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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역시, 당신의 개가 될게요 (67/199)

67화. 역시, 당신의 개가 될게요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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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718999283.jpg“제가 부인의 개가 되겠습니다.”

16553718999287.jpg“아니. 잠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멜리아는 너무 당황했다. 지금 자신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건가? 개라니? 설마 쓰다듬어줘서 그런 거야? 그걸로 화나서? 그거 말곤 설명이 안 되는데?

16553718999287.jpg“대공 전하, 저는 진짜 대공 전하를 우습게 여기고, 그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저번에 대공 전하께서 쓰담쓰담 받는 거 좋아한다고 하셔서…….”

16553718999283.jpg“네. 좋아합니다.”

16553718999287.jpg“아니, 그럼 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개라니요!”

16553718999283.jpg“역시, 개는 그렇죠. 새는 안 됩니까? 그러고 보니 부인은 여우도 그렇고, 털이 북슬북슬한 걸 좋아하시네요. 새도 나름 멋진데.”

16553718999287.jpg“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야! 여우? 새? 때마침 하녀가 차와 과자가 담긴 트롤리를 끌고 왔다.

16553718999313.jpg“대공 전하, 가주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그녀가 능숙하게 테이블을 세팅하려고 할 때, 이클리트가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

16553718999283.jpg“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물러가도록.”

16553718999313.jpg“네? 대공 전하께서 직접이요?”

16553718999283.jpg“괜찮다.”

하녀는 당황했지만, 이내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번갈아 바라보며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꾹 눌렀다.

16553718999313.jpg‘단둘만 계시고 싶으시구나!’

자신이 너무 눈치가 없었다.

16553718999313.jpg“예,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하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사라지자, 아멜리아는 움찔했다.

16553718999287.jpg‘뭐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이클리트가 어설픈 손길로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하자, 아멜리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53718999287.jpg“저도 도와드릴게요.”

16553718999283.jpg“아니요, 괜찮습니다. 부인은 그냥 가만히 있어요.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16553718999287.jpg“하지만…….”

16553718999283.jpg“잘할 수 있습니다.”

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보는 사람으로선 불안했다. 물론 홍차를 내리는 손길은 몹시 능숙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뭔가 평소와 다른 그의 친절함과 다정함에 자꾸만 몸이 움찔거렸다.

16553718999287.jpg‘평소에도 차는 내려주시고, 다정하기도 하시지만. 뭔가 묘하게 과한데? 왜지. 오늘 무슨 일 있는 건가?’

그 개가 되겠다는 건, 역시 장난인 거지? 잠시 후, 달콤한 향이 번지고 이클리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녀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멜리아는 여러 가지가 몹시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웃으며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16553718999287.jpg“정말로 감사해요, 대공 전하. 오랜만에 대공 전하께서 주시는 차를…….”

16553718999283.jpg“안 됩니다.”

16553718999287.jpg“네?”

찻잔을 들려는 순간, 이클리트가 그녀의 손을 가로막았다. 아멜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16553718999287.jpg“무슨 문제라도?”

16553718999283.jpg“혹시라도 부인의 고운 손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16553718999287.jpg“다, 다쳐요? 왜요?”

16553718999283.jpg“찻잔이 뜨거우니까요.”

16553718999287.jpg“네?”

아니, 그래서 손잡이가 있는 거 아닐까? 어느새 이클리트는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서 그녀 대신 찻잔을 들었다. 아멜리아는 잠시 멍한 시선으로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멈칫했다.

16553718999287.jpg“설마 대공 전하. 지금 먹여주시려는 건 아니시죠?”

그녀는 경악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클리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18999283.jpg“아닙니다.”

16553718999287.jpg“하, 죄송해요. 제가 정말 쓸데없는 소리를…….”

16553718999283.jpg“지금은 아니고, 조금 식힌 후에 먹여드릴게요.”

16553718999287.jpg“아니요! 지금 그게 무슨!”

아멜리아는 너무 진지한 이클리트의 표정에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며 그에게서 찻잔을 빼앗았다.

16553718999287.jpg“제가 마실게요. 마실 수 있어요. 다치긴 뭐가 다쳐요!”

16553718999283.jpg“그래도…….”

