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야구팀-251화
"후우...'
경기 막판에 역전을 해내고 맞이한 9회초, 마운드 위에는 수혁이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더 이상 실점하면 경기가 힘들어진다는 생각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빅 이닝을 겪고 역전을 하자 이제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스코어는 5대 7, 두점차다. 그리고 남은 아웃카운트는 3개. 너무 부담감 가지지 말고 지금처럼만 잘 막아나가면 되는거야'
수혁은 속으로 아직 여유가 있는 점수차라고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종빈이게 시선을 옮기고는 사인이 나왔나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일단 초구는 커터로, 몸쪽에 붙여봐'
'오케이'
종빈은 수혁의 시선이 느껴지자 곧바로 사인을 내밀기 시작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옆에 있는 타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까지 내가 던진공은 약 110개, 이제 더 이상은 나도 힘들다. 고로 오늘 경기 마무리는 종빈이를 믿고 난 그저 공만 던지는거다'
확실히 8회까지 계속 역투에 역투를 거듭하면서 지금 그의 몸은 거의 피로에 절은 몸이나 다름없었다.
평상시보다 몇배는 더 강한 긴장감에 초반에 뻥뻥 얻어맞으면서 생긴 정신적, 유체적 피로. 무엇보다 지금까지 역대급으로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공은 던지는 중이라 지금 어딘가에 눕는다면 그대로 잠이 들것만 같은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인 지금 상황, 오늘 이 경기는 어떻게든 자신이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막을 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엇다.
그와 동시에 몸으로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고는 투구판 위에 오른발을 올렸다. 그리고 종빈이 미트를 내밀자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천천히 와인드업을 하고는 남은 힘을 쥐어자내면서 투구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일단 초구는 종빈이 요구한 곳으로 무난히 들어가는 스트라이크, 아직 제구는 녹슬지 않은 모습이었다. 종빈은 만족하는 미소를 지은채로 수혁을 쳐다봤다.
[안수혁 선수, 요구한 곳으로 공이 잘 들어갑니다]
[이제부턴 정신력 싸움입니다. 힘이나 기술이 아닌, 정신력으로 상대를 압도해야만 잡아낼수가 있어요]
이런 수혁을 화면으로 보면서 한마디씩 내뱉는 중계진, 화면 안에서는 수혁이 지친 표정을 지은채로 홈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오케이, 나이스볼!"
종빈은 그런 수혁을 최대한 격려하는 차원에서 크게 소리치면서 수혁에게 가볍게 공을 던져줬다. 수혁은 던져주는 공을 받고는 바닥에 있는 로진백을 주워서 손에 살짝 묻혀줬다. 그리고 타자를 슬쩍 쳐다본 다음에 다시 투구판위로 발을 올렸다.
'힘들어도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하나씩 잡아 나가는거다'
그러면서 조급해질수도 있는 마음을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서두르다가 일이 꼬이는걸 사전에 막으려는 생각,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종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커브, 이번엔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다'
종빈은 이번엔 잠시동안 가만히 있다가 사인을 보내왔다. 수혁은 사인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가만히 쳐다봤다.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내 주특기로 스윙을 유도한다라... 나쁘지 않네. 좋아, 가자'
수혁은 잠시동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발판을 밟은채로 잠시동안 가만히 선채로 종빈이 내민 미트를 쳐다보면서 그립을 고쳐쥐었다. 그리고 커브 그립을 쥐자마자 곧바로 와인드업을 하고서 공을 뿌려냈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딱히 별 다른 문제없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평상시 커브와는 다른 감촉을 느끼는 수혁, 너무 오랜 이닝을 맡아서일까, 손 아귀의 힘이 조금 떨어진채로 공을 제대로 채지 못한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 공이 쭉 뻗어나가다가 막판에 떨어지는건 좋았지만 휘는 각이 평소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그러면서 그의 머릿속은 자동적으로 '제발'이라는 간절한 한 단어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간절함이 다행히 먹힌건지
타앙-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1루쪽으로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마이볼!"
