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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모든 시작과 끝 (65/199)

65화. 모든 시작과 끝2021.08.16.

에드조프에게로 서신이 날아왔다. 키르케가 보내온 것. 에드조프는 내키지 않았지만, 서로 손을 잡았기에 하는 수 없이 서신을 펼쳤다. -조만간 공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대공 전하께 충성을 맹세할 무기를 직접 보셔야 할 테니까요. 기억하세요, 대공 전하. 이건 전부 대공 전하를 위한 겁니다.- 짧지만, 섬뜩한 내용이 에드조프를 살짝 두렵게 했다. 그 공방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키르케에 의해 무기로 길들여진.

16553718311598.jpg“저주받은 짐승들…….”

  *** 솔라를 떠날 준비를 마친 아멜리아는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책상에 뭔가가 있었다.

16553718311603.jpg“뭐지?”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책상에 제비꽃이 놓여 있었다. 아멜리아는 제비꽃을 보자마자 미간이 굳어졌다.

16553718311603.jpg‘뭐야. 또 에드조프의 짓인가.’

그런데 보낸 이가 적혀 있지 않은 낯선 편지가 있었다. 아멜리아는 살짝 멈칫했으나, 편지를 열었다. 그리고 강렬하게 들어오는 문장에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리며 커졌다. 바로 루베르 공작가의 문장. -나는 피오레 공을 알지만, 피오레 공은 날 절대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괜한 수고하지 말고, 포기하세요. 제가 피오레 공 눈앞에 나타날 일은 없을 겁니다. 워낙 겁쟁이라서. 날 찾는 이유가 루베르라면, 그냥 피오레 공이 가지세요. 그편이 루베르를 위해서도 옳을 겁니다.- 아멜리아는 첫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16553718311603.jpg“날 알지만, 난 못 찾을 거라고? 설마, 황궁에 루베르 가주가 있었다는 건가.”

이 황궁에서 날 알고, 날 보았다는 거야? 아멜리아는 다시금 책상에 놓인 제비꽃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폐하께 치하받았던 그 무도회에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제비꽃을 좋아한다는 건, 에드조프가 벌인 그 말 같지도 않은 일로 대부분 알게 되었으니까. 편지의 내용은 자신을 찾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16553718311603.jpg“난 왜 찾아보라는 뜻으로 읽힐까?”

첫인상이 굉장히 건방지다. 게다가 겁쟁이라……. 진짜 겁쟁이는 자기가 겁쟁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런 간 큰 짓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루베르 가주의 얼굴을 모른다. 그 실체도 파악하지 못했고. 그걸 이용해서 황궁에 누군가로 위장하여 몰래 잠입했다는 건데.

16553718311603.jpg“재미있네. 이러니까 더 찾고 싶어지잖아.”

루베르의 가주. 반드시 찾아야겠다. 라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아니, 정말 그 약속을 간절히 지키고 싶어졌다. 한 방이 아니라 꽤 여러 방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16553718311603.jpg“내게 제비꽃은 참 특별하고 좋은 의미인데. 왜 자꾸 안 좋은 기억으로 물드나 모르겠네.”

  *** 대회의와 사건 사고를 전부 마무리한 아스란은 피로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눕혔다. 클로에는 또다시 황후궁에 갇혔다. 찰나에 돌아온 기억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더니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기에, 아스란은 또다시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었다. 그때, 에리얼의 목소리가 피곤하게 울렸다.

16553718311625.jpg“폐하, 장로들이 독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아스란을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16553718311628.jpg“하여튼 귀찮은 족속들.”

장로회. 겉으로는 다섯 공작가와 반대로 오직 황제의 편에 서서 황실을 위해 일한다지만, 자신들의 고리타분한 규칙에 황제를 묶어두고 이 체계를 유지하는 데에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이 황제를 지지하는 건, 이 황권이 어떻게든 강화되어야 자신들의 세력도 지켜지기 때문이다. 아스란은 피곤한 기색을 누르고, 알현실로 나아갔다. 그러자 장로들이 그를 향해 예를 다하며 외쳤다.

16553718311633.jpg“위대하신 솔라의 황제시여. 찬란한 태양이 폐하와 함께할 것입니다.”

16553718311628.jpg“무슨 일이오? 대회의의 안건을 굳이 따로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한데.”

