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사라지다 (30/199)

30화. 사라지다2021.04.16.

이클리트는 그 남자의 뒤를 쫓았다. 남자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점점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토록 환했던 달빛도 이 비좁은 틈을 비집지 못한 채, 눅진한 어둠이 기분 나쁘게 공기 중을 맴돌았다. 남자는 뭔가 이상한 기분에 뒤돌아보려고 했지만, 이클리트가 곧장 강한 바람을 일으켜 뒤돌지 못하게 만들었다.

16553706632846.jpg“어휴, 무슨 바람이…….”

이클리트는 은밀하게 남자를 끝까지 쫓았고, 그는 평범해 보이는 여관의 뒷문으로 사라졌다. 이클리트는 무심한 시선으로 여관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한 불빛만이 새어 나올 뿐, 여관치곤 지나치게 적막했다. 그때, 인기척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카마리가 서 있었다.

16553706632853.jpg“여기가 확실한가 보군.”

카마리는 이클리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1655370663286.jpg“정확히 찾아오셨군요. 아직 안쪽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16553706632853.jpg“훔쳐볼 만한 빈틈도 없어 보이고.”

이클리트가 카마리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준비해 둔 검을 건네주었다.

16553706632853.jpg“들어가서 파악해야 하나.”

1655370663286.jpg“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6553706632853.jpg“절대 한 놈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그것도 피오레령에서 소란 피워선 안 된다.”

1655370663286.jpg“물론입니다.”

카마리와 이클리트가 여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또 다른 인기척에 이클리트가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챙-! 둔탁한 음과 함께 검을 막아선 건 장총이었다.

16553706632892.jpg“어라라?”

게다가 깃털처럼 가벼운 목소리. 이클리트는 살짝 눈을 크게 뜨면서 제 앞을 막아선 이를 노려보았다.

16553706632853.jpg“넌.”

16553706632892.jpg“제가 누군지 아셨으면 검 좀 내려주십시오, 대공 전하. 아니면 이대로 실수인 척 어찌해보시려고요?”

이클리트의 검을 막아선 이는 바로 이사나였다.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검을 내렸다. 이사나는 그제야 이클리트와 함께 있는 카마리를 보며 웃었다.

16553706632892.jpg“대공 전하의 손님이 맞았군요. 서로 죽일 일 없어서 다행이네요.”

카마리는 이사나의 다정한 미소에 움찔했으나, 곧장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1655370663286.jpg“다시 보자고 하더니. 그새를 못 참고 내 뒤를 밟고 온 겁니까? 날 만나려고?”

16553706632892.jpg“응?”

이사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클리트는 한숨을 삼키며 카마리 앞을 막아섰다.

16553706632853.jpg“쓸데없는 소리 말고. 여긴 왜 온 거지?”

16553706632892.jpg“대공 전하께서 여기 계시는 이유와 같을 것 같은데요.”

이사나는 조금 서늘한 미소를 띠며 가져온 정보를 말했다.

16553706632892.jpg“알려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과수원을 뒤지다가 술병을 발견했습니다.”

16553706632853.jpg“…….”

16553706632892.jpg“그것도 우물에 누군가 일부러 푼 것 같습니다. 그 우물이 양들만 이용하는 우물임을 알고 행동한 것 같고요. 양을 습격한 산짐승이 그 우물물을 마신 것 같은데. 아직 어떤 짐승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 말로는 늑대 같답니다.”

이클리트는 그 말에 멈칫했다.

16553706632853.jpg“일부러 짐승을 자극한 거다?”

16553706632892.jpg“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마리는 이사나의 말에 의아함을 보였다.

1655370663286.jpg“그럼 양도 난폭해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16553706632892.jpg“그래서 대공 전하께 묻고 싶습니다. 북부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짐승들, 죄다 육식계입니까?”

이사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북부에서 사냥하면서 남긴 술을 짐승들이 마셨다면. 그래서 흥분이 일어난 거라면, 육식, 초식 가릴 것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보고 받은 건 죄다 육식계였다. 그렇다면 육식계만 흥분을 일으키는 건가?

16553706632853.jpg‘사람에겐 그저 평범한 독주다. 짐승만 그것도 육식계만 자극하는 독주를 만들 이유가 뭐지?’

이사나는 이클리트의 표정을 보고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카마리 역시 이클리트의 속내를 읽고서 더더욱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1655370663286.jpg“누군가 일부러 저 독주를 풀었다면, 그렇게 육식계를 자극하는 이유가 뭡니까? 양을 훔치려고? 과수원을 망치려고?”

16553706632892.jpg“목적이 가축이 아닐 수도 있죠. 아니. 사실 아니라고 봅니다. 양 몇 마리 훔치겠다고 이렇게까지 귀찮고 복잡한 짓을? 전 행방불명 된 슈란이라는 자를 주목하고 있는데. 북부에선 이번 일 때문에 사람이 실종된 사례가 없는 겁니까?”