산욱은 가볍게 마이볼을 외치고는 굴러오는 타구를 손쉽게 잡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베이스를 터치하면서 아웃. 그와 동시에 포수의 뒤에 있는 작은 전광판에 빨간불 하나가 들어왔다.
[백상진 선수, 2구째에 잘못 건드리면서 1루수 앞 땅볼로 물러납니다]
중계실 화면에 타자가 잡히면서 상황을 정리해주는 캐스터, 그옆에서 해설이 스읍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방금 안수혁 투수의 공은 커브였거든요? 그런데 각이 많이 작고 미트는 한참 아래에 있었어요. 이건 명백한 실투입니다. 그런데 이런 공을 놓친다는건... 지금 안수혁 선수보다 집중력이 부족하다는걸 의미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까의 모습이 다시 리플레이가 되는 화면, 그러면서 공의 낙폭이 평상시보다 적은게 눈으로 확인이 되고 있었다.
[아, 진짜로 그렇군요. 거의 한복판인데, 정말로 아깝습니다]
캐스터는 화면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경기 진행을 위해서 다시 화면이 돌아왔다.
"앞으로 두개..."
한편, 수혁은 빨간 불빛이 들어온걸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산욱이 던져주는 공을 받고는 타석에 들어오는 타자를 한번 확인했다.
타자는 이런 상황이 긴장되지도 않는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채로 타석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동안 헬멧을 건드리고, 배트를 쥐었다 펴는 등 한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성호진 선수가 원래 이렇게 시간을 끄는 타자였나요?]
[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타자가 갑자기 타석에서 시간을 끈다... 뭐, 뻔하죠. 투수의 타이밍과 힘을 뺏으려는 생각입니다]
타자는 일단 시간을 끌면서 투수을 더더욱 지체게 만들려는 생각을 하면서 별별 뻘짓을 다하는 상황, 하지만 수혁은 여전히 호흡을 길게 가져가면서 미리 종빈이 보내는 사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몸쪽 높은 직구, 스윙 한번 이끌어내자'
'오케이. 거기에다가...'
수혁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지 혼자 작은 미소를 짓고는 타자의 준비가 언제 끝나는지 가만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타자는 여전히 계속 스윙을 점검하고 그립을 점검하면서 시간을 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심판이 제제를 넣자 그제서야 알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셋포지션 자세를 잡고 와인드업도 없이 뻗어나오는 수혁의 왼다리, 그리고 그 다리가 지면을 밟는 순간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내듯이 팔을 휘둘렀다.
"하아압!"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기합,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을 손가락으로 완벽히 채면서 공이 손을 떠나갔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서 빠르게 뻗어나가는 타구, 오늘 가장 좋은 공은 아닐지라도, 경기 초중반에 맞먹을 정도로 전력을 다해서 뿌려낸 공이었다.
그리고 이에 당황한건지 살짝 들었던 왼발을 급하게 내려놓는 타자, 이어서 공이 딱 치기 좋은 궤적으로 날아오자 배트도 급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배트를 내봤자 좋은 타구가 나올리 없는법, 그 결과
티잉-
배트에서 희미한 소리와 함께 타구는 바로 위를 향해서 높이 솟아올랐다.
"바로 위에!"
타구가 맞는순간, 수혁의 손은 반사적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급하게 마스크를 벗고는 타구의 위치를 추적하는 종빈, 잠시뒤에 타구를 찾아낸 다음에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냈다.
"아웃!"
종빈이 공을 잡은 순간 심판의 아웃콜이 들려왔다. 그리고 빨간불이 하나 더 들어오는 전광판, 수혁은 그 불빛을 쳐다보면서 이번에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제 마지막 하나...'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면서 종빈이 주는 공을 받았다. 그런 다음에 한번 더 심호흡을 하면서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후우, 막바지에 오니까 심장이 너무 가쁘게 뛰기 시작하네. 아직확정도 아닌데 말야'
약간 실소를 짓는 수혁, 그러면서 바닥에 있던 로진백을 한번 더 주워서 가루를 약간 붇히고는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앞을 쳐다보니까 타석으로 들어오는 타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김현...'