이클리트가 뭔가 실망한 기색으로 푸른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이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아멜리아는 순간 홀릴 듯했으나, 곧장 이성을 붙잡았다.

16553718999287.jpg“괜찮아요, 대공 전하. 이건 당연히 제가 마셔야죠!”

아니, 대체 왜 이러시는 거야!

16553718999283.jpg“그럼 스콘이라도…….”

16553718999287.jpg“아니요! 그것도 저 혼자 먹을 수 있어요. 절대로 안 다쳐요, 절대!”

대체 대공 전하는 티파티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지? 차와 과자를 곁들인 채, 풍경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이 파티에서 대체 내가 왜 다친다는 거야!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클리트는 여전히 그녀 옆에 딱 붙어서는, 정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냅킨을 꼭 쥐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그녀의 입가에 뭐가 묻으면 기다렸다는 듯 닦아주었다. 게다가 입안이 비어 있을 새가 없이, 홍차를 내리고 또 내렸다. 아멜리아는 그와 함께 봄이 오는 풍경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그가 영 다른 곳에 정신 팔린 듯싶어, 결국 속상함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16553718999287.jpg“대공 전하, 제발요. 이제 차는 그만 마시고 싶어요.”

16553718999283.jpg“홍차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럼 다른 거로…….”

16553718999287.jpg“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혼자만 티파티를 즐기고 있잖아요.”

16553718999283.jpg“저도 즐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인을 챙겨주는 게 몹시 좋은 걸요.”

16553718999287.jpg“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대공 전하는 이상하세요. 오늘 무슨 날인가요? 아직 제 생일은 아니고. 방금 개가 되겠다고 한 건 대체 뭐죠?”

이클리트는 어쩐지 아멜리아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16553718999283.jpg“다정한 사람이 좋지 않으십니까?”

16553718999287.jpg“다정한 사람이요?”

16553718999283.jpg“부인에게 순종적이고, 복종하는. 그런 충견 같은 사람.”

16553718999287.jpg“아니. 그건 다정함이랑 다르죠. 무조건적인 순종과 복종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특히나 그게 대공 전하라면.”

16553718999283.jpg“…….”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16553718999287.jpg“전 대공 전하와 동등하고 싶어요. 이렇게 나 혼자 과할 정도로 대접받고 하는 건 싫다고요. 게다가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대공 전하는 다정하세요.”

이클리트는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6553718999283.jpg“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부인. 모두가 절 무서워하니까요. 그래서 경험자의 조언을 들은 건데. 다들 따사남이 좋은 거라고 했습니다.”

16553718999287.jpg“따사남이 뭔데요?”

16553718999283.jpg“낮엔 충견처럼 따뜻하고, 밤엔 맹견처럼 사나운 그런 남자. 그래야 부인한테 사랑받는다고…….”

아멜리아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슨 딴 세상 언어를 듣는 것 같았으니까.

16553718999287.jpg“충견? 맹견?”

16553718999283.jpg“그래서 지금은 아직 낮이니까, 충견으로 한 건데.”

근데 잠깐만. 부인한테 사랑받는다니……. 순간, 구름에 가렸던 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졌다. 아멜리아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자, 이클리트가 곧장 손을 뻗어 햇볕을 살포시 가려주었다. 아멜리아는 일순 더 가깝게 다가온 그를 보며 숨을 꾹 눌렀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조금 전 말을 되뇌었다.

16553718999283.jpg“그러니까 부인 취향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의식하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자각이 없는 걸까? 이 자각 없는 다정함에 그녀만 계속 곤란해진다. 아멜리아는 불편해 보이는 이클리트의 손을 잡았다.

16553718999287.jpg“괜찮아요, 대공 전하. 하녀를 불러서 양산을 가져오게 할게요. 불편하시잖아요.”

하지만 이클리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여전히 여기에 꽂혀 있었다.

16553718999283.jpg“따사남은 아니라면…….”

그가 갑자기 손을 내려 그녀의 뺨을 감쌌다.

16553718999283.jpg“어떠세요?”

16553718999287.jpg“뭐, 뭐가요?”

16553718999283.jpg“제 손, 따뜻한가요?”

16553718999287.jpg“뜨겁, 아니 따뜻해요.”

