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머스켓티어(Musketeer)2021.02.01.
서걱, 서걱. 면도칼 소리가 무척 부드럽게 울렸다. 케이트는 능숙하게 벨반의 수염을 마지막 한 올까지 완벽하게 정리한 후, 거울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벨반은 웃으며 손사래 쳤다.
“굳이 확인할 필요 있나. 그대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아닙니다, 공작 각하. 항상 부족합니다.”
벨반은 잘 정리된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자, 그래서 내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케이트를 향한 벨반의 눈빛은 인자했으나, 목소리가 진지했다. 케이트는 그런 벨반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 섞인 웃음을 삼켰다. 역시 자신은 항상 부족하다. 모시는 주인께 걱정 끼칠 일 없이 감정을 완벽하게 숨겼어야 하는데, 매번 들키고 마니 말이다. 감히, 주인을 우려하는 마음을 말이다. 케이트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해해, 자네 마음. 나만큼 피오레를 좋아하니까. 걱정되겠지. 아멜리아에게 기회를 준 내 결정을.”
케이트는 더는 숨김없이 벨반에게 직언을 했다.
“공작 각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아일리 아가씨를 무척이나 아끼셨고, 그리 떠나셔서 많이 마음 아파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멜리아 아가씨가 가주 시험을 치르는 건, 무리입니다.”
케이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성스러운 시험을 망친다면, 다른 티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특히 이사나가 그렇겠지. 피오레를 너무 좋아해서, 가주가 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들의 신뢰가 없으면 피오레는 위태로워집니다.”
“아멜리아를 믿어.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이번엔, 그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되고 싶네.”
케이트는 벨반의 말에 멈칫했다.
“비록 피오레로서의 내 명예에 흠이 되는 일이라고 해도, 그 아일 믿고 기회를 주고 싶어.”
벨반의 깊이 파인 눈동자가 어느새 아련하게 흔들렸다.
“난 이 이름 때문에 내 사랑하는 딸을 지키지 못했고, 아픈 그 아이를 내버려 뒀네.”
“공작 각하…….”
“생애 마지막, 이 짧은 순간만큼은. 한 번쯤은 피오레가 아닌 외할아버지가 되고 싶네. 그러니 이해해주게. 내 오랜 벗으로서.”
케이트는 이렇게까지 말하는 벨반을 더 흔들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양보할 수 없었다.
“부디 공작 각하의 믿음을 아가씨가 저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각하를 모시는 저로서는, 각하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흠이 가는 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오랜 벗으로서도.”
벨반은 그 말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맙네, 케이트.”
모두가 의심하고 있었지만, 벨반은 정말로 아멜리아가 뭔가 기적을 일으킬 것 같았다.
‘피오레 공작가의 작위를 이어받고자 합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고, 눈빛 또한 그러했기에 마냥 무모하지만은 않을 그런 느낌이 들었다. *** 탕-! 텅 빈 훈련장. 분명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디선가 총성 섞인 바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과녁이 산산조각 났다. 대기를 흔들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은 30분 정도 계속되었고, 열다섯 발의 총성 끝에 마침내 메사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의 굴곡이 드러날 정도로 딱 붙는 벨벳 드레스 차림에 검은색 장총을 어깨에 멘 그녀는 다소 버거운 숨을 삼키며, 과녁으로 걸어갔다. 열 발은 정확히 맞췄으나, 다섯 발은 살짝 빗나간 과녁에도 메사리나는 만족한 빛을 띠었다.
“30분에 열다섯 발. 이 정도도 충분하긴 하지.”
사실 총도 못 쏘는 이를 상대로 진지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굳이 내가 뭘 안 해도 망신만 당하고 끝날 게 뻔한데. 그 다 죽어가는 심장으로 대체 뭘 하겠다고.”