카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0663286.jpg“실종된 사례는 없습니다. 그런데 설마 인신매매를 의심하는 겁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지만, 이사나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16553706632892.jpg“가능성은 다 열어둬야죠. 단순 사건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이클리트는 이사나의 말에 살짝 걸리는 게 있었다. 인신매매라고 쳐도 굳이 짐승에게만 통하는 밀주를 쓸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사람에게 직접 반응하는 것이면 몰라도.

16553706632853.jpg“밀수꾼을 찾아서 의문을 푸는 게 빠르겠군.”

이클리트는 다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카마리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사나는 장총을 세우고서 입을 열었다.

16553706632892.jpg“저는 저격수라서 뒤에서 엄호하겠습니다. 혹시 몰라 주변으로 저격대를 배치한 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대공 전하께서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16553706632853.jpg“내가, 위험해진다고?”

이클리트가 불쾌한 듯 읊조리자, 이사나는 끝까지 예의 바르게 말했다.

16553706632892.jpg“형식적이지요. 대공 전하를 지키는 게 저희 의무니까.”

이사나의 말을 이클리트는 대놓고 무시하며 검은 마스크를 쓰고서 걸음을 옮겼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16553706632892.jpg“기대되네. 항상 전설처럼 전해 듣던 괴물 대공의 실력을 조금은 훔쳐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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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클리트와 카마리가 여관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보기엔 무척이나 평범한 여관.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다들 들어선 두 사람을 힐끔거리고 있었으니까. 손님이 들락날락하는 게 당연해야 할 여관인데. 마치 외부인이 들어오는 게 이상하다는 것처럼, 그 눈초리엔 경계가 가득했다. 그때, 덩치 좋은 여관 주인이 다가왔다.

16553706632846.jpg“이거 죄송합니다. 야시장 기간이라 그런지 방이 없습니다. 원하시면 다른 곳을 추천해줄 수도 있는데…….”

카마리는 주인의 말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1655370663286.jpg“방이 없는 것치고는 손님이 적은 데 말입니다.”

16553706632846.jpg“없으면 없는 거지, 무슨. 얼른 나가주십시오.”

주인이 카마리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자, 카마리가 순식간에 주인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16553706632846.jpg“악! 이 미친년이!”

주인의 비명과 함께 이쪽을 주목하던 손님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카마리는 그 모습에 냉소를 그렸다.

1655370663286.jpg“손님들이 다들 안면이 있는 가 봅니다. 다들 자기 일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뒈지고 싶어서 나서는 걸 보니.”

16553706632846.jpg“너, 너 뭐 하는 년이야!”

1655370663286.jpg“다들 수상한 거 알았고. 저는 이런 거 하는 사람입니다.”

카마리는 잡고 있던 주인의 그대로 때려눕히고서, 순식간에 단검을 빼 들고 주인을 위협했다. 지켜보던 이들은 순간 당황했다. 별거 없어 보이던 조그만 계집애가 덩치 큰 사내를 한 방에 제압해버렸으니 말이다. 카마리는 주인의 급소를 위협하며 차갑게 읊조렸다.

1655370663286.jpg“밀주, 당신들이 거래하고 있죠? 어디 있습니까? 최초 밀수업자가 누굽니까?”

16553706632846.jpg“네, 네년이…….”

주인은 카마리의 위협에 온몸이 떨리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1655370663286.jpg“계속 묻지 않을 겁니다. 시간 끌지 말고 대답하십시오. 입 다물 거면 영원히 다물게 해주고, 딴 놈한테도 물어야 하니까.”

16553706632846.jpg“웃기고 있네!”

주인이 소리치자, 마치 방아쇠라도 당긴 것처럼 손님으로 위장해 있던 밀수꾼들이 칼을 빼 들고 쪽수로 밀어붙였다. 그 모습에 카마리는 한숨을 쉬었다.

1655370663286.jpg“무식하게 몰려오면 단 줄 알지.”

카마리를 향한 검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이클리트가 휘두른 검에 전부 막혀버렸다. 그는 말없이 먼저 달려든 놈들의 발목을 죄다 끊어버렸다.

16553706632846.jpg“악!”

가차 없이 발목을 끊어낸 이클리트는 피 묻은 검을 무심히 챙기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주변으로 붉게 번진 핏자국이 더없이 잔혹하기만 했다. 다짜고짜 달려들었던 이들이 이클리트의 검 앞에 주춤했다. 계집애 뒤에 가려져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냥 서 있어도 무섭게 압도하는 기운에 자꾸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카마리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1655370663286.jpg“우르르 몰려오면 더 빨리 뒈집니다. 움직임이 더 잘 보이니까. 하지만 단체로 이렇게 귀찮게 하면 진짜 다 죽이고 그냥 뒤집니다.”

