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실수는 없어지지 않는다!2021.03.26.
“대공 전하, 가주님!”
이른 아침, 하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어쩐지 하녀의 표정에 긴장이 서려 있었다. 아침에 신혼부부 침실을 방문하는 건 무슨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까. 이미 어제 충분히 경험하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후, 이클리트가 제대로 여미지 못한 가운을 대충 걸친 채 문을 열었다. 하녀는 순간 움찔하는 심장을 붙잡았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 피곤해 보이는 나른한 눈빛이 냉랭하면서도 진한 수컷의 향과 더불어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굳어져 있는 하녀를 향해 다소 까칠한 어조로 읊조렸다.
“아침은 조금 늦게 가져와라. 아직 정리가 안 됐으니.”
하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머나, 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아침마다 저희가 실수하지 않도록 차라리 문 앞에 무슨 흔적을 남겨두시면, 늦게 찾아오겠습니다.”
“……꽃을 두도록 하지.”
“예? 아, 네. 알겠습니다!”
하녀는 후다닥 사라졌고, 이클리트는 다시 침실 안으로 들어왔다.
“갔습니다.”
태연한 이클리트의 목소리와 달리, 침대에 누워 있는 아멜리아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 사랑하는 사이로 보여야 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옷은 좀 제대로 입고 계세요!”
“아, 죄송합니다. 습관이 쉽게 안 고쳐지네요.”
아멜리아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붙잡으며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니.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할 일이기도 했다. 첫날밤만 부부로서 같이 보내면 될까, 싶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생각보다 공작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게 나쁜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좋은 호기심! 사실 공작가에 오랜만에 젊은 부부가 함께하니, 여러 가지 기대가 모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만간 어여쁜 아기 울음소리가 가득 퍼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쓸데없는 기대감 말이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적어도 공작가 사람들은 대공 전하를 이제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거잖아. 너무 허울 없이 받아들인 것 같긴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불 너머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이클리트는 어느새 의복을 제대로 정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침마다 쑥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매번 의자에서 대충 잠을 때우고 있었다.
‘그것도 정말 미안하고…….’
계속 저렇게 재울 수는 없는 거니까. 아멜리아는 슬쩍 이불을 내리며 이클리트를 향해 말했다.
“대공 전하. 마미에게 따로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할까요?”
“그게 무슨?”
“아니 의자에서 계속 주무실 수는 없잖아요. 자리가 불편하니 통 잠들지 못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정말 미안한데…… 조금 편하게 계셔도 괜찮아요.”
아멜리아의 말에 이클리트는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뭘 어떻게 해도 제대로 잠들진 못할 겁니다.”
“아…….”
“그래도 편하게 하라는 말은, 나쁘지 않네요. 부인께선 절 편하게 생각한다는 거니까.”
이클리트는 잠시 머뭇거리다 나직이 속삭였다.
“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제가 왜 대공 전하를 무서워해요?”
아멜리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오히려.
‘자꾸 생각날까 봐 겁나지.’
차마 이 말까지는 할 수가 없었지만. 아멜리아는 자꾸 이클리트에게 기대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정말 뭐든 다 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는 아침마다 이슬 머금은 제비꽃을 따다가 눈 뜨자마자 닿는 곳에 장식해두었다. 덕분에 아멜리아는 좋아하는 제비꽃을 보며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근데 후원의 제비꽃이 아직도 시들지 않았네.’
마치 로사 유모가 주는 제비꽃처럼. 제비꽃의 생명력이 그렇게 강한가?
“아침 먹어야죠.”
제비꽃뿐만이 아니었다. 간밤에 마미에게 미리 부탁한 티세트로 이클리트는 밀크티를 정성스럽게 우리고, 스콘까지 준비했다. 밀크티 한번 맛있었다고 한 이후엔 거의 매일 해주고 계시는 것!
‘앞으론 말조심해야지. 괜찮다고 해도 계속 저렇게…… 물론 너무 맛있긴 하지만.’
