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32화
"...가, 가봐"
여운이가 나를 애잔하게 쳐다보면서 서글프게 말했다.
"...어?"
그 말은 들은순간 내 사고는 잠시동안 정지, 그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여운이는 고개를 숙인채로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솔직히... 다시 만났을때는 이제 다시 만날수 있고, 이어갈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이를 생각해보니까 우린 그냥 썸만 타다 끝나는 사이였나봐. 그때랑 달라진게 전혀 없잖아"
"여, 여운아... 아니야... 안그래..."
"아니, 그게 맞는거 같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그떄처럼 서로 머뭇거리기만 했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이미 며칠 전부터 느낌이 오기는 했는데 이제 확실해졌어. 너하고 난..."
여운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무슨 말이 나올지 알았지만 그 말만큼은 제발 나오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 뿐이었다.
"여기까진가봐"
여운이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눈물 한 줄기만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뿐이었다.
'아...'
그와 동시에 나는 온몸이 굳어버린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멍하니 벌린채로 여운이를 쳐다볼 뿐이었다.
여운이는 그래도 내 발이 떨어지지 않자. 마치 보내려는듯이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권오성한테 들었어. 너희 둘이 소꿉친구라면서?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최근에 너가 보여주던 눈빛은 다시 만났을때랑 달라진게 확실히 느껴지더라. 대회때문에 걱정한 눈빛이 아니었어. 유예영 걔가 마음속에 걸렸던 눈빛이었어"
"아, 아니야 여운아..."
"아니, 맞아. 여자의 감은 정확하거든"
"..."
어떻게든 여운이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했으나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은건지 되돌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봤던 가장 단호하고 냉정한 말투로 가라고 할 뿐이었다.
"얼른 가. 내가 괜히 이렇게까지 하는줄 알아?"
"여, 여운아..."
손을 뻗어서 손이라도 잡으려 해봤지만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여운이, 그리고는 악이 뻗친듯한 소리로 빽 소리쳤다.
"얼른 가라고 이 바보자식아! 내 마음 바뀌기 전에! 가라고, 가 버리라고!"
"...미안"
여운이가 소리까지 치자 결국 어쩔수 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바보, 차여놓고 미안하대..."
여운이의 희미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살짝 멤돌다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
"헉, 허억..."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예영이를 찾기 위해서 소리가 난 주변 지역을 죽어라 뛰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에서 협박을 당하고 있는 예영이를 찾아낼수가 있었다.
"유예영!"
예영이를 발견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돌아가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얼굴에 박히는 남자의 얼굴, 그 여자의 말대로 진짜 김현이었다.
"뭐, 뭐야... 너가 여길 어떻게 와?"
"왜... 난 오면 안돼냐?"
살짝 놀라면서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현, 나도 이에 지지않고 같이 째려보면서 그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의 한발짝 정도 가까워지자 예영이에게 손을 뻗어서 내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찰나
타악-
김현이 내 손목을 붙잡으면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넌 뭔데? 애초에 먼저 잘못한건 쟤라고. 지금 마음같아선 널 한대 치고 싶지만 어차피 경기에서도 충분히 발라버릴수 있고, 지금은 얘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냥 꺼져"
"허, 싫은데?"
나는 그에 지지 않고 눈에 최대한 힘을 주면서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놀리려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뭐, 자기네 전력분석요원이 다치면 분석 못해서 그런거냐? 뭐 보니까 약점도 알아냈다는데, 실력이 안되니까 편법으로 가려고?"
"애초에 상대를 분석하는것이 당연한게 야구고, 승부의 세계에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게 정석인것도 몰라? 강남 도련님이?"
"이, 이새끼가..."
내 반박에 김현은 제대로 화가 난건지 내 팔을 쥔 손을 더욱더 세게 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팔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팔을 털어서 뿌리쳐냈다. 그리고는 잽싸게 예영이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다행히 이번에는 김현이 예영이를 막지 못하는 바람에 예영이는 내 뒤쪽으로 안전하게 들어왔다. 그러자 더욱더 화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현, 그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비켜, 걘 내 여자야"
"지랄하시네. 얘가 어딜봐서 네 여자야? 지금 벽에다 가둬놓고 협박하는게 너만의 연애 방식이냐? 벽치기야? 아주 참도 로맨틱하다. 아주 눈물이 나서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네"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를 비웃어줬다. 호흡이 조금 안정되니까 분노도 조금 사그라든 모양인가보다. 그러면서 이성도 다시 되돌아오는것 같다.
