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하늘 가득 피우다2021.03.05.
비록 신관이 축복을 내리며 만든 축복의 꽃은 아니었으나, 드레스의 한 송이, 한 송이 신비롭게 피어난 꽃이 기적처럼 펼쳐졌다. 귀족들은 너무 아름다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며 탄성을 자아냈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쏟아지는 찬사에도 아멜리아의 표정은 어쩐지 굳어져서는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익숙한 기적 끝에,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당연하게도 이클리트였다.
‘설마…….’
이클리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그녀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십시오.”
살짝 기울어진 고갯짓 너머 그의 푸른 눈동자가 오묘한 빛을 띠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꾹 참고서 이클리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대신관에게로 걸어갔다. 대신관은 갑자기 벌어진 이 소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으나,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서 결혼 서약서를 읊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의 화합을 축복하겠습니다.”
대신관의 말을 따라 노란 옷을 입은 신녀들이 주르르 나와서는 무릎 꿇은 아멜리아에게 베일을 씌우고, 이클리트에게 성수를 뿌리며 종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카렌듈라를 서로의 손에 쥐여주었다.
“태양신의 축복 아래 두 사람이 맺어지노라. 자비로운 태양 아래 서로를 밝히고, 두 사람은 태양이 지지 않는 한 영원하리라.”
이윽고,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의 베일을 거두며 조심스럽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신부를 향한 맹세의 입맞춤 의식이었다. 그의 안온한 온기가 이마를 타고, 손등과 손바닥.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서 발등까지 자잘한 숨을 피웠다. 남편이 될 이가 숭배와 축복을 담아 평생 신부와 함께하겠다는 의미였다. 간지럽게 번지는 숨결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달뜬 호흡을 삼켰다. 이클리트는 조금 일렁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아멜리아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나, 그대에게 양날의 검이 되리라.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그대에게 해가 되는 것을 베어내리라. 영원히 그대를 지키고, 복종하리라. 그대의 매 순간, 순간. 아름답지 않을 날이 없으리라. 그대의 눈길 닿는 것마다 평화와 축복이 깃들게 하리라. 그렇게 설레도록 그대와 모든 걸음을 함께하리라.”
이클리트의 마지막 한 마디에서 그녀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정말 이 기적을 이분이 만들었을까? 대체 대공 전하는 누구지? 누구야?’
하지만 이클리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 결혼식은 예상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연신 아멜리아의 드레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수군거렸다.
“정말로 드레스에서 꽃이 핀 거야?”
“마법인가? 요즘 마법으로 저런 게 가능해?”
“새로 나온 마법 도구일 거야. 역시 피오레 가문인가. 얼마면 살 수 있으려나…….”
어느새 귀부인들은 마법 도구라고 판단하고 탐내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메사리나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진 상태였다. 결혼식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다고 여겼는데.
‘말도 안 돼.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니야. 그래도 결국 축복의 꽃이 아닌 거잖아. 신기한 건 한순간이야. 이들은 축복을 원하고 있다고. 의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거라고!’
메사리나의 생각대로 그들은 점점 흥미를 잃으며,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축복의 꽃은 어디 있지?”
“예쁘긴 하지만 그래도 축복의 꽃이 아니면…….”
*** 결혼식이 거의 끝나가고, 이클리트가 살며시 아멜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아멜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대신전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열 개의 기둥이었다. 기둥 끝이 빛나는 걸 보고서 아멜리아는 준비가 끝났음을 확신했다. 때마침 날도 적당히 저물고 있었고.
“그러네요. 이제 결혼식은 여기서 끝내야겠네요.”
아멜리아가 한발 앞으로 걸어가서는 모두에게 말했다.
“결혼식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다른 걸 좀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의아한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거? 다른 거라니?”
“결혼식 말고 다른 게 있어?”
“정말 축복의 꽃은 이대로 없는 거야?”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대신전의 문이 열리면서 제복을 입은 이사나와 머스켓티어들이 행렬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전부 장총을 어깨에 메고, 위엄 있는 자세로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압도하는 공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메사리나는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입술이 뒤틀렸다.
