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01화
그리고 며칠뒤, 7월 30일 수요일 저녁 서울의 S대학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한 건물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황룡기 동네야구대회의 4강전 미디어데이 때문, 대회가 예상 밖의 전국적으로 엄청난 양의 인기를 얻는 바람에 주최 측에서 급하게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는듯히 잘 진행되고 있는 상황, 이미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지 진행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기자들도 대다수가 경험해본 기자들인지라 별다른 혼선없이 잘 준비되고 있었다.
현재 미디어데이가 시행되는 건물 안에는 수십명의 기자, 스태프들, 그리고 총 네팀 선수단의 감독과 대표 선수 두명, 그리고 그들을 보기 위해서 찾아온 수많은 팬들이 와 있었다. 지금 그만큼 황룡기는 프로야구에 못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선수대기실, D.라이더즈 선수 대표로 나선 수혁과 산욱이 이미 메이크업과 머리를 다 받은 다음에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현재 D.라이더즈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이자 팀애에서 팬들이 가장 많은 두 사람이었다.
"...야, 안떨려?"
대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던 산욱, 그러다가 나지막히 수혁을 불렀다.
"안떨리겠냐"
"하긴..."
수혁이 체념한듯이 웃어보이자 산욱도 피식 하면서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용식은 뭘 하나 보려는 순간, 그의 아랫배가 갑작스레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야"
"왜"
그러다가 다시 말을 걸어오는 산욱, 수혁은 고개를 살짝만 돌려서 산욱을 쳐다봤다.
"야, 나 급똥인듯"
"헐?"
산욱의 갑작스런 말에 갑자기 놀라는 수혁, 그리고는 이내 어이가 없다는듯이 웃기 시작했다.
반면에 점점 인상이 찌푸려져 가면서 한숨을 내뱉는 산욱,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는듯 보였으나, 그러기에는 무리가 오는것 같았다.
"잠깐 화장실 갔다온다. 버리고 가지마!"
"오야, 즐똥"
결국 한손으로 아랫배를 붙잡은채로 일어나는 산욱, 그리고는 대기실 밖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이야... 어째 주루할때보다 더 빠르냐"
수혁은 닫힌 문을 보고 내심 감탄으면서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를 뒤로 젖혀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저 앞에서 아직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용식을 쳐다봤다.
"얌마,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봐"
"흠... 지금 이 사진을 찍어서 사모님께 한번 보내볼까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
수혁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근처에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만류하는 용식, 그러면서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야,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라고..."
"됐습니다. 어차피 번호도 모르네요"
수혁은 킥킥대면서 들고있던 휴대폰을 앞에 있는 탁자에 내려놓았다. 용식은 잠시 안심한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궁금한게 생겼는지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그런데 꼬맹이한테 받을수 있지 않냐?"
"네?"
용식의 물음에 이해가 가지 않은듯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어보는 수혁, 용식은 눈치채고는 다시 물어봤다.
"유예영이랑 유서인, 둘이 자매잖아. 걔한테 말하면 쉽게 보낼수 있지 않냐?"
"에... 뭐 그렇겠죠?"
용식의 말에 갑자기 뜨끔하는 수혁, 그러면서 그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드러낼수도 없는 상황, 지금 이 불편한 관계를 드러내기는 싫었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직도 이해가 잘 안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뭐야. 걔랑 안친해? 지난번에 봤을때는 둘이 엄청 친해보이던데"
용식이 말하면 말할수록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는 수혁의 말수, 용식은 말하다가 수혁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그리고 수혁에게 고개를 돌리자
"고개 돌리지 마세요"
헤어 담당자가 그의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리고는 손보던 부위를 이어서 만지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용식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정쩡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언제쯤 끝나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담당자가 다 끝났다는 말과 함께 그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용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혁의 옆에 있는 소파로 건너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조금 전의 긴장섞인 모습과는 다른 수혁의 슬쩍 쳐다봤다.
"야, 갑자기 왜그래"
"..아, 별거 아니에요. 긴장해서요"
수혁은 힘없이 살짝 웃어보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용식,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닌거 같은데'
용식이 본 수혁의 표정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지난 호연 팔콘즈와의 8강때 보여준 그의 모습, 그 표정이 보이고 있었다.
'...뭐, 지금 내가 묻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야,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서 묻기는 좀 그렇고. ...나중에 묻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용식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서 좀 쉬려고 눈을 붙이는 순간
"감독님"
수혁이 뭔가 중요한걸 말하려는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
'왜 자꾸 걔가 신경쓰이는 거지...? 왜 날 걱정해줬던 여운이가 아닌 그애가 떠오르는거지...?'