“제가 일어나서 먹을게요.”
“괜찮습니다.”
이클리트는 굳이 아멜리아의 침대 앞에 고집스럽게 아침을 차려주었다.
‘자꾸 이렇게 소소한 것까지 기대면 곤란한데…….’
그는 아멜리아의 옆에 딱 붙어 앉아서는 맛있다고 말하는 아멜리아의 표정에 만족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카힐로 경은 잘 돌아갔어요?”
아멜리아의 입에서 카힐로 이름이 나오자 이클리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어떻게 아십니까?”
“잠깐 만났어요.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라면?”
“음, 그건…….”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슬쩍 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비밀이에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어쩐지 험악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상하게 카힐로에게 했던 말을 이클리트에게 하기는 부끄러웠다.
‘대공 전하를 내가 지켜줄 거라는 말. 뭔가 본인한테 하긴 쑥스러워.’
괜스레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아멜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뭐, 거창한 건 아니에요. 그냥 카힐로 경이 내게 진심을 보여줘서, 나도 진심으로 답한 거예요.”
이클리트는 뭔가 꼭꼭 숨기는 아멜리아의 말이 더더욱 수상했다.
“북부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좀 더 머물다 가도 되는데 너무 급하게 돌아갔네요.”
“카힐로를 대신해서 북부에서 누군가 올 겁니다.”
“누구요?”
“보시면 알 겁니다.”
‘누구지? 엄청 궁금하네.’
아침을 마무리하면서 아멜리아는 어쩐지 슬슬 긴장됐다.
“오늘 마미가 엄청나게 괴롭히겠네요. 어제 아주 열의에 불타던데.”
그녀의 말에 이클리트는 몰래 한숨을 삼켰다.
“노력, 해야죠.”
“춤은 잘 추시나요?”
아멜리아의 물음에 이클리트의 눈빛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런 몸부림을 왜 해야 하는 건지…….”
“훗! 그건 저도 그래요. 품위 있는 레이디가 되기 위해선 기본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긴 한데, 영 박치라서. 그래도 검술의 합은 잘 외웠는데 말이에요.”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음악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런 걸 못해도 부인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불쑥 파고드는 그의 진지한 말에 아멜리아는 낯빛이 빨개져서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우리 오늘 열심히 해봐요.”
“노력, 해보겠습니다.”
이클리트의 표정이 급격히 우울해졌고, 아멜리아는 그 모습이 귀여워 또다시 몰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분과 함께 있으면 웃는 일이 많아지고, 즐거운 일이 늘어났다. 이 또한 역시.
‘익숙해지면 곤란한데…….’
*** 시간이 얼마 없는 이상, 실전이 중요하다며 연회 홀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홀에는 피아노 연주자와 춤을 가르쳐줄 선생님, 그리고 마미가 함께 있었다. 아멜리아는 최대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기에, 레이스가 화려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이클리트 역시 제대로 의복을 갖춰 입고서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선생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자! 가주님. 대공 전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요. 춤은 귀족들에게 아주 중요한 인사이고, 예법이지만 결국엔 음악과 함께 하는 예술입니다. 즐기는 마음을 가지세요.”
즐기라고 하지만 전혀 즐길 수 없다. 귀족에게 춤은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니까! 춤은 귀족들에게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대화의 수단이었다. 춤을 추면서 귀족들은 인사와 함께 중요하고 은밀한 얘기를 하기도 했으니까. 일부러 친밀감을 표하기도 했고. 특히, 이번 대회의에서 다섯 공작가의 가주들과 춤을 출 수도 있으니.
‘절대 실수하지 말자. 발이라도 밟으면 그 무슨 망신이야!’
내가 즐거워야, 즐길 수 있지. 이건 긴장의 연속이었다. 쉼 없이 밀려드는 음악이 마치 탄환처럼 느껴졌으니까. 마침내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마미와 선생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서 이클리트와 아멜리아가 서로 마주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클리트가 손을 내밀자, 아멜리아가 그 손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고서 당겼다.