거의 만신창이가 된 채로 8회를 마무리했던 김현이 타석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분명히 그정도로 얻어 터졌으면 교체할법도 하지만 계속 경기를 뛰고 있었다.
'역시 감독은 바지감독인건가...'
그러면서 아까의 그 두근거림에 눈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수혁, 어떻게든 이번에 잡고 경기를 끝내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공만 던지느라 타순을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 김현... 너를 피날레로 우리팀의 우승을 확정짓는다. 무조건, 무조건!'
그러면서 수혁은 두 눈은 김현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으면 안된다고 머릿속으로 계속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리다가 종빈에게 시선을 옮겼다.
종빈도 현재 타자가 조금 신경쓰이는지 타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수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사인을 내보냈다.
'커브, 존에 걸치게라... 솔직히 아까 커브가 덜 휘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조건 최대한 휘게 만들어야지. 무조건 그래야지'
수혁은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그 옆에 있는 현을 째려보면서 커브 그립으로 손모양을 바궈쥐었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이번만큼은 너는 무조건 친다, X발"
현은 지지 않겠다는듯이 수혁을 똑같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완전히 탈탈 털린 와중에도 수혁을 자기 밑처럼 생각하고 무시하고 깔보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미 한수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을, D.라이더즈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의 기싸움은 무의마한 상황, 수혁은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종빈이 내민 미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와인드업을 하고는 이를 악문채 변화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는 공을 뿌려냈다.
슈욱-
그 결과, 수혁 손을 떠나간 공은 평상시 커브를 던질떄 그 느낌과 똑같이 떠나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거침없이 나오는 배트, 하지만 이번엔 공이 제대로 꺾이면서
부웅- 파앙-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시원한 헛스윙을 이끌어낼수가 있었다.
'좋았어!'
수혁은 시원하게 돌아간 배트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작게 환호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다시 심호흡을 하면서 종빈이 던져주는 공을 받고는 다시 투구판위에 발을 올려놨다.
그리고 앞을 쳐다보자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빠르게 사인을 내는 종빈, 수혁은 뭔가 하면서도 사인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쪽 직구라... 아직 내 공이 달리고 있다는 증건가?'
과감한 승부가 살짝 걸리기는 했지만 이번 이닝 볼배합은 모두 종빈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상황,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빈이 내민 미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써글... 또 그때처럼 비겁하게 커브로 가냐? 어디 직구 한번만 들어와라. 그땐 저 끝까지 날려준다'
한편, 현은 그런 수혁을 여전히 강하게 노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모든걸 다 포기하고 직구만 생각하면서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런 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현의 수를 다 읽은건지 살짝 미소를 띄웠다가 다시 지웠다.
'내가 오늘 생각한거지만, 너같은 타입은 진짜로 이 점만 공략하면 타자로서는 상대하기 매우 쉽다는거지'
그와 동시에 천천히 올라가는 왼다리, 그리고 충분히 올라가자 앞으로 뻗어나오면서 오른판을 빠르게 휘둘렀다.
"으윽!"
꽉깨문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기합, 몸쪽 승부이기때문에 전력으로 던지는 도중에 나온 소리였다.
슈욱-
그렇게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그대로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오는 배트, 현은 이번 공은 직구라고 생각만 하면서 배트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힘빠진 네 공 정도는 우리팀 누구나 넘겨버릴수 있다고!'
그러면서 속으로 또 다시 한번 수혁을 무시하는 김현, 수혁은 뻗어나가는 공을 보면서 긴장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내 공에 힘이 빠졌다면 그럴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종빈이는 절대로 사인 안보내. 애가 병신도 아니고 말이야, 아직 내 공 안죽었어. 충분히 누를수 있어'
타앙-
그러다 공이 거의 다 왔을 즈음, 배트에서 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힘에서 밀린건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현, 그리고 공은 3루라인을 벗어나서 굴러갔다.
"파울!"