감독님이 예영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 심장은 뜨끔하면서 돌뿌리에 걸려서 스텝이 꼬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하면서 실수하지 않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던 내 머릿속은 점점 예영의 생각으로 채워지면서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날 차가운 표정을 지은 것부터 아무런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던 보름이라는 기간, 그리고 며칠 전에 온 전화까지. 그러면서 내가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아냐, 그때의 걘 그럴만 했어. 흔들리지마 안수혁. 너한텐 여운이가 있잖아'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빼꼼 들어올리는 생각을 그대로 눌러버렸다.
"...야"
"아, 네"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 불러놓고서 뭔 멍을 때리고 있냐"
아, 맞다. 감독님을 불러놓고는 너무 오랬동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사이 숙여졌던 고개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리고는 조심스레, 그리고 최대한 평온한 것처럼 보이는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 걔는 요즘 뭐하고 있어요? 요새 통 안보이던데"
아, 망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했는데 표정이 매우 어색한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어색한데, 감독님이라면 충분히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도 남을거다.
나는 속으로 절망하면서 감독님을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감독님은 고작 그거였냐는 듯이 태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고작 그거 때문이었냐? 꼬맹이 걔 요즘에 완전 열불나게 데이터 만들더라. 지금 거의 반 폐인일걸?"
"아... 그래요?"
후우, 그 말을 듣는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괜히 나 때문에 상처받고 일에 몰두하는것 같아보여서 괜시리 미안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닥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야, 근데 너 진짜 걔랑 아무 사이도 아냐? 걔는 너한테 관심 있던거 같은데... 너도 지금 묻는거 보니까 관심이 아예 없는것 같지는 않고... 한번 잘해봐. 내가 팍팍 밀어줄테니까"
내가 가만히 있는 사이에 내 어깨를 팡팡 치면서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산욱이나 데려온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침 정리가 다 끝난 담당자와 함께 나가버렸다.
끼익- 터엉-
모두들 나가고 묻이 닫힌 대기실, 그리고 그곳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그리고 발소리가 줄어들자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아... 미치겠다"
미치겠다는 외마디, 그러면서 한번 더 한숨을 내쉬고는 아까 감독님의 반응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분명히 감독님 성격상 내가 이런걸 눈치 못챘을리는 없어, 처음엔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이나 진짜 모르나 싶었지만...'
나는 생각하면서 자연스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번 더 내쉬었다.
'나랑 걔랑 잘 해보라는 식의 이야기, 내가 이미 여운이랑 거의 사귀고 있는거나 마찬가지고, 감독님도 그런 모습을 몇번 봤었는데도 그런 말을 했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감독님이 나간 문을 슬쩍 쳐다봤다.
'그렇다는건 이미 대충 느낌은 받았다는 무언의 표시... 진짜 감 하나는 장난 아니게 좋네...'
*
'수혁이 이녀석... 요즘 들어서 왜 달라졌나 했더니... 유예영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거였어?'
한편, 바깥으로 나온 용식은 산욱이 있는 화장실 칸 앞에서 기다려준다는 핑계로 서성이고 있었다.
애초에 굳이 데리러 갈 생각도, 나올 생각도 없었던 그였다. 단지 수혁이 오늘 자신의 생각을 눈치채고 도움이라도 청하길 바라는 심정에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딱히 할일도 없는 상황, 그러면서 하품만 자꾸 나오고 있었다.
"흐아암..."
"감독님"
그러던 와중 칸막이 안에서 들려오는 산욱의 목소리, 용식은 칸막이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왜"
"감독님은 긴장 안되세요?"
"뭐... 선수시절에 해본 인터뷰도 있고, 주변에서 입담이 괜찮다고 얘기해서 미디어데이도 종종 나갔었는데 뭘"
"와우..."
용식이 태평하게 말하자 산욱은 외마디 감탄을 내뱉었다. 이어서 다 끝난건지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아으, 냄새 장난 아니네"
"똥이 다 그렇죠 뭐"
산욱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는 손을 씻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자 턱짓으로 바깥쪽을 가리키는 용식, 산욱이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진행요원 한명이 서있었다.
"지금부터 5분내로 입장하셔야 됩니다. 따라오세요"
짧게 말하고는 먼저 뒤돌아서 가는 진행요원, 둘은 그가 가는 길을 따라서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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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4강 미디어데이(2)201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