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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어둠을 밝히는 건, 결국 빛 (39/199)

39화. 어둠을 밝히는 건, 결국 빛2021.05.17.

1655370946071.jpg‘원하지 않으면 그건 선의가 아닌 악의가 된다.’

그래. 애초에 선의가 아니니, 악의일 뿐이지. 아멜리아는 뭔가 분했다. 자신이 귀족이기에. 백작가에 갇혀 있던 레이디였기에. 책으로 읽었던 역사는 모두 허구였다. 지금 이 현실이 솔라의 진실이고, 민낯이다.

1655370946071.jpg‘루베르는 황제를 선택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고, 루베르 령에서 벗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벗어날 수 없었던 거구나.’

그것도 모르고, 어쩌면 루베르가 여전히 솔라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솔라는 루베르를 은연중 악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1655370946071.jpg‘그래서 이사나 경은 내가 루베르를 취하는 게 독이 든 성배라고 했구나. 아니, 이래선 성배조차 될 수 없어.’

아멜리아는 베일에 싸인 루베르 공작을 떠올렸다.

1655370946071.jpg“그럼 루베르 가주는. 대체 이런 루베르를 구하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지? 적어도 그는 루베르를 지키기 위해 솔라와 맞서 싸우기라도 했었어야지.”

라니는 아멜리아의 말에 냉소를 그렸다.

16553709460735.jpg“너희도 모르는 공작을 우리라고 알겠어요? 말만 다섯 공작가지, 우린 여기저기 버려진 거야. 허울뿐인 공작이라고.”

아멜리아의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녀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었다. 단지.

1655370946071.jpg“일단 급한 환자부터 살펴야지. 가지고 온 약으로 어떻게든 해보자. 카마리 경도 도와줄 수 있죠? 다른 티어들도.”

티어는 아멜리아의 말에 살짝 머뭇거렸다.

16553709460735.jpg“할 수는 있지만, 괜찮으신 겁니까? 자칫 잘못하면 가주님이 곤란할 수 있습니다.”

1655370946071.jpg“그건 내가 책임져요. 이건 피오레 가주로서 명령입니다. 그대가 누굴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고 있는지 잘 생각해요.”

아멜리아의 서늘한 어조에 티어는 자세를 바로잡고서 고개를 숙였다.

16553709460735.jpg“당연히 가주님이십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아멜리아 역시 가만있을 수는 없었기에, 당황해하는 라니에게 말했다.

1655370946071.jpg“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지? 너도 나한테 가르쳐줄 거 다 가르쳐줬으면, 이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줘.”

16553709460735.jpg“하. 여기서 잔심부름을 하겠다고요? 가주님이? 공작이? 손이 더러워질 텐데. 그 드레스도 더러워질 테고.”

1655370946071.jpg“그게 문제라면.”

그녀는 곧장 머리를 묶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자락도 움직이기 편하게 끌어올렸다.

1655370946071.jpg“이러면 됐지? 자. 시간 없어. 빨리.”

그녀는 갑자기 쏟아진 진실 앞에 혼란스러웠으나, 한 가지는 점점 확고해졌다.

1655370946071.jpg‘이건 잘못됐어. 잘못된 거야.’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소냐를 피해 잠시, 걸음을 뒤로 돌렸다. 아멜리아는 정말로 잔심부름을 하면서 티어와 카마리를 도왔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와중, 한 아이 앞에 시선이 멈춘 아멜리아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고온에 시달리던 아이가 약을 먹고 겨우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아이 역시 루베르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에 버려져 핍박받은 아이. 자신도 어린 시절 버려진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이 아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때, 눈을 뜬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아멜리아의 손을 잡았다가 흠칫하며 놓았다. 그 모습에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16553709460735.jpg“죄, 죄송해요. 저주받을 텐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끔찍한 말에 아멜리아는 이를 악물고서 그 여린 손을 오히려 꽉 잡아주었다.

1655370946071.jpg“무슨 말이야. 저주라니. 저주가 아니야. 넌 그냥 아픈 거야. 곧 다 나을 거란다. 그러니까 걱정 마.”

타인의 온기가 낯설고, 아픔이 익숙한 이들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자꾸만 숨이 울컥거렸다. 투명하리만큼 깨끗한 백발과 너무나도 신비스러운 눈동자. 이토록 예쁘고 또 예쁜데.