"후우..."
이어서 들려오는 3루심의 파울선언, 그와 동시에 수혁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긴장이 되는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오케이! 나이스볼!"
수혁이 그러는 사이에 종빈은 심판에게 새 공을 받고는 수혁에게 공을 던져줬다.
수혁은 공을 받고는 양손으로 공의 면을 문지른 다음에 로진백을 살짝 만져서 손에 가루를 조금 뭍혀줬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종빈을 쳐다봤다.
종빈은 수혁과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잠깐동안 아무런 사인도 내지 않았다. 대신 김현을 잠깐동안 쳐다보다가 뭔가를 결정했는지 미트를 내밀었다.
'커브, 완전히 뚝 떨궈버려. 여기서 나오면 끝이고, 아니면 투심으로 몸쪽 한번 더 찌른다'
'너무 이른것 같.... 아니다, 그냥 여기서 끝내자'
헛스윙으로 경기를 끝내자는 의도인지 커브를 요구해오는 종빈, 수혁은 너무 이른 승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번에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커브 그립을 쥐고는 김현을 쳐다본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끝내자"
그러면서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고는 천천히 왼다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른발로 최대한 체중을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왼 무릎이 배꼽을 지나치자 다시 내리면서 앞으로 쭉 뻗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모여있던 양팔이 같이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왼발이 지면을 세게 밟아버리자 글러브를 낀 왼팔은 몸에 바짝 붙이고 온 힘을 오른팔에 모아서 전력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이마에서 흐른 땀 한방울이 바닥에 닿는 순간, 마지막으로 손가락으로 공을 채면서 손에 있던 공을 떠나보냈다.
슈욱-
수혁의 손을 떠나간 공은 평상시 커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직구와 같은 느낌을 주면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조건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더 빠르게 나오기 시작하는 배트, 아까 두번의 스윙보다 훨신 더 매서운 스윙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지지 않겠다는듯이 뻗어나가는 투구, 그러다가 타자의 배트가 거의 다 나왔을때, 평상시보다 더 날카롭게 대각선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혁의 입밖으로 작은 환호가 새어나왔다. 반면에 현은 당황하면서 급하게 배트를 내리고 수습해 보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나도 벌어진 거리, 결국 배트는 허공을 가르면서
파앙-
아무런 바운드 없이 낮게 깔려있던 종빈이의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게임 셋!"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 구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심판의 목소리, 오늘 냈던 목소리중에 가장 커다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우승! 우승입니다! 안수혁 선수의 9이닝 5실점 완투승! 절대로 믿지 못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 역전극! 기적적인 완투승입니다!]
[1회초 초대형 위기를 딛고 이루어낸 완투승! 인간 승리입니다! 완벽한 드라마입니다! 어떻게 이런 경기나 나올수 있을까요!]
그와 동시에 완전히 흥분한채로 크게 소리치는 캐스터, 그리고 이번엔 해설도 미친듯이 크게 소리치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안수혁! 안수혁! 안수혁!"
"퍼팩트매앤-!"
그리고 심판의 콜이 나온 순간부터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하는 수많은 관중들, 초반에 기울어졌던 승부를 다시 뒤집어서 그런걸까, 지금까지의 다른 경기들보다, 심지어 퍼펙트 게임이 나온 경기보다 훨씬 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
하지만 정작 아무런 환호도 없이 멍하니 앞을 쳐다본채로 서있는 수혁, 그리고 왠지 모를 눈물들이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제서야 드는 정신,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어려 방향에서 다른 선수들이 그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으아아아! 우승이다아!"
"이야아아! 우승! 우승!"
모두들 엄청난 기쁨에 미쳐버린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덕아웃에서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뛰어오는 중인 용식과 웅철, 두 사람도 우승의 기쁨에 미쳐버린것처럼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우승, 수혁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종빈에게 달려가서 폴짝 뛴 다음에 그대로 안겨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펑펑 쏟으면서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우승이다아! 우승, 우승이다아!"
────────────────────────────────────
에필로그-우리 동네 야구팀2016.09.26.
