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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길고 긴 밤에……. (20/199)

20화. 길고 긴 밤에…….2021.03.12.

이클리트의 속삭임에 심장이 오싹해지며, 넘기는 숨이 움츠러들었다. 뭔가 평소와 다른 낯선 그의 모습에 자꾸만 온몸이 긴장됐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조금 풀어진 시선으로 뒤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멜리아는 그제야 그의 의도를 깨달았다.

16553702622821.jpg‘계약, 시작이구나.’

그는 일부러 이러는 거다. 우리가 몹시 사랑하는 부부로 보여야 하니까. 현재 이 결혼 관계가 가짜라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마미뿐이었다. 지금부터 하녀들과 몇몇 티어들이 이 침실 앞을 지킬 것이다. 게다가 이 결혼을 주시하는 눈과 귀가 있을 터. 결혼 첫날부터 각방을 쓰게 되면 온갖 의심이 넘쳐날 거다.

16553702622821.jpg‘어쩌면 부인들의 살롱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번져나가겠지.’

절대로 그 어떤 빌미도 줘선 안 되니까.

16553702622821.jpg‘첫날밤은 확실히 함께해야 해. 하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긴장 상태였다. 목덜미에 닿았던 그의 숨결이 여전히 간지럽게 남아 있었다.

16553702622821.jpg‘분명 연기 맞는 거지? 일부러 이러는 거 맞지? 근데 저런 말을 왜 저렇게 잘하시냐고!’

어떡하지? 이 긴긴밤을 어떻게 의식하지 않고 잘 보낼 수 있는 거지! 이클리트는 안절부절못하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자꾸만 웃음이 번졌다. 물론 그도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녀가 사랑스러웠으니까. 붉게 번진 그녀의 얼굴 때문에 머릿속이 훤히 보였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모습. 아까 작위 수여식 때는 그토록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굴었으면서. 의외인 부분에서 이렇게 약해지다니. 계속 그녀를 바라보던 이클리트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그녀에게 닿아 있는 손끝이 자꾸만 저릿해졌다. 과연 이 긴긴밤, 자신은 그녀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멜리아가 그의 옷깃을 수줍게 붙잡고서 속삭였다.

16553702622821.jpg“그럼 대공 전하. 침실로 들어갈까요?”

16553702622849.jpg“……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벌써 고통스러운 숨이 그를 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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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아서,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와 침실로 들어왔다. 신혼부부를 위한 침실은 몇몇 촛불만이 묘한 분위기로 밝혀 있었다.

16553702622821.jpg‘차라리 좀 어두운 게 나으려나? 근데 왜 저렇게 침대가 커 보이지?’

아멜리아는 침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침대를 보며 숨을 꿀꺽 삼켰다. 기분 탓인가. 정말로 침대만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그때, 이클리트가 촛대에 불을 더 밝혔다.

16553702622849.jpg“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조금은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니까.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렇게 함께 밤을 보내야 합니다.”

아멜리아는 잔뜩 긴장한 자신과 달리 무척이나 의연해 보이는 이클리트를 보면서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16553702622821.jpg‘뭐야. 나만 너무 신경 쓰고 있잖아.’

16553702622821.jpg“걱정 안 해요. 긴장하지도 않고. 전 매일 같이 밤을 보내도 상관없어요.”

아멜리아는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16553702622821.jpg“철저히 부부 역할을 하기로 했잖아요. 그럼 뭐든 같이 해야죠.”

16553702622849.jpg“뭐든?”

16553702622821.jpg“뭐든!”

고집스럽게 받아치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이클리트의 눈매가 짙어졌다.

16553702622849.jpg“그런 위험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윽고,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

16553702622849.jpg“감당 못 할 테니까.”

돌아서는 이클리트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헛숨을 삼켰다.

16553702622821.jpg‘하! 뭐야. 내가 뭐든 못 할 거로 생각하는 거야? 사실 키스도 전부 내, 내가 먼저 했잖아!’

아멜리아는 슬쩍 침대에 앉았다. 사실 키스도 그녀에겐 엄청난 일이었다. 에드조프와 연인이었을 때도 그녀가 먼저 입맞춤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부의 밤일에 대해선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우연히 보게 된 소설에서 읽었던 정도? 보통 이런 교육은 어머니가 해줘야 하는데, 후지아가 해줬을 리가 없으니까.

