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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질투 (46/199)

46화. 질투2021.06.11.

망연해졌던 그녀의 눈빛이 무섭도록 얼어붙었다.

16553712081311.jpg“내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가요?”

아멜리아의 말에 에드조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뭔가가 탁, 하고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에드조프는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12081318.jpg“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연히 우린 만나야지.”

오만한 목소리가 그의 입술에 한껏 눌린 채 나왔다.

16553712081318.jpg“나는 그대에게 특별해. 그대의 모든 처음을 내가 가졌어. 아무리 부정해도 그건 부정 못 해. 지금도 봐. 내가 한 말에, 아무리 외면해도 외면할 수 없는 기억이 떠오르잖아.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이.”

다정한 듯, 강압적인 속삭임이 아멜리아를 눌렀다. 에드조프는 자신감 섞인 시선을 내리깔며, 아멜리아의 손을 더 꽉 붙잡았다.

16553712081318.jpg“그때, 그대의 심장이 뛰었던 순간. 내가 그댈 사랑해주었던 그 순간들. 그건 지울 수 없지.”

아멜리아는 황량한 시선으로 그를 보며 짧게 속삭였다.

16553712081311.jpg“당신과 나와의 기억을 감히 추억이라 말하지 말아요. 아무것도 아닌 찌꺼기니까.”

아멜리아는 도리어 그의 손목을 꽉 붙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손끝만큼이나, 그녀의 심장 또한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16553712081311.jpg“이미 버리고 또 버렸는데. 그렇게 버리고도 남은 찌꺼기, 특별할 것도 없어요. 쓰레기잖아. 대공 전하는 쓰레기를 하나하나 기억해요?”

여유로웠던 에드조프의 표정에 조금씩 균열이 일었다. 이상하게 그녀가 하는 말이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꽂히더니, 묘하게 따끔거렸다. 왜. 대체 왜 그녀가 하는 말에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거지? 일순,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너무 차갑다는 걸 느꼈다. 아니, 묘하게 느껴지는 온도 차가 있었다. 시린 체온 끝에 아린 열기가 느껴졌다. 그건 분명 그녀의 온도는 아니었다.

16553712081311.jpg“혹시나 하지만, 감히 날 사랑하지 마요.”

둔탁한 무언가가 에드조프의 머리를 후려쳤다.

16553712081311.jpg“후회도 안 되지만, 감히 그러지도 말아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도 복수라면 복수겠네. 이번엔 당신 심장이 망가질 테니까. 아주 처참하게.”

아멜리아는 그를 똑바로 노려본 채, 진심을 담아 읊조렸다.

16553712081311.jpg“날 사랑하는 당신 모습이 난 아주 소름 끼치게 싫을 테니까. 죽어도 갖지 못할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이내, 그녀는 순간 멍해진 에드조프에게서 반지를 빼앗았다.

16553712081311.jpg“아니. 그것도 하지 말아요. 당신이 조금이라도 날 그렇게 보는 것조차 끔찍하니까.”

매몰차게 쏟아지는 날 것 그대로의 증오가 그를 할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완전히 뿌리치고서, 등을 돌렸다. 에드조프는 순간 뭔가 버려진 느낌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16553712081318.jpg‘사랑? 내가 저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도 안 돼.’

자신이 그딴 걸 할 리가 없다. 그런 쓸모없는 감정에 휘둘릴 리가 없었다. 에드조프는 아멜리아를 잡았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16553712081318.jpg“사랑은 아니야. 내 것을 빼앗길 수 없어, 그 괴물에게.”

그녀를 가져야만 이클리트가 가장 비참하게 무너질 테니까.

16553712081318.jpg“그래. 갖고 싶은 거야, 너를. 원래 내 것이었으니까.”