우리 동네 야구팀-에필로그
[D.라이더즈, 황룡기 전국 동네야구대회서 골드 스타즈 격파, 우승]
[안수혁 9이닝 9K 5실점, 완투승 거둬]
[김산욱 동점 그랜드슬램]
[김산욱-임성빈-임종빈 백투백투백 홈런]
.
.
.
경기가 끝나고 다음날 개원중학교. 점심시간이 되고 시간이 널널해지자 D.라이더즈의 모든 선수들이 3-4교실에 모여앉았다.
황룡기에 참여하면서 늘 습관적으로 모이게 되던 아홉사람, 그리고 대회가 끝난 오늘도 어김없이 다같이 점심을 먹고 모여있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당연히 어제 있었던 결승전의 이야기, 덤으로 오늘 전교생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오고 있었다.
"야... 어제 진짜 미치는줄 알았다. 완전 넘어간 게임을 확 뒤집어 버리냐..."
"거기다 무슨 약속의 8회도 아니고 그때 딱 6점을 몰아치냐. 진짜 우리가 생각해도 완전 미친거 같더라"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애들도 좀 반응이 있는거 같더라"
"아, 그거 아이돌들이 결승전 보고 축하인사 보내서 그럴걸"
확실히 이번에는 전교생들의 반응도 확실히 좋은 편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인증샷과 축하 영상들을 보내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거지만, 그래도 수업시간엔 교사들에게, 쉬는 시간엔 학생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고있는 아홉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많이 울렸던 그들의 폰, 모두들 일단 최대한 대답해줄수 있는 범위에는 대답해주고 있었다.
부담스러우면서도 매우 기분좋은 하루, 어제가 말로 표현하수 없는 커다란 감동이었다면 오늘은 그 뒷풀이같은, 축제처럼 즐기는 느낌의 좋은 기분이었다.
"아, 그런데 우리 오늘도 훈련 하려나?"
"야, 하겠냐? 이런날은 함 놀고 먹어야지!"
"교장쌤이 뭐라고 한거 없어?"
"뭐... 딱히 들은건 없지만 아침에 우리 단상으로 끌어내서 칭찬한거 보면 한턱 쏘고도 남아보이는데"
"그치, 내가 봐도 그래보이더라"
확실히 지금 이런 상황에서 훈련이 나올것 같지는 않아보이는 모습들, 이젠 더이상 대회도 없고, 프로 선수가 되는것이 목표도 아니다. 물론 그 쪽을 목표로 하는 애들도 있다만, 야구부에서도 이런날 만큼은 마음껏 만끽하고 놀수 있게 해줄법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들떠있는 아이들, 그러면서 여전히 들뜬 표정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져가고 있었다.
*
"음... 이번엔 무슨 영화를 볼까..."
"야, 이제 그만... 두번은 몰라도 세번은 무리야..."
"어허! 그동안 나 고생시킨거 잊었어?"
"너도 나처럼 뒤끝 장난 아니구나..."
그리고 며칠뒤 오루 시내의 어느 한 영화관, 수혁과 예영이 팔짱을 낀채로 팜플렛들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싱글거리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예영과 진짜로 그럴거냐는 표정을 지은채로 수혁이 멍하니 서있었다.
"흐음... 그럼 이번엔 이게 좋으려나?"
"..."
그러다가 예영의 손이 향한곳은 평범해 보이는 러브코미디 영화, 수혁은 망했다는 표정을 지은채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창 좋아하고 있던 예영의 손을 잡고는 자기쪽으로 휙 돌려버렸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둘의 눈동자, 예영은 살짝 놀란채로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면서 오른팔로 수혁의 허리를 감싸고는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왜에? 뭐해줄려고?"
"어, 어... 야, 주변에 사람들 많아"
"뭐 어때? 한번쯤은 이렇게 염장도 질러봐야지"
이제 놀라고 있는 사람은 수혁, 그는 조심스레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힘을 꽉 준채로 버티는 예영의 팔, 결국 수혁은 포기한다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서 예영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됐지?"