주인은 생각보다 강한 실력에 놀랐지만, 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에 잔인하게 웃었다.

16553706632846.jpg“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겁도 없이 둘이서 뭘 하겠다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디 끝까지 저항해보던가!”

주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층에서 같은 놈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이클리트는 짧게 한숨을 삼키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16553706632853.jpg‘귀찮게 많군.’

최대한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는데. 카마리는 어차피 대답도 제대로 안 하는 거, 잡고 있던 주인을 그냥 기절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카마리의 뒤로 검이 날아왔다. 그녀가 대처하기도 전에 주인이 그런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16553706632846.jpg“건방 떨지 말고 죽어!”

  탕-!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마탄이 카마리를 보호하며 검을 휘두른 이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주인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읊조렸다.

16553706632846.jpg“저, 저격수?”

카마리는 저를 보호해준 마탄에 양 볼에 홍조가 서렸다. 사방으로 저격수가 있다는 걸 깨달은 밀수꾼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클리트는 그들을 향해 짧게 읊조렸다.

16553706632853.jpg“여기서 또 움직이면 그땐 다 죽을 거다.”

군더더기 없는 한마디. 하지만 그의 말은 협박도 경고로도 들리지 않았다. 진짜 움직이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결국, 겁에 질린 한 놈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16553706632846.jpg“우, 우린 몰라. 우린 그냥 여기서 시간만 끌어주면…….”

16553706632846.jpg“야, 입 닥쳐!”

주인이 기겁하며 외쳤지만, 이클리트는 이를 악물었다.

16553706632853.jpg“시간을 끌어?”

그의 표정에 짙은 짜증이 스몄다. 여기가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는 거다.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이곳으로 유인한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이사나와 저격대가 우르르 들어와서는 알고 보니 조무래기였던 밀수꾼들을 붙들었다. 혹시나, 해서 뒤졌지만, 밀주는커녕 그냥 단순 불법 도박장이었다. 이들은 밀수꾼도 아니었던 거다. 이사나는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16553706632892.jpg“속은 것 같네요.”

이클리트는 피 묻은 검을 무심히 집어넣었다.

16553706632853.jpg“아주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 여기서 시간을 끈 거니까.”

16553706632892.jpg“뭐, 어떻게든 입을 열게 만들면 뭐라도 나오겠죠.”

이사나가 조금은 섬뜩한 목소리로 싱긋 웃었다. 이클리트는 붙잡히는 일당을 보면서 턱 끝에 힘을 주었다.

16553706632853.jpg‘너무 가볍게 생각한 건가. 이렇게 눈속임까지 할 정도라면.’

16553706632853.jpg“확실히 뒷수습하라.”

16553706632892.jpg“예, 대공 전하.”

  카마리가 저격대를 도와 여관에서 수상한 물건들을 죄다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무거운 궤짝을 들어 올리려고 하자, 이사나가 말없이 그 궤짝을 먼저 들어 올렸다. 카마리는 살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고, 이사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16553706632892.jpg“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이사나 블란입니다. 대공 전하의 호위 기사로 오신 것 같은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1655370663286.jpg“제법 적극적이십니다. 그래도 내가 힘들까 봐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16553706632892.jpg“응?”

카마리는 이사나가 가져간 궤짝을 도로 번쩍 가져왔다.

1655370663286.jpg“아까 나 구해준 것도. 그렇게 나만 쳐다보고 있는 거 다 티 나게.”

16553706632892.jpg“으응?”

1655370663286.jpg“내 이름, 카마리입니다. 다음엔 이름 불러도 좋습니다. 그 정도는 허락해드리죠.”

이사나는 또 한 번 이 여자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여자 앞에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던 적은 없었는데. 하긴, 지금껏 자신이 대해온 여자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클리트만 주목하고 있었는데. 엄청 강했다. 오히려 이클리트는 생각 보다 움직이지 않았다. 이 여자가 최대한 그를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16553706632892.jpg‘하긴, 대공 전하께서 크게 움직이는 것도 문제가 되지.’

이사나는 어쩐지 냉랭한 표정의 카마리를 보았다.

16553706632892.jpg‘아무래도 내가 마음대로 나서서 화가 난지도 몰라. 이 여자 성격에 충분히 그럴 수 있어.’

16553706632892.jpg“혹시 제가 도와준 게 신경 쓰인 거라면, 물론 당신이 엄청 강해서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위험에 처한 여자를 그냥 지나치는 건 또 기사도의 도리가 아니고…….”

1655370663286.jpg“기사도 핑계 대지 않아도 다 압니다.”

