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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타락한 붉은 꽃 (59/199)

59화. 타락한 붉은 꽃2021.07.26.

아멜리아는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아멜리아를 이클리트는 절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게 한 채, 침대에 눕혀 다독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깨지는 유리를 다루듯,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가 고마웠지만, 살짝 부담스러웠다.

16553715940963.jpg“대공 전하, 저 정말 괜찮아요. 잠깐 악몽을 꿔서 그런 거고. 상처도 이젠 안 아파요. 헤스틴 공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어요.”

그때, 이클리트가 상체를 숙이고서, 아멜리아와 진지하게 마주했다.

1655371594097.jpg“고작 그런 게 부인을 무섭게 한 겁니까?”

16553715940963.jpg“악몽이요? 뭐, 제가 아직 마음이 약한 가 봐요.”

1655371594097.jpg“없앨 방법은 없습니까?”

16553715940963.jpg“악몽을요?”

1655371594097.jpg“제가 없애겠습니다.”

아멜리아는 농담치고는 너무 진심인 이클리트의 표정에 가볍게 웃었다.

16553715940963.jpg“악몽을 없애는 건, 좋은 꿈만 꾸면 없어지겠죠.”

1655371594097.jpg“좋은 꿈은 어떻게 꾸는 겁니까? 방법이 있는 겁니까? 제가 뭐든 해보겠습니다.”

16553715940963.jpg“글쎄요. 좋은 거, 예쁜 거, 그런 걸 많이 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대공 전하. 지금 말은 마치 대공 전하는 전혀 꿈을 꾸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1655371594097.jpg“매번 꾸던 꿈이 있었는데, 이젠 그 꿈이 이뤄져서 꾸지 않습니다.”

16553715940963.jpg“꿈이 이뤄졌다고요? 그게 뭔데요?”

이클리트는 말 대신 아멜리아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1655371594097.jpg‘당신 곁에 있는 이 순간만을 꿈꿨기에, 이미 이뤄졌지.’

1655371594097.jpg“……비밀입니다.”

16553715940963.jpg“에이.”

1655371594097.jpg“생각해보니, 좋은 거 보고, 예쁜 거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멜리아는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뜨겁다는 걸 느끼며, 달뜬 숨을 삼켰다.

16553715940963.jpg“대공 전하는 황제가 되는 게 꿈 아니었어요?”

1655371594097.jpg“그것만큼 더 소중하고 중요한 꿈이 있었습니다.”

순간, 이클리트의 목소리가 떨리는 감정을 품고서 새어 나왔다.

1655371594097.jpg“모든 걸음을 함께하고,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자 설레게 기다려서 이뤘죠.”

아멜리아는 너무 낯익게 박히는 말에 눈동자가 마구 떨렸다.   -아가씨의 모든 걸음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멀리 있지만, 항상 만날 수 있길 가슴 설레게 기다리겠습니다.  

16553715940963.jpg‘로사 유모의 편지…….’

처음엔 그저 우연인가, 싶었다. 하지만 드문드문 그의 말에서 로사 유모의 편지가 떠오른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이렇게 자꾸 겹치고, 기시감이 드는 게?

1655371594097.jpg“그래서 악몽에서 무얼 본 겁니까?”

이클리트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애써 생각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질문엔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16553715940963.jpg“대공 전하의 눈이, 안 예뻤어요.”

이클리트는 뜻밖의 말에 멈칫했다.

1655371594097.jpg“그 꿈에 부인이 없었나 봅니다.”

그는 살며시 그녀의 한쪽 뺨을 감싸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겹쳤다.

1655371594097.jpg“말했잖아요. 내 눈이 예쁜 건 부인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16553715940963.jpg“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간지러운 속삭임이었지만, 아멜리아는 도통 기억이 없었다. 이클리트는 그 모습에 아차, 싶었다. 그때 그녀는 취해 있었으니까.

1655371594097.jpg“지금 하고 있잖아요.”

16553715940963.jpg“뭐야, 그게. 그래도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아멜리아는 제 뺨을 감싸고 있는 그의 손을 같이 붙잡았다.

16553715940963.jpg“계속 날 잘 보고, 이렇게 예뻐야 해요.”