"부족한데에~?"
"야... 진짜 지금 주변사람들 눈치 보인다니깐..."
"그럼 뭐 이대로 계속 있던가. 이것도 좋네"
하지만 여전히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예영, 수혁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번엔 조금 더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다가갔다. 그런 다음에 예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가볍게 맞추고는 다시 천천히 위로 고개를 올리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제 됐지?"
그리고 간신히 내뱉은 한마디, 예영은 내심 기대하면서도 진짜로 이럴줄은 몰랐는지 살짝 멍한 표정으로 보다가 입이 부드러운 곡선을 지으면서 허리를 감았던 팔로 팔짱을 끼고는 밖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뭐좀 먹으러가자! 아까 영화볼때 아무것도 안들고 갔더니 너무 배고파"
잔뜩 신난듯이 들떠서 말하는 예영, 수혁은 그런 예영을 보면서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가 원하는걸로 먹으러 가자"
*
[김전욱 해설위원, 이젠 야구계도 아마야구에 신경을 써야한다]
[아마야구의 발전, 언젠가는 꼭 이뤄내야할 숙제]
[KBA, 이젠 학원 스포츠도 중요하지만 동네야구팀 같은 클럽 스포츠도 필요해]
[KBA, "황룡기를 전국적인 대회로 갖추겠다" 선언, 이어서 리틀야구단 지원도 전폭 늘려]
.
.
.
"흐음... 처음엔 한번 질러보자는 의미였는데, 이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잘 처리가 되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엔 이정도록 인기를 얻을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치 내 어릴적에 고교야구정도의 인기를 보여주는거 같구만. 반응들이 프로리그 못지않게 뜨거워"
"매우 다행입니다"
서울 어딘가에 위치한 한 건물, 그리고 그곳의 어느 방안. 조금 늙어보이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은채로, 그리고 젊어보이는 남자는 그 앞에 선채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그럼 지금부터 슬슬 내년 대회 준비에 들어가고 리틀야구단 지원도 슬슬 들어가야 될테지?"
"곧바로 준비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늙은 남자의 물음에 젊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에 명령을 수행하러 몸을 돌리자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하나더, 이번 대회에서 우승팀을 홍보모델로 써보는것이 어떤가? 효과는 확실히 좋을것 같은데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만 나가봐"
"넵"
늙은 남자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문을 가서 밖으로 나가는 젊은 남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그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걸로 이제 아마야구도 훨씬 더 탄탄해질수도 있겠어...'
*
그뒤로 몇달뒤, 12월 초 3-4교실. 점심시간이 되자 오늘도 어김없이 다들 모여있었다.
황룡기 이후로 선수들이 불어나면서 인원수는 거의 서른명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지만 3학년 멤버들은 여전히 아무런 변동 없이 이 아홉명이 유일했다.
대신 1, 2학년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팀의 규모는 커진 상황, 이젠 나 혼자서 마운드를 맡을 필요도 없고, 대신 주장의 책임감이 더더욱 강해진 D.라이더즈엿다.
유니폼이나 장비같은거는 KBA의 지원으로 부족하지 않게 받을수 있는 상황, 다행히 처음 팀을 만들때와 같은 어려움은 없어서 감독님과 내가 팀을 안정적으로 잘 끌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대화 주제는
"너네들은 어느학교로 갈거야?"
시기가 시기인지라 아무래도 진학쪽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었다.
"음... 글쎄 나는 특성화고나 갈까 생각중인데"
영훈이의 물음에 내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옆에 있는 선민이를 쳐다봤다.
"아, 몰라. 그냥 가는데 가는거지 뭐. 기왕 가는거 공학이었으면 좋겠네. 내년엔 여자나 좀 만나게"
선민이는 딱히 생각하기 귀찮다는듯이 대충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성빈이에게 '넌 어디로 가냐?' 라고 물어봤다.
"난..."
"아, 얘랑 종빈이는 뭐 뻔하지. 아마도 일반고로..."