1655370946071.jpg‘저주라니. 이건 말도 안 돼.’

  ***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비록 엄청난 도움이 되진 않았을지 몰라도, 아멜리아는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그 결과, 옷도 더러워지고, 손도 아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멜리아는 겨우 숨을 돌리며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좀 더 제대로 저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1655370946071.jpg‘버려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 배신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사실, 증오와 분노는 그 이후다. 가장 힘든 건, 너무 무서운 거다. 그 까만 어둠 속에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그 순간. 믿었던 여동생과 연인의 배신을 목격했던 그 순간. 그 짧았던 순간이 억겁처럼 길고, 무서웠다. 하지만 적어도 더는 어둠이 무섭지 않게 된 이유는 빛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캄캄한 어둠을 거둬준 빛을. 그때, 그녀에게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이클리트가 그녀 앞에 환하게 있었다. 오롯이 그녀를 품고서 반짝이는 그의 푸른 눈동자에 아멜리아는 조금 지쳤던 기분이 풀어졌다. 그가 살짝 호흡을 몰아쉬자, 그녀는 가볍게 속삭였다.

1655370946071.jpg“뛰어오셨어요?”

16553709490627.jpg“아닙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애써 아닌 척 말했다. 뭔가, 그녀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달려와 버린 사실이 살짝 쑥스러웠다.

1655370946071.jpg“뛰어오신 것 같은데?”

그녀가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리키자, 이클리트는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16553709490627.jpg“흠흠. 그냥 바람이 좀 세게 불었습니다.”

아멜리아는 애써 모른 척 넘어가며 웃었다.

1655370946071.jpg“고생하셨어요. 오늘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그녀가 카마리와 환자를 돌보는 사이, 이클리트는 이사나와 마을을 점검하며 필요한 일손을 보태주었다.

16553709490627.jpg“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북부는 이것보다 더 혹독한 일을 할 일이 많아서요.”

이클리트는 슬쩍 시선을 내리깔고서, 아멜리아의 손을 바라보다 살며시 뻗었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움찔하며 손을 피했다. 그 모습에 이클리트는 눈을 크게 떴다.

16553709490627.jpg“부인?”

1655370946071.jpg“아, 제 손 지금 엄청 더러워서, 잡으면 대공 전하 손도 더러워져요.”

그 말에 이클리트는 안도하며 그녀의 손을 제 손안에 쏙 품어주었다.

16553709490627.jpg“괜찮습니다. 내 손이 깨끗하니까, 이렇게 닦아주면 되죠. 그리고 뛰어와서, 손이 좀 차가워요. 부인 손은 따뜻하니까, 좀 잡아주세요.”

1655370946071.jpg“뭐예요? 아까는 안 뛰어오셨다면서요.”

아멜리아가 슬쩍 놀리듯 묻자, 이클리트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읊조렸다.

16553709490627.jpg“서둘러버렸습니다. 좀, 보고 싶어서.”

나직이 번지는 그의 목소리에 맞잡은 손안으로 열기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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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클리트는 조금 더 세게 그녀의 손을 잡고서 속삭였다.

16553709490627.jpg“따뜻하네요.”

1655370946071.jpg“……다행이에요.”

그 어떤 순간에도, 한 번도 피하지 않고 손을 꼭 잡아주는 이분을 만나서. 더는 그 어둠 속이 차갑지 않게 되었다.

1655370946071.jpg“대공 전하를 만나서 저는 참 다행이에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의 눈매가 나직이 떨려왔다. 그는 그녀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조금 다정하게 어루만져주었다. 마치 고단했던 오늘 하루를 위로해주고, 격려하듯이. 아멜리아는 그 손짓에 숨이 조금 흐트러졌다. 손이 차갑다고 하시더니. 너무 뜨거워서,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때, 라니가 뒤에서 아멜리아를 불렀다.

16553709460735.jpg“가주님.”

아멜리아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이클리트를 향해 말했다.

1655370946071.jpg“아무래도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잠시 다녀올게요.”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 말했지만, 오히려 그녀 표정이 걱정으로 굳어져 있었다. 아멜리아는 라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1655370946071.jpg“무슨 일이야? 환자분이 많이 아파?”

