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38화
"안녕하세요. 배우 김지연입니다. 오늘 양팀 모두 재밌는 경기를 할수 있길 빌겠습니다. 그러면 양쪽 모두 화이팅!"
잠시뒤,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조금 시간이 지나 국민의례까지 끝나자 요즘 유명하다는 배우가 시구를 하러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그 배우는 지금까지 봐왔던 다른 시구자와 별 다를바 없이 형식적인 인사와 응원 멘트를 하고는 안내요원에게 마이크를 넘겨줬다. 그리고는 핑크색 글러브와 공을 받고는 글러브를 왼손에 끼웠다.
"하아..."
나는 그 모습까지만 보고는 고개를 잠깐 아래로 숙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시구만 끝난다면 내가 마운드 위로 올라가는 상황, 아까 마음을 잡긴 잡았다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것은 여전했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 내 옆자리를 더듬어서 물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뚜껑을 딴 다음에 천천히 두모금 정도 들이켰다.
조금 전까지 냉장고에 있던 물인지 시원한 감톡이 내 목구멍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면서 살짝 버티기 힘들것 같던 정신이 조금은 나아지는것 같다.
"수혁아, 괜찮아?"
물병을 다시 옆에다 내려놓자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종빈이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인마, 오늘 어떻게든 이겨서 우리 상금도 한번 타보고, 너하고 성빈이도 야구부 보내줘야지"
"그... 부모님이 결승까지만 가면 계속 야구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얌마, 야구부 들어가고 싶다며? 그러면 우승을 못하면 안돼지. 물론 스카웃 제의가 올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복잡하고 힘들어진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일랑은 전혀 하지 말고, 오늘 무조건 이긴다는 각오로 가자"
나는 그런 종빈이의 등을 툭 치고는 앞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 사이 시구를 끝마친건지 반대편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그 배우, 나는 오른쪽에 놓아둔 모자를 쓰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종빈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경기 시작했다. 가자"
"응, 그래. 오늘 이기자"
종빈이는 마스크를 쓰고 미트를 왼손에 끼운 다음에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는 잡은 손을 놓고는 오른 주먹으로 글러브를 치면서 숨을 짧게 끊어서 내뱉었다. 그리고는 마운드 위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자! 마지막 경기를 위해서!'
*
[오늘 D.라이더즈의 선발투수는 안수혁 선수,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재 골드 스타즈의 타선은 상하위 가릴것 없이 어떤 투수가 올라와도 맹렬한 타격을 날렸습니다.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이며, 보통 투수로는 절대로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수혁이 마운드 위로 올라오고 몸을 푸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히자 중계부스에선 오늘 경기에 대한 전망을 애기하면서 중계를 하고 있었다.
현재 중계진의 반응은 살짝 수혁에게 기대를 거는듯한 모습, 지금까지 그 어떤 투수든 간에 강력한 공격을 펼쳐왔던 골드스타즈의 타선이었기 때문에 수혁이라면 혹시 잘 막아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고 있었다.
물론 수혁이 예선때 골드스타즈에게 난타당했던 경험이 있었다지만 그때와 지금의 수혁은 몇단계 진화한 상태였다. 이미 퍼펙트 게임으로 자신감을 가졌고, 강력한 타선들을 상대로 연일 호투를 펼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관중석도 그 얘기로 꽤나 웅성거리고 있었다. 특히 D.라이더즈의 관중들의 대화 주제는 거의 수혁에 대한 이야기었다. 각각 일행들끼리 지금까지 중계방송으로 혹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봐왔던 그 타선을 수혁이 잘 막을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D.라이더즈의 다른 투수진은 마운드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것인가요?]
[음... 유용식 감독이 허를 찌르듯이 이영훈 선수를 원포인트로 올린다면 모를까, 아마 그닥 좋은 수는 아닐듯 합니다]
캐스터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말투로 해설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건 해설의 부정적인 대답뿐, 현재 D.라이더즈 투수진의 현 주소를 잘 알려주는 반응이었다.
한편 마운드에 있는 수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묵묵히 마지막으로 가벼운 투구로 몸을 풀고 있었다.
왼다리를 천천히 올렸다가 앞으로 쭉 뻗으면서 가볍게 휘둘러지는 오른팔, 그리고 공이 손에서 떠나가서 1초도 안되서 미트에 박히는 투구,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오케이! 오늘 공 좋다!"