16553702622821.jpg‘하지만 뭐. 그 이상을 할 일은 없을 거잖아. 우리가 진짜 부부도 아니고. 대공 전하께서 그런 욕망에 휘둘리는 분도 아니고.’

그러니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면 된다. 편하게 있으면 되는데……. 아멜리아는 무언가 달그락거리며 준비하고 있는 이클리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골격에서 느껴지는 체구가 어마어마했다. 남자의 몸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지금껏 아멜리아가 봤던 남자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보다 탄탄하고 어쩌다 보게 된 속살도 전부 근육질이었던…….

16553702622821.jpg‘잠깐.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멜리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16553702622821.jpg‘내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그래.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거라고!’

이클리트는 은쟁반 하나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쟁반에는 와인과 티 세트가 담겨 있었다. 이클리트가 미리 마미에게 부탁한 것들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밀크티를 내렸다. 아멜리아는 뭔가 의외인 모습에 신기한 눈빛으로 차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무척이나 달콤한 향기와 함께 그가 찻잔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16553702622849.jpg“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겁니다. 그럼 푹 잘 수 있을 거예요.”

16553702622821.jpg“대공 전하는 와인이네요.”

어쩐지 보통 와인보다 훨씬 더 붉고 짙었다. 마치 피처럼.

16553702622849.jpg“아침에 이걸로 할 게 있습니다.”

16553702622821.jpg“아침이요?”

16553702622849.jpg“그런데 마시기도 마셔야 할 것 같네요. 생각보다 밤이 길 것 같아서. 살짝 취하기라도 해야 할 것 같거든.”

그의 말을 도통 따라갈 수 없었지만, 더 깊이 묻진 않았다. 그녀는 살짝 상기된 기분으로 밀크티를 마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16553702622821.jpg“와! 진짜 너무 맛있어요!”

16553702622849.jpg“괜찮습니까?”

16553702622821.jpg“제가 마셨던 밀크티 중의 최고예요. 뭐예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왜 이렇게 잘하세요?”

16553702622849.jpg“종종 야외에서 지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몸을 데워야 하니까. 다 생존 방법입니다. 나는 상관없지만, 부하들은 살아서 버텨야 하니까.”

무심히 나오는 말에 아멜리아는 멈칫했다.

16553702622821.jpg‘부하들은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외로움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모습. 자신은 생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지만, 그는 모르면서 아는 것보다 더 초연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메말라 있으면. 심장이 따끔거렸다. 외로움이 습관처럼 익숙해진 그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몹시 편한 복장인데, 이클리트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의복이 갖춰져 있었다. 자신 때문에 일부러 침대 근처에도 오지 않는 것 같고.

16553702622821.jpg‘벗고 있는 게 습관이라고 하셨으면서. 엄청 답답할 것 같은데. 밤새 저렇게 입고 계실 건가?’

적어도 옷은 편하게 입고 있어도 괜찮은데……. 와인을 삼키던 이클리트는 집요하게 와 닿는 아멜리아의 시선에 경직된 숨을 삼키며 말했다.

16553702622849.jpg“그렇게 계속 쳐다보면 곤란한데.”

16553702622821.jpg“네?”

16553702622849.jpg“사실 가주께서 빨리 잠들면 좋은데 말입니다.”

진심이었다. 차라리 그녀가 잠들어버리면, 이 밤을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그의 입에서 나온 가주라는 말이 몹시 어색했다.

16553702622821.jpg“호칭은 편하게 해도 괜찮아요, 대공 전하. 그리고 그 옷도 좀 편하게 입으셔도 되는데…….”

16553702622849.jpg“편하게 되면, 선을 넘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제어가 필요해서요. 그렇지 않으면.”

16553702622821.jpg“않으면?”

와인 잔을 더듬던 그의 손가락이 멈칫하며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16553702622849.jpg“뭐라도 해버릴 것 같습니다.”

오싹하게 번지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말을 멈췄다.

16553702622821.jpg‘뭐지. 왜 저 말이 이렇게 위험하게 느껴지지?’

16553702622849.jpg“지금도 제 무덤을 판 것 같긴 한데, 그만두긴 싫거든요.”

