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선을 넘을 수 없기에2021.04.12.
에드조프라는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다. 더는 그녀가 그 이름에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길 바라니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자신은 그녀에게 진짜를 줄 수 없으니까. 형태뿐인, 가짜니까. 애초에 자신의 존재는 그녀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이제 곧 티어가 올 겁니다.”
이클리트의 목소리가 다소 딱딱하게 울렸다. 아멜리아는 어쩐지 굳어 있는 이클리트의 표정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놀러 나온 게 아니지.’
“그만 돌아가죠.”
아멜리아는 걸음을 돌리다가 문득, 어떤 곳에 시선이 갔다. 그녀는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그것을 계속 흥미롭게 쳐다봤다.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는 티어들이 마중 나올 장소로 가다가 흥겹게 울리는 음악을 들었다. 길거리 악사들의 공연이었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어느새 사람들도 흥겨운 춤을 추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절로 흥이 나는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어쩜 다들 저렇게도 즐겁게 웃는 건지. 귀족들에게 춤은 저런 즐거움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 저런 게 바로 즐기는 거지.’
그러다가 뭔가를 보면서 생각이 변했다.
‘아니다. 충분히 즐거워질 수 있어.’
아멜리아는 저들이 누구와 춤을 추는지 보게 되었다. 부모와 추는 아이. 연인과 추는 사람. 친구나 가족, 소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누구와 함께 추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하면, 그게 무엇이든. 아멜리아는 슬그머니 이클리트를 훔쳐보며 웃었다.
‘즐거워질 수 있지.’
그때, 잠깐 방심한 사이 춤을 추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에게 아멜리아가 휘말리고 말았다.
“부인!”
이클리트가 곧장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멜리아는 순식간에 광장까지 떠 밀려와서는 동네 아가씨들한테 둘러싸였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아멜리아는 당황했다. 게다가 이 아가씨들은 남장한 아멜리아가 썩 맘에 들었는지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어머나, 귀여운 도련님이네.”
“같이 춤춰요!”
“피부가 어떻게 이렇게 뽀얗고 좋아요?”
“우리 마을 사람은 아닌데? 여행 온 거예요? 우리 마을이 여행지로는 영 아닌데…….”
“오랜만에 외지인을 보니 너무 반갑다! 같이 놀아요!”
“아, 아니 그게 잠깐…….”
아멜리아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순간, 이클리트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럽게 막아섰다.
“미안합니다, 아가씨들. 이분은 제 파트너라서.”
“어머머머!”
이클리트는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아멜리아를 데려왔다. 그녀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감사해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딴 놈들만 쳐다보는 줄 알았더니. 여인도 경쟁자가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서둘러 광장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빠져나가기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급기야 춤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녀는 당황해하는 이클리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여기서 우리가 배운 춤을 써먹을 수 있겠네요.”
“아…….”
“실전이다, 생각하자고요.”
“남자끼리 그 춤을요?”
“그게 문제라면.”
그녀는 곧장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보랏빛 머리카락이 달빛 아래 아름답게 쏟아졌다. 물론 다소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눈엔 예뻐 보이기만 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은 잠깐, 아멜리아가 되어보죠. 진짜 밀회처럼.”
“친구 아니고?”
“친구가 아니고…….”
아멜리아는 조금 수줍은 말을 내뱉었다.
“연인.”
“……괜찮네요.”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은 단숨에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어쩐지 공작가에서 연습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등 뒤를 감쌌다. 분명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손이 닿자마자 맨살에 닿은 듯, 아찔한 열기가 피었다. 아멜리아는 그의 커다란 손을 꼭 잡고서 그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남들은 다들 흥겨운 춤을 췄지만, 두 사람은 애틋한 몸짓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느새 주변은 보이지 않았다. 음악 또한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그저 서로의 호흡. 눈에 보이는 것도 서로가 전부였다.
아멜리아는 다시금 마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좋아한다는 말. 하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분을 싫어하진 않아.’
싫어하지 않아서, 자꾸 묻고 싶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고,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춤을 췄던 아멜리아는 마지막 순간, 발을 헛디디며 그에게 더 바짝 밀착되었다. 코끝이 닿을 듯한 거리. 춤을 춘 덕분에 불규칙한 호흡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뒤엉켰다. 서로의 낯빛 역시 열에 들떠 있었다. 시선을 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여기서 뭘 더 할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결코, 무언가가 시작돼선 안 되니까. 하지만 이 분위기에 취해 아멜리아가 결국 삼키지 못한 말을 속삭였다.
“대공 전하.”
“말해요.”
이클리트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만큼, 온갖 자제력을 다 긁어모아서 버티고 있었다. 이 손끝에 더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고. 점점 더 짙게 파고드는 그녀의 향기를 완전히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을 또 지우며.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아멜리아 역시 바짝 긴장된 목소리로 읊조렸다.
“대공 전하께서 좋아하는 여인이 누구…….”