16553706632892.jpg“그러니까 뭘?”

그때, 여관 안으로 티어들이 들어왔다. 이사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16553706632892.jpg“뭐야. 너희는 경비병이잖아? 여긴 무슨 일이야?”

16553706632846.jpg“역시 여기 계셨군요. 사방에 티어들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 왔는데…….”

16553706632853.jpg“너희가 여기 왜 있는 거지?”

그때, 이클리트가 서늘한 표정으로 나섰다.

16553706632853.jpg“가주님은 어쩌고 여기 있는 건가?”

16553706632892.jpg“가주님?”

이사나가 되묻자, 티어는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16553706632846.jpg“역시 여기도 안 계시는군요.”

티어의 한마디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더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16553706632853.jpg“그게, 무슨 말이지?”

16553706632846.jpg“사라지셨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가주님이, 보이지 않으십니다.”

이사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목소리를 높였다.

16553706632853.jpg“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순간, 이사나는 흠칫한 기운에 입을 다물었다. 이클리트는 말없이 돌아서서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는 무서울 만큼 정적이었다. 차분하게 주위를 훑던 그의 시선이 아멜리아와 부딪혔던 놈에게 멈췄다. 이클리트는 남자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남자는 어쩐지 느낌이 이상한 이클리트의 모습에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16553706632846.jpg“뭐, 뭐야. 왜 나를…….”

이클리트는 곧장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16553706632853.jpg“우리와 부딪힌 게 우연이냐. 아니, 그녀와 부딪힌 게 우연이냐?”

16553706632846.jpg“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

16553706632853.jpg“더 묻지 않겠다. 여기가 아니라면, 진짜 본거지는 어디냐?”

이클리트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울렸지만, 깊은 분노가 금방이라도 그의 이성을 집어삼킬 듯, 눅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남자는 온몸으로 기어드는 소름을 견디지 못하고서 발악했다.

16553706632846.jpg“나는. 나는 진짜 모른다니까!”

남자는 숨겨두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이사나가 곧장 움직이려고 했지만, 카마리가 말렸다.

1655370663286.jpg“괜히 휘말려서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있으십시오.”

16553706632892.jpg“예?”

남자의 단검이 이클리트의 뺨을 스치며, 기어이 피를 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꿈쩍도 하지 않고서 점점 밀려드는 초조함에 숨이 울컥거렸다. 더는 이럴 시간이 없었다. 정말로 의도된 납치라면. 억지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생각이 스치자 결국, 그의 이성에 균열이 일었다.

16553706632853.jpg“그녀를. 데려갔나?”

16553706632846.jpg“뭐?”

그 순간. 쾅-!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공기가 뒤틀렸다. 여관 안에 있던 모두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외쳤다.

16553706894485.jpg“지, 지진이다! 지진이야!”

그때, 마른하늘에 번쩍 낙뢰가 치더니 순식간에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이사나는 겨우 균형을 잡고서 마치 종말이 온 것처럼 변한 분위기에 이를 악물었다.

16553706632892.jpg‘갑자기 무슨 일이야!’

카마리는 완전히 차단된 시야에 떨리는 숨을 삼켰다.

1655370663286.jpg‘죄송합니다, 카힐로 님. 저는 도저히 대공 전하를 말리지 못하겠습니다.’

  남자 앞에 이클리트가 더욱 낮은 어조로 읊조렸다.

16553706632853.jpg“다시 묻겠다.”

코앞까지 다가온 이클리트의 모습에 남자는 하얗게 질려 입술만 뻐끔거렸다. 숨 막힐 듯한 어둠 속에, 이상하게 그의 모습은 보였다. 그런데 뭔가 모습이 기괴했다.

16553706632853.jpg“그녀는. 어디 있나?”

16553706632846.jpg“지, 진짜. 나는 모르…… 윽!”

남자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면서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마치 칼로 그어 내리듯 박히는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붉게 일렁이며 남자의 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괴물. 정말로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16553706894517.jpg

  남자는 어떻게든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마치 온몸에 피가 얼어붙은 듯, 온기가 사라지면서 오직 공포만이 남자를 지배했다.

16553706632853.jpg“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 숨이 죄일 거다. 그래도 넌 죽지 않는다. 그 입에서 진실이 나오기 전까지는.”

16553706632846.jpg“윽, 하으으윽!”

남자는 제 목을 붙잡고서 어떻게든 숨을 쉬고자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공기는커녕 폐부가 이대로 찢겨나갈 듯, 괴롭기만 했다. 이클리트는 기이하게 변한 손톱으로 남자의 어깨를 꿰뚫으며 또다시 차분하게 읊조렸다.

16553706632853.jpg“그러니 당장, 말하라.”

남자를 짓누르는 광기 어린 살기에 결국, 남자의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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