이클리트의 시선이 좀 더 오래 아멜리아에게 머물렀다. 이 밤에. 이렇게 한 공간에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저릿했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오래오래 볼 수 있는 것이 더, 행복했다.

16553702622821.jpg“그래도 가주님은 좀 불편한데…….”

16553702622849.jpg“부인.”

뜻밖의 단어가 스치자, 아멜리아의 심장이 움찔했다.

16553702622849.jpg“그럼 부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결혼했으니까 당연히 부인이라는 호칭이 맞는 말인데. 저 한마디가 너무 간지러워서, 속이 또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16553702622821.jpg“그, 그래요. 부인 좋네요, 부인.”

그녀는 재빨리 밀크티를 마셨다. 하지만 괜스레 속까지 달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찻잔을 들어 올린 채, 이클리트를 힐끔거렸다. 그는 끊임없이 와인을 삼키고 있었다. 입술과 손가락 아래에서 붉은빛이 더욱 농염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홀린 것처럼 쳐다보던 아멜리아가 눈을 마구 깜빡였다. 이러고 있다간 정말로 날밤 새울 것 같았다.

16553702622821.jpg‘안 돼. 어떻게든 먼저 자야 해. 안 그러면 대공 전하도 편하게 쉬질 못하시잖아.’

하지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순간, 아멜리아는 이클리트가 마시는 와인을 빤히 쳐다보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16553702622849.jpg“더 드릴까요?”

이클리트가 묻자, 아멜리아는 비장하게 말했다.

16553702622821.jpg“아니요. 이거 말고 저도 와인 주세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16553702622849.jpg“술 마실 줄 아시는 겁니까?”

16553702622821.jpg“처음 마셔봐요. 하지만 잠 안 올 때 마시면 좋다고 예전에 들은 적은 있어요.”

16553702622849.jpg“잠이 안 오십니까?”

16553702622821.jpg“네. 하지만 제가 빨리 잠들어야 대공 전하께서도 좀 편하게 쉴 수 있을 테니까.”

16553702622849.jpg“……왠지 취하시면 제가 더 편히 못 쉴 것 같은데…….”

16553702622821.jpg“괜찮아요. 분명 취해서 바로 정신을 놓을 거예요!”

결국, 이클리트가 말릴 틈도 없이 아멜리아는 생애 처음으로 술이라는 것을 아주 쭉쭉 마셨다. 지켜보는 이클리트는 몹시 불안했다. 이 이상 변수가 생기면 참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이클리트가 안절부절못한 사이, 그녀는 호기롭게 와인 석 잔을 원샷하더니, 갑자기 잠든 것처럼 잠잠해졌다. 어쩐 일인지 와인병을 인형처럼 소중히 끌어안은 채 멈춰버린 것. 이클리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잠든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긴 했다.

16553702622849.jpg“이걸 다 마시면 안 됩니다. 이걸로 내일 아침에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에게서 와인병을 빼앗으려는 순간.

16553702622821.jpg“아, 안 돼요!”

잠든 줄 알았던 그녀가 움찔하더니 빼앗으려는 와인병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16553702622821.jpg“안 돼요…… 아멜리아 꺼예요. 뺏지 마요! 내가 지킬 거야아!”

그녀는 완전히 풀려버린 눈동자로 말도 안 되게 그를 노려봤다. 와인병을 지키는 모습이 저렇게 비장할 수가 없었다. 이클리트는 웃음을 꾹 참고서 정중하게 말했다.

16553702622849.jpg“안 뺐습니다.”

16553702622821.jpg“거짓말.”

16553702622849.jpg“진짜입니다. 하지만 더는 마시면 안…….”

16553702622821.jpg“안 돼! 아멜리아 꺼야!”

순간, 아멜리아가 이클리트의 손을 잡고서 침대로 끌어당겼다. 그녀 앞에서 너무 무방비했던 이클리트는 그대로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당황하여 곧장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멜리아가 그런 그의 위로 올라가서는 까르르 웃었다.

16553702622821.jpg“와!!! 내가 이겼다! 그러니까 내 꺼 왜 빼앗아가려고 해요! 내 꺼. 이제 하나도 안 뺏겨. 하나도 안 뺏길 거야…….”

아멜리아는 그에게 더 바짝 기대고는 바로 코앞에 얼굴을 내민 채 해사하게 웃었다.

