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36화
그뒤로 미디어데이가 쭉 진행되고 끝난뒤 건물 안, 우리 셋은 각자 유니폼이 든 가방을 멘 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향한 시선이 꽤나 따가운듯한 감독님, 나는 대충 예상이 되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주변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괜히 이런 말을 했다간 안좋은 방향으로 퍼질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정문을 나오자 조금 한산해진듯한 거리, 공간도 탁 트인게 뭔가 얘기를 해도 괜찮을것 같은 장소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감독님은 주변에 사람들이 줄어든걸 확인하신 후에야 나를 쳐다보면서 살짝 질책하듯이 말했다.
"야, 너 단어선택이 조금 과격했던거 아냐? 도대체 김현이랑 무슨 일이 있었으면 원래 안그러던 애가 이정도까지 하는거야?"
그런데 나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한거지, 그냥 막 기분 내키는대로 내뱉은건 아닌데말야. 물론 원래 기분파긴 하지만 조절은 하고.
예선때 나를 농락하듯이 실력을 숨기고 관광시켜준것도 그렇고, 예영이를 끌고가서 뭔 이상한 짓을 하려던것도 그렇고... 그런데 감독님이 그 일을 모르나?
김현에 대한 기분 나쁜일을 생각하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 분명히 예영이에게 벌어진 일이면 감독님이 모를리가 없을텐데 아예 모른다. 직접적이나 간접적으로 충분히 알수도 있는데 모른다. 나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감독님 아직 못들으셨어요?"
"뭐가?"
"쩝, 아니에요"
아, 아직 전해듣지 못한 모양인가보다. 하긴, 요즘 감독님도 바쁘고, 예영이 걔도 감독님이랑 연락 안했으면 충분히 모를만도 하다.
나는 그러면서 반대편에서 걸어가는 산욱이를 쳐다봤다. 산욱이는 미디어데이가 꽤나 피곤했는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야, 힘드냐?"
"졸려 죽겠다. 하도 긴장한건지, 앞으로 다시는 안나간다. 차라리 종빈이를 데리고 가"
산욱이는 이젠 질린다는 표정으로 몸서리를 치면서 괴상한 입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살짝 실소를 짓고는 산욱이의 등을 툭툭 쳐주면서 이젠 더이상 나갈일 없다는 말을 해줬다.
"어, 어... 지금? 나야 당연히 되지! 한 한시간쯤 뒤? 그래, 알았어"
그렇게 산욱이랑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옆에서 감독님이 혼자 말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하면서 고개를 돌려보니까 마침 막 전화를 끊고있는 감독님,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민망하다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하, 이제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저흰 알아서 갈테니까 얼른 가보시죠. 여기서 한시간이면 택시타도 빠듯할텐데 말입니다"
"너희 둘끼리 괜찮겠냐? 지금 시간도 좀 늦은 감이 있는데..."
내가 얼른 가보라는 눈짓을 주면서 말하자 감독님은 우리 둘이 마음에 걸리는지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는 약간의 웃음과 함께 감독님의 등을 툭 밀면서 나랑 조금 떨어트렸다.
"저희 애도 아니고, 어차피 지하철 타고 돌아갈건데 뭐가 위험하겠습니까, 그러니 얼렁 가서 사모님 마음이나 확 사로잡으십쇼"
"솔직히 지금 저희한테 가장 위험한건 사인해달라고 몰려드는 팬들이죠 뭐. 이거 역에 들어가면 고생좀 하겠네"
"야, 그냥 같이가자"
"아 됐어요. 그러면 돌아갈거 아니에요. 그냥 지금 가방은 저희 주시고 그냥 가세요. 가방은 내일 드릴테니까"
"쩝..."
내 말에 감독님은 그래도 걸리는지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평상시엔 안그러던 인간이 여자문제 앞에서 이러니까 뭔가 웃기네.