"넌 좀 닥쳐"
"맨날 나만 닥치래..."
하지만 이번에는 성빈이 대신에 입을 여는 영훈이가 입을 열다가 성빈의 닥치라는 소리에 다시 잠잠해졌다. 그러게 애 얘기하기도전에 자르고 들어가냐.
여튼, 영훈이의 입이 닫히자 잠시동안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함도 잠시, 성빈이가 그 틈을 타서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대회가 끝난직후에 감독님이 나랑 종빈이, 호진이한테 물어보시더라고. 앞으로도 계속 야구할거냐고"
그러면서 갑자기 확 진지해지는 성빈이의 표정, 하지만 다른 애들은 여전히 무덤덤함 표정으로 성빈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동안 수많은 학교들의 제의를 거절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막상 이게 이뤄지니까 겁이 나서 포기하는줄 알았는데, 뭔가가 있었나보다. 역시, 그때 내가 본 눈빛은 그렇게 지레 겁먹고 도망갈 눈빛은 아니었어.
"엥? 왜 우리한테는 안했지?"
"뭐야, 너네 진짜로 야구부 가려는거야?"
"근데 아무리 자격이 있다고 해도 어디로 가는건데? 지금까지 왔던 제의들은 다 거절했잖아?"
그러면서 대부분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진짜로 가느냐, 그럼 어디로 가느냐, 그럼 지금까지 거절한건 뭐냐 등등의 질문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다.
"아, 야 설마...."
이제 내 추리는 끝났다. 그리고 이제 내 생각이 맞는지 한번 물어볼 차례, 나는 성빈이를 쳐다본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왠지 계속 거절할때 너네가 이상하다 했다. 너네 둘이 감독님이 가려는 곳으로 같이 가려는거지?"
"정답, 역시 수혁이 넌 눈치를 해네. 기왕이면 비밀로 가려다 오늘 말하려고 했는데"
거의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하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자 감독님이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감독님. 왠일이에요?"
"뭐... 그냥 오늘 오후에 강연좀 하라고 해서 강연할겸 사표 내려고 찾아왔지"
"네?"
오자마자 커다란 폭탄을 연달아서 터트리는 감독님의 발언, 그의 발언에 모두들 믿을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채로 그를 쳐다보다가 자기들끼리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반면에 내 두 눈은 가만히 감독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내 추리대로라면 감독님은 D.라이더즈를 떠나실게 분명한 상황. 그럴려면 후임을 잘 정하는게 중요한데, 그 부분은 어떻게 됐나 모르겠다.
"그럼 후임은요?"
"차기 감독은 미리 내가 정해놨어. 내 후배녀석인데 너무 빡세지는 않아. 오히려 순박하고 우직해서 속이기 쉬운 타입이지. 주장이 어떠냐에 따라서 많이 갈릴거다. 그러니까 수혁이 너가 차기주장 잘 선택해. 알겠지?"
"쩝... 네. 안그래도 봐둔 녀석은 있어요"
"역시, 그럴줄 알았다"
이미 준비를 다 해놓은건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여전히 웃고있는 감독님의 얼굴, 그리고 내 대답에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이러다가 감독과 주장의 찰떡호흡이 팀 컬러로 붙는거 아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애들은 웅성웅성 거리면서 감독님에게 계속 질문을 쏟아붇고 있었다.
감독님은 별별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다가
"그럼 감독님은 어디로 떠나시는데요?"
산욱이의 질문이 나오자 약한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 모두를 한번 쭉 둘러봤다. 그러자 마치 마법처럼 잠잠해지는 목소리들, 감독님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나? 나야 뭐... 쫓겨난데로 다시 돌아가게 됐어"
"어딘데요?"
감독님이 전에 계시던 고등학교가 있다고?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면홍중이면 몰라도 그 전에 있던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적이 없는데...
"경종고. 거기 새로운 교장이 무릎까지 꿇으면서 빌더라. 그래서 들어가는 조건으로 내가 4명까지 장학생 신분으로 들어갈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결과는 뭐... 당연히 성공이지"
감독님은 거기까지 말하시고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채로 진지하게 쳐다봤다.