머스켓티어는 마법을 시전 할 매개물로 총을 쓰는 술사였다. 이들은 마나를 탄환으로 만드는데, 일명 마탄이라고 불렀다. 이 마탄 하나를 만드는 건 무척이나 많은 마나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대부분 원거리로 공격하는 저격수로 활동했다. 모습을 완전히 감춘 채, 적을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사살하는 것. 이는 전쟁에서 아주 중요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상대에게 엄청난 공포를 심어줄 수도 있었고. 게다가 마탄은 속성 마법을 담았기에 그 위력이 엄청났다. 물론 약점은 만드는 속도였다. 연발을 할 수 없기에, 위치가 발각되면 바로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티어들은 기량에 따라 30분 동안 열 발의 마탄을 시전 한다. 메사리나는 열다섯 발 정도를 쏘았으니, 실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지만, 그래도 더 확실히 뭉개줘야지. 두 번 다시 나대지 못하도록.”
이사나와 칼렌이 멀리서 훈련 모습을 지켜봤다. 칼렌은 메사리나의 실력에 절로 감탄했다.
“와. 레이디 메사리나 제법 하는데요? 30분에 열다섯 개나 만들다니. 게다가 그렇게 지친 기색도 안 보이고.”
이사나는 막대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유효타는 열 발이네.”
“주 속성 마탄이 바람이네요. 위력도 괜찮고, 엄폐술도 수준급이고. 사격 정확성만 높으면 후보 중 가장 유력하네요. 아니, 결과는 이미 나온 것 같아요.”
“해보지도 않고 나왔다는 건 뭔 자신감이야?”
“시험이 바로 내일인데, 레이디 메사리나만큼의 실력자가 없어요.”
칼렌의 말에 이사나는 이번 시험의 요주의 인물을 거론했다.
“레이디 아멜리아는?”
칼렌은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디 아멜리아는, 하아. 가장 이상해요. 사용하는 총도 장총이 아니고…….”
“장총이 아니면?”
시큰둥하던 이사나의 표정에 흥미가 감돌았다. 머스켓티어에게 장총은 기본이었다. 아니, 연발이 불가하고 원거리 공격밖에 할 수 없기에 장총밖에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리볼버요.”
“리볼버?”
“네. 그것도 총을 한 번도 쏘지 않고 검이랑 싸우고 있어요.”
***
“하아, 하아…….”
아멜리아는 완전히 헝클어진 모습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토록 윤기 좋게 탐스러웠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엉망으로 묶여 있었고, 화려하진 않아도 항상 단정하게 입고 있었던 드레스 대신 흙투성이의 헐렁한 셔츠에 역시나 더러워진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손아귀에 딱 맞는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목검을 쥔 이클리트가 무섭게 서 있었다. 힘든 기색이 역력한 아멜리아와 달리, 이클리트는 단정한 차림으로 태연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를 보며, 리볼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계속하죠.”
그 말을 시작으로 이클리트가 그녀를 향해 무섭게 목검을 휘둘렀다. 아멜리아는 재빠르게 목검을 피하며 정확히 이클리트의 머리를 향해 리볼버를 겨눴으나, 이클리트가 순식간에 피해 다시 목검으로 공격했다. 검과 총의 대결. 이클리트가 목검으로 공격하면, 아멜리아는 그 목검을 피하면서 리볼버를 그의 머리나 가슴에 겨누며 대응하고 있었다. 물론 총을 쏘진 않았다. 이클리트가 마지막 합으로 목검을 찔렀고, 아멜리아가 확실히 피하며 정확히 그의 이마에 리볼버를 겨눈 채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온몸을 들썩일 정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분명 같이 움직였는데, 그는 숨소리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몇 번 제 공격을 놓쳤지만, 잘했습니다.”
아멜리아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배에 겨우 힘을 주었다.
“놓치면, 안 되죠. 놓치는 순간 난 죽을 텐데…… 하아, 하아! 한 번 더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손을 바라보며 목검을 내렸다.
“잠시 쉬죠.”
“아니요, 더 할 수 있어요…… 시험이 바로 내일인데, 쉴 순 없죠…….”
“제가 힘듭니다.”