종빈은 크게 소리치면서 미트에서 꺼낸 공을 수혁에게 던져줬다. 수혁은 공을 가볍게 받으면서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의 텀을 두었다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오늘 수혁이의 컨디션은 좋다. 푹 쉰것도 있지만 트라우마따윈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린듯한 모습이야. 4강때 그게 도움이 된거 같아서 다행이네'
용식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혁이 몸을 푸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충분하다는듯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정도면 할만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골드 스타즈의 타선이 강하다고 해도 이정도의 공이면 충분히 막을수 있다. 구속은 제구와 변화구로 충분히 컨트롤할수 있을거야. 수싸움에 강한 녀석이니까, 그런 녀석이니까 충분하다'
용식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침 공을 받은 수혁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드디어 결승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딱히 해줄말은 없어. 네 공을 믿고 던져.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그럼, 화이팅이다"
"넵"
오늘만큼은 장난끼나 능글거림없이 짧게 한마디로 대답하는 수혁, 하지만 얼굴에서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용식은 그 미소를 보고는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 덕아웃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수혁은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온건지 타석에 한쪽 발을 집어넣은채로 있는 타자, 그는 스윙을 살짝 체크해보고는 타석 안으로 들어왔다.
수혁은 그런 타자를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타자가 타석 안으로 두 발을 모두 집어넣자 마법처럼 그 소란스럽던 구장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플레이볼!"
심판의 입에서 마지막 경기를 알리는 사인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
두둥- 두두둥-
심판의 콜이 들리자마자 수만의 관중들이 환호하면서 온갖 응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타자는 그런 관중들을 한번 슥 훑어보고는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수혁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고는 초구의 사인을 확인했다.
'일단 좌타자니까 바깥으로 빠지는 투심으로 간부터 보자'
'오케이'
일단 초구는 무리하게 들어가지 말자는 사인, 수혁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사인에 맞춰서 그립을 바꿔쥐었다. 그다음 고개를 돌려서 타자를 쳐다봤다.
'오늘 경기의 첫 단추, 기왕이면 잘 풀어나가는게 중요하겠지'
수혁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타자를 쳐다봤다. 타자는 수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양 팔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수혁은 그런 타자의 움직이는 배트를 잠시동안 쳐다보다가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렸다.
'어차피 초구는 일단 간만 보는거니까...'
이어서 들었던 다리가 앞으로 뻗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모았던 팔이 펴지면서 뒤에서 원을 그리면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왼발이 땅을 밟았을때, 오른다리에 두었던 온몸의 중심이 왼발로 옮겨가면서 그와 동시에 빠르게 휘둘러진 오른팔이 공을 강하게 뿌려냈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막힘없이 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타자의 배트, 그러면서 배트의 궤적을 서서히 공에 맞추어 나갔다.
티잉-
하지만 바깥으로 빼기로 예정된 공이어서 멀리 뻗어나가는 양팔, 그리고 공이 꿈틀거리면서 존 밖을 벗어났을때에는 스윗스팟에서 빗나간 부분에 맞아버리며 3루측 파울라인을 넘어갔다.
[진건호선수, 초구에 과감하게 배트를 내밀었지만 빚맞으면서 파울이 됩니다]
파울이 나오자 캐스터가 짧고 굵게 상황을 전달해줬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뭔가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는 타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흐음... 예전과는 달라진거 같네. 많이 발전한 모습이 보여. 괜히 퍼펙트맨이 아니네'
중계화면에 나온대로 타자는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까 전보다 배트를 짧게 잡고는 수혁을 쳐다봤다.
'이정도면 장타를 만들어내기는 힘들거 같고, 살아나가는걸 목표로 해야겠다'
'1번 진건호, 본선부터 배트를 길게 잡았고 예선보다 장타가 늘어났었다. 확실히 장타력도 있는 타자야. 그런데 여기서 잡았다는건 장타는 힘들겠다는 소리겠지 장타를 칠수있는데 굳이 단타를 칠 필요는 없으니까 말야'
수혁은 그런 타자를 보면서 자신이 봐두었던 데이터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현재 타자의 상황을 유추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어깨에 손가락을 올리면서 종빈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번엔 몸쪽 직구로, 일단 기선제압으로 들어가보자'
'오케이'
종빈은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쪽을 미트를 내밀었다.
수혁은 타자가 혹시 또 바꾸지 않았나 확인하고는 미트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문제가 없다는게 확인되자 망설임없이 와인드업을 하고는 제구보단 구속에 신경쓰면서 공을 던졌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힘을 더 실은만큼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도 빠르게 튀어나오는 타자의 배트, 그리고 배트가 다 나왔을 즈음에
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수혁의 왼쪽을 빠르게 뚫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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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골드 스타즈 VS D.라이더즈(3)201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