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끝날 수밖에 없는 말2021.08.09.
“아주 많이, 보고 싶어서…….”
감정이 넘쳐버린다. 갑자기 이렇게 말해버리면,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할 줄 알면서도. 가까스로 붙들었어도 새어 나가버린 진심.
“보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닿고 또 닿아 결국, 그녀를 보게 만든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에겐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이유였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입술 끝에서 여러 번 속삭이듯, 입을 맞추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보고 싶다고.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고. 아멜리아는 애타게 파고드는 그의 모습에, 마치 강아지가 주인에게 사랑받고자 핥아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그의 속삭임을 삼키다가, 간지러운 기분이 점차 애타는 기분으로 변하면서 붉어진 손가락으로 그의 손목을 타고 올랐다. 아멜리아 역시 꾹 눌러 두었던 수줍은 말을 꽃처럼 피웠다.
“나도. 나도 대공 전하가 많이 보고 싶었어요.”
달뜬 열기에 숨이 막혔지만, 서로의 호흡이 입술을 통해 점차 채워지며, 더한 것을 바라게 된다. 그들의 시선이 자꾸만 뜨겁게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그러다 결국, 미처 삼키지 못한 가쁜 호흡이 서로의 입에서 마치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그 떨리는 소리가 귓가에 닿자,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는 움찔하며 잠시 고개를 들었다. 조금 멀어진 간극. 다 채워지지 못한 열망이 서로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지금 눈을 감고 몸을 맡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를 원했다.
‘이분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 터질 듯한 심장 소리가 절대로 내 것이기만 한 건 아닐 텐데…….’
이클리트 역시 감히,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며 긴장감에 저릿해지는 손끝을 붙들었다.
‘이분도 나를.’
‘어쩌면, 같이…….’
아멜리아는 천천히 침대 위로 몸을 기울기 시작했다.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를 따라서 보다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공기가 묵직하게 서로를 감쌌다.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림자가 포개지며, 침대가 조금 더 크게 들썩이려는 순간. 끼익-! 뭔가, 문을 긁는 소리에 아멜리아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 무슨 소리가…….”
이클리트 역시 뭔가를 듣고서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우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발을 절뚝거리면서 둥이가 들어왔다. 아멜리아는 새하얀 털에 묻어 있는 핏자국에 경악하며 달려왔다.
“둥아!”
둥이는 아멜리아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세상에. 무슨 일이야. 왜 이래.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너도 짐승들한테 당한 거야? 어떡해!”
아멜리아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둥이를 어루만졌고, 둥이는 괜찮다는 듯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핥았다. 여기저기 만져 보니, 골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털에 묻어나는 피도 둥이의 것이 아닌 것 같았고. 물론 다리는 조금 삔 것 같았다.
“많이 다치진 않아서 다행이다. 아니,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미안해. 내가 널 바로 챙겼어야 했는데. 슈란 씨한테 너무 미안해질 뻔했어.”
아멜리아는 쌕쌕거리는 둥이를 꼭 안았다. 둥이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클리트의 싸늘한 시선에 움찔하며 아멜리아의 품에 몸을 숨겼다. 이클리트는 어쩐지 묘한 시선으로 그런 둥이의 행동을 가만히 응시했다. 둥이를 어루만지던 아멜리아는 조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고선,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세상에! 아멜리아. 너 이렇게 자제가 안 되는 레이디였니? 대체 대공 전하의 얼굴을 지금 어떻게 보냔 말이야!’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건, 둥이를 핑계 삼아 잠시 자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멜리아는 슬그머니 이클리트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 오늘은 둥이를 돌봐줘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대, 대공 전하까지요?”
이클리트는 갑자기 손을 뻗어서는 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둥이가 크게 움찔하면서, 아멜리아의 품에서 그대로 굳어졌다.
“어딜 다친 건지, 저도 걱정되니까요.”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엷은 미소를 지었다.
“서로 조금 친해져서 다행이네요.”
“예. 친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클리트의 시선이 계속해서 둥이를 향했고, 둥이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멜리아에게 붙어 있었다.
“그럼, 전 마미를 불러올게요. 아무래도 둥이 다리를 치료해줘야 할 것 같아요.”
굳이 그녀가 이 시간에 마미를 직접 부르러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그녀의 속마음을 깨닫고서, 배려해주었다.
“조심히 다녀와요.”
“감사해요.”
아멜리아는 둥이를 안고서, 침실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이클리트의 표정은 그야말로 복잡 미묘하게 뒤엉켰다. 그는 둥이를 쓰다듬던 손을 응시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확실하지 않으니, 지켜봐야 하나.”
그날 밤, 자신을 그녀가 있던 지하실로 이끌었던 것. 정체 모를 새하얀 존재. 안개 때문에 직접 보진 못했지만, 분명 새하얀 뭔가를 봤다. 그리고 공기 중으로 녀석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계속 주시하는 수밖에.’
