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26화
"으헉!"
부웅-
"스트라이크!"
그러면서 헛스윙과 함께 오른 무릎이 땅에 닿으면서 배트를 쥔 왼손으로 땅을 짚는 산욱, 이어서 심판의 콜이 들려왔다.
'어...? 얘 갑자기 왜이래?'
그와 동시에 태강이 속으로 놀라면서 산욱을 쳐다봤다.
'하아... 이젠 저런 공에 배트가 나오냐...'
산욱은 미트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한번 더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장에선 정신좀 차리라고 하는 소리일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더 망가트리는 행동, 하지만 산욱은 그걸 알지 못한채 자꾸만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얘 지금 멘붕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가 불안해보여'
태강은 그런 산욱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살짝 그렸다. 그런 다음에 아까보다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번엔 높은 공으로. 백퍼센트 따라온다'
태강은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미트를 내밀었다. 투수도 태강과 비슷한 생각을 한건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글러브 안에서 직구 그립을 쥐었다.
'...산욱이 이녀석 지금 멘붕이다'
한편, 덕아웃에서 산욱을 지켜보던 수혁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용식은 어떤가 고개를 돌려보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뭐야, 지금 감이 안잡히시는건가? 아니면 그냥 믿고 가시는건가?'
수혁은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용식을 빤히 쳐다봤다.
평상시면 분명히 이런 타이밍에서 한번 끊고 갈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용식은 이런 상황을 그냥 흘러넘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만히 있다는것은, 딱 두가지였다. 자신이 생각하는것 밖의 일을 생각하던가, 아니면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나.
'뭔가 생각하는게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건의 정도는 한번 해봐야겠어'
수혁은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용식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 다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감독님, 지금 산욱이 쟤 한번 끊어줘야 될거 같은데요"
"나도 알아. 그래서 그냥 지켜보는거야"
수혁의 물음에 용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서 그런거라고 받아쳤다. 이어서 수혁이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면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너가 얘기한적이 있었지? 산욱이는 타격쪽으로 재능이 있다고. 그래서 심리적으로 안정만 된다면 충분히 칠수 있다고"
"네, 예선때 그랬죠. 그런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요?"
"나 역시 네 생각에 동감한다. 타격에 충분히 재능이 있었고, 본선 들어와서는 매 경기 홈런을 터트리면서 중학야구 수준에서 타격실력은 확실해졌다. 하지만 아직 멘탈에서는 미완성이야"
수혁은 용식의 마지막 한마디에 약간 어이가 없었는지 당연하다는 말투로 반박했다.
"당연하죠. 동네야군데, 그렇게 치면 저희 모두 다 미완성 아니에요?"
"글쎄다?"
수혁이 당연한듯 아니냐면서 반문하자 용식은 싱긋 웃으면서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이어서 수혁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냄새를 알아차리기 전에 다시 입을 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처음 자신에게 임무가 주어지면 초반에는 어느정도 하기 나름이다. 생소함과, 뭐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늘 하던대로 하면 재능이 있는 녀석은 분명 활약을 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거든.
하지만 진짜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 알고 나서부터야. 자신이 못하면 팀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순간부터 갑작스런 부담감이 밀려오기 마련이지.
그래서 난 지금 지켜보고 있는거야. 산욱이가 과연 이 부담감을 이겨낼수 있는지. 그래서 심리적으로도 한단계 더 발전할수 있는지를 말야. 만약 여기서 이기지 못한다면 오늘 이긴다 하더라도 우승은 무리야"
용식은 거기까지 말한 다음에 다 말한건지 다시 입을 다물고는 타석에 서있는 산욱을 쳐다봤다. 수혁은 그런 용식을 빤히 쳐다보다가 산욱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오늘 별로 한일도 없고 오히려 에러만 냈었지. 그래서 지금 흐름을 끊더라도 산욱이가 변하지 않으면 가봤자 소용없다는건가...'
*
파앙-
"스트라이크 투!"
[심준우 선수, 공 두개만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김산욱 선수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헤 보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멘붕이 온것 같아요]
[그 덕분에 지금 레드 타이거즈는 이 위기의 상황에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이럴때는 삼진도 좋지만 최대한 많은 아웃카운트를 끌어내야 합니다]
투수가 아닌 타자가 잔뜩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 그렇다고 해서 혀냊 투수가 막강한 공을 뿌리는것은 아니었다.
현재 산욱은 공이 어디로 오던간에 거의 자동적으로 배트가 나오는 상황, 하지만 침착함을 잃어서일까, 배트의 속도는 평상시보다 더 빨라도 배트가 공의 근처에 전혀 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에 극명하게 갈리는 양쪽 팬들의 모습, 레드 타이거즈의 팬들은 찬스라고 하면서 갑자기 반응이 좋아지는 반면에 D.라이더즈의 팬들은 갑자기 이상해진 산욱을 혼란표정으로 보거나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팬들의 그런 원성섞인 목소리들은 산욱을 더욱 긴장하면서 거친 숨을 내쉬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거의 입안을 바싹 마르게 만들고 있었다.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많이 불리해졌어. 이럴때면 나는 어떡하지...'
하지만 긴장한 덕분인지, 카운트 때문에 정신을 차린건지 산욱의 머리는 더욱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잦아드는 숨소리, 그러면서 투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엔 꼭 맞춰야 되는데...'
그러면서 투수를 더더욱 집중해서 쳐다보는 산욱, 뭔가 특별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산욱은 투수를 게속 쳐다보면서 머릿속으로는 투수에 대한 데이터를 떠올리라고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하지만 산욱의 머릿속은 그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머릿속이 청소가 되는거처럼 점차 비워지기 시작했다.
'아... 뭐가 있었지, 구속은? 변화구는? 아아아...'
그러면서 점차 불안해지는 산욱, 하지만 그의 시선은 절대 다른곳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투수를 더더욱 째려보면서 어떻게든 떠올리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산욱의 귀에 시끄럽게만 들리던 수많은 소음들이 갑자기 스피커를 꺼버린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맑아지는 머릿속, 아까처럼 하얘지는게아닌, 투명해진듯한 느낌이었다.
'어, 이 느낌...'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는 산욱, 고개를 두리번 거렸지만 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아까의 부담감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정신이 맑아져서 매우 집중이 잘 되고 있었다.
'골드 스타즈와의 예선때 느꼈던 그 느낌... 한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산욱은 그때 당시를 떠올리면서 배트를 살며시 고쳐잡았다. 그리고 자세를 잡고는 침착하게 집중한채로 투수를 쳐다봤다.
산욱이 자세를 잡자 투수는 기다렸다는듯이 와인드업을 하고는 팔을 최대한 빠르게 휘두르면서 공을 뿌려냈다. 그리고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기 직전에 산욱에게 뭔가 직감적인 느낌이 느껴졌다.
'직구! 직구다!'
그러면서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남과 동시에 빠르게 튀어나가는 산욱의 배트, 그리고 배트가 나온 그 순간
까앙-
엄청나게 맑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타구가 산욱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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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레드 타이거즈 VS D.라이더즈(23)201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