‘대체 또 무슨 수작을 하려고. 이미 축복의 꽃은 망가졌으면서!’
끝도 없이 펼쳐진 행렬이 멈추고, 이사나가 앞으로 나와 아멜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서 장총 하나를 받쳤다. 그것은 피오레 가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상징적인 총이었다. 장인이 본체 전부를 황금으로 새겨 놓은 총이었는데, 방아쇠 부분이 유독 닳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수많은 가주들이 피오레를 위해 싸웠던 역사가 담겨 있는 것. 아멜리아는 서늘한 시선으로 무릎까지 굽히면서 그 총을 겸손하게 받아들었다. 어쩐지 익숙한 분위기와 상황에 귀족들은 놀란 눈빛을 띠었다.
“설마 여기서 작위 수여식을?”
“그 중요한 의식을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너무 초라하잖아…….”
그때, 아멜리아는 받아 올린 장총을 제대로 장전하고서 크게 외쳤다.
“나는 이 총의 무게를 받들어, 피오레의 이름을 계승하겠다.”
설마, 했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지금부터 축복의 꽃을 개화하겠다!”
***
“아무리 그래도 축복의 꽃 없이는…….”
“누가 꽃이 없다고 했지?”
아멜리아의 말에 케이트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작위 수여식. 오늘 바로 거행하지.”
아멜리아의 말에 케이트는 있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안 됩니다. 작위 수여식을 오늘 당장 거행한다니요!”
“작위 수여식에서 축복의 꽃을 피울 거다, 내가. 그것도 귀족뿐만 아니라 영지민들 모두가 축복을 받을 수 있게 아주 크고 화려한 꽃을.”
그녀의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특히 신관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축복의 꽃을 가주님이 피우시겠다니요. 그건 저희 신관의 권한입니다!”
“제가 피운 꽃을 신관님들은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결국엔 축복의 꽃을 신관님들이 지키지 못했으니까.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신성회의 이미지도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그, 그건!”
“이번 일의 책임은 피오레에서 묻지 않고, 신성회에서 조용히 처리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신관들은 아멜리아의 말에 분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피오레의 권위와 명예를 세울 거라면, 이왕 하는 거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야지.”
처음부터 귀족들만 축복을 받는 게 거슬렸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
“새로 피어날 피오레에 고작 웨딩드레스에 있는 축복의 꽃은 작고 부족하다. 그러니 이 하늘 가득, 축복의 꽃을 피울 것이다. 이 자리뿐만 아니라 태양의 빛이 뻗어 있는 모든 곳에 진정한 축복이 깃들기를!”
아멜리아가 하늘을 향해 장총을 장전했다. 대체 그녀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다들 의아한 시선이 날카롭게 뻗어 있었다. 아멜리아는 긴장된 숨을 짧게 삼켰다.
‘내게 가장 어울리는 꽃을 내가 피울 거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녀는 열 개의 기둥을 향해 연달아 열 개의 불의 마탄을 쏘아 올렸다. 쉼 없이 터지는 총성에, 그때의 시험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감탄했다.
“정말로 마탄을 연발로 쏘다니.”
“대단하다. 저런 건 처음 봐!”
“그런데 뭐 하는 거지?”
마침내 열 개의 기둥에 모두 불의 마탄을 쏘아 올린 아멜리아는 차분하게 장총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펑-! 퍼퍼펑! 그녀가 쏜 마탄이 뭔가와 반응하더니 갑자기 하늘 가득 화려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와!!”
“불꽃이야. 하늘에 불꽃이 피었어!”
어느새 저문 밤하늘을 가득 뒤덮기 시작한 불꽃이 쉼 없이 피어나더니, 이윽고 사람들에게 황금빛 세례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녀가 말한 하늘에 피운 축복의 꽃이었다. 아멜리아는 감탄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피오레의 새로운 가주로서 피오레의 명예와 긍지와 권위를 지키며, 티어들과 함께 저 불꽃처럼 싸워나갈 것이다. 결코, 내 탄환의 꽃은 지지 않을 것이며, 가장 높은 곳에서 피어나 마지막까지 어둠 속에서 광명의 총성을 울리게 하리라. 그렇게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노라!”