"아니, 그러지 말고 후딱 좀 가요. 안그래도 도와준다고 밥숟갈 떠다가 비행기 시늉넣고 있는데 그걸 쳐내면 밥투정 하는 애기지, 그러니까 얼른 가요"
나는 이젠 거의 감독님을 떠밀다시피 등을 밀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산욱이가 가방을 홀라당 벗겨왔다. 확실히 이젠 완벽한 팀처럼 느껴지는게, 내가 미는순간 빈틈을 타서 가방을 홀라당 빼왔다. 나이스 타이밍.
그리고는 곧바로 역을 향해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가방을 멘채로 뛰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떨어트려야 감독님이 그제서야 갈것 같았기 때문에 일단은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야, 야! 야 이녀석들아!"
뒤에서 감독님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고서 뒤를 돌아보자 살짝 애매하다는 표정을 짓는 감독님,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침 오는 택시를 불러서 잡아세웠다.
"나이스 플레이"
"나이스 플레이"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산욱이에게 오른주먹을 내밀었다. 이에 웃으면서 자기 주먹도 갖다대는 산욱이. 역시, 이맛에 팀플레이를 하는거 같다. 트리플 플레이때도 그랬고.
"여튼, 이제 우리도 좀 가자"
"오야, 좀 가자"
대충 숨을 고르고 나자 이제 슬슬 가자면서 나에게 다시 걷기 시작하는 산욱이, 나도 자미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
"총 5만 2천원인데, 그냥 5만원만 줘"
"아유,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정 미안하면 사인 한장 해주시던가"
"어이쿠, 당연히 그래야죠!"
택시를 잡아타고 약 50분 뒤, 다행히 서인이랑 만나기로 한 공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인심 좋은 기사분을 만나서 택시값도 깍아주시고. 정확히는 사인 몇장 해드리긴 했지만, 이정도면 인심 좋으신거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럼 수고하십쇼!"
"거 결승에서 응원할게 총각!"
타악-
그렇게 택시에서 내리고 가볍게 인사까지 마치고나자 다시 갈길을 가버리는 택시, 멀어져가는 택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가려워진 뒷목을 살짝 긁었다.
"에휴, 안수혁 그녀석 쓸데없이 센스는 좋네"
수혁이 그녀석이 거기서 내 가방을 뺏고 도망칠 생각을 할줄은 몰랐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선수가 감독에게 그런짓을, 아니, 미성년이 성인에게 그런짓을 한다는것 자체가 쉽지는 않을테넫 녀석은 주저없이 나를 떠밀면서 가방을 뺐고는 그대로 도주했었다.
"평상시에 보면 예의 잘만 지키는 녀석이 그런 생각을 한건지, 참 대단하단 말야"
그렇다고 화가 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나도 원했었고, 망설이던거에 확신을 부여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수혁이 이녀석이 낮에 한말이 떠오른다. 이런 행동을 하는걸 보면 이어주겠다는 말이 허풍은 아니었나보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약속시간도 되어가는데 언제쯤 오려나..."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택시를 탈때만 해도 조금은 보이던 노을이 이제는 완전히 지고 거의 어두컴컴한 밤하늘처럼 되어있었다. 그러면서 낮보다는 조금 서늘해진 공기, 서인이를 만난다는 생각과 겹치자 갑자기 긴장이 되는건지 숨소리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유용식, 떨지말자. 얼마만에 만나는 거냐고. 제발 떨지말고 잘 하자. 오늘은 잘 유지하고 대회가 끝나고, 우승하고서 고백하는거야. 내 마음을 전하는거야'
"저기, 잠시만"
그렇게 긴장을 떨쳐내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있는 도중,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한 중년의 남자, 특이한 점이라면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다는것과 그 나이대 사람치고는 꽤나 말라있다는 점이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인듯 싶었다.
"누구십니까...?"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경종고의 새롭게 취임한 교장, 장성진이라고 합니다. 우선 오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이리로 나온점,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네? 뭔소리에요? 전 여기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는데"
갑작스럽게 나를 붙잡고는 자기소개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그 남자, 나는 그 남자의 말에 황당해하고, 그 남자의 정체에 당황하면서 그 남자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하지만 이런 우연도 어찌보면 필연이죠"
"어찌 보면 악연일수도 있지요"
"허허, 이거 너무 사나운신거 같군요"
"그럴수밖에 없는 사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소리를 하는 그 사람, 나는 그에 반대로 맞받아치면서 그를 노려봤다.
