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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강제로 달을 지우다 (56/199)

56화. 강제로 달을 지우다2021.07.16.

아스란은 오랜만에 무도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의 의복은 황족을 상징하는 금색을 위주로 몹시 화려하게 치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씌워지는 화려함과 달리 그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아스란은 잠시 깊어진 시선으로 옆자리를 응시했다. 응당 황후가 함께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클로에의 병이 깊어진 이후, 아스란은 무도회를 꺼렸다. 그녀의 빈자리를 느끼고 싶지 않아서. 귀족들이 대놓고 수군거리진 않으나,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며 무수히 많은 목소리를 담고 있는 그 시선이 시끄러워서. 이 넓고 넓은 황궁에 홀로 서 있는 그 느낌이 몹시 싫었다. 어울리지 않게 외로움이라는 것이 아리게 파고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황궁을 계속 닫아둘 수는 없었다. 제국의 권위는 황실 무도회에서 오기도 했으니까. 무도회를 통해 온갖 공국에서 들어오는 선물의 규모로 제국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꽤 오랜만에 열리는 무도회인지라, 제법 희귀한 선물이 많이 들어왔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짐승이었다. 관상용인 담비와 더불어 까다롭지만 길들이면 사냥에 적합한 늑대 무리와 보기 드문 흑표범까지. 몹시 빼어난 선물들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장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16553714996667.jpg“폐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스란은 짧게 눈짓했고, 시녀가 곧장 문을 열어주었다. 시종장은 아스란 앞에 무릎을 꿇었다.

16553714996672.jpg“무슨 일이냐?”

16553714996667.jpg“폐하. 폐하께 보내진 짐승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16553714996672.jpg“문제라니?”

16553714996667.jpg“갑자기 전부 우리에서 탈출해서, 황궁 안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두 육식계라 피해도 발생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스란은 시종장의 말에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16553714996672.jpg“고작 짐승 몇 마리 관리 못 해서 전부 탈출하게 만들어? 게다가 황궁 안에서 날뛰게 하고? 대체 근위병들은 뭘 하는 것이냐! 이딴 말도 안 되는 얘기가 황궁 밖으로 새어 나가면, 제국 위상이 어떻게 되겠냔 말이다!”

아스란의 분노에 시종장은 몸을 떨며 겨우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14996667.jpg“그, 그게. 탈출 원인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포획하지 못하는 이유는 갑자기 안개가 너무 짙어져서 시야 확보가 어렵다고 합니다.”

아스란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안개가 짙었다.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그런데 이 안개가 황궁 안까지 잠식했단 말인가?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16553714996672.jpg“당장 수습하라. 겨우 이런 문제로 황실 무도회를 중단할 수는 없다. 행여 프리메 제국의 귀에 들어가면 솔라의 체면이 뭐가 돼!”

16553714996667.jpg“알겠습니다, 폐하.”

시종장이 재빨리 물러나는데, 뒤이어 에리얼이 들어왔다. 표정이 심상치 않은 모습에 아스란은 한숨을 삼키며, 주위에 있던 시녀들을 모두 물러가게 했다. 단둘이 남게 된 아스란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16553714996672.jpg“넌 또 무슨 일이냐. 너도 시종장과 같은 얘기를 할 거라면…….”

16553714996667.jpg“황후 폐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순간, 아스란의 손끝이 하얗게 질리면서 그답지 않게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16553714996672.jpg“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의 서슬 퍼런 분노 앞에 에리얼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53714996667.jpg“아무래도 지금의 소동을 틈타, 황후 폐하께서 빠져나…….”

하지만 아스란은 에리얼의 뒷말은 듣지도 않고서 외쳤다.

16553714996672.jpg“누군가 이 소동을 이용해서 황후를 빼돌린 거다. 선물 받은 짐승이 일제히 우리에서 풀려나 날뛰는 것 자체가 우연치곤 이상해. 게다가 지금 황궁 안을 감싸고 있는 안개. 절대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야.”

에리얼은 아스란의 결론에 무거운 한숨을 삼켰다.

16553714996672.jpg“침입자가 있어. 대체 황궁 경비는 뭘 하는 거야! 당장. 당장 황후를 찾아라.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황후를 찾아!”

아스란은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던지고서 걸음을 내디뎠다. 호흡에서 통증이 일었다. 그런데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도회는 끝났다. 감히, 그녀가 조금이라도 위험해진다면!

16553714996672.jpg‘클로에!’

  ***

16553714996667.jpg“이, 이게 무슨 말이야? 짐승들이 탈출하다니? 그것도 황궁에서?”

16553714996667.jpg“얼른 피해. 벌써 누가 산 채로 끌려가서 잡아 먹혔대!”