하지만, 음악이 완전히 멎으면서 춤을 춘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 환호성에 그녀의 말이 묻히면서, 분위기도 완전히 깨졌다.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나, 많이 나아졌죠? 한 번밖에 안 틀리고. 대공 전하 발은 밟지도 않았어요! 이 정도면 무도회에서 망신당하진 않겠어요.”
“절대 망신당하게 안 둡니다.”
“하핫. 엄청 든든하네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와 광장에서 빠져나와서는 그녀의 머리를 정리한 뒤, 다시 모자를 씌워주었다.
“그런데 아까 무슨 말을?”
“별말 아니었어요. 그냥 오늘 이렇게 데려와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많이 바쁘죠? 더는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얼른 돌아가요.”
이클리트는 조금 의아했지만, 더는 묻지 않은 채 함께 걸음을 옮겼다. 아멜리아는 다시 용기 낼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고, 자신이 해서도 안 될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인이 누구냐니. 난 진짜 부인도 아닌데. 이건 선을 넘어. 넘어선 안 될 걸 넘는 거라고.’
심장아. 이건 아니야. 그때도, 지금도 심장이 주체 없이 뛰는 건.
‘내 심장이 아직, 약하기 때문이야.’
*** 이사나는 꾸려진 수색대와 문제의 과수원을 찾았다. 과수원에선 청년들이 활과 검을 들고서 사냥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넥이 이사나를 알아보고서 반기며 다가왔다.
“단장님! 가주님이 보내주셨군요.”
아넥의 말에 청년들도 긴장했던 표정을 풀었다.
“저격대라니. 총이 있으면 사냥이 더 쉬울 겁니다.”
“든든합니다! 새 가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살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뭐든 도울 수 있는걸 돕겠습니다. 그 전에.”
이사나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피해 본 과수원을 좀 둘러보고 싶은데…….”
“아!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과수원 주인이 이사나를 이끌었다. 과수원은 포도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포도나무 주변으로는 딱히 막아놓은 울타리는 보이지 않았다.
“피해 본 곳이 어딥니까?”
“포도는 피해 입은 곳이 별로 없고, 기르던 가축들이 당했습니다.”
주인은 이사나를 과수원 한쪽에 마련된 우리로 데려갔다. 생각보다 제법 규모가 있는 우리가 튼튼한 울타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사나는 울타리를 손으로 짚고서 살폈다.
“여기서 키웠던 게?”
“양입니다. 절반이 사라졌어요. 남은 녀석들은 다른 친구 집에 부탁해 놓은 상태고요.”
이사나는 울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땅을 파서 들어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울타리를 넘기엔 제법 높이가 있었다.
“그 짐승이 어떻게 안으로 들어간 겁니까?”
“자물쇠를 망가뜨렸습니다.”
“자물쇠?”
주인은 품에서 완전히 망가진 자물쇠를 보여주었다.
“놈이 물어뜯은 겁니다.”
“짐승이 자물쇠를 부쉈다?”
보통은 땅을 파거나, 울타리 자체를 부수려고 할 텐데. 이 자물쇠가 문 여는 거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부쉈다는 거다.
“신기하네. 엄청나게 똑똑한 짐승인가 보군.”
“이빨로 부쉈겠지요. 다들 늑대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녀석의 털도 발견됐거든요.”
“짐작?”
“예. 직접 본 사람은 없어서. 하지만 이런 짓을 할 짐승은 늑대뿐입니다.”
주인은 이사나를 슈란이 사라진 곳으로 데려갔다.
“이쪽으로 끌려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피도 있었고요. 아이고. 어쩌다 그렇게 당한 건지. 아무리 무서웠어도 소리라도 질렀으면 구하러 왔을 텐데…….”
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묵념했다. 이사나는 주인의 말에 다시금 의아함이 솟았다.
“소리도 안 질렀단 말입니까?”
“예. 간밤에 누구도 비명을 들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끌려가면서 무서워서 비명조차 못 질렀겠지요. 그러니 더더욱 늑대일 겁니다.”
“흠. 그런가.”
이사나는 바닥을 살폈지만, 이미 혈흔은 많이 지워진 상태였다.
‘근데 그 흔한 발자국도 없는 건가?’
그는 그 반경으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주인은 그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뭘 그리 찾으십니까? 녀석의 털 말고 다른 단서는 저희도 다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보자, 짐승이 몰래 훔쳐 마실 만한 것이…….”
“마셔요?”
그때, 이사나를 우물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게 양들이 마시는 물입니까?”
“아, 예. 그 물을 퍼다가 먹이죠.”
우물 안을 살피던 이사나의 입매가 싸늘한 곡선을 그렸다.
“이게 대공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원인인가?”
이사나는 우물물을 양동이로 퍼 올렸다. 그러자 양동이 안으로 빈 술병이 나뒹굴었다. 주인도 처음 보는 듯 당황한 기색으로 마을 더듬었다.
“아, 아니 왜 술병이 우물에서?”
이사나는 술병을 살폈지만, 허가받은 상표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공 전하께서 말씀하신 흥분을 일으키는 밀주인가.’
누군가, 이 우물에 일부러 이 밀주를 풀었다. 산짐승은 자연적으로 여길 습격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유인하여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하늘을 응시했다. 곧 날이 저물고, 보름달이 뜬다.