"크흠, 그럼 다른 약속이 있으신거 같으니 빠르게 대답하겠습니다"
내가 너무 차갑게 나가자 살짝 뻘쭘한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그 남자,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경종고는 제가 올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로 야구부에 지원을 아까지 않기로 했습니다. 특히 내년에 감독으로 오시는 분께는 엄청난 권한과 역대급 지원을..."
남자가 입을 연 순간부터 내 인상은 점차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올라가는 분노, 그러다가
"죄송하지만, 그쪽 감독은 안합니다"
최대한 정중함을 담아서 남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그렇게 끝났는데, 구질구질하게 끝났는데,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내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미련해 보였다.
그러면서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곳으로 가버리려는 순간
"저희는!"
그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저희는 다음 시즌에서 오직 유용식 감독님만을 구상 중입니다. 명문에서 몰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1년, 그리고 그 명문을 다시 재건하는데 걸린 시간 10년, 그리고 그 명문을 재건하는데 9할은 감독님의 몫이었습니다"
간절함이 담겨있는 그 남자의 목소리,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저 나를 다시 데려오려는 연기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적이 약간만 안좋으면, 또 극성 학부모들에게 휘둘리고 이간질 당해서 나를 일방적으로 쫒아낸다면, 다시는 그러기는 싫었다.
그러면서 살짝 동정심이 들기는 했지만, 사실상 명장은 잘만 찾는다면, 첫 단추만 잘 끼운다면, 선수처럼 잘만 키워낸다면 얼마든지 얻어낼수 있다. 잠재력만 있으면 명장이 될 자질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요? 저보다 더 나으신 감독을 찾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고개만 돌리고는 다시 한번더 쌀쌀한 말투로 거절했다. 솔직히 지금 나를 데려오려면 가장 필요한게 뭐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돌아가봤자 다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뿐이니까. 그 이유를 충분히 알법한데도 그러지 않는다는건 나에겐 그 간절함마저 가식처럼 느껴진다.
털썩-
그러자 갑자기 무릎을 꿇어버리는 그 남자,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눈도 퇴대한 크게 떠지면서 온몸이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내 반응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듯이 이젠 고개까지 숙여버렸다. 다행히 여기가 사람이 얼마 없는 공원이어서 다행이지, 만약 큰 길가였으면 완전 SNS스타가 되는건 시간문제였을거다.
"아, 아니 갑자기 왜..."
"미안하네, 아니, 미안합니다. 전 교장과 모든 교직원, 그리고 극성맞은 학부모들을 대신해서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번 대회를 보고서 깨달았습니다. 저희 팀을 이끄실만한 분은 감독님밖에 없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다시 경종고로 돌아와주십시오"
그 남자는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들지도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마치 내 허락이 있을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을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왜 남이 중요한 일을 하려는데 이렇게 와서 초를 치고 난리 브루스냐고!'
그와 동시에 미쳐버릴것만 같은 내 머릿속, 안그래도 지금 서인이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잘 보이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난데없이 와서는 무릎을 꿇었다. 지금 이 꼴을 서인이가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 전혀 감도 안잡힌다.
여튼, 지금 뭐가 됐던간에 지금 이 상황을 끝내야된다. 그렇다고 그냥 허락하기는 또 싫다. 그럼 결국에 남은건 이거 하나네.
나는 돌렸던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하면서 호흡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만 물러가주세요. 제가 떠는걸 눈치채셨다면 지금 이 약속이 매우 중요한지는 아실테니까 그정도 배려는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그러자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는 그 남자, 이어서 천천히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부디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빌겠습니다"
그리고는 그 한마디와 함께 내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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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골드 스타즈 VS D.라이더즈(1)2016.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