어둠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불꽃.
“와아아아아아!!!”
환호 소리가 대신전 바깥에서도 폭풍처럼 들렸다. 바로 영지민들의 환호성이었다. 귀족들도 감탄과 함께 모두 새로운 가주인 아멜리아를 향해 예를 갖추고 머리를 숙였다. 지켜보던 메사리나는 하얗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돼……. 저게 축복의 꽃이라고? 모두에게 축복을 내려? 웃기지 마. 축복의 꽃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저건 거짓이야. 궤변이라고!”
메사리나가 뛰쳐나가려는 순간, 에드조프가 그 앞을 막았다.
“대공 전하?”
“가서 어쩌려고? 그대가 축복의 꽃을 망친 범인이라고 자백이라도 할 셈인가?”
그의 싸늘한 목소리에 메사리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미 저들의 마음을 그녀가 사로잡았다. 진짜 축복의 꽃이 아니더라도, 오늘 이 자리에선 저 불꽃이 축복의 꽃이 된 거야. 궤변이라도 통하면 새로운 역사가 되지. 남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역사. 그래서 전설이 되는 거고.”
에드조프는 오늘 이 자리에서 완벽하게 가주에 오른 아멜리아를 보며 입꼬리를 짙게 당겼다.
“불꽃이라…… 아름답군. 너무 갖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
메사리나는 에드조프의 눈빛에 서린 욕망에 심장이 차갑게 서걱거렸다.
‘설마, 대공 전하께서 아멜리아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절대!’
*** 아멜리아가 쏘아 올린 불꽃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그 불꽃 아래에서, 벨반이 가문의 반지를 아멜리아에게 끼워주면서 그녀는 진정 피오레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작위 수여식을 그녀가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이다. 벨반은 아멜리아의 어깨를 다독였다.
“잘했구나.”
아멜리아는 여전히 긴장된 눈빛으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무모한 일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무모하지 않았다. 결국엔 해냈으니.”
처음 이사나에게 부탁한 것은 불에 반응하는 마법 도구였다. 거기에 신관의 축복을 담아서, 하늘에서 터질 수 있도록 전부 대신전 기둥에 설치한 것. 오직 불의 마법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불의 마탄으로 죄다 명중시켜 불꽃을 일으킨 것이다. 현재로서는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케이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벨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멜리아가 잘 해냈군.”
“하지만 불안하고 위태롭습니다. 이런 방법은 전통을 지키려 하는 귀족들의 반발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영지민들에게도 나눠주다니…….”
케이트가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갈색 로브를 입고 있는 귀족들이 서 있었다. 바로 솔라를 지탱하는 보수 귀족들인 장로회였다. 다섯 공작가가 이따금씩 황실과 맞부딪히며 솔라를 지킨다면, 장로회는 철저히 황실의 편에서 순수 귀족주의를 지향했다. 태양이 모든 만물에 평등하게 빛을 내린다고 하지만, 장로회는 선택받은 이들은 더욱 특별한 가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그만큼 극도로 보수적이고, 차별적이었으며 따라서 이방인을 경멸했다.
“게다가 신성회의 반발을 살 수도 있습니다.”
케이트의 말처럼 불꽃을 지켜보는 대신관의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축복의 꽃을 만드는 것은 신성회, 즉 신관의 권한. 하지만 쉽게 나서지 못하는 건 축복의 꽃을 망친 것이 신관이기에. 그들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멜리아 역시 그것을 이용한 것이었고. 벨반은 케이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충분히 이해했지만, 이제 모든 선택은 그녀의 것이었다.
“피오레는 한 번도 특정한 단 하나의 꽃을 가문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건 피오레의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지.”
“공작 각하…….”
“꽃은 피어날 자리를 가리지 않아. 어떤 곳에, 무엇이 피어도 모두에게 똑같이 아름답고 특별해. 아멜리아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평등하게 저 불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케이트는 무거운 한숨과 함께 하늘 가득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보이는 한, 바깥에 있는 영지민들도 모두 저 불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전통도 결국은 누군가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쌓여간 것이지. 아멜리아는 아멜리아 나름대로 피오레의 새 전통을 이어 권위와 명예를 세워나갈 거다.”
