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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꿈이면 좋겠어요 (71/199)

71화. 꿈이면 좋겠어요2021.09.06.

그가 자신을 속였다. 그 편지가 로사 유모의 편지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가 쓰고 있다는 걸 숨긴 채, 그렇게 자신을 계속 속이고 있었다.

16553720359947.jpg‘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공 전하께서. 어떻게. 나한테, 어떻게…….’

엄청난 충격에 온몸이 바닥끝까지 처박히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했으면서.

16553720359947.jpg‘나는, 정말로 당신을 믿고 싶었어. 아니. 믿었어. 두 번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당신만큼은…….’

왜냐면 그마저도 자신을 속이면. 그렇게 배신하면. 정말 미치게 아플 테니까.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통증이 그녀를 흔들었다. 도저히 왜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할 틈도 없이. 오직 그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 맹렬하게 심장을 찔러왔다. 또 한 번 그녀는 이렇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거다. 이클리트는 겁이 나서,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제 입으로 진실을 말하기 버거웠다.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로사 유모의 편지를 사실은 지금껏 자신이 쓰고 있었다고. 이 진실 끝에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어그러질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어서. 그만큼 두려웠기에, 그답지 않게 피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숨기고도 싶었다.

16553720359947.jpg“처음부터.”

순간, 귓가에 젖어 드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16553720359947.jpg“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했는데. 전부 다 우연이 아니었는데.”

16553720359963.jpg“…….”

16553720359947.jpg“로사 유모의 편지와 함께 항상 시들지 않고 도착했던 제비꽃. 대공 전하께서 피운 시들지 않는 제비꽃 정원까지.”

16553720359963.jpg“…….”

16553720359947.jpg“단 하나도 우연은 없었는데. 전부. 전부 대공 전하께서 만들어낸 지독한 거짓이었는데!”

16553720359963.jpg“아멜리아.”

16553720359947.jpg“내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그녀가 자신을 밀어냈다는 사실보다, 그녀의 떨고 있는 몸짓이 이클리트를 더 괴롭게 했다. 그녀의 녹안에 박힌 핏방울 같은 눈물이 그녀를 아프게 하고 있으니까. 지금, 그녀에게 저토록 고통을 주는 존재가 눈앞에 자신이라는 사실에 이클리트는 스스로가 정말 괴물처럼 느껴졌다.

16553720359947.jpg“제 부탁을 처음으로 거절하셨네요. 다 들어준다더니. 말만 그럴싸한 거짓이었어. 이미 한번 당해 놓고, 그래요. 내가 멍청했어요.”

16553720359963.jpg“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라!”

16553720359947.jpg“이것만 거짓은 아니었겠죠.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짓인 거예요? 처음부터 다 만들어낸 거예요? 날 다 아는 것 같았던 눈빛. 나를 다 이해한다는 몸짓. 매 순간 그렇게 날 다독이고, 안아주면서, 대공 전하를 믿게 만들고. 기대게 하고!”

16553720359963.jpg“아멜리아…….”

이클리트가 한 걸음 다가갔지만, 아멜리아는 더 멀리 그에게서 달아났다. 처음으로 서로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것 같았다.

16553720359947.jpg“그럼 이제라도 말해줄 수 있어요? 대공 전하의 필체, 왜 나한테 안 주는 거예요? 내가 당신의 필체를 왜 알면 안 되죠? 이미 내가 당신 필체를 알고 있어서?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아멜리아는 품속에서 그가 떨어뜨렸던 통을 움켜쥐었다.

16553720359947.jpg“대체 대공 전하는 누구예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 클리오 대공인 건 맞는 거죠? 이것도 믿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지금까지 정말. 정말 무서운 사람이랑 있었던 거네요.”

끝까지 말을 못 하는 이클리트 앞에 아멜리아는 그 통을 집어 던지고서 돌아섰다. 쿵. 쿵. 쿵 멀어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그의 심장에 대못처럼 박혀왔다. 이클리트는 바닥에 나뒹구는 통을 집어 들었다. 통 안에 든 것은 아멜리아의 편지. 하지만 이건 그냥 편지가 아니었다. 이생에 처음으로 그에게 내밀어준 손이었다. 물론 애초에 실수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 실수가 그에겐 전부였기에.

16553720359963.jpg“이 편지를 받기 위해선, 살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내일을. 내일을 기다렸어.”

제발 멈춰 달라고 빌었던 심장에 처음으로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당신의 편지를 너무 갖고 싶어서.

16553720359963.jpg“당신을, 속였던 거였어.”

이클리트는 손바닥에 박힐 만큼, 통을 꽉 움켜쥔 채 깊이 고개를 숙였다. *** 피오레 공작가가 영지민들에게 개방되고, 마침내 축제가 열렸다.

16553720388854.jpg“엄마, 엄마 빨리요! 빨리 불꽃 보고 싶어요!”

16553720388854.jpg“천천히 가도 돼. 그리고 공작 각하께 먼저 인사해야지.”

16553720388854.jpg“혹시 몰라서 우리 집 특제 꿀을 준비했는데. 공작 각하께서 받아주시려나.”

16553720388854.jpg“그런 걸 받아주실까?”

16553720388854.jpg“그런 거라니! 천년 벌의 꿀이야. 약이라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영지민들이 공작가로 들어왔다. 그만큼 아멜리아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는 거고, 영지민들에게 이런 마음을 얻고 있는 건 가주로서 중요했다. 마미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드레스를 입은 아멜리아는 마치 밤의 여신 같았다. 밤하늘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드레스는 태양의 빛보단 달빛을 자아내어 만든 듯, 우아한 분위기를 그렸다. 머리 장식도 보석보단 꽃장식을 이용하여, 오늘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했다. 하나하나 마미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16553720359947.jpg‘티 내지 마. 내가 아픈 거, 힘든 거, 저들은 몰라야 해. 지금 이 자리는 아멜리아로서 오르는 자리가 아니야. 나는 지금, 피오레 공작가의 가주야.’