그때, 고개를 돌린 이클리트의 시선이 침대를 향한 채 흔들렸다. 방금 그 순간. 분위기가 위태로웠으나,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엔 두려움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조금 긴장한 듯 떨었으나, 그럼에도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에 심장이 터질 듯이 흔들렸다. 분명 그 순간 귓속을 가득 채운 심장 소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만은 아니리라.
“아멜리아…….”
그 이름을 부르는 어조에 가득 열기가 차고 넘쳤다. 정말 착각이 아니라면. 그 순간, 정말 그녀와 자신의 마음이 하나로 같았다면.
‘당신을 원해. 당신도 원한다면 기꺼이, 날 온전히 가졌으면 좋겠어.’
지금 이 자리에 서서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이유가 그녀이기에.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고 전부, 전부 그녀에게 줄 수 있었다. 곧, 그녀의 생일이다. 그날. 이클리트는 일생일대의 욕심을 내 볼 생각이었다. *** 마미에게 달려가는 아멜리아의 걸음이 위태로웠다. 사실, 당장 그를 보고 있기 부끄러워서 조금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대로 계속 같이 있었다면 얼굴에 다 들켰을 거야.’
점점 숨기는 게 어려워진다. 온몸이 따끔거릴 만큼, 그를 원한다. 채워지지 않는 허함이 자꾸만 묘한 갈망으로 그녀를 흔들었다. 온전히, 그를 가지고 싶다고. 그런 타들어 갈 듯한 욕심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런 욕심을 보여도 되는 걸까. 과연 자격이 있을까. 달려가던 아멜리아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갑자기, 발걸음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그분도 나와 마음이 같다면. 그분이 맘에 품고 있는 사람은, 그래. 내 착각일 수 있어. 그분은 에드조프처럼 누굴 사랑하면서 내게도 그러지 않으실 테니까. 하지만…….’
제대로 묻지 못하는 이유. 용기가 없어서,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대답이 자신이 바라는 대답이라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걸음엔 끝이 있으니까.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난 그분의 생일을 축하할 수 없어. 내가 내뱉은 마음을 끝까지 지킬 수 없어.’
아멜리아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속도 없이 뛰고 있는 심장을 느꼈다. 그래, 지금 그를 품고서 대책 없이 뛰고 있는 이 심장은,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에.
“……살고 싶다, 조금 더…….”
제 생이 너무 아쉽고, 아까워졌다. 처음으로 산다는 게 너무 좋아서, 연연하게 했다. *** 대회의와 무도회가 끝났기에, 아멜리아가 솔라리스에서 해야 할 공식 업무는 모두 종료되었다. 이제 피오레로 돌아갈 준비만 남은 것. 아멜리아는 이사나와 티어들을 만나고 있었다. 티어들은 모두 경애와 신의를 담고서, 그녀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번에 황제의 치하를 티어들과 함께했기에, 아멜리아를 향한 존경심이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이었다. 아멜리아는 피오레에 도착할 때까지,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티어들을 격려했다.
“생각보다 많이 고단한 일정이 되긴 했지만, 모두 잘해주어서 무척 든든했고, 자랑스러웠어요.”
“아닙니다!”
“가주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맞습니다!”
“저희야말로 포르티셰 그 칼잡이 놈들의 코를 납작…… 아니. 저희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멜리아는 티어들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더 감사해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솔라에 도착하면, 제대로 한턱내도록 할게요.”
아멜리아의 말에 티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들고 있는 총을 하늘 높이 흔들었다.
“역시 가주님! 멋지십니다!”
“피오레의 티어라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가주님을 보필하며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그때, 이번 호위단의 제일 막내 티어가 수줍게 그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가주님이 써주시는 무엇이든,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티어나 기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풍습 중 하나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수호신으로 삼는 것이었다. 수호신으로 삼은 사람이 그 사람을 위해 써준 필체를 소중히 간직하면, 그것이 어떤 위험한 순간에 한번은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믿음이었다. 아멜리아는 그 자리에 앉아 친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 수호신으로 삼아줘서 고마워요, 멘델 경.”
막내 티어는 자신의 이름을 그녀가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기에, 더없이 벅찬 표정으로 아멜리아의 필체를 소중히 품었다. 그렇게 아멜리아는 티어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면서,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서 제대로 친밀해지는 이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다. 처음엔 쑥스럽고 낯설었지만, 심장이 벅차면서 몹시 기분 좋아지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인사한 뒤 아멜리아는 이사나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사나는 아멜리아를 향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인기 폭발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여기저기 사랑받는 기분은 어떠십니까?”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 아멜리아는 밉지 않게 이사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랑받는 건 좋죠. 물론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니까, 무겁긴 하지만.”
“책임 없는 사랑도 있죠.”
이사나는 아멜리아를 보며 특유의 눈웃음을 지었다.
“한없이 주고만 싶고, 한없이 받아주기만 했으면 하는 그런 사랑. 그래서 특별한 누군가의 사랑이 더 좋으신 거 아닙니까?”
“장난은 이제 그만이요.”
