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31화
"자 그럼 인터뷰는 여기까지, 두 선수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자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편, 수혁과 태강은 방금 막 인터뷰를 끝낸 상황, 그리고 기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인터뷰한다고 살짝 받은게 있는데, 어디 가서 같이 냉면이라도 한그를 할까요? 요즘 많이 덥던데 말이죠"
그렇게 인사를 하고나자 기자가 가방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고는 턱짓으로 근처에 있는 창가쪽 문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건
"아, 저는 약속이 있어서요..."
수혁의 거절 대답이었다.
"혹시 여자친구랑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냐? 오늘 옷도 그렇고 말야"
"아, 진짜 여자친구는 무슨...!"
그런 수혁을 씨익 웃으면서 쳐다보는 태강, 수혁은 아니라고 작게 소리쳤지만 당황한건지 귀가 조금씩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먼저 일어나더니 급한 약속이라고 하면서 후다닥 나가버렸다.
"안수혁 선수, 연애 잘하세요. 그리고 여친 생기시면 한번 더 인터뷰 가겠습니다!"
기자는 나가는 수혁에게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크게 소리쳤다. 다행히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던지라 딱히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 미리 수혁과 태강의 사인을 받아놓은 알바생도 재료실에 들어가서 졸고 있기에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야, 그런데 신태강 선수는 어떻게 그런걸 알아내셨대요?"
"기자님들 오시기 전에 떠들다가 옷차림좀 지적하면서 쿡 찔러보니까 반응이 오더라고요. 일상은 알고보면 진짜 솔직하고 진실된 녀석같아요"
"이야... 눈썰미가 장난 아닌데요? 그럼 저희끼리라도 먹으러 갈까요?"
"어우, 좋죠"
기자는 다시 한번더 눈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태강은 살가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아, 하아... 신태강 저녀석은 뭐 저리 눈치가 빨라..."
하아, 거기에 더 있으면 속까지 완전히 다 파헤쳐질것만 같아서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약속장소인 이곳으로 바로 직행,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까 1시 30분, 약속시간에 얼추 맞은 시간이었다.
"후우... 일단 여운이가 오기전에 머리좀 살짝 손보고..."
여운이가 오기전에 휴대폰 카메라로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으려는 찰나
부우웅- 부우웅-
갑자기 전화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 진짜, 또 스팸이야"
뭔가 하면서 누구의 전화인가 확인해보자 모르는 번호, 나는 그냥 무시해버리고는 다시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대로 다시 되돌리자마자
"인터뷰 있다면서 일찍왔네...?"
여전히 수줍은듯한 모습으로 서있는 여운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응..."
나는 살짝 수그러드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여운이의 입꼬리도 희미하게 올라갔다.
"가자, 내가 알아놓은 곳이 있어"
"응... 그래"
나는 미리 알아놓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여운이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수줍은듯 하면서도 조심스레 손을 잡는 여운이, 그리고는 같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근데 얼굴에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거야?"
"어... 오늘은 그냥 안쓰려고"
여운이는 그내 얼굴을 보면서 살짝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나는 괜찮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여운이랑 떨어졌있는 왼팔로 목을 잠깐 잡았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오늘이야말로 날씨도 좋고, 여운이의 얼굴도 더욱 밝고 화사하게 빛나보이는데, 그걸 가려서 제대로 못보기는 싫다. 최근에 하도 걱정과 고민이 많아서 여운이에게 잠시 신경을 못썼던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꾸만 떠오르는 그때 그 얼굴을 더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가슴 한편에 무거운 부분이 있다. 아마 골드 스타즈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때문일거라고 단정지었다. 설사 그게 아닐지라도 아니, 아닌것 같아도 그렇게 단정지었다. 그래야 더 편할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런 마음 한켠의 무거운 것들은 다 재껴버릴 생각이었다. 그냥 여운이랑 단 둘이서 알콩달콩하게 즐기는데만 집중할거니까 그런 안좋은 생각들은 일단은 다 제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아직 손을 잡는 이상의 스킨십은 못하겠다. 사람들의 눈도 있고, 아직 우리 둘다 부끄러워하는 면도 있고 해서...
여튼, 그렇게 걷다보니까 큰 길가를 벗어나서 골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막 들어간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으려는 그 순간
부우웅- 부우웅-
한번 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 진짜...'