사실 너무 뜨겁다. 자신의 얼굴이 너무 티 나게 붉어진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16553718999283.jpg“손은 부인의 취향인 것 같고. 야성미는. 지금 여기선 조금 곤란한데.”

16553718999287.jpg“네?”

뭐지. 또 이 불길한 느낌은?

16553718999283.jpg“그래도 살짝…….”

갑자기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점차 그녀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은밀하게 좁혀지는 간극 너머 숨결이 간지러웠다. 아멜리아는 갑자기 파고드는 그의 위험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의자가 휘청이며, 균형을 잃었다.

16553718999287.jpg“아!”

이클리트는 넘어지려는 그녀를 단숨에 잡아주었다.

16553718999283.jpg“조심하세요, 부인.”

16553718999287.jpg“이게 다 대공 전하 때문이잖아요!”

16553718999283.jpg“네?”

16553718999287.jpg“갑자기 그렇게 막 다가오시면 어떡해요!”

16553718999283.jpg“야성미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그건 당장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순간, 그녀의 어깨에 닿아있던 그의 손이 조금 아래로 내려와 아멜리아의 허리를 감싸며 번쩍 안아 올렸다. 아멜리아는 짧은 비명과 함께 그를 꽉 붙들었다.

16553718999287.jpg“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16553718999283.jpg“좋아한다던데, 부인이 이런 취향을. 손이 따뜻하고, 야성미가 있는.”

16553718999287.jpg“누,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16553718999283.jpg“마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16553718999287.jpg“마미?”

잠깐.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16553718999287.jpg“아니 그건 그냥 한 소리예요!”

16553718999283.jpg“그럼 그런 취향이 아니십니까?”

16553718999287.jpg“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마미, 대체 대공 전하께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아멜리아는 발버둥 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클리트 역시 순순히 그녀를 풀어주었다.

16553718999283.jpg“그럼 부인은 어떤 취향이십니까?”

16553718999287.jpg“갑자기 그건 왜 그렇게 궁금하신 건데요?”

16553718999283.jpg“부인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장난 따윈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진지한 이클리트의 모습에 아멜리아의 심장이 저릿해졌다. 지금 그가 그답지 않게 이런 과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 오직, 그녀를 위해서.

16553718999287.jpg‘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아멜리아는 답을 알면서도 그 대답에 다가가지 못했다. 위험하니까. 이 이상 그와 가까워지면.

16553718999287.jpg‘안 되는데.’

하지만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클리트를 아멜리아는 완강하게 밀어낼 수가 없었다. 사실 너무 기뻤으니까. 정말로 심장이 터질 듯이 기뻤으니까. 그래,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 자신과 같은 마음이다.

16553718999287.jpg‘역시 내 심장 소리만 그렇게 크게 뛴 게 아니었어. 그의 심장 소리도 내게 들렸던 거야.’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 그것도 모자라, 제게 사랑받고자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

16553718999287.jpg‘내게 사랑받고자…….’

좋으면서도 슬프고, 미치도록 가슴이 설레면서도 그만큼 아프다. 받아줄 수 없으니까. 끝까지 모른 척해야 하니까. 하지만.

16553718999287.jpg‘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할 거야. 아멜리아는 떨리는 감정에 흐트러지는 목소리를 겨우 붙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16553718999287.jpg“눈이 예쁘고.”

16553718999283.jpg“…….”

16553718999287.jpg“그 눈으로 날 참 예쁘게 봐주고.”

16553718999283.jpg“…….”

16553718999287.jpg“정말이지 불현듯 떠올라, 내 머릿속을 꽉 채우는 그런 사람. 언제나 그렇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이클리트를 보던 아멜리아의 시선이 한순간 흔들리면서, 마지막 목소리가 열기에 한껏 젖었다. 이클리트 역시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춘 사이.

16553718999287.jpg“좋아해요.”

16553718999283.jpg“…….”

16553718999287.jpg“그런 사람이, 좋아요.”

겨우 쏟아낸 말에 아멜리아는 입안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워져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는 눈치채지 못할 텐데. 하지만 이 마음은 진심이기에. 거짓을 핑계 삼아 이렇게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플 정도로 들떴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껏 낮아진 어조로 읊조렸다.