너무 한꺼번에 대공 전하에 관한 의구심이 밀려들었다. 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 하지만 알면 다칠 것 같은 그런 것들. 모른 척해야 할까. 지난날 카힐로가 경고했던 것들과 관련 있는 걸까. 아멜리아는 다른 건 몰라도 그에 관한 건 제대로 용기가 서질 못했다. 그 비밀이 밝혀졌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보단 눈앞에 이 사람이 다칠까 봐. 그건,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이클리트는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말을 꺼냈다.

1655371594097.jpg“폐하께서 부인의 공을 치하할 겁니다.”

16553715940963.jpg“제가 한 건 별로 없는데요.”

1655371594097.jpg“부인이 마탄으로 만든 불의 덫이 티어들에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더 빨리 수습됐죠.”

16553715940963.jpg“그건 티어들이 잘한 거죠. 저는 약간의 도움만 준 것뿐이고.”

1655371594097.jpg“황후 폐하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황제가 공을 치하하는 건 몹시 중요합니다. 공식적으로 치하한다는 건, 부인의 명예와 평판도 달라지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부인께선 원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클리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15940963.jpg“그러네요.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이 있네요.”

라니와의 약조를 걸어볼 수 있다. 황제께서 직접 내뱉은 말이니, 쉽사리 거부할 수는 없겠지.

1655371594097.jpg“폐하와 주고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또한 부인의 힘이 될 테니까요. 적당히 내어주고, 원하는 건 전부 받아내야 합니다.”

아멜리아는 제법 날카롭게 정치적인 수완을 말하는 이클리트의 모습이 낯설었다.

16553715940963.jpg‘하긴. 그도 황자야. 그것도 황위를 원하고 있는 황자.’

지금까지는 그저 몸을 낮추고 가만히 계셨던 것뿐.

16553715940963.jpg“그런데 이번 일, 단순 사고일까요?”

아멜리아의 물음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16553715940963.jpg“짐승들이 이렇게 단체로 탈주해서 날뛰었다는 게 이상해요. 혹시 밀주와 관련 없을까, 해서요.”

1655371594097.jpg“밀주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안개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카마리 경과 은밀히 확인해보겠습니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안심시켰으나, 아멜리아는 수상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1655371594097.jpg“그보다 부인, 아직은 더 휴식이 필요합니다.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건 아니라고 헤스틴 공도 말했고요.”

16553715940963.jpg“대공 전하도 편히 쉬세요.”

1655371594097.jpg“부인의 곁에 있는 게 쉬는 겁니다. 또 악몽 꾸지 않도록, 좋은 거. 예쁜 게 필요한데. 제비꽃을 가져올까요?”

16553715940963.jpg“어디서 구할 건데요?”

1655371594097.jpg“어떻게든 구하죠.”

이클리트의 단호한 말에 아멜리아는 정말 그가 구해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제비꽃보다는.

16553715940963.jpg“그냥 대공 전하가 곁에 있어 주시면 돼요. 그리고 나, 갖고 싶은 게 있는데.”

1655371594097.jpg“뭐든.”

아멜리아는 이것만큼은 용기를 냈다.

16553715940963.jpg“대공 전하의 편지.”

1655371594097.jpg“…….”

16553715940963.jpg“뭐든 좋으니까, 저한테 편지를 써주세요.”

아멜리아는 애써 가볍게 부탁하는 어조로 속삭였다.

16553715940963.jpg“지난번에 로사 유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아서 서운하거든요.”

1655371594097.jpg“제 편지는 로사 유모님의 편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16553715940963.jpg“그건 그렇지만, 대공 전하께서 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기다리려고요. 곧 제 생일이기도 하고.”

뭐든 들어주겠다던 이클리트는 살짝 굳어진 눈빛을 숨긴 채 나직이 말했다.

1655371594097.jpg“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 이클리트를 바라보는 아멜리아의 눈빛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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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자리를 벗어난 에드조프의 걸음이 자꾸만 비틀거렸다. 머릿속에서 자신을 거부한 클로에의 모습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토록 잔인하게 자신을 지우고, 이클리트를 끌어안던 그 모습이. 불안하게 흔들리던 에드조프의 안광 위로 다시금 광기가 서렸다.

16553716080143.jpg‘아니야. 내가 그분의 아들이야. 하나뿐인 아들이야. 내가 유일한 황자야. 내가. 내가!’

일순, 턱이 떨릴 정도로 온몸이 차가워졌다. 에드조프는 제 몸을 감싸며 이를 악물었다.

16553716080143.jpg“……싫어.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온기가 필요하다. 제 심장을 뜨겁게 뛰게 했던 그 온기가. 예전엔 너무 당연하게 자신을 안아줬던 그 제비꽃 섞인 온기.