아멜리아는 그 말에 헛숨을 삼켰다.
“거짓말! 대공 전하, 지금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거든요? 진짜 너무 얄미울 정도로! 사실 더 빠르게 할 수 있죠? 봐주면서 하시는 거잖아요!”
“전혀 아닙니다.”
이클리트는 갑자기 아멜리아의 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댔다. 뜨겁고 단단한 피부가 느껴지자, 아멜리아는 움찔 놀라며 외쳤다.
“지, 지금 뭐 하시는!”
“심장이 엄청 빨리 뛰는 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예?”
이클리트가 더없이 진지한 시선으로 묻자, 아멜리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그의 심박 수를 들었다. 근데 정말로 겉으로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제 손바닥이 살짝 떨릴 정도로 그의 심장이 엄청 무섭게 뛰고 있었다.
“느껴져요…… 엄청 뛰네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몰래 긴장된 숨을 삼키며 일부러 태연하게 말했다.
“그만큼. 힘든 겁니다.”
“그러네요. 신기하다. 보기엔 진짜 안 힘들어 보였거든요.”
아멜리아는 순수하게 신기해서 이클리트의 가슴을 더듬거리며 점점 더 빨라지는 심박 수를 들었다.
“근데 더 심하게 뛰는 것 같은…….”
“그러니까.”
참지 못한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의 손을 떼면서 말했다.
“쉬도록 하죠.”
어쩐지 괴로워 보이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요. 그럼 조금만 쉬어요.”
아멜리아는 바닥에 아무렇게 주저앉았고, 이클리트는 경직됐던 숨을 내쉬며 그녀 앞에 마주했다.
“할 말 있으세요?”
그는 말없이 리볼버를 쥐었던 그녀의 손을 끌었다.
“아니, 저기!”
아멜리아는 숨기려고 했지만, 그가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윽!”
리볼버를 쥐었던 그녀의 손이 붉게 헐어 있었다. 이클리트는 몹시 맘에 안 드는 시선으로 품에서 약통을 꺼냈다.
“괜찮은데…….”
“내일 시험 아닙니까? 사소한 상처에도 발목 잡힐 수 있는 겁니다. 그때 말했을 텐데요. 자기 관리도 실력이라고.”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절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클리트의 손가락이 아멜리아의 손바닥 위를 간지럽게 움직였다. 아멜리아는 괜스레 그의 손길이 의식되면서, 손끝으로 열기가 몰렸다. 그녀는 애써 정신을 딴 곳으로 돌렸다.
“결국 끝까지 묻지 않으시네요.”
“뭘 말입니까?”
“왜 이런 걸 하냐고 말이에요.”
그날, 그에게 부탁한 건 훈련을 도와줄 상대였다. 그것도 자신에게 목검을 휘둘러 달라고 말이다. 머스켓티어가 엄폐술과 사격술을 연습하긴커녕, 리볼버로 검에 맞서 싸우다니. 남이 보기엔 미쳤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그는 전혀 묻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저 믿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저를 다 아는 것처럼 믿으니까 그러죠. 절 잘 아는 사람도 불안해하는데.”
“누구 말입니까?”
“마미요. 엄청 불안해하거든요.”
불안해하는 게 당연했다. 결국, 시험 전날까지 단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냥 좋습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서.”
뜬금없는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요?”
“영애가 무척이나 잘 뛰는 모습?”
“네?”
이클리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예쁘고 파란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하자, 아멜리아는 다시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또 이런다. 또 저렇게 예쁜 눈으로 날 쳐다봐…….’
“그리고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모습도 볼 수 있고.”
“자, 잠깐. 무슨 모습이요?”
아멜리아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저 예쁜 눈동자에 제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지?
‘아무리 그래도 레이디로서 품위가 있는데!’
아니지.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 훈련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걸 꼭 일부러 짚어야 하냐고!
‘예법은 잘 모르셔도 매너는 있으신 줄 알았는데!’
아멜리아는 살짝 토라진 시선으로 말했다.