하지만 라니는 별말 없었고, 그래서 그녀의 표정은 더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지켜보던 이클리트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멜리아를 따라나서려 하자, 갑자기 소냐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소냐를 본 순간, 이클리트의 표정이 무섭게 얼어붙었다. 그 눈동자에 서린 것은 살기와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소냐는 이클리트에게 제대로 예를 갖춰 인사했다.

16553709460735.jpg“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16553709490627.jpg“그만, 둬라.”

이클리트는 확신하는 소냐의 말에, 끔찍하다는 듯 이미 사라진 아멜리아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귀에 들어갈까 봐. 조금이라도 이 모습을 보게 될까 봐. 하지만 소냐는 경외를 담아 이클리트를 바라보았다.

16553709460735.jpg“저도 더는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보자마자 알 수 있었지요. 이 느낌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16553709490627.jpg“그만.”

16553709460735.jpg“수인이시여.”

16553709490627.jpg“그만!”

이클리트는 비명과도 같은 절규를 토하며 소냐를 노려보았다. 한순간, 그의 안광으로 붉은 기운이 감돌다가 사라졌다. 소냐는 그 눈동자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이클리트는 마음대로 날뛰는 감정을 겨우 붙잡고서 소냐에게 경고했다.

16553709490627.jpg“난 그저 괴물, 반인반수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루베르라면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그 입 다물어.”

하지만 소냐는 선홍빛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16553709460735.jpg“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은 그저 그런 반인반수가 아닙니다. 고귀한 수인이에요. 수왕의 피를 이어받은…….”

이클리트는 고귀하다는 말에 순간 냉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 여인은 뭔가를 착각하는 듯했다.

16553709490627.jpg“평생 괴물이라 불리고,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났다가 비참하게 버려졌다. 그런데 뭐? 고귀해? 수왕? 가지고 있는 황제의 피마저도 뽑아버리고 싶은데.”

그는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치미는 분노를 삼키며, 마지막으로 경고를 씹어 내뱉었다.

16553709490627.jpg“그딴 거 아니니, 내 정체를 함부로 발설하지 마라.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니.”

온몸을 짓누르는 살기에 소냐는 결국 버티지 못한 채, 몸을 휘청였다.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를 그대로 지나쳐 사라졌다. 소냐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올랐다. 분명 몸이 기억하고, 심장이 반응했다.

16553709460735.jpg‘대체 저분은 뭘 잃으신 거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아닌데. 분명 수왕의 기운을 느꼈는데…….’

수인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그들의 위대하고 고귀한 지배자, 수왕. 어쩌면 그 존재는 정령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존재였다.

16553709460735.jpg‘아닌가. 정말 내가 잘못 느낀 것인가. 하긴, 위대한 수왕께서 인간의 후계를 낳았을 리는 없지. 그것도 솔라 황실의 핏줄을.’

소냐는 여전히 떨리고 있는 심장을 가다듬고서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떠올렸다. 오늘 이 밤, 달은 참으로 기묘한 인연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은 묘하게 비슷한 운명으로 맞물려 있었으니까.

16553709460735.jpg“아무도 모르게 잊히길 원하는 짐승과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꽃. 세상이 그들을 버렸으나, 그 세상에서 처음으로 보듬어준 것이 서로의 손길. 하여 두 사람은 같아졌구나.”

이것은 운명인가. 하지만 서로에게 너무 비극적인 운명이 아닌가. 끝까지 함께 하고 싶지만, 절대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으니. 꽃은 끝내 완전히 시들고 말 테니까.

16553709460735.jpg“결국엔 함께 종말을 맞이하려나.”

  *** 한참 걸어가던 라니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걱정하는 아멜리아에게 갑자기 빵을 건네주었다.

1655370946071.jpg“이게 뭐야?”

16553709460735.jpg“아까 다른 사람들은 먹었는데, 가주님은 하나도 안 먹었다면서요. 가주님 몸은 무쇠예요? 아니면 이런 건 못 먹나? 너무 입이 고귀하셔서?”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결국 식사를 거른 아멜리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1655370946071.jpg“내가 먹어도 되는 거야?”

16553709460735.jpg“진짜 입이 고귀해서 못 먹어요?”

1655370946071.jpg“그게 아니라. 내가 저녁을 빼앗는 건 아닌가, 해서…….”

16553709460735.jpg“그것도 기분 나쁘네요. 도와주신 분, 음식도 대접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가난하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식량이긴 하죠. 소중한 걸 드렸으니, 감사하게 받아주세요.”