16553716080153.jpg“바스티얀 대공 전하.”

순간, 홀리듯 들리는 목소리에 에드조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환했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선 끝에 서 있는 건 메사리나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에드조프에게 다가왔다.

16553716080153.jpg“저 너무 무서웠어요, 대공 전하. 대공 전하께선 괜찮으셨…….”

에드조프가 메사리나의 턱을 잡고서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이 허함을 채워야 했다. 뭔가를 대신해서라도.

16553716080143.jpg‘아멜리아!’

광폭하게 쏟아지는 에드조프의 키스에 메사리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항상 그가 해주는 키스는 차가웠다. 그녀 혼자 달아오르고, 그녀 혼자 더 많이 사랑하여 그를 원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점점 그녀를 죄어오는 압박감은, 그녀를 원하고 갈구하며 매달리고 있었다. 뭔가 오싹함이 느껴졌지만, 끊임없이 들러붙는 그의 체향에 숨이 가빠지며, 점차 황홀해지기 시작했다.

16553716080153.jpg‘이분이 날 원하고 계셔. 아멜리아가 아닌 나를!’

이윽고, 메사리나는 흥분에 몸을 떨며 두 팔을 뻗어 그대로 에드조프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이대로 그에게 숨을 죄다 빼앗겨도 좋을 만큼. 이분이 원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삼켜져도 상관없었다. 침실로 장소를 옮긴 에드조프는 경직된 표정으로 재빨리 옷을 벗었다. 분명 움직임은 뜨거웠으나, 그의 시선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는 메사리나를 침대에 쓰러뜨리곤, 다정함도 배려도 없이 그녀의 드레스를 거침없이 찢어냈다. 하지만 그 과격한 움직임조차 메사리나는 좋았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자신을 간절히 원한다는 거니까. 평소처럼 선을 그어놓고 만들어진 다정함보다 이 날 것의 감정이 훨씬 그녀를 떨리게 했다. 마침내 에드조프가 메사리나의 위로 올라와선 어둡게 일렁이는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포식자처럼, 자비 없는 시선이 메사리나를 짓눌렀다. 메사리나는 에드조프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16080153.jpg“대공 전하의 탄일을 축하하면서 반지를 주고 싶었어요. 장인이 아주 귀하게 만든 반지에요. 오늘 밤이 지나면, 선물로 드릴게요. 꼭 받아주세요.”

그 작은 반지에 메사리나의 욕망이 담겨 있었다. 그를 온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본심. 조금이나마 구속처럼 자신의 흔적을 그에게 채우고 싶었으니까. 메사리나의 말에 에드조프는 눈빛이 가볍게 일렁이며 다른 이를 떠올렸다. 하필이면 반지던가. 이클리트, 그놈의 손에 끼어 있던 것도 볼품없는 반지였다. 하지만 더없이 탐나는 그 반지. 애초에 이클리트의 것이 아니었다.

16553716080143.jpg‘내 것이어야 했어. 아멜리아가 주는 건 전부 내 것이어야 한다고!’

16553716080143.jpg“내가 원하는 반지는 그 반지야.”

16553716080153.jpg“네?”

이클리트는 메사리나를 붙잡고서, 그녀를 더욱 격하게 끌어안았다. 침대가 크게 들썩이고, 공기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그러진 채, 눈앞에 메사리나가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서 그저 공허함을 채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건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동일 뿐. 하지만 안으면, 안을수록 공허함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제 안으로 밀려드는 온기엔 그의 심장이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16553716080153.jpg“대, 대공 전하!”

메사리나의 부끄러움 없는 신음이 에드조프를 흔들고자 했지만, 점점 그의 눈엔 다른 여인이 보였다.

16553716080143.jpg‘그녀가 안아준 건 나였어. 나였다고. 오직 나였어!’

그저 어린애 장난 같은 포옹에 스몄던 그 안온한 온기. 그땐 너무나도 시시했고, 탐나지도 않았다. 제 곁에 있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너무나도 약해 빠지고, 병든 꽃에 불과했기에. 그저 그렇게 제 곁에 머물다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16553716080143.jpg‘그 죽음조차도 날 위한 거였어.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내 것이었다고!’