“미안하네요. 제 모습이 너무 엉망이라. 그래도 너무 하시네요. 전 대공 전하랑 처음 만났을 때. 물론 살짝 무섭긴 했어도, 대공 전하를 싫게 보지 않았…….”
“저도 싫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읊조렸다.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지.”
아멜리아는 일순, 그가 잡은 자신의 손을 빼앗고 싶었다. 분명 쉬고 있는데. 아까 전 이 남자보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제 심장 소리를 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
“보세요. 진짜 이상하잖아요.”
“그러네. 진짜 이상하네.”
이사나와 칼렌은 엄폐술로 완벽하게 기척을 숨긴 채, 아멜리아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법 민첩하고, 반사 신경도 좋잖아. 체력도 괜찮은 것 같고.”
“그게 머스켓티어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티어는 숨어서 저격하는데. 게다가 총은 장총을 써야죠!”
“그렇지. 리볼버는 단거리용이라 사정거리가 짧지. 하지만 장총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잖아.”
칼렌은 자꾸 엉뚱한 말을 하는 이사나가 답답했다.
“자유로우면 뭐 합니까. 리볼버는 자살용이에요. 티어가 적에게 들켰을 때, 끔찍한 고문을 당하느니 명예롭게 죽기 위한!”
“뭐, 딱히 리볼버를 자살용으로 만들진 않았지. 그 어떤 티어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것뿐.”
이사나는 아멜리아가 목검을 피하며 적의 급소만을 정확히 겨누던 모습을 떠올렸다.
“검과 정면으로 싸운다면, 리볼버가 끝내주긴 할 거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고, 워낙 작아서 상대에게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적을 완벽히 쓸어버리겠지.”
“적을 쓸긴 개뿔. 리볼버로 싸우다니. 마탄을 만들 시간이 전혀 안 되는데요? 눈앞에서 바로 죽을 겁니다.”
“마탄을 연발로 쏜다면?”
이사나가 흥미로운 말을 했지만, 칼렌이 딱 잡아 말했다.
“그런 티어는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해요.”
“불가능하지. 연발로 쏘려면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니까. 게다가 마탄도 바로바로 만들어야 하고. 고대의 마법사면 몰라도, 지금의 인간은 심장이 못 버티지. 하지만 가능하다면.”
“예?”
“그게 가능하다면, 아무도 못 이겨.”
이사나는 아멜리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천재를 어떻게 이겨? 약점이 없는 머스켓티어인데.”
칼렌은 자꾸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이사나가 이상했다.
“근데 진짜 이상하네.”
“처음부터 이상했는데 뭘 새삼스럽게.”
“진짜 이상해. 체력이 대단하잖아. 정말 쉼 없이 움직이는데, 심장 아프다는 사람 맞아?”
그때, 이사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지면서 칼렌을 붙잡고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이클리트가 어딘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를 눈치채지 못한 아멜리아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이클리트는 등을 돌리면서, 아멜리아를 자신의 몸으로 가리며 말했다.
“시작하죠.”
칼렌은 떨리는 숨을 삼키며 이사나에게 속삭였다.
“서, 설마 들킨 겁니까, 우리?”
“아마도?”
이사나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정확히 자신들이 있는 쪽을 노려보더니, 영애를 보지 못하게 숨겨버렸다. 아니, 보호했다고 해야 하나? 그저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건데, 숨쉬기가 버거울 만큼 소름이 쫙 끼쳤었다. 이런 살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희 엄폐술이 잘못됐을까요? 아닌데. 기척도 못 느끼게 잘 숨었는데…….”
“그러니까 괴물 대공이지.”
“네?”
“일으킨 전쟁 전부를 이겼어. 희한하게 날씨마저 도왔다고 들었지. 눈보라와 바람과 비가 적절하게.”
이사나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더 훔쳐봤다가는 정말로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내일 날씨는 어떨까.”
석양이 지고, 새로운 태양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새로운 꽃은 내일 피게 될 거다.
“시험이 몹시,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