아스란은 심드렁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16553718311628.jpg“다섯 공작가는 국경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피오레 티어들은 더 은밀히 정보를 얻어올 것이오. 그대들이 우려하는 일 없이, 절대로 주변 공국을 프리메에게 빼앗기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오.”

16553718311625.jpg“폐하. 폐하께선 지나치게 피오레 가주를 믿고 계신 듯합니다.”

16553718311628.jpg“짐이?”

16553718311625.jpg“예. 이번에 피오레 가주에게 내리신 치하는, 과하셨습니다.”

아스란은 장로들의 본색에 냉소를 그렸다.

16553718311628.jpg“피오레 가주는 황후를 지켰는데. 게다가 이번 사건을 빠르게 수습하는 데, 피오레 티어들의 역할이 컸고. 이 정도는 황제로서 응당 내려야 할 치하라고 생각하오만.”

16553718311625.jpg“하지만 피오레 가주는 이제 막 공작가를 이어받은 햇병아리입니다. 최연소라는 영예를 폐하께 받을 정도인지는…….”

16553718311625.jpg“그렇습니다, 폐하. 이건 지나치셨습니다. 안 그래도 피오레 가주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데.”

16553718311628.jpg“오만함이라…….”

16553718311625.jpg“피오레 가주는 클리오 대공을 이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16553718311625.jpg“게다가 축복의 꽃을 영지민에게 나눠주다니. 신성회의 권한을 침범한 일이며, 참으로 근본 없는 행동입니다.”

16553718311625.jpg“이번 대회의에서도 참으로 주제넘었습니다.”

결국, 장로들은 피오레 가주가 아주 못마땅하다는 얘기였다. 아스란은 그것까지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속내에 피오레 가주만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피오레 가주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16553718311628.jpg“황후를 구했는데, 아무런 치하 없이 넘어가는 건 황후를 모독하는 것이오.”

아스란이 제법 날 선 어조로 힘을 주었지만, 장로들은 오히려 기회라도 잡은 듯, 경솔하게 혀를 놀렸다.

16553718311625.jpg“황후 폐하의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황후 폐하께서 요즘 황후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지 못하시는 듯합니다.”

16553718311625.jpg“예, 폐하. 만약. 황후 폐하께서 홀로 감당하시기에 버거우신 거라면 황비를 들이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16553718311625.jpg“태생 좋은 여인으로 저희가…….”

16553718311628.jpg“짐의 나이가 벌써 몇인데, 새로운 황비라니.”

아스란은 기다렸다는 듯 드러내는 불쾌한 속내를 단번에 끊어냈다.

16553718311628.jpg“짐은 곧 질 태양이니, 새로운 태양에나 신경 쓰시오.”

16553718311625.jpg“하지만 폐하!”

16553718311628.jpg“피곤하니, 물러가시오.”

아스란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등을 보였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노인네들. 호시탐탐 황후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죽음을 문턱에 둔 노인 옆에 누굴 앉혀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건지. 예전부터 장로들은 클로에 황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녀는 몰락한 후작의 딸이었는데, 이 또한 양녀였다. 사실, 고귀한 출생이어야 하는 황후가 그 배경이 불분명한 것이다. 아스란이 여행길에서 첫눈에 반하여, 후작의 양녀로 삼아 황후로 만들었으니. 장로들은 그 사실에 분개했으나, 숨기고 참았다. 이클리트도 어미의 피가 천한데, 에드조프조차 그 피가 불결해선 안 되니까. 억지로 정식 황후로 인정하곤 있으나, 저런 식으로 자리를 탐내는 것. 아스란은 그렇기에 더더욱 시간의 숲을 원하고 있었다.

16553718311628.jpg‘내가 더 완벽한 황제가 되어야, 클로에도 그렇게 남을 수 있다.’

자신이 죽고 난 뒤, 저들이 클로에를 어떻게 난도질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솔라의 황제가 되어서 그녀를 지켜야 했다.

16553718311628.jpg‘그러기 위해선 이클리트, 네가 반드시 열쇠가 되어야 해.’

16553718311628.jpg“너도 네가 지키고 싶은 걸 위해 열쇠가 되고, 나도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위해 널 이용하는 거다.”

  *** 마침내 아멜리아는 솔라리스를 떠나게 되었다. 카르티아 공작은 떠나기 전, 편지로나마 아멜리아에게 인사를 전했지만, 포르티셰 공작은 아멜리아를 대놓고 무시한 채 그냥 떠나버렸다.

16553718311603.jpg‘뭐, 나도 굳이 그분의 인사를 받을 필요 없지.’