16553718999283.jpg“노력해야겠네요, 내가. 부인의 상상에 질 수는 없으니.”

16553718999287.jpg“그냥. 취향이 뭐냐고 물으셔서 대답한 것뿐이에요.”

16553718999283.jpg“그러니까. 그런 취향을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순간, 그의 눈빛이 조금 위험스럽게 그녀를 훑어 내렸다. 그 아찔한 시선에 아멜리아는 아까와는 몸이 다르게 떨리며 슬쩍 시선을 내렸다. 이럴 때 그에게 야, 야성미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분에 마냥 취해있을 수는 없다. 자신의 고백은 영원히 꼭꼭 숨겨둔 채 끝내야 했으니까.

16553718999287.jpg‘받아들이면 안 돼. 이분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끝까지 내가 아픈 게 나아.’

영원히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면서. 책임지지도 못할 사랑을 속삭이고, 떠나버리면.

16553718999287.jpg‘나는 이분을 버리게 되어 있어.’

아멜리아는 제 심장의 꽃잎이 떨어지고 있음을 깊이 새기며 단호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16553718999287.jpg“그냥, 제 취향일 뿐이니까. 대공 전하는 그런 노력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다소 차갑게 말했다.

16553718999287.jpg“지금도 충분히 남편 역할을 잘하고 계세요. 더한 걸 바라진 않아요.”

그리고 그 말에 이클리트의 눈빛이 낮게 흔들렸다.

16553718999287.jpg“누가 봐도 우린 다정한 부부로 보이니까. 지금까지처럼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돼요. 그럼 끝까지 들키지 않을 거예요.”

아멜리아는 완벽하게 그에게 선을 그었다. 아까는 그토록 입안이 뜨거웠는데, 지금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리기만 했다. 잘하고 있지. 잘 웃고 있지. 나, 전혀 괴로운 표정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게 옳은 거니까. 애초에 이렇게 시작한 관계인 거니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서 슬쩍 시선을 내렸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자, 곧장 박히는 이클리트의 시선에 흠칫했다. 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집요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숨이 막혔다. 그래도 손끝에 힘을 주고서 입술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그의 의연해 보이는 눈동자 속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보였다.

16553718999287.jpg‘아주 잠깐이야. 지금은 아주 잠깐 아프고 지나갈 수 있어.’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아주 크진 않을 테니까. 죽고 못 살 그 정도의 감정은 아닐 테니까.

16553718999287.jpg‘지나가는 바람 정도일 거야. 그래도. 아주 잠깐이라도 그의 마음에 머물다 갈 수 있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살짝 굳어졌던 이클리트의 입꼬리가 어느새 부드럽게 풀렸다.

16553718999283.jpg“역시 아직은 내가 부인의 취향이 아닌 가 봅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18999287.jpg“그러니까 굳이 신경 쓰실 필요 없…….”

16553718999283.jpg“신경 쓸 겁니다.”

뜻밖의 단호한 말에 아멜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16553718999283.jpg“이제 나는 지금만으론 부족해졌으니까.”

그녀가 피할 새도 없이, 이클리트가 손을 뻗어 아멜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가장 뜨거운 부위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16553718999283.jpg“부인을 설레게 하고 싶어요.”

16553718999287.jpg“대공 전하…….”

16553718999283.jpg“내 욕심이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런 말을 듣고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순 없어.”

묘하게 흘러가는 말에 아멜리아의 숨이 움찔했다.

16553718999287.jpg‘설마 내가 한 그 말, 알아차리신 거야?’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16553718999283.jpg“사실 조금 기대했어요. 부인이 취향을 말하면서.”

16553718999287.jpg“…….”

16553718999283.jpg“나한테 눈을 떼지 못하길래.”

아멜리아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마음이 불안해져서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그녀에게 닿은 손에 힘을 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그제야 그가 자신의 심장 소리를 오롯이 듣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16553718999283.jpg“아직은 부인한테 내가 많이 부족하니까. 지금은 그냥, 예쁨받는 개라도 좋아요.”

이클리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바닥에 살짝 얼굴을 비비며 나직이 애원했다.

16553718999283.jpg“그렇게라도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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