"그건 저년이 날 속여서 그랬을 뿐이고, 남의 연애사에 신경 끄고 넘어가라 그냥"
김현은 여전히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협박에 굴하지 않고 한번 더 코웃음을 날려줬다.
"허, 쟤가 네 여친이라고? 천만에"
나는 거기까지 말한 다음에 잠깐 틈을 두고는 예영을 슬쩍 쳐다봤다. 그런 다음에 다시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었다.
"얘는 내 여자야"
"...뭐?"
그 순간 눈썹이 꿈틀거리는 김현, 그러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두 주먹이 말아올려쥐는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에 맞춰서 양쪽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아마 느낌상 곧 주먹이 날아올거 같은데, 그냥 맞고만 있을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이새끼가!"
그리고 예상대로 나에게 날아오는 주먹, 그리고 그 순간
"이야... 이거 이렇게 될줄은 몰랐는데 말야. 예상 밖의 루트로 복수를 하게 되네?"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이야... 이거 엄청난 우연이긴 한데, 수혁찡. 하이!"
"헉, 허억... 야 이거 허억... 특종이다!"
"워, 워- 저 이거 쉽게 안줄겁니다? 예상 액수 불러봐요"
고개를 돌려보자 아까 만난 기자들과 함께 같이 있는 태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들은 급하게 쫓아온건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우리가 있는곳을 쳐다봤다.
태강은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채로 휴대폰으로 매우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와 동시에 일그러지는 김현의 얼굴, 그러더니 이내
"운 좋은줄 알아라..."
라는 말과 함께 저 멀리 도망가 버렸다.
"휴우... 이대로 한대 맞는줄 알았네"
김현이 저 멀리 가버리자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하면서 뒤로 돌아봤다. 예영이는 다행히 별 일은 없었는지 몸이나 옷에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아마 아슬하게 타이밍이 잡힌듯 싶었다. 원래 거침없는 얘 성격도 한몫 한것 같고.
"수혁, 괜찮냐? 그리고 저 여자분도..."
"두분 다 괜찮으세요?"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세 사람, 괜찮냐는 말에 나는 괜찮다고 간단히 말해준 다음에 예영이를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예영이는 충격이 꽤나 컸던건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아무래도 여자분 충격이 조금 심하신거 같은데요"
"병원까지 갈 정도는 아닌거 같고, 일단 경찰이라도 부를까요? 이거 데이트 폭력에 가까운거 같이보이는데..."
"스읍... 그러기에는 저랑 수혁이 상황이 좀 그런데..."
세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는 예영이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길을 지나가다가 보고, 촬영까지 하게 된 이상 자신들도 이 사거에 관련자였다. 함부로 피해갈수 없는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그러던 도중, 예영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채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안수혁. 얼른 가서 바래다 줘"
그러자 곧바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태강, 나는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던지라 그냥 고개 한번만 끄덕이고는 왼쪽에 붙어서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괜찮냐?"
"..."
그렇게 어느정도 걸었을까, 나머지 사람들이 조금 멀어진듯 하자 나는 걱정된다는 말투로 예영이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하지만 아무런 답이 없는 예영이, 단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었을 뿐이었다. 지금 아무말도 하기 싫다는 뜻인거 같았다.
"...미안"
나는 짧은 사과를 하고는 계속 옆에서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걱정되는 눈빛으로 예영이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예영이를 따라 계속 무작정 걷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쉼없이 걷던 예영이의 발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할 말이 있는지 낮으면서도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
"...?"
"오늘 그애랑 약속 있다고 들었는데 괜히 나 때문에..."
갑작스러운 사과, 그 한마디에 나는 뭔가 하면서 살짝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얘가 어떻게 내 약속을 알아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예영이가 다시 입을 열면서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너가 그날 화낸 이후로 소개팅이 들어왔었어. 나가보니까 김현이 있길래 여기서 쓸만한 정보를 조금 빼오면 너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훌쩍거리는 예영,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예영이랑 연락을 완전히 끊었는데 위험하다는 얘기에 갈려고 하니까 여운이가 마음에 걸리고,그러다 차이고, 얘한테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를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다고 털어놓고, 이와중에 김현은 나를 치려고 하다가 카메라에 찍혀서 도망치고...
조금 전부터 일어난 일들이 순서없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완전히 터져버릴것만 같은 머릿속, 그러면서 양손으로 마구 헝클면서 긁어댈 뿐이었다.
'아 진짜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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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위험상황, 가슴 한켠의 껄끄러움(5)201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