16553714996667.jpg“뭐? 자, 잡아 먹혀? 그게 무슨!”

황궁 안으로 짐승들이 날뛰고 있다는 소식이 시녀와 시종들 사이로 발 빠르게 퍼지면서, 그들은 우왕좌왕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키르케가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1655371502573.jpg“다들 정신 차려라!”

키르케의 목소리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1655371502573.jpg“황궁에서 일하는 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유난법석이야!”

16553714996667.jpg“유, 유모님…….”

1655371502573.jpg“다들 침착하게 모여 있어. 괜히 짐승들을 자극하지 마라.”

키르케는 그들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디면서 냉정하면서도 섬뜩하게 말했다.

1655371502573.jpg“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야. 사냥 본능만이 앞서는 짐승이지. 우린 그들 앞에 그저 먹이일 뿐이고. 그러니 근위병들이 해결할 때까지 최대한 숨어 있어.”

그녀는 자욱한 안개 너머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응시했다. 결국, 달 없는 밤이 강제로 시작되었다.

1655371502573.jpg‘사냥이 시작되는구나. 누구는 이 어둠 앞에서 공포에 떨고, 누구는 이 어둠을 핑계 삼아 보고 싶은 이를 만나고.’

키르케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깊이 서렸다. *** 아무리 침착하게 대피하라고 해도, 호들갑스러운 귀족들은 말을 듣지 않은 채, 결국 홀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16553714996667.jpg“당장, 마차. 마차를 준비해!”

16553714996667.jpg“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를 먼저 보호해. 내가 누군 줄 알고!”

카마리는 근위병을 도와 귀족들의 대피를 도우면서, 눈으로 계속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16553715061392.jpg“망할. 가주님을 따라나섰어야 했는데!”

분명 대공 전하는 가주님을 찾고 계실 거다. 그녀는 흩어져 있는 티어에게 말했다.

16553715061392.jpg“일단 우리는 대공 전하와 가주님을 찾아서 호위해야 한다. 그게 최우선이다.”

16553714996667.jpg“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홀 바깥으로 안개가 너무 짙어서 시야 확보가 안 됩니다. 이런 안개는 처음입니다.”

16553715061392.jpg“함부로 총을 쓸 순 없겠군. 그나저나 이사나 경은? 아무도 몰라? 이럴 때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외부 호위 담당 아니었냐고!”

소란스러운 와중, 에드조프 역시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를 떠올리며 먼저 은밀히 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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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 아멜리아가 쏜 마탄이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뭔가를 정확히 저격한 듯,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멜리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것은 검은 늑대였다.

16553715089072.jpg“늑대? 그것도 황궁에?”

그녀는 움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가 그녀를 노리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16553715089072.jpg‘한 마리가 아니구나. 완전히 포위당한 것 같아.’

아멜리아는 다시 한번 방아쇠에 힘을 주고서, 바람의 마탄을 시전했다. 허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날려버리려고 한 것. 하지만 마치 방패처럼 견고한 안개는 잠깐 흩어지기만 할 뿐, 다시 자욱해졌다.

16553715089072.jpg“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 안개가 아니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소름 끼치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르르릉 아멜리아는 긴장한 눈빛으로 보이지 않는 적을 살폈다. 늑대들이 황궁에 있는 이유는 두 번째치고,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공격성을 드러내다니.

16553715089072.jpg‘공격성. 설마.’

그녀는 낯설지 않은 상황에 뭔가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쳤다.

16553715089072.jpg‘짐승들의 광기를 부추긴다는 그 밀주랑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여유롭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16553715089072.jpg‘분명 티어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하지만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아, 장총 사용이 힘들 것이다.

16553715089072.jpg‘늑대들의 움직임을 조금만 알아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아멜리아는 불의 마탄을 이용해 사방으로 불길을 일으켜, 덫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늑대가 움직이면, 이 불길이 흔들릴 테고 그럼 정확히 저격할 수 있을 터. 그녀는 동시에 늑대들의 주의를 끌면서 일단 달렸다.

16553715089072.jpg‘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그런데 안개가 너무 짙으니,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안개가 다소 옅은 길이 보였다.

16553715089072.jpg‘저건 뭐지?’

다른 곳은 다 자욱한데 저쪽만 길이 보이니, 이상하긴 했다. 뭔가 자신을 저쪽으로 유인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순간, 자신을 쫓아오는 늑대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16553715089072.jpg‘선택의 여지가 없네.’

아멜리아는 끊임없이 불의 마탄을 쏘면서, 길이 보이는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갑자기 이곳이 황궁이 아닌,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16553715089072.jpg‘카마리 경한테 황궁 안인데 별일 있겠냐고 했던 게 후회 되네.’