꾹꾹 누르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자꾸만 흩어졌다. 내뱉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 그 미묘한 간극 사이로, 낯선 열기가 아득하게 메꿔졌다. 분명 그녀의 것은 아닌, 순간 꿈틀거렸던 그의 심장의 열기였다. *** 반지를 꽉 움켜쥐고서 아멜리아는 달렸다. 치미는 호흡 사이로 신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이 내뱉고도 역겨웠다. 보고 싶었다고? 말도 안 된다. 이제 와 사랑을 느끼는 건 더더욱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지. 후회보다 더 끔찍하고 증오스러웠다. 제 심장에 그렇게 커다란 칼을 박은 주제에. 그래, 한때 사랑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취급이었으면서. 그런데 지금, 자신이 달라지니 사랑을 느낀다고?

16553712081311.jpg‘내가 조금은 그 남자에게 쓸모 있게 돼서?’

쉼 없이 달리던 아멜리아가 우뚝 멈춰 섰다. 격하게 휘몰아치는 숨결 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낯설게 가라앉았다.

16553712081311.jpg“당신은 안 돼, 절대.”

그는 자신의 감정만 끝까지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황제가 돼선 안 된다.

16553712081311.jpg‘남의 불행도, 상처도, 아픔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루베르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겠지.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게 힘들어서 아픈 이유를 그는 절대로 모르겠지.

16553712081311.jpg“으윽!”

순간, 아멜리아는 가슴이 후벼 파지는 통증에 호흡이 가빠졌다. 참으려고 해도 새어 나오는 신음 끝에, 그녀의 상체가 꼬꾸라지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느껴진다. 심장의 꽃잎이 또 하나 떨어졌다고. 아멜리아는 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핏발 서린 눈을 꼭 감았다. 소냐의 말처럼.

16553712081311.jpg‘시간이 많지 않아.’

그가 황제가 되어선 안 된다. 반드시,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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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클리트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제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피 냄새가 날까 봐. 피가 튀었을까 봐. 하지만 다행히 괜찮은 것 같았다. 혹여 다친 곳이 없는지도 확인하면서, 이클리트는 살짝 긴장된 숨을 삼켰다. 이제 그녀에게 사과만 하면 되는 것이다.

16553712110303.jpg“다치지 않았고. 이겼으니까, 그건 됐지만.”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역시 두 손을 모아야겠지? 그런데 왜 화가 났을까.

16553712110303.jpg‘내가 알고 있는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

이클리트는 잠시 눈을 감고서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도통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아멜리아를 만나기 위해 정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원으로 가기 전, 그의 눈매가 환해졌다. 아멜리아, 그녀가 있었다. 아까는 그리도 긴장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절로 걸음이 빨라지려는 순간.

16553712110303.jpg“아멜…….”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온기 속에 사라졌다. 아멜리아가 그에게 먼저 달려와서는 그대로 와락 안아버린 것. 이클리트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서, 안겨든 그녀를 다독였다.

16553712110303.jpg“무슨 일 있었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면, 놀라고 걱정되는데.”

아멜리아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속삭였다.

16553712081311.jpg“갑자기 어디 갔었어요?”

이클리트는 그녀를 보채지 않고, 묻는 말에 나직이 답했다.

16553712110303.jpg“마무리를 지을 게 있었습니다.”

16553712081311.jpg“나한테 할 말 있잖아요.”

16553712110303.jpg“이겼습니다. 부인의 명령대로 다치지 않고.”

16553712081311.jpg“잘했어요. 진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멜리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16553712081311.jpg“진짜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저번처럼 머리가 막 아픈 건 아니죠?”

눈빛엔 걱정 가득했지만,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횡설수설, 복잡해 보여서. 이클리트는 제 뺨을 감싼 그녀의 손을 잡고서 내렸다.

16553712110303.jpg“괜찮습니다, 이렇게 멀쩡히.”

아멜리아는 자신이 느끼기에도 어수선한 목소리를 잡고 다독여주는 그의 듣기 좋은 저음에 마음이 가다듬어졌다. 겨우, 그 끔찍한 기분이 씻겨나가는 듯하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겨우 입꼬리를 올렸다.

16553712081311.jpg“다행이에요.”