아멜리아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서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단상에 올라가지 않고, 정원 중앙에서 자신을 찾아온 영지민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16553720388854.jpg“가주님을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16553720388854.jpg“탄일 축하드려요, 가주님.”

16553720388854.jpg“이거, 가주님 탄일 선물이에요. 부족하지만 받아주세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표정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 심장을 뜨겁게 채웠다.

16553720359947.jpg“너무 감사해요. 제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피오레를 위해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어떤 가주도 영지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적은 없었기에. 영지민들은 신기하면서도, 그녀를 향한 존경과 관심이 생겨났다. 물론 이들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곤란한 건 티어들이었다. 이사나는 조금 뒤에서 아멜리아를 지켜보며 다른 티어들에게 말했다.

16553720416354.jpg“긴장 늦추지 마라. 사방이 개방됐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더 먼 곳을 봐야 한다는 거야.”

16553720388854.jpg“알고 있습니다!”

16553720416354.jpg“우리 가주님을 보아하니, 이런 축제가 오늘로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앞으로 경호 훈련 강도를 좀 더 높여야겠군.”

이사나의 우스갯소리가 다른 티어들에게 전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16553720416354.jpg“그나저나…….”

이사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멜리아의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곁으로 이클리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남편으로서 함께 나타날 거로 생각했는데…….

16553720416354.jpg“뭐지. 진짜 크게 싸우신 건가. 칼렌의 말로는 딱히 특별한 건 없어 보였는데.”

그때, 카마리가 아멜리아에게 장총을 건네주었다. 아멜리아는 기대하는 영지민들을 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16553720359947.jpg“제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와주신 여러분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분 좋은 선물을 많이 받은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에게 잊지 못할 오늘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축제에서 중요한 건, 꽃이죠.”

아멜리아는 싱긋 웃으며 곧장 정원 곳곳에 설치된 마법 도구를 불의 마탄으로 터트렸다. 그러자 밤하늘 가득, 별보다 빛나는 불꽃이 화려하게 만개했다.

16553720444326.jpg“와!!!”

16553720388854.jpg“엄마, 아빠! 하늘에 꽃이 피었어요!”

비록 축복의 꽃은 아니지만, 영지민들 모두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모두가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을 찰나, 아멜리아의 시선이 영지민들 사이에 서 있는 이클리트와 마주쳤다. 그는 검은 로브를 입고서 차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그녀만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에 절로 가슴이 아파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그녀가 이 밤하늘 아래 환하게 빛나는 달이라면 이클리트는 그 달 뒤에 쓸쓸하게 드리워진 그림자 같았다. 결코, 달에게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 뒤를 묵묵히 지키는 그림자.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감춰,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는 서로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았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아멜리아는 지독할 정도로 오직 그의 모습만 보였다. 원래라면 이 자리에 함께하며 웃고 있었을 텐데. 분명 그는 수줍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며, 다정하게 웃어 줬을 텐데. 그녀는 금방이라도 그의 손을 잡고 제 곁으로 당기고 싶었지만, 그저 허한 손끝을 꽉 붙잡았다. 끝내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클리트는 멀리 있어도 그녀의 괴로워하는 표정이 눈에 훤히 박혔기에, 그 또한 함께 힘들어하며 그 자리에서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았다.  

16553720444336.jpg

  *** 음악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면서, 축제는 점점 무르익어갔다. 처음엔 살짝 주춤했던 영지민들도 점차 공작가에 익숙해지면서,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멜리아의 시선이 점점 아련하게 가라앉았다.

16553720359947.jpg‘다음엔 축제에서 저렇게 놀아보자고 약속했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비집고 들어섰다. 아멜리아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영지민들을 위한 또 다른 선물인 필체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서 경호를 서고 있던 티어들이 교대를 하고선,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16553720388854.jpg“가주님.”

16553720359947.jpg“많이 힘들죠? 미안해요. 내가 너무 일을 크게 벌였다, 싶었어요.”

16553720388854.jpg“아닙니다. 가주님이 무엇을 하시든, 저희는 뒤에서 가주님을 지켜드리는 것이 의무입니다.”

16553720359947.jpg“그렇게 말해주니 든든하고, 감사해요.”

티어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16553720388854.jpg“저희도 가주님의 필체를 갖고 싶습니다.”

16553720388854.jpg“예! 물론 저희들의 주인은 가주님이시지만, 수호신으로도 섬기고 싶습니다!”

아멜리아는 그 말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받았다.

16553720359947.jpg“당연하죠. 그럼 우리 서로서로 지켜주자고요.”

그녀는 티어들을 위해 정성껏 필체를 남겼다. 어느새 다가온 칼렌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녀가 펜을 놓은 순간 선물을 내밀었다.

16553720388854.jpg“이건 저희가 가주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아멜리아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16553720359947.jpg“세상에. 뭘 이런 걸…… 정말 괜찮은데!”

16553720388854.jpg“저희도 꼭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좀 더 좋은 걸 준비했어야 했는데…….”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열어보니, 굉장히 앙증맞게 만들어진 초콜릿이 담겨 있었다.

16553720359947.jpg“어머! 너무 귀여워요. 진짜 너무너무 고마워요.”

아멜리아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에, 티어들은 쑥스러우면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때마침 잉크를 가지러 갔었던 마미가 돌아와선 초콜릿을 보며 놀랐다.

16553720473235.jpg“와. 이거 요정의 초콜릿이잖아요. 구하기 엄청 힘들었을