그렇게 한참 달리던 아멜리아는 갑자기 불쑥 뛰쳐나온 존재에 흠칫했다.

16553715119379.jpg“악!”

16553715089072.jpg“뭐야. 네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그녀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메사리나였다. 메사리나 역시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16553715119379.jpg“누, 누군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갑자기 포악해진 담비가…….”

16553715089072.jpg“담비?”

늑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잠깐, 담비라면. 아멜리아는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16553715089072.jpg‘황제 폐하께 보내진 짐승들이 탈출했구나.’

물론 그렇다고 이 기이한 안개가 설명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멜리아는 또 다른 리볼버 한 자루를 메사리나에게 주었다.

16553715089072.jpg“너까지 챙길 여력 없어.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달려. 사방이 늑대야. 쓸 수 있으면 쓰고. 넌 고작해야 한 발일 테니, 신중해야겠지만.”

16553715119379.jpg“뭐? 늑대? 그게 무슨 헛소리야. 황궁 안에 무슨 늑대!”

16553715089072.jpg“설명할 시간 없어.”

아멜리아는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마탄을 쐈다. 그러자 늑대 울음소리가 찢어질 듯 들리면서, 메사리나는 파리해진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15119379.jpg“말도 안 돼…….”

아멜리아는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자락을 한껏 찢어내곤 외쳤다.

16553715089072.jpg“그러니까 달려.”

그녀는 메사리나를 지나쳐서 달렸다. 메사리나 역시 얼떨결에 아멜리아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늑대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덫을 만들기 위해 마탄을 쏘고 또 쐈다. 메사리나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손에 위태롭게 들린 리볼버. 메사리나는 장총밖에 쓰지 못하기에, 리볼버가 손에 있어 봤자 소용없었다. 아멜리아의 말처럼 한 발이 고작일 테니.

16553715119379.jpg‘대체 저 계집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대체 어떻게 저렇게 마탄을 무한으로 쏠 수 있는 거냐고!’

잊고 있었던 이사나의 말이 떠올랐다. 평범한 티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그런 천재라고.

16553715119379.jpg‘그래서 대공 전하께서 다시 원하는 거야? 정말로 욕심내는 거야?’

메사리나는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열등감에 눈동자가 음산하게 뒤엉켰다. 마침내 아멜리아는 궁지에 몰리고, 몰려 막다른 곳까지 오게 됐다. 아니, 막다른 곳은 아니었다. 이런 으리으리한 황궁에서 보기엔, 굉장히 이질적인 낡은 나무문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개가 이끈 곳이 여기인 것. 아멜리아는 버거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사방이 고요했다.

16553715089072.jpg‘늑대가 더는 쫓아오지 않는 것 같아. 몇 번 쏘긴 했어도 다 맞진 않은 것 같은데…….’

아니면 자신이 만든 덫이 티어들에게 먹힌 건가?

16553715119379.jpg“뭐야. 왜 멈춘 거야?”

메사리나의 말에 아멜리아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16553715089072.jpg“더는 갈 곳이 없어, 여기밖에. 일단 더는 늑대가 쫓아오진 않는 것 같은데.”

아멜리아는 불길하긴 했으나, 일단 나무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문은 쉽게 열렸다. 그런데 문 안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16553715089072.jpg“지하실인가.”

퀴퀴한 냄새를 품은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16553715089072.jpg“아무래도 여긴 길이…… 윽!”

그때, 메사리나가 아멜리아의 등을 확 밀어버리고는 그대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순식간에 어둠 속에 갇혀버린 아멜리아는 가까스로 굴러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았다. 문밖에서 메사리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16553715119379.jpg“애초에 넌 죽었어야 했어. 그러니까 여기서 늑대한테 물려 죽어버려!”

16553715089072.jpg“하!”

재빨리 사라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 아멜리아는 뭐라 외칠 의지도 없었다.

16553715089072.jpg“역시. 도울 사람을 도왔어야 했네. 그냥 늑대한테 죽든가, 말든가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내가 너처럼 완전 독하질 못했어.”

아멜리아는 한숨을 삼키며, 문고리를 향해 리볼버를 겨냥했다. 하지만 쉽게 부서질 거라 생각한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16553715089072.jpg“뭐야.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건가?”

마탄이 소용없다는 건, 보통 문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 지하실 역시 평범한 지하실이 아니라는 거고. 아멜리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마치 수렁 같은 계단을 바라보았다. 계속 의아했던 건, 누군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 같다는 것.

16553715089072.jpg“초대했으니, 가봐야지. 어차피 빠져나갈 길도 없고.”