‘하!’
가슴과 가슴이 거의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훅 밀려든 그의 체향에 아멜리아는 움찔했다.
‘생각보다 더 가깝네…….’
이게 이렇게 의식될 줄 몰랐는데. 아멜리아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녀를 의식하긴커녕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기분이 허전했다.
‘그래. 춤이잖아. 그냥 인사일 뿐이야.’
“시작하겠습니다.”
이클리트가 짧게 속삭이며 그녀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스텝을 밟기 시작하니, 서로의 몸이 더 가깝게 밀착되었다.
“마주 보세요! 그저 움직이는 동작이 아닌 서로를 향한 인사이자 대화입니다!”
“부인, 저를 보세요.”
그의 나직한 속삭임을 따라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그를 마주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마주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그래. 분명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집요하게 그녀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시선에 붙잡힌 채 눈을 뗄 수 없었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가락 형태. 숨을 내쉴 때마다 나직이 벌어지는 그의 입술. 자신을 빤히 보면서도 일순 깊어지는 눈동자. 마치 음미하듯 파고드는 온기까지. 분명 이 상황이 낯설어야 하는데, 묘하게 낯설지가 않다.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그때, 피아노 소리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예쁘다······ 너무 예뻐······.’
‘이게 무슨 기억이지? 분명 내 목소리인데. 잠깐…….’
‘대공 전하는 눈이 왜 이렇게 예뻐요?’
잠깐, 잠깐! 갑자기 파고든 기억에 아멜리아가 너무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이클리트의 발을 꾹 밟아버렸다.
“미, 미안해요!”
그녀가 당황하며 멈추려고 했지만, 이클리트는 내색하지 않고 밟힌 그대로 움직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계속 움직이세요.”
“하, 하지만…….”
이클리트는 허리에 닿은 손끝에 힘을 주고서 그대로 그녀를 들어 올려 원을 그렸다. 아멜리아는 그의 어깨를 꽉 붙잡고서 함께 우아하게 움직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는 근사하게 그녀를 리드하고 있었다.
“뭐예요? 춤 잘 못 추신다고 하셨으면서.”
처음엔 어색해 보이던 그의 움직임이 무척 능숙해졌다.
“그냥 외웠습니다.”
“외웠다고요? 설마…….”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 곡을 끝낸 선생과 마미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아까 계속 다른 쪽을 보고 계셨던 게…….”
“어느 정도는 익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는 선생의 춤 동작을 눈으로 보고 그대로 외워버린 것이다.
“대공 전하. 사람 아니시죠?”
이클리트는 짧은 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아니긴 하죠.”
“잘난 척도 할 줄 아시고.”
“그러니까 실수하는 거 겁내지 말고 그냥 움직이세요. 제가 다 맞출 테니까.”
그는 아멜리아가 경직된 게 실수를 걱정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내가 착각한 거야. 내 기억일 리가 없어. 내가 그런 부끄러운 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춤을 추는 내내 신경 쓰였고, 집중이 흐트러지니 스텝은 꼬였다. 그럴 때마다 이클리트는 티 나지 않게 그녀를 안아 올리거나, 아예 밟힌 그대로 춤을 이어가 버렸다. 결국 아멜리아는 울상을 지었다.
“대공 전하께서 자꾸 제 실수를 받아주시면 제 실력이 안 늘잖아요! 나중에 무도회에선 다른 분과도 쳐야 하는데…….”
덤덤하던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움찔하더니, 이내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바짝 당겼다.
“계속 나랑 추면 되죠.”
“네?”
“계속, 나랑 쳐줘요.”
이클리트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멜리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춤은 즐기는 거라고 하더니.
‘왠지, 엄청 즐거워.’
멀리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미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춤을 저렇게 배워도 되는 건가요?”