싫은 사람 얼굴을 뭐 좋다고 계속 보겠는가. 그런데 유일하게 루시아는 직접 아멜리아와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여전히 루시아가 불편했다. 그래도 루시아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아멜리아가 먼저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16553718311603.jpg“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헤스틴 공. 게다가 아주 큰 은혜도 입었습니다. 다음에 꼭 갚을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루시아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을 빤히 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16553718311603.jpg“헤, 헤스틴 공?”

1655371839784.jpg“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죠? 용서해줘요, 피오레 공.”

16553718311603.jpg“네?”

갑자기 너무 친근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당황했으나, 루시아가 고개를 들고서 싱긋 웃었다.  

16553718397846.jpg

  그 미소엔 예전만큼 경계심이나, 도발 같은 감정은 없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1655371839784.jpg“대공 전하와 피오레 공, 두 분이 같이 있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잘 어울려서 제가 보기 좋아요. 우리 북부에서 꼭 다시 만나요.”

16553718311603.jpg“헤스틴 공…….”

1655371839784.jpg“제가 약간 심술부렸던 건, 이해해주세요.”

루시아가 찡긋 눈웃음을 짓자, 아멜리아 역시 미소를 그렸다. 그녀가 이클리트의 은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대공 전하와 그녀의 사이는 카힐로 경과 비슷한 게 아닐까. 카힐로 경이 처음 자신을 경계한 것처럼. 그녀도 자신을 지켜본 것이 아닐까. 그게 마냥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6553718311603.jpg‘대공 전하의 곁에 누구라도 있어 주어서 다행이다. 대공 전하를 이렇게 걱정하고, 지켜봐 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훗날. 자신이 떠나게 되더라도. 대공 전하께서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게. 그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니까. 아멜리아는 루시아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함께 안아주었다.

16553718311603.jpg“저도 북부에 꼭 가보고 싶어요.”

루시아는 그녀에게 기대는 척하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1655371839784.jpg“강해지세요, 대공비 전하. 대공 전하를 황제로 만들 수 있게.”

일순, 무겁게 파고드는 그녀의 목소리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변했다.

1655371839784.jpg“전 언제나 그대들의 편이니까.”

게다가 간접적이지만, 이클리트를 지지하겠다는 말까지. 그렇다면 역시.

16553718311603.jpg‘이제 루베르가 정말로 필요해.’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피오레를 떠나 솔라리스로 향했을 때처럼.

16553718429477.jpg“제대로 해치운 것 같습니까?”

16553718311603.jpg“음. 완벽하게 해치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제법 많이 나아갔잖아요? 다음에 다시 이 황궁에 왔을 땐, 지금보단 분명 더 완벽할 거예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손등 위로 경애를 담아 입을 맞추었다.

16553718429477.jpg“언제나 그렇듯, 부인의 곁에 제가 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 박힌다.

16553718429477.jpg“나의 복종의 맹약을 잊지 말아요.”

아멜리아는 떨리는 숨을 꾹 삼켰다. 어찌, 감히 잊을 수 있을까. 이젠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아닌 심장에 하나, 하나 새겨지고 있는데.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 말은 그저 꾹 삼킨 채, 감정은 감추고 의연하게 대했다.

16553718311603.jpg“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우리의 집으로.”

어제부터 지금까지도 조금씩, 아멜리아는 그에게 묘한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먼저 다가왔다.

16553718429477.jpg“피오레에 가면 중요하게 할 말이 있습니다.”

16553718311603.jpg“…….”

16553718429477.jpg“꼭, 들어주세요.”

아멜리아는 뭔가 다른 이클리트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심장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그녀의 곁으로 둥이가 뛰어왔다. 둥이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느 방향에서 흠칫하더니 그대로 마차로 뛰어들었다. 그곳에 키르케가 그림자처럼 서서 마차에 올라타는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더없이 섬뜩한 시선으로 마치 그들을 끌어당기듯, 손짓했다.

1655371845906.jpg“곧 다시 만날 겁니다, 클리오 대공 전하. 피오레 가주님.”