벨반은 묵묵히 아멜리아의 뒤를 지키고 있는 이클리트를 바라보았다.
“피오레를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 보수파 귀족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걸음을 돌렸다. 귀족의 소유물이었던 축복을 평민들에게도 내리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클리오 대공과 결혼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는데 말이다.
“저 근본 없는 여자가 피오레의 가주가 되면, 분명 클리오 대공을 황위에 세우려고 할 겁니다.”
“절대 그리 둘 수는 없지. 이방인의 피가 섞인 황제라니. 우린 끝까지 바스티얀 대공 전하를 세워야 한다.”
“지켜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시간 낭비였어요. 피오레는 저 어리석은 가주로 인해 무너질 겁니다.”
“그래. 안 그래도 다섯 공작가의 권능이 너무 커졌어. 이참에 바로 세워야지.”
작위 수여식이 어느새 축제로 바뀐 듯했다. 모든 임무를 마친 이사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불꽃 아래 사탕이라. 끝내주게 낭만적이네.”
칼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이사나에게 다가왔다.
“와…… 이런 작위 수여식은 처음입니다. 항상 근엄하고 성스러웠는데. 이렇게 축제 같아도 되는 겁니까? 바깥에서 영지민들도 난리랍니다. 축복의 꽃을 처음 보게 되었다고요.”
“이게 우리 새로운 가주께서 가고자 하는 길이겠지. 모두가 평범하게. 차별받지 않고. 진정 모두에게 공평한 태양처럼.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지.”
특히 솔라는 제국 중에서 가장 차별이 극심하니. 헤실거리던 이사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말뿐인 건 언제나 쉬워. 결국 궤변은 궤변일 뿐이고.”
북부에서 돌아온 카힐로는 몰래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어두웠다. 특히, 아멜리아의 드레스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고 일순, 피가 식는 것 같았다.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서. 카힐로는 아멜리아의 곁에 서 있는 이클리트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대공 전하,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당신이 누군지 밝혀지면. 그 능력이 알려지면.’
“그땐 정말 폐하께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 아멜리아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마탄을 이용해서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불꽃이라고 생각해서 결정했는데.
‘이제 보니 나한테 잘 어울리네. 나는 저렇게 화려하게 피었다가 사라져야 하니까.’
“시간은 충분했군요.”
아멜리아의 빈자리로 당연하다는 듯 이클리트가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나의 가주.”
아멜리아는 그런 그의 모습에 설핏 미소를 그렸다.
“대공 전하 덕분이에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매 순간,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 뿐.”
‘그 기적을 만든 게 당신 아닌가요?’
아멜리아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묻지 못했다. 이클리트는 언제나 그렇듯 오롯이 그녀를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정말 잘했습니다, 오늘.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어요.”
“…….”
“앞으로도 언제나 빛나기만 해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다정한 그의 목소리를 따라 아멜리아는 또 하나 되묻고 싶었다.
‘그러다 다치고 아프면. 당신을 이용하라고?’
분명 함께 가야 하는 길인데. 같이 이용해야 하는 건데. 왜 자꾸 이분은 빛이 아닌 그림자에 있는 것 같은 걸까.
“오늘 결혼식, 나만 주인공은 아니었어요. 같이 결혼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그 결혼식, 다 안 끝났고요.”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순간, 이번엔 그녀가 그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이클리트 라이엇 클리오. 당신을 내 남편으로 맞이할게요. 그리고 나도.”
‘마지막까지 나만은 당신의 편이 될 겁니다.’
“대공 전하의 마지막 편이 되어줄게요.”
아멜리아는 떨리는 손을 뻗어 역시나 나직이 떨리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맞추며 속삭였다.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의 키스.”
조심스럽게 포갠 입술 너머로 익숙한 온기가 가득 번졌다. 역시나 그에게선 제비꽃 향기가 버거울 만큼 짙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