“이 술병의 주인을 찾아야겠군. 보통 야시장에서 밀거래가 일어나면 어디서 일어날까요?”
“예?”
주인은 밀거래라는 말에 흠칫한 시선으로 말을 돌렸다.
“미, 밀거래라니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하지만 이사나는 저격용 미소를 날리며 차갑게 읊조렸다.
“순순히 말씀하시죠. 당신이 도박 빚이 제법 있다는 걸 이미 아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처음 일꾼이 행방불명됐다고 했을 때. 혹시 일꾼을 팔았나? 아니면 무슨 원한 관계가 있는 건가? 우린 그런 것부터 조사합니다. 원래 짐승보단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라서. 말 못 하는 짐승한테 떠넘겼을 수도 있고.”
주인은 이사나의 말에 사색이 되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도박 빚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녀석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진짜 짐승한테 당한 거라고요!”
“자, 자. 알겠으니까. 얼른. 보통 도박하는 곳에서 온갖 더러운 소문이 돌기 마련이니까. 제대로 정보를 말해주시죠?”
이 사건은 단순히 그 산짐승을 사냥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산짐승이 배고파서 가축들이나 잡아먹자고 벌린 일이 아닌 것 같으니까.
‘목적 또한 가축 따위가 아니지.’
그는 행방불명된 일꾼을 떠올렸다.
“비슷하나, 다른 걸 노리는 건가?”
***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티어가 마중 나올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하늘로 대충 시간을 짐작하며 이클리트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셨으니까, 이만 가셔도 돼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같이 있을 겁니다.”
이클리트는 어림없다는 듯 말했지만, 아멜리아도 고집을 세웠다.
“지금 카마리 경은 움직이고 있잖아요. 혼자 움직이면 분명 힘들 거고, 위험할 거예요. 어서요! 전 대공 전하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야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 같이 나오죠.”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살살 달랬다.
“잠깐이지만 즐거웠어요. 처음이거든요. 이렇게 놀아본 거. 그러니까 오늘만으론 부족해요.”
“부인.”
“다음에도 같이 나와요. 아니다. 다음엔 축제 때 제대로 나와서 놀아봐요.”
“놀자고요?”
“대공 전하도 제대로 놀아본 적 없죠? 그러니까. 우린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니까요.”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손을 잡고서 손가락을 걸었다.
“이렇게 약속! 알겠죠?”
이클리트는 그녀와 얽혀 있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벅찬 숨을 삼켰다.
“약속이라…….”
정말로 기분 좋게 번지는 말이다. 또다시 함께하자는 말이니까. 그래, 이분과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나다. 과거의 증오와 상처뿐인 시간에 얽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분은 자신의 불안감을 항상 너무 쉽게 날린다. 그렇게 언제나, 행복한 기다림만을 주니까. 이클리트는 그녀의 손을 아주 소중히 붙잡았다.
“제대로 가르쳐주십시오. 기다릴 테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오늘은 먼저 가보…….”
그때, 비틀거리는 남자와 아멜리아가 부딪히고 말았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클리트가 곧장 그녀를 안아주었다.
“괜찮습니까?”
하지만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는 동시에 멈칫했다. 그리고 그녀와 부딪히고 지나간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불안하게 사방을 살피는 시선. 그러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쓱 사라졌다. 아멜리아는 코끝에 남은 냄새를 되뇌었다.
‘알코올 찌든 내…….’
고개를 든 아멜리아는 이클리트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찾았어. 그 밀거래 장소.’
“어서 가보세요. 아닐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크잖아요.”
“…….”
“오늘 이 많은 사람 틈에 저렇게 취한 상태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저 사람뿐이에요. 게다가 외지인도 우리 외에 처음인 것 같고.”
야시장이라고 해도 규모 있는 야시장이 아니기에 대부분 마을 주민이었다. 다들 시선만 마주쳐도 아는 척 인사를 했고, 아까 광장에서 춤출 때도 단번에 자신이 외지인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니까. 그러니 아까 그 사람도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다.
“그래도 아직 티어가 오지 않았는데…….”
“티어는 금방 와요. 방해되고 싶지 않다고 했죠? 공작가에서 봐요. 어서요.”
망설이는 이클리트를 아멜리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등 떠밀었다. 고집 피우다간, 그녀에게 미움받을 것 같아서. 이클리트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공작가에서 뵙겠습니다.”
“다치지 마세요. 진짜 명령이에요.”
아멜리아의 말에 이클리트는 웃었다.
“안 다칩니다. 감히 명령을 어길 수는 없으니.”
이클리트는 마지막까지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을 끝까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제발.”
간절히 기도하던 아멜리아의 시선이 뭔가에 붙들렸다. 그녀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묘한 눈빛을 띠었다. 잠시 후, 티어들이 아멜리아를 찾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여기가 아닌가?”
“아니야. 여기서 기다리기로 하셨어.”
“남장하셨다고 하긴 했는데. 가주님?”
티어들은 흩어져서 아멜리아를 찾았지만 끝내,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