하나하나 선명하게 고개를 드는 감정에 에드조프의 눈앞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똑바로 보였다. 이 구역질만 나는 분내를 원하는 게 아니다. 메사리나의 얼굴에서 아멜리아를 떠올렸으나, 역시 아니었다. 대신할 수 없다, 고작 이것으로는.

16553716080143.jpg“……이 온기가 아니야.”

점점 격해지는 그의 움직임에 온몸을 맡기던 메사리나는 일순 싸늘하게 박히는 한마디에 숨이 막혔다.

16553716080143.jpg“이 향기가 아니야.”

메사리나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누군가. 그건, 자신이 아니었다. 그녀를 품에 안고 절정에 이른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16553716080143.jpg“아멜리아…… 넌 내 것이야…….”

16553716080153.jpg“…….”

16553716080143.jpg“날 안아줘, 예전처럼 위로해줘. 아멜리아…….”

핏기가 가신 메사리나는 온몸이 떨렸다. 지금, 누굴 부르는 건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16553716080153.jpg‘날 안고 있으면서. 나를. 나를, 아멜리아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역겨움이 치밀면서, 메사리나는 그대로 에드조프를 밀쳐버렸다. 침대 밖으로 떨어진 에드조프가 사나운 표정으로 외쳤다.

16553716080143.jpg“지금 뭐 하는 거야!”

16553716080153.jpg“대공 전하야말로 지금 누굴 안고 계신 거죠?”

16553716080143.jpg“뭐?”

메사리나는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을 씹어 삼키며 악을 질렀다.

16553716080153.jpg“그 눈으로 누굴 보고, 누굴 안고 있냐고요. 지금 눈앞에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에드조프는 메사리나의 비명에 멈칫했다가 이내 차갑게 웃었다.

16553716080143.jpg“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나?”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 메사리나는 순간 온몸이 밑바닥에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16553716080153.jpg“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난 대체품이 아니에요. 대공 전하의 장난감이 아니라고요!”

에드조프는 기분 망쳤다는 듯,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옷을 입었다.

16553716080143.jpg“성가시군.”

16553716080153.jpg“뭐라고요?”

16553716080143.jpg“애초에 넌 세컨드였잖아. 뭘 바라는 거지?”

그녀의 심장에 대못처럼 박히는 말. 메사리나는 어느 순간 떨리지도 않았다. 그저 온몸이 얼어버린 것 같았다.

16553716080143.jpg“날 만족시키지도 못하니, 세컨드도 될 수 없겠군.”

옷을 다 입은 에드조프가 그대로 침실을 나서려고 하자, 메사리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16553716080153.jpg“아니에요. 대공 전하, 아니죠? 이제 와 아멜리아를 사랑하는 거예요? 원하시는 거예요?”

또 한 번 듣게 되는 말. 아멜리아에 이어 메사리나까지. 지금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보이는 건가? 그렇다면, 그래. 에드조프는 애처롭게 저를 붙들고 있는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16553716080143.jpg“아멜리아는 원래 내 것이었어. 원하는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을 가져오는 거다. 거기에 사랑이 필요하다면, 그래. 사랑해줄 거야. 몹시, 사랑해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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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메사리나에게 잔인한 말을 남기며, 그녀를 치워낸 채 침실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메사리나는 바닥에 무너진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전히 제 몸 구석구석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간절함과 갈급함에 심장이 몹시도 떨렸는데. 그 모든 건, 아멜리아를 향한 건가. 그가 진심으로 욕심내는 건가. 메사리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나신 위로 붉은 머리카락이 마치 피처럼 그녀의 피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얼음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가 마치 타락한 성녀를 보는 듯 섬뜩했다. 그녀는 걸음을 내디뎌선 그에게 채우고자 했던 반지를 꺼냈다. 이내 단정해진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렸다.

16553716080153.jpg“아멜리아가 달라져서. 아주 잠깐 흥미가 생긴 거야. 하지만 대공 전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오히려 더러운 흠이 된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아멜리아는 이미 결혼한 대공비. 그런 대공비를 탐내는 건 추문이다.

16553716080153.jpg‘두 형제 사이를 저울질한 희대의 악녀.’

그가 그토록 아끼는 평판이 아멜리아로 인해 지저분하게 더럽혀진다면. 메사리나는 반지가 손바닥에 박혀 피가 날 정도로 움켜쥐었다. 굳어졌던 그녀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긴 곡선을 그렸다.

16553716080153.jpg“나만큼 대공 전하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직 내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어요. 내가 알려줄게요, 대공 전하. 날 보게 만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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