이클리트는 그녀가 괜찮아진 걸 느끼며, 살며시 기분을 다른 쪽으로 돌려주었다. 그녀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묻고 싶지 않았다. 그저 풀어주고만 싶을 뿐.

16553712110303.jpg“그래서. 이제 말해줘요.”

16553712081311.jpg“네?”

16553712110303.jpg“나한테 왜 화가 났는지.”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말에 아, 하고 그를 빤히 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서려 있는 긴장감에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짐짓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16553712081311.jpg“생일이요. 왜 나한테 말 안 해준 거예요?”

16553712110303.jpg“네?”

이클리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퍽 서운하긴 했다.

16553712081311.jpg“왜 나한테 말 안 해줬냐고요. 중요한 날인데, 남들처럼 이렇게 알게 하고. 아무리 가짜 부인이지만, 아니 가짜 부인이니까 더 대공 전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16553712110303.jpg“…….”

16553712081311.jpg“내가 눈치가 빨라서 의연하게 넘겼지만, 만약 몰랐다면 그것도 의심 거리였을 거예요.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도 모르고.”

처음엔 당황했던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그렇구나, 하면서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16553712110303.jpg“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축하할 일이 아니라서. 나도 챙겨본 적이 없고. 사실, 잊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는 이클리트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태어난 날을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이 없는 거다. 게다가 축하를 받는다니. 그 또한 있을 수 없었던 거다. 물론 그녀도 생일은 아프고, 괴로웠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기에.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났음을 저주했으니까. 아멜리아는 생일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로사 유모가 유일하게 축하해주었다.  

16553712194159.jpg‘오늘은 그저 겨울인 거예요, 아가씨.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봐요. 분명 내일의 봄이 올 테고, 마님의 가장 특별한 사랑을 받은 아가씨는 가장 예쁜 꽃을 여기에 피울 테니까.’

  오늘은 아파도 내일은 괜찮아질 거라고. 로사 유모는 편지에서도 항상 그렇게 행복한 내일을 선물해주었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보며 말했다.

16553712110303.jpg“그런 일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고요.”

16553712081311.jpg“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더 화나니까.”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 성큼 다가갔다.

16553712081311.jpg“이제 내가 신경 써요, 대공 전하의 생일.”

16553712110303.jpg“…….”

16553712081311.jpg“축하할 일이라고요. 특별하고, 소중한 날이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지개를 준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요.”

그녀의 말에 이클리트가 툭 내뱉었다.

16553712110303.jpg“그럼 언제나, 축하해줄 겁니까?”

16553712081311.jpg“당연히…….”

16553712110303.jpg“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그렇게 오래오래?”

순간,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말에 곧장 그러겠다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심장께에 남아 있는 통증이 그녀를 일깨웠으니까. 다음 해에 그녀는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웃으며 거짓말을 입에 물었다.

16553712081311.jpg“당연하죠. 그때도 무지개를 선물할게요.”

내뱉는 말이 따가웠다. 이클리트는 벅찬 기분을 누르며, 그녀의 약속을 깊이 품었다. 찰나가 아닌 오랫동안 그녀의 곁에 있을 그 앞날이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했기에. 그녀가 있어 처음으로 생일을 특별하게 기다릴 테니까.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16553712110303.jpg“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16553712081311.jpg“…….”

16553712110303.jpg“이제 사과가 된 겁니까?”

아멜리아는 자꾸만 말문이 막혔다. 이클리트는 아직 화가 덜 풀렸다고 생각해서, 상체를 숙이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6553712110303.jpg“아직 안 풀린 겁니까? 그럼 어떻게 사과하면 될까요?”

다정하게 밀려드는 그의 시선에 아멜리아는 마음이 말랑해지면서,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16553712081311.jpg“그냥 나, 안아주면 돼요.”

이클리트는 그녀의 말에 곧장 아멜리아를 꼭 안아주었다. 온몸으로 밀려드는 그의 온기와 체향에 복잡한 마음이 잦아들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충분히 지금만을 느끼고 싶었다. 마음이 다독여진 아멜리아는 빠끔히 고개를 들었다.