마미의 말에 선생은 쿡쿡 웃었다.
“티 나지 않으면 뭐. 근데 대공 전하하고만 추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요!”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골랐네요. 신혼부부끼리 맞추게 두는 게 아닌데. 두 분 사이에 너무 사랑이 넘치셔서.”
마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지켜봤다.
‘저게 진짜 계약 관계라고? 연기라고? 진짜?’
*** 몇 번이고 춤을 추고서야 마미의 시선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알코프에 마련된 카나페에 몸을 기댔다. 얼마나 쉼 없이 움직였는지, 발이 퉁퉁 부은 것 같았다.
‘대공 전하는 얼마나 발등이 아프실까. 내가 진짜 엄청 밟은 것 같은데…….’
아멜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는 이클리트를 미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점점 생각이 다른 쪽으로 잠겼다. 일부러 아닌 척,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춤추면서 떠올랐던 그 기억은 뭐지? 설마 그날 내가 술 마시고 진짜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한 거야?’
그렇다면 이걸 기억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때, 마미가 은쟁반을 가져왔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하지만 대공 전하. 자꾸 가주님을 봐주시면 곤란해요! 이러면 따로 연습하는 수가 있어요!”
마미의 호통에 이클리트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마미도 이클리트를 많이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성을 낼 정도로 편해진 듯했다.
“고생하셨으니까, 간식 좀 드세요. 오늘 과일이 좋은 게 들어와서 머핀으로 만들었대요. 요즘 과수원이 엉망이라고 들었는데, 좀 나아졌나 봐요.”
코끝을 맴도는 달콤한 향기에 아멜리아가 환하게 웃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과수원이 왜 엉망이야?”
“그게 갑자기 산짐승이 과수원을 망치고 있대요. 저도 지난번에 시장 갔을 때 들었어요. 뭐, 아무래도 지금은 잡은 모양이에요.”
이클리트는 마미의 말에 살짝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미가 떠나고, 아멜리아는 곧장 머핀을 집었다.
‘일단 더 떠올리고 싶어도 떠오르는 게 없으니까. 부끄러운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애써 자신을 토닥이며 머핀을 살짝 베어 물었다. 과일이 들어갔다더니, 한입 먹음과 동시에 향이 너무 좋았다.
“와. 향 너무 좋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도 머핀을 건넸다.
“향이 너무 좋아요. 달콤하면서도 상큼한데…….”
“무슨 과일이 들어 있습니까?”
“글쎄요. 복숭아인가? 드셔보세요.”
이클리트는 그녀가 건넨 머핀을 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숙여 베어 물었다. 직접 가져가서 먹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의 입술이 그녀의 손끝에 아주 살짝 닿자, 아멜리아가 움찔하며 그대로 이클리트를 밀쳐버렸다.
“아, 아니 그게!”
하지만 그 탓에 아멜리아가 카나페에서 떨어지려고 하자, 이클리트가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때문에 아멜리아가 다시 이클리트를 덮치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아멜리아는 너무 놀라 눈만 동그랗게 떴고, 이클리트는 이젠 익숙한 듯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더 꽉 잡아주었다.
“정말로 내가 익숙해져야겠네요, 이런 거.”
“가, 갑자기 대공 전하가 먼저 이상하게 그러셨잖아요! 전 그렇게 먹으라고 준 게 아닌데! 그리고 언제 제가 이런 거 자주 했다고. 전부 다 실수였죠!”
“그렇습니다. 다 실수였죠.”
아멜리아가 얼른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계속, 나만 먼저 했어요.’
순간 날카롭게 파고드는 기억에 아멜리아는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대공 전하도 제대로 해 봐요. 나한테 먼저 입 맞춰 봐.’
그렇게 떠오르지 않던 기억이. 마치 실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듯 떠올랐다. 그때도 이 자세 그대로!
‘내가 이분에게, 키스해 달라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