모든 파멸의 시작과 끝은 이곳 솔라리스일 테니까. ***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케이트는 차분하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벨반 공작 각하, 평온하신지요. 가주님께서 이번에 황제 폐하께 큰 공을 치하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최연소로 받은 치하이니만큼, 피오레의 새로운 명예를 세우셨습니다. 가주님께선 성장하고 계십니다. 특히 가문의 티어들과 이번 치하를 나누고 함께하시는 마음은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그 마음에 저 또한 걸어볼까, 합니다.- 덤덤하게 써 내려가던 케이트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지난번에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아 많이 궁금합니다. 처음 하시는 평온한 여행에 즐거우시겠지만, 그래도 조금 염려가 되니 답장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케이트는 벨반과 주종관계를 넘어 친구로서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답장이 뜸한 것이 걱정이었다.

16553718459066.jpg‘괜한 기우겠지. 공작 각하께선 강하시니.’

지금의 가주님도 공작 각하만큼 곧고, 강하신 것 같다. 아일리 아가씨처럼. 그렇기에 케이트는 조금 더 믿고, 지켜보고 싶었다. *** 피오레에 도착한 아멜리아는 몹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본격적으로 영지를 관리하며 행정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케이트가 차분하게 곁에서 서포트해주는 덕분에 한결 수월했다. 자신을 대하는 케이트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그녀도 느꼈다. 아멜리아는 그런 케이트의 마음을 절대로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보다 열심히 모르는 부분을 채워가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업무는 황제께서 새로 하사하신 영지에 루베르를 데려오는 일이었다. 케이트는 준비된 보고서를 아멜리아에게 보여주었다.

16553718459066.jpg“마차는 준비했고, 조만간 그들을 데리러 떠날 것입니다.”

16553718311603.jpg“기간은 좀 넉넉하게 주도록 해. 그들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특히 환자들이 많으니, 그 부분을 신경 써서 데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해.”

16553718459066.jpg“일단 그들을 도와줄 일꾼과 티어들을 보냈습니다. 환자들에 관한 것은 다시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을 데려오는데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역시나 루베르의 환자였다. 사실 치료사를 보내서 조금이라도 치료를 한 뒤, 데려왔으면 좋겠지만.

16553718311603.jpg‘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했어.’

억지로 등 떠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약품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16553718311603.jpg“조만간 폐하께서 하사한 영지를 살피러 가야겠어. 최대한 일정을 빠르게 잡아줘. 그리고 또…….”

케이트는 정신없이 일하는 아멜리아의 말을 부드럽게 끊어냈다.

16553718459066.jpg“곧 가주님의 탄일입니다.”

16553718311603.jpg“응? 아…….”

그렇구나. 이생에서의 마지막 자신의 탄일이다.

16553718459066.jpg“따로 무도회는 하지 않을 겁니다. 황실 무도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귀족들이 선물을 보낼 겁니다. 그건 전부 받으셔야 합니다.”

분명 엄청난 물량 공세가 쏟아질 것이다. 황제의 치하를 받은 최연소 가주, 그 눈에 들어야 할 테니까.

16553718311603.jpg“그래? 선물 받는 건 괜찮아. 무도회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아멜리아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정말이지 당분간 그런 사교 파티는 피하고 싶었으니까.

16553718459066.jpg“그래도 가주에 오르시고 첫 탄일인데, 조금 서운하시면 집안에서 소소한 파티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16553718311603.jpg“음. 서운하진 않지만, 그건 생각 좀 해볼게.”

16553718459066.jpg“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조금 쉬시지요.”

아멜리아는 케이트가 조금 쉴 틈을 주고자, 이런 말을 꺼냈다는 걸 깨닫고선 미소를 지었다.

16553718311603.jpg“알았어. 고마워, 케이트.”

케이트가 나가고, 아멜리아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16553718311603.jpg“아고고. 조금 지쳤다. 그나저나…….”

조금 쉴 틈이 생기니, 아멜리아는 자연스럽게 이클리트를 떠올렸다. 사실, 오늘 온종일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기면 이클리트가 당연하다는 듯 나타났는데. 아멜리아는 자는 둥이를 보며 말했다.

16553718311603.jpg“둥아. 대공 전하는 지금 어디 계실까? 넌 어디 계시는 줄 아니?”

  *** 아멜리아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이클리트는 현재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마미와 있었다. 마미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지금 자신이 들은 말이 맞는지, 다시 되뇌었다.

16553718525196.jpg“그러니까, 대공 전하.”

16553718429477.jpg“…….”

16553718525196.jpg“그, 몹시 심각하다는 일이. 가주님의 탄일 선물을 못 고르시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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