번호를 자세히 보니까 아까와 똑같은 번호, 원래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금방 쉽게 기억해낼수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거절해 버리고는 다시 주머니속에 넣었다. 그러자 여운이가 살짝 궁금해 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별거 아냐. 그냥 스팸전화같아"
나는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면서 별거 아니라고 말해줬다. 여운이는 그제서야 살짝 안심하고는 헤실헤실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여운이 얘 진짜 귀엽다. 너무 귀여워.
그러면서 볼을 꼬집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문득 손이 가지 않는 이 기분, 결국 나는 입꼬리가 쭉 올라간채로 좋아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걸으려는 찰나
부우웅- 부우웅-
다시 한번 더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진짜 뭐야..."
이쯤 되면 나도 당연히 성질이 날수밖에 없는 상황,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해보자 또 똑같은 번호, 도대체 뭐 때문에 나한테 그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또네..."
"일단 한번 받아봐. 또 한거보면 스팸은 아닐거 같은데..."
내가 혼자 궁시렁 거리자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하는 여운이. 그래, 여운이가 하라고 하면 해야지. 나는 그러면서 이번엔 전화를 받았다.
[저, 저기 안수혁선수! 지금 어디에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건 어느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 나는 뭔가 하면서 태연하게 물어봤다.
"그런 그쪽은 누구신데요?"
[베이스볼 카메라의 하연주 정보정리원 입니다! 지금 어디세요?]
'베이스볼... 카메라? 그럼 유예영이 속한데 아냐?'
베이스볼 카메라,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직감적으로 뭔가 안좋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가... 일단 레인 레스토랑이 바로 옆에있고요..."
[지금 예영이가 위험해요! 지금 김현 선수가 제대로 화가 난거 같아요! 마지막에 사태가 심각한데... 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지...]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쿵. 예영이 위험하다는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 갑자기 바위가 떨어지는것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마음 한켠에 불안감이 빠르게 퍼져나가서 내 마음을 완전히 불안감으로 가득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만이 들기 시작했다.
'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동적으로 다급해진 목소리, 그와 동시에 목소리 크기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어딘데요? 어디에요?!"
[아마 레인 레스토랑 근처일 거에요. 그 주변에 있는게 분명해요!]
"일단 끊어요. 제가 어떻게든 찾아볼테니까"
뚝-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마자 곧바로 주변 지형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옆을 보는순간 무슨 일이 있냐는듯이 걱정하는 여운이, 그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걔하고 관련된 일이야...?"
"...응"
나는 눈만 마주친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예영을 구하러 갈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여운이랑 계속 있을지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 진짜, 왜 하필 이럴때 이 일이 터지냐고...'
나는 속으로 거의 울먹거리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꺄악-!"
그렇게 혼자 갈등하던 도중, 여자의 비명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유예영이다. 분명히 걔 목소리야'
예영의 목소리라는 확신이 들면서 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린쪽은 레인 레스토랑 뒤쪽에 있는 골목, 하지만 지금 내 옆엔 여운이가 있었다.
만약 지금 여운이를 내버려두고 예영이에게 간다면 아마도 여운이랑은 거의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직 어색한 기운이 남아있는데 안그래도 최근에 다른곳에 신경이 너무 쓰인데다 지금 이렇게 데이트 도중에 버리고 간다면 거의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지금 위험한 애를 두고서 나 혼자 웃고 떠들고 즐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이렇게나 다급한걸로 봐선 이 주변에 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여운이는 자세한 일도 모를테고,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것은 나도 마차가지고.
'아아아... 진짜 어떡해, 어떡하지....'
그러면서 이젠 거의 울것만 같은 표정이 지어진다. 어떻게 해야될지 전혀 감이 안잡힌다. 일단 걔를 구하고 여운이에게 용서를 빌까?
아냐, 구하러 갔다가 걔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여운이가 쫓아왔다가 괜히 이상한 오해만 살수도 있고, 나중에 용서를 빈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받는다는 보장도 없고...
하지만 다른 마땅한 수도 없는법, 일단 그렇게 하기로 정한 다음에 말을 하려는 순간
"...가, 가봐"
여운이가 나를 애잔하게 쳐다보면서 서글프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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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위험상황, 가슴 한켠의 껄끄러움(4)201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