16553702622821.jpg“예쁘고…… 탐나. 뺏기기 싫어요…….”

와인병은 어느새 침대 밑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은 이클리트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는 순간 목이 타들어 갔다. 그녀의 향기가 훅 빨려들면서,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숨을 짓눌렀다. 이클리트는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멜리아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16553702622821.jpg“가만있어요. 이렇게 있으면 편하잖아요…….”

16553702622849.jpg“하나도, 안 편합니다.”

그는 끙 소리를 내면서 결국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온갖 전쟁터를 누볐지만, 이런 고통과 고문은 처음이었다.

16553702622821.jpg“사실 나. 대공 전하한테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는 멈칫했다. 아멜리아의 두 뺨은 여전히 취기에 붉었고, 눈동자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술기운을 빌려 꾹꾹 누르고 있던 걸 용기 내어 내뱉고 있었다.

16553702622821.jpg“나. 지금 너무 졸려서…… 여기서 잠들어버리면, 하나도 기억 못 할 거예요.”

16553702622849.jpg“…….”

16553702622821.jpg“그러니까. 다 잊어줄 테니까…… 내가 물어보면, 대답해줄 거예요? 대공 전하가 누구인지?”

뜨거웠던 숨이 차가워지면서, 이클리트는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16553702622849.jpg“미안합니다. 그것만큼은, 못 해요.”

16553702622821.jpg“왜요? 대공 전하가 위험해져서?”

그는 그녀가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위험해져서 말 못 하는 게 아니라…….

16553702622849.jpg“무서워서.”

16553702622849.jpg‘당신도 날 무서워하면. 이렇게라도 곁에 있을 수 없게 될까 봐…….’

16553702622821.jpg“무서워하지 말아요. 지켜줄게요. 내가. 곁에 있어 줄게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아멜리아가 단호하게 이클리트를 붙잡았다. 아멜리아는 자꾸만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의 대답이 사납게 심장에 박혔다. 카힐로를 만난 뒤, 계속 신경 쓰이고 거슬렸던 것 하나. 그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건, 혹시 그 비밀이 이분을 힘들게 하는 걸까 봐. 혼자 아파해야 하는 걸까 봐 그런 거였지만. 비밀이 지켜져야 이분이 다치지 않는 거라면.

16553702622821.jpg‘난 몰라도 돼. 눈앞에 이분이 더 중요하니까.’

이분을 다치게 하는 비밀 따위, 필요 없어.

16553702622821.jpg“대공 전하, 그거 아세요? 나도 어릴 적부터 아주 많이 외로웠어요. 아주 많이 아팠고요.”

16553702622849.jpg“…….”

16553702622821.jpg“그런데도 괜찮았던 건, 로사 유모의 편지 덕분이었어요.”

편지라는 말에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나직이 떨려왔다.

16553702622821.jpg“로사 유모의 한마디가. 그리고 꼭 함께 주셨던 제비꽃이. 내겐 특별한 선물이고 위로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대공 전하가 자꾸 내게 그런 제비꽃이 돼요.”

16553702622849.jpg“…….”

16553702622821.jpg“우린 서로 이용해야 하는데. 자꾸 나만 받는 것 같으니까. 나도 대공 전하에게 제비꽃이 되고 싶어요.”

아멜리아는 폐허 같은 이분의 곁에 있고 싶었다. 계약 기간만큼은, 같이 있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이용당해주고 싶었다. 이클리트는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녀와의 거리를 선뜻 좁히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16553702622849.jpg“……이미 제겐 당신이 제비꽃이었습니다.”

16553702622821.jpg“그래요? 다행이다, 그럼.”

그녀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소중하게 맺혀서, 이클리트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깊은 시선에 아멜리아는 홀리듯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16553702622821.jpg“예쁘다…… 너무 예뻐…….”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눈가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16553702622821.jpg“대공 전하는 눈이 왜 이렇게 예뻐요? 처음 볼 때부터 그랬어. 너무 예쁘고. 애틋해서. 계속 쳐다보게 돼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손을 잡으며 너무 당연하다는 듯 속삭였다.

16553702622849.jpg“보고 있으니까요.”

16553702622821.jpg“…….”

16553702622849.jpg“온통 당신만 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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