16553712081311.jpg“대공 전하는 생일 선물 더 받고 싶은 거 없으세요?”

16553712110303.jpg“무지개를 주셨잖아요.”

16553712081311.jpg“그거 말고. 대공 전하가 갖고 싶은 거요.”

이클리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살짝 붉어진 낯빛으로 뜻밖의 말을 속삭였다.

16553712110303.jpg“그럼 쓰다듬어주세요.”

16553712081311.jpg“예?”

아멜리아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쓰다듬어달라고? 물론 좋아하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16553712110303.jpg“어머니가 아이를 쓰다듬어주고, 칭찬해주는 거. 다독여주고, 예뻐해 주는 거. 조금 부러운 줄 알았는데, 사실 많이 부러웠습니다. 부인이 둥이를 쓰다듬어주고 예뻐해 주는 것까지.”

생각지 못한 말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나직이 떨리면서, 천천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클리트는 그녀의 손길에 아주 얌전히 눈을 감았다. 어른이 된 그는 어느새 소년이 되어 있었다. 아니, 애당초 그에게 소년은 없었기에 이조차 처음 갖는 유년기의 감정이었다. 아멜리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16553712081311.jpg“이 온기를 기억해요. 더는 외로워하지 말고. 외로움에 익숙해지지도 말아요. 이것만 기억하고, 채워요. 제발 그래야 해요.”

그는 어머니가 누군지 모를 거다. 자신에겐 로사 유모가 있었지만.

16553712081311.jpg“대공 전하의 곁엔 누가 있었어요? 카힐로 경?”

16553712110303.jpg“아니요.”

눈을 감고 있던 그가 그녀를 가만히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16553712110303.jpg“언제나 나의 내일이었던 아주 소중한 사람.”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대답에 순간 손끝이 멈칫했다. 그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아니.

16553712081311.jpg‘그러고 보니, 이분에게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어.’

남부에 조금 오래 머물렀던 이유도. 황궁에 반가운 이가 있다고도 했고.

16553712081311.jpg‘그 여인인가.’

생각이 그쪽으로 뻗어가자, 아멜리아는 갑자기 심장이 차갑게 꿈틀거렸다.

16553712081311.jpg‘누구지? 이분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엄청 예쁘겠지? 처음엔 황제가 되려는 이유도 그 여인 때문인가, 했었는데.’

처음엔 조금 궁금해도 별로 알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몹시 궁금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16553712110303.jpg“그런데. 결투에서 이겼는데.”

이클리트가 슬쩍 운을 띄웠다.

16553712110303.jpg“승자에게 축하의 키스를 레이디가 주지 않습니까?”

16553712081311.jpg“아, 그렇죠. 당연히.”

이클리트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보통 검을 잡았던 손바닥에 입을 맞춰주었다. 아멜리아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런데 그녀가 손을 당겨 그대로 이클리트의 입술에 입을 대었다가 뗐다. 이클리트는 그대로 굳어졌다. 좀 전까지 상기됐던 눈빛이 다른 의미로 격하게 일렁였다. 아멜리아는 여전히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치미는데, 그 부끄러움보다 겁 없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건.

16553712081311.jpg‘기분 나빠. 이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이성과 관계없는 충동적인 감정이 튀었다.

16553712081311.jpg“이거면 돼요?”

16553712110303.jpg“…….”

16553712081311.jpg“이거면, 충분해요?”

16553712110303.jpg“충분하지 않으면, 더 해도 됩니까?”

그의 낯선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떨리는 눈을 감았다. 이클리트는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서 천천히 고개를 숙이곤,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긴장이 섞인 열기가 간지럽게 그녀에게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에 그녀가 그의 입술을 살짝 마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간 경직되더니, 이내 그녀의 뒷목을 감싸고서 조금 세게 호흡을 삼켰다. 그의 뜨거운 체향이 연거푸 밀려들며, 아멜리아의 몸이 버겁도록 떨렸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애달파지는 느낌에 그녀 또한 그의 목덜미를 한껏 끌어안았다. 깊이. 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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