을 재빨리 배트의 한가운데로 옮겨 잡으면서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번트?'
산욱이 몸을 낮추는 순간, 투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양 발이 모두 땋에 닿자마자 잽싸게 고개를 돌려서 3루수가 있을법한 위치를 쳐다봤다.
티잉-
투수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배트에 공이 닿은건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난리가 나기 시작하는 D.라이더즈의 덕아웃. 그 시끄러운 소리를 듣는 순간 딱 봐도 번트가 성공했다는것을 알수가 있었다.
"으아앗!"
3루 방면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타구. 투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굳어버렸고, 3루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타구를 향해서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뒤로 빠져서 수비하고 있었던걸까, 너무 서둘렀던건지 3루수가 공을 잡고 던지려는 순간
"으헛!"
공이 그만 하늘 높이 숫아버리면서 1루수의 키를 훌쩍 넘어가버렸다.
"뛰어! 뛰어!"
송구가 빠지자 더욱더 소란스러워지는 덕아웃, 그리고 이제는 관중석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산욱은 그 소리를 듣고는 공이 빠졌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그리고 확인이 되는 순간 다시 고개를 되돌리고는 2루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업을 온 포수가 공을 줍는 사이에
촤아악-
"세이프!"
슬라이딩과 함께 산욱의 발이 2루 베이스에 부드럽게 닿으면서 심판의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다.
"나이스!"
2루에 온 산욱은 슬라이디의 반동으로 일어나면서 오른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관중들의 쩌렁쩌렁한 함성들. 산욱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덕아웃을 쳐다봤다.
"아자아!"
그러자 환호소리가 들려오는 덕아웃,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관중들의 환호소리도 들려왔다.
*
[아... 아까 이 수비는 3루수의 실책을 기록됩니다. 너무 서두르는 모습이 보였어요]
잠시뒤, 상황이 조금 진정되고나자 캐스터가 리플레이 되는 장면을 보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해설은 그런 플레이를 보면서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이건 3루수의 잘못도 있지만, 그전에 수비시프트가 너무 극단이었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해설의 한마디, 캐스터는 무슨 소리냐는 투로 해설을 쳐다봤다.
[제 아무리 4번 타자라고 해도 수비가 그정도로 뒤로 가있으면 번트도 충분히 나올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럴수록 투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거든요?]
해설은 거기까지 설명하면서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잠시동안 지켜봤다. 그러다가 자신이 생각한 장면이 나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건지 당황하면서 달려오는 3루수만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투수의 잘못인가요?]
[물론 투수도, 3루수도 잘못은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너무 극단적인 시프트를 제시한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번트타구도 투수가 처리하기엔 조금 애매한 곳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투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설은 계속 얘기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이 할 말이 다 끝나자 목이 아픈건지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화면을 쳐다봤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작전이다...'
한편, 포수는 D.라이더즈의 덕아웃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가 다시 눈빛이 바뀌면서 벗고 있었던 마스크를 다시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한번더 대비한다면 또 내주게 되는법, 그렇다면 우리는 허의 허를 노리면 되는거야'
포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비수들의 위치를 아까와 똑같이 배치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고는 투수에이 게 사인을 보냈다.
'...아까 그렇게 당해놓고 또 이렇게 간다고? 또 당할거 같다는 생각은 안해?'
하지만 투수는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포수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불만의 뜻으로 주변을 쭉 둘러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치없이 볼배합만 바꾸는 포수, 결국 투수는 타임을 외치고는 포수를 위로 불러들였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포수는 위로 올라오자마자 투수에게 물어봤다. 투수는 아무런 말없이 한번더 주변을 둘러본 다음에 불만이 많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번트 맞는거 보고도 계속 이렇게 세워둔다고? 이러다가 또 번트 나오면 어떡하라고. 거기다가 도루까지 같이 나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번트가 나온다면 너가 충분히 처리할수 있을거야. 그리고 3루로 먼저 송구하면 되는 일이잖아. 게다가 얘네 클린업이 장타자는 아니어도 중장거리라는 평이 많다고. 2루타를 뜬공으로 처리할수 있는 최적의 시프튼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거야"
포수는 자신은 생각은 다르다는 말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다음에 까먹었던건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네 번트타구 대처는 수준급이라고. 평범한 번트는 충분히 잘 처리할수 있잖아. 뭐가 문젠건데?"
"아니, 그전에 이제 경기 후반에 2점차라고, 다른 작전이 나올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
투수는 답답한건지 거의 화를 내면서 포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답한건 포수도 마찬가지인지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반박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프트를 한거잖아. 생각 조금만 해보면 여기서 기껏해봐야 히트 앤드 런 말고 나올만한 다른 작전이 있어? 지금 이 시프트는 그거 막기에도 별 무리는 없거든? 그리고 내가 키스톤 콤비는 아까보다 베이스에 더 붙였잖아?"
"하아... 진짜..."
투수는 대화가 안통한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서 심판이 오라고 소리치자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까딱거리면서 포수를 보냈다.
포수는 투수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건지 인상을 살짝 찌푸린채로 투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심판의 재촉이 계속되자 결국 어쩔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거래...?'
한편, 타석에 서있었던 성빈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마운드 위의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포수가 자리로 돌아오자 다시 자세를 잡고는 투수를 쳐다봤다.
'저쪽에서 무슨 작전을 냈던간에, 나는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런액 히트로 가는거야. 볼배합은 허를 찌를거라고 하셨으니까...'
성빈은 잠깐동안 오늘 상대 배터리의 볼배합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떠올랐는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배트를 더욱 세게 쥐었다.
'초구는 아마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겠네'
'별로 내키는건 아니지만... 이건 그래도 아직 간파당한건 아니니까...'
한편,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는 조금 껄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슬라이더 그립을 잡은 자신의 오른손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고는 셋포지션 자세로 왼발을 앞으로 뻗기 시작했다.
슈욱-
그러면서 힘차게 휘두른 오른팔. 그리고 손을 떠난 공은 포수미트를 향해서 힘차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바르게 튀어나오는 성빈의 배트, 그리고 자신이 예상한 바깥쪽 슬라이더 궤적을 향해서 망설임없이 배트를 쭉 내밀었다.
공은 계속해서 쭉 뻗어오다가 어느순간부터 점차 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한가운데로 오던 공이 점차 조금씩, 조금씩 휘면서 존 구석으로 가기 시작했다.
'맞췄다!'
공이 조금씩 휘는걸 확인한 성빈은 양쪽 어금니를 꽉 물면서 더욱더 빠르게 배트를 돌리기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까앙-
크고 맑은 소리와 함께 성빈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 됐다. 이건 크다'
그 순간, 성빈은 감이 온건지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배트를 공중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저 멀리 외야를 가로지르는 타구를 쳐다보면서 1루를 향해서 천천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그라운드에 나와있는 모든 선수들이 거의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날아가는 타구만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타구는 쉼없이 날아가다가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담장을 넘겨서 관중석 하단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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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호연 팔콘즈 VS D.라이더즈(10)201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