아멜리아는 라니의 말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1655370946071.jpg“고마워.”

라니는 그런 아멜리아의 미소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16553709460735.jpg“꼬질꼬질해져도 예쁘시네.”

1655370946071.jpg“응?”

16553709460735.jpg“아니에요.”

아멜리아는 신경 안 쓰는 척, 전부를 살피고 보살폈던 라니의 존재가 몹시 커 보였다. 가주인 자신보다 훨씬.

1655370946071.jpg“차기 촌장이라며.”

처음, 자신에게 사과했던 중년 남성이 지금의 촌장이라고 들었다. 차기 촌장은 바로 라니였고.

1655370946071.jpg“근데 넌 루베르가 아니잖아. 이곳 사람들 중에 루베르가 아닌 사람도 제법 있던데. 그런데도 저주받았다며 무서워하질 않네. 오히려 제 일처럼 나서고.”

라니는 몹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16553709460735.jpg“우리도 버려진 건 똑같아요. 소냐 할머니는 우리들의 은인이죠. 버려진 우리를 키워주셨어요. 그분이 저주받았다니, 말도 안 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할머니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갈 곳이 없어서 여기 있는 거고.”

1655370946071.jpg“…….”

16553709460735.jpg“치료사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결국 고통스럽게 죽을 때면. 오히려 솔라의 피가 흐르는 게, 죄스럽고 증오스럽기도 해요.”

아멜리아는 괴로워하는 라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0946071.jpg“하급 귀족들을 상대로 약탈하는 건 머리가 좋네. 소문을 무기로 휘두를 줄 아는 배짱도 있고. 앞으로 촌장으로서 잘하겠어.”

16553709460735.jpg“그렇게 칭찬하지 마시죠.”

1655370946071.jpg“앞으론 든든한 인맥도 만들어 봐. 지키는 힘을 가지려면, 그런 것도 필요해.”

16553709460735.jpg“인맥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1655370946071.jpg“좀 더 힘 있는 날 잡아보라는 거야.”

뜻밖의 말에 라니는 눈을 크게 떴다.

16553709460735.jpg“그게, 무슨?”

하지만 아멜리아는 몹시 진지했다.

1655370946071.jpg“말했잖아, 거물을 잡았다고.”

그녀는 라니가 준 빵을 흔들며 말했다.

1655370946071.jpg“난 너한테 빚졌고, 난 빚지고는 못 살아.”

16553709460735.jpg“그냥 빵 하나 가지고…….”

1655370946071.jpg“소중한 거라며. 난 그 소중한 것을 받은 거고.”

16553709460735.jpg“그래서. 제가 가주님을 잡게 되면, 뭐가 달라지죠?”

1655370946071.jpg“피오레 공작의 명 아래 보호받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사를 데려올게.”

라니는 너무 꿈같은 말에 헛숨을 내쉬었다.

16553709460735.jpg“그건 불가능해요. 아무리 당신이 가주라고 해도.”

1655370946071.jpg“그럼 폐하께 허락을 받아올게. 너도 알다시피 난 지금 솔라리스로 가던 중이었어. 황궁에서 대회의가 있거든.”

자신들에겐 바랄 수도 없는 기적을, 그녀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라니는 순간 정말일까, 기대감에 떨렸다.

16553709460735.jpg‘치료사만 올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헛된 희망이다. 불가능해. 그게 될 리가 없어.

16553709460735.jpg‘우릴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같은 귀족이잖아. 다섯 공작가라고. 누구 말을 또 멍청하게 믿는 거야!’

그녀는 치미는 분노에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울분이 터져 나왔다.

16553709460735.jpg“책임지지 않을 말로 위로하지 마. 역겨워. 말은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해도 그건 결국 말뿐이잖아! 선의로 포장된 동정 따위 집어치워!”

그때, 아멜리아의 손이 라니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을 다독이며 강한 어조로 속삭였다.

1655370946071.jpg“이건 그냥 말이 아니야. 너에게 하는 약속이고, 맹세야.”

16553709460735.jpg“…….”

1655370946071.jpg“피오레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지킬게.”

공기를 울리는 강한 목소리 끝에, 그녀의 미소가 더없이 평온하게 번지고 있었다. 일순 라니에겐, 이 땅 아래 처음 느껴보는 태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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