'뭐, 뭐지? 왜 갑자기 나를 진지하게 쳐다보는거야? 느낌 상으로는 뭔가 또 큰게 나올거 같은데...'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려는 순간
"사실은 그때 일부러 말 안하고 나중에 말하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진 말에서 또 한번의 폭탄이 터졌다.
"수혁아. 나랑 같이가자"
"...네?"
갑작스러운 감독님의 제안, 나는 뭔가 하면서 어안이 벙벙한채로 감독님을 멍하니 쳐다봤다.
감독님은 내가 꽤나 필요한건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양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거의 부탁조로 제안하는 감독님, 그 눈빛만 보면 매우 간절함이 보이고 있었다.
"넌 내가 봤던 원석들 중에서 최상급에 해당해. 내 눈은 거의 틀리지 않아. 그건 너도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같이 가자. 내가 널 프로로 만들어줄게"
감독님의 간절하면서도 무조건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한마디, 예상치 못한 제안에 은근히 들어있는 단호함까지. 그러면서 내 머릿속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는 시간, 처음엔 감독님의 제인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면서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거절하는쪽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죄송합니다. 전 다른 할일이 있어요"
내 손을 잡은 감독님의 손을 조심스레 놓으면서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그러자 감독님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너 평상시에 야구 엄청 좋아했잖아? 야구선수 되려고 그렇게 노력한거 아니었어?"
"흐음... 전 그냥 야구가 좋아서 그런거에요. 사실 전 선수단 생활은 잘 못할거 같거든요. 자유롭게 사는게 좋아서요"
"그, 그러면 그냥 일반고로 진학하게? 그럴바엔 차라리 나랑 같이 가는게..."
내 대답에도 감독님은 아직 이해가 가지 않은건지, 아니면 아직도 미련이 남은건지 나를 설득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감독님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뇨, 죄송합니다. 다른 하고싶은 일이 생겼어요"
"뭔데? 축구? 농구? 아니면 배드민턴?"
"아뇨, 소설이요"
"...뭐?"
내 반응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듯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 감독님, 나는 그런 감독님께 절대로 가지 않을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똑바로 쳐다봤다. 아마 감독님이라면 지금 내 의지가 얼마나 굳건한지 잘 알겠지.
그리고 내 예상대로 내 눈빛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는 감독님, 그러면서 포기한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대신 약속 하나만 하자. 나중에, 언젠가 내가 와달라고 요청하면 그때는 군말없이 따라오기로. 그래줄수 있지?"
"...네. 그땐 아무런 불만없이 가겠습니다"
언젠가는 꼭 부르겠다는 의지가 담긴 목소리. 나는 잠깐 있다가 미소를 지은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리 무리한 부탁도 아니니까.
"야, 너 괜찮겠어?"
"저거 완전히 찬스 아니야?"
"그래, 거기다 감독님이랑 계속 야구하는거니까 충분히 좋은 조건같은데?"
"그래, 뭣도 모르는 소설쓰느니 나같으면 차라리 감독님 따라간다"
내가 제안을 거절하자 그제서야 말문이 트이면서 이리저리 나에게 질문해오는 애들, 감독님은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근처 책상에 걸터앉고는 힘없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쓰려는 소설이 뭐길래 내 제의까지 거절하냐? 지금까지 야구에 거의 미쳐서 살던 녀석이 말야"
감독님의 물음에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감독님과 한번 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야구소설이요. 올해 우리들의 모습을 담은 소설입니다"
"실화가 들어간 픽션이네? 그럼 제목은 정했어?"
당연히 소설을 쓰는데 제목을 정하지 않았을리가. 나는 당연하다는 말 대신 고개를 한번 끄덕여줬다. 그리고 감독님이 마치 말해보라는듯한 표정을 짓자 나는 입가에 더욱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번 더 입을 열었다.
"우리 동네 야구팀. 이게 제가 쓸 소설의 제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