아멜리아는 짐짓 태연한 척, 표정을 바로 잡았지만, 목 끝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이사나는 역시나 남들을 얘기할 때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조금 묘했다. 남편이니 당연한 건데. 오직, 이클리트에게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텐데 말이야.’
“축하드리고, 한 걸음 나아가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아멜리아는 이사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마차는 곧 출발하죠?”
“예. 마법 통신구를 이용해서 피오레에 전달해 놓은 상황입니다. 곧, 루베르를 데려올 겁니다.”
마침내 라니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킬 차례다.
“하사받은 영지를 잘 준비해야겠네요.”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영지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축복의 꽃 때문에 가주님을 향한 평판이 제법 올라갔는데, 그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루베르가 잘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나 혼자만의 노력은 아닐 거고. 다 같이 할 테니까, 괜찮아요.”
지금까지 그들은 조금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포기했던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손 내밀어주면.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테고 그 걸음은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그곳을 시작으로 차츰차츰 인식을 바꿔야죠. 루베르도 똑같은 솔라의 제국민이라고.”
“루베르 가주가 해야 할 일은 가주님이 하시네요.”
“나도 그냥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라니와의 약속을 다 지키진 못했네요. 루베르 가주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번엔 루베르 가주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 듯했으니까.
“루베르 가주가 누군지, 찾긴 해야 하는데.”
이사나는 그런 아멜리아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겁쟁이에 아주 형편없는 사람일 겁니다.”
“응?”
“결국은 도망친 거고, 숨은 거니까. 가주님처럼 이렇게 용감하게 나서지 못하고.”
“루베르 가주를 마치 아는 것처럼 싫어하네요.”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입니다.”
“뭐, 사정이 있겠죠. 이유가 무엇이든, 만나보고 판단할 거예요. 내가 손을 잡아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는.”
“…….”
“그래도 내가 제일 강해져야 하니, 피오레에 도착하면 지난번에 해주겠다는 거, 시작하죠.”
“저격술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여전히 저한테는 안 배우실 거죠?”
“이사나 경은 할 일이 많다니까요. 지난번 찾겠다던 그 도망친 신관은 어떻게 됐죠?”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진지해지자, 이사나 역시 표정을 바로 했다.
“계속 찾고 있으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의외네요. 그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더니.”
“중요해졌어요. 그러니 반드시 잡아 와요.”
제법 서늘한 그녀의 명령에 이사나는 멈칫했다.
“이번 대회의에서 신성회가 날 보는 시선이 안 좋았어요. 아마도 그 축복의 꽃 때문이겠죠. 하지만 계속 사이가 나쁠 수는 없으니, 훗날 거래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치부를 내가 손에 쥐고 있어야겠죠.”
그리고 또 다른 이유, 메사리나의 치부다. 메사리나가 곧장 백작가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을 가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닐 테고.
‘어찌 되었든, 날 가둔 것에 대해 복수는 해야지.’
“조만간 좋은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가주님 가르치고 싶어 하는 티어들 많을 것 같은데. 이거 완전 불꽃 튀는 경쟁이 되겠네요. 시합장을 한번 열어야 하나?”
“그냥 조용히 알아봐 줘요. 소란스럽지 않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사나 경은 이번 일을 그냥 우연으로 보고 있어요?”
이사나는 그녀 역시 같은 걸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밀주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하시는군요.”
“솔직히 그래요.”
“대공 전하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발견된 밀주는 없다고 하셨어요.”
“대공 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라…….”
이사나는 이클리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단번에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숨기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여겼다. 사실 이사나도 이번 일에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늑대의 사체에서 티어의 마탄에 의한 사살이 아닌 다른 흔적을 발견한 것. 검에 의한 자상이었다. 하지만 포르티셰 공작가의 기사들은 아니다. 그들은 안개 때문에 정말 꼼짝도 못 했고, 사체에 생긴 상처의 모양이 포르티셰 공작가가 쓰는 검의 모양과 달랐다.
‘늑대끼리 서로 공격한 모양새도 아니었어. 그건 분명 누군가 마체테로 죽인 거야.’
마체테는 솔라에선 잘 쓰지 않는 특이한 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없었다. 있었다면 황궁 경비에 관한 문제인데, 뒤집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일까. 그날 밤, 황궁에 대체 누가 더 있었다는 걸까.
“대공 전하의 의견을 더 듣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오늘같이 안 오셨네요. 전 대공 전하도 오실 줄 알았는데.”
“볼일이 있으시다고 했어요. 만날 사람이 있다고.”
“만날 사람이요?”
이사나가 의아하게 묻자, 아멜리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도 궁금했다.
‘아침부터 만나야 할 사람이 대체 누굴까?’
*** 밀애를 즐기는 연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배덕적인 공간, 부두아르. 그곳에서 루시아가 아찔한 차림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는 몹시 기대하는 시선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미끄러지는 걸음을 옮겼다.
“단둘이 만나자고 해서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모른답니다, 대공 전하.”
이클리트, 그가 그녀의 은밀한 공간에 초대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