아멜리아는 아주 조심스럽게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발을 내디뎠다. *** 지하실로 내려가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 넓은 공간이 나왔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 하지만 벽에 횃불이 아른거렸다. 아멜리아는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이윽고, 창살로 된 아주 거대한 우리가 눈에 보였다. 뭔가를 여기 가둬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채찍이나 묶어두는 의자가 여러 개 나뒹굴었다.

16553715089072.jpg“황궁에. 그것도 본궁에 이런 무서운 곳이 숨어 있었다니. 죄인을 가둔 곳인가?”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6553715089072.jpg“너무 넓어. 잘못하다간 안에서도 헤매겠는데?”

차라리 다시 돌아갈까. 문 앞에서 소리라도 지르는 게 더 나으려나.

16553715089072.jpg‘내가 없어진 사실을 대공 전하께서는 알아차리셨을 거야.’

아마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아멜리아는 곧장 그를 염려했다. 지난번처럼 자신이 없어졌다고,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16553715089072.jpg“다시 돌아가자.”

그녀가 걸음을 돌린 순간, 마치 그녀를 가로막는 것처럼 순식간에 안개가 깔렸다. 아멜리아는 바짝 긴장한 시선으로 다시금 리볼버를 쥐었다.

16553715089072.jpg‘역시. 그냥 안개가 아니야. 대체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거지?’

그 순간, 바닥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16553715089072.jpg‘또 늑대인가?’

아멜리아는 한껏 숨을 죽인 채, 안개 너머를 노려보았다. 그 속에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늑대가 아니었다. 마치 사람 같았다.

16553715089072.jpg“거기 누가 있는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개가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 그 빈자리로 늑대보다 섬뜩한 눈동자가 보였다.

16553715089072.jpg‘흑표범?’

16553715205396.jpg“크으으으릉.”

늑대보다 더 큰 몸집. 드러난 이빨과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어마어마했다. 아멜리아는 처음으로 극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16553715089072.jpg‘설마 여기에 저걸 가둬두고 있었나?’

그녀는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16553715089072.jpg‘불의 마탄은 쓸 수 없어. 잘못하면 나까지 타 죽을 거야.’

그렇다면 바람? 아니면 물? 하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흑표범이 달려들었다. 흑표범에게 아멜리아는 그저 사냥감에 불과했다. 아멜리아는 일단 바람의 마탄을 쏴서 움직임을 묶고자 했다. 그런데 안개가 흑표범을 감추면서, 마탄이 닿질 않았다.

16553715089072.jpg‘젠장!’

아멜리아는 일단 달렸다. 하지만 짐승의 속도를 그녀가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6553715089072.jpg‘이대로는 잡혀.’

그녀는 계속 마탄을 쏘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서, 흑표범을 정면에서 노려보았다.

16553715089072.jpg‘차라리 가까이 와. 좀 더 가까이!’

그녀는 자신을 미끼로 내던졌다. 그녀의 의도대로 흑표범은 서슬 퍼런 이를 드러내며, 아멜리아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그녀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흑표범을 향해 바람의 마탄을 쐈다. 탕-!

16553715089072.jpg“흐윽!”

하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흑표범이 몸을 틀면서 순식간에 앞발로 아멜리아의 어깨를 꿰뚫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서 어깨를 붙잡았다. 시뻘건 피가 무섭도록 흘러내렸다.

16553715089072.jpg“하아, 하아…….”

끔찍한 통증에 아멜리아는 하얗게 질린 입술을 벌렸다. 흑표범은 금방 정신을 차린 채, 다시금 광기 어린 시선으로 아멜리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일단 자신의 주변으로 흑표범이 다가오지 못하게 불길을 일으켰다.

16553715089072.jpg“조금은, 발을 묶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무덤을 판 건가…….”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자신을 이쪽으로 유인한 자가 바라는 건가?

16553715089072.jpg‘내가 여기서 죽길 바라는 거야?’

하지만 누가?

16553715089072.jpg‘메사리나? 에드조프? 아니면 포르티셰 공작?’

그때, 이 불구덩이를 보고도 흑표범이 다시금 아멜리아에게 덤벼들었다. 그녀는 다시금 리볼버를 들었으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고개 숙이지 않고, 흑표범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위태로운 이 순간, 떠오르는 단 한 사람.

16553715089072.jpg“걱정, 많이 할 텐데…….”

마침내 흑표범이 불길을 뚫고 또 한 번 그녀를 향해 발톱을 드리운 순간. 쿵-! 갑자기 눈앞에서 흑표범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힘이 그녀를 와락 끌어당겼다. 아멜리아는 익숙한 온기에 고개를 들었다. 이클리트가 푸는 법을 잊은 채, 그녀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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