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197화
[하아... 뭔 소설같은 이야기냐...]
침대위에 구석으로 무릎을 가슴팍으로 끌어안은채로 앉았다. 그리고 왼손에 있는 휴대폰에서는 연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 동네에 와서 알게되고, 가장 친해진 연주, 보통 여자애들과는 다르게 매우 의리가 좋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던 애였다. 그리고 지금 놀자고 전화가 오다가 내 반응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다 털어 놓으라고 하길래 막 털어놓은 참이었다.
[그런데 너도 참 한심하다, 맨날 그렇게 차이면서도 계속 들이대냐]
"...상담해준다며"
[아, 맞다. 그랬었지]
나를 한심반, 연민 반의 말투로 한심하다고 하는 연주, 뒤이어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안나왔다.
나는 그 사이에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목걸이 끝부분에 달린 A 이니셜이 쓰인곳이 손가락에 느껴져왔다.
수혁이를 보고싶지만 보지 못하는 상황, 그렇다고 아직 가슴속에 묻지도 못한 상황, 그래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한 임시 방편이었다.
[근데 너 지금까지 거절당해도 계속 들이댔잖아?]
잠시뒤, 연주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건지 나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내가 그렇다고 하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한번 더 물어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안들이대? 지금까지 다른 남자들한테는 얼굴에 철판깔고서 잘만 가지고 놀았잖아?]
"..."
말이 그렇게 나오자 갑자기 턱 막혀버린 말문,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할수 없게 되었다. 분명히 그 이유를 알면서도 말로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건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말로 내뱉는 순간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리게 되는것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유예영? 자냐?]
그렇게 얼마나 가만히 있었을까, 휴대폰에서 연주의 목소리가 한번 더 들려왔다. 결국 나는 말하는 대신 대신 한숨으로 대답했다.
[...야, 왜그래. 적응안되게]
연주는 내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답답한건지 결국 소리를 빽 하고 질러버렸다.
[아 자꾸 그렇게 듣는사람까지 기분 처지게 할래? 계속 들이대던지,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던지 뭐든 하라고! 너가 무슨 드라마에나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야? 정신 차려!]
휴대폰 너머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고성, 그 순간 나는 감짝 놀라면서 실컷 울엇 부어있던 눈이 최대한 크게 떠지면서 몸이 잠깐동안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주가 잠깐의 텀을 두는 사이에 나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속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젠 뒤집어 쓸 철판마저 부서졌는데...'
*
"무슨 일이길래 갑자기 찾아오고 그래?"
"어.. 저 그러니까..."
수혁이에 대해서 알아본 다음, 이번에는 지난번에 수혁이랑 나를 쫒아오려고 했던 유예영 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동네의 한 카페에서 권오성을 만났다.
"그... 유예영이 너네반에 있잖아. 그래서 어떤앤지 좀 알아보려고..."
"음? 걔가 어떤앤지는 너도 들어봤지 않아?"
내 질문이 예상 밖이었던걸까, 권오성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앞에 놓인 라떼를 홀짝거렸다.
나도 유예영이 어떤 애인지는 대충 들어서 안다. 작년 2학기에 전학온 양아치, 그리고 연예인 뺨칠정도로 엄청나게 예쁜 얼굴과 엄청난 몸매를 가졌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정보는 그게 아니었다. 그 애가 도대체 수혁이를 어떻게 아는거고, 어떻게 얽혀있으며, 무엇보다 왜 수혁이를 좋아하는지, 그런 내용이 궁금했다.
그래서 수혁이랑 가장 친하면서 그 애랑 같은반인 권오성을 찾은거고.
"그건 아는데...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혹시 더 아는건 없어?"
"다른거...? 음 글쎄..."
권오성은 내 물음에 잠시동안 생각하는건지 뒷머리를 살짝 긁으면서 나를 보던 시선이 살짝 돌아갔다. 그러다가 뭔가 알아낸건지 다시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너도 알다시피 그 미모로 남자들을 홀리고 다니지만,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그걸로 까이지 않는 신기한 사람이는 정도? 소문으로는 여자애들이 복수를 부탁한 남자애들만 꼬시고 버린다는 소문도 있더라"
"...그게 끝이야?"
"음... 아마도?"
내가 더 대답을 요구하자 권오성은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면서 더이상 없다는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하아..."
그러자 저절로 나오는 한숨,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지막으로 수혁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유예영을 피해서 같이 도망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꾸만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날 내내 뭔가가 이상했던 수혁의 모습도 같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내 감의 중심추는 점점 그쪽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애 때문에 뭔가 이상해진거 같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걸 물어보고 그래, 걔랑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이크, 너무 깊숙하게 물어봤나, 권오성이 약간 의심하는 눈치로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별거 아냐. 그냥 신경쓰이는게 있어서..."
나는 아무일도 아니라는듯이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는 권오성, 원래 머리가 좋은 녀석답게 쉽게 의심을 떼지 않는것 같았다.
"뭐... 요즘 걔 하는거랑 너랑 매칭시켜보면... 너하고 걔하고 연결될 만한건 수혁이밖에 없을거 같은데..."
"...!"
헉, 정곡을 찔렸다. 이대로 가면 그대로 말려버리고 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려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걔는 낚이지 않았는지 이어서 살짝 비웃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반응 보니까 딱 나오네. 맞구만"
"..."
역시 머리 하나는 더럽게 좋은 녀석이다. 하지만 내가 발뺌하면 그만,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앞에 놓인 빨대에 입을 가져가서 한모금 빨아들였다.
"그게 뭐라고 뭘 숨기려고 그러냐. 내가 도와줄수도 있는데 말야"
"아니거든?"
하아, 진짜 뭔가 추잡해 지는것 같아서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갑자기 기분이 착잡해진다.
그러면서 그만 하라고 노려봤지만 오히려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더 자극하는 권오성, 그러다가 이제는 나에게 물어보면서 무슨 일인지 한번 추리해보기 시작했다.
"음... 우선 너가 수혁이 때문에 정보를 캔다는거는, 요즘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는거를 의미할테고, 그런데 유예영이 자꾸만 집적대니까 도대체 뭐하는 앤지 알아보기 위해서 온거. 맞지?"
그러면서 얼추 들어맞는 추리, 나는 더이상 있어봤자 얻을게 없다고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너가 인정만 하면 더 자세하게 알려주려고 했더니... 거참, 여전히 말 안하고 조용히 있는거는 여전하네"
권오성의 그 한마디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내가 원래 자리에 앉게 만들었다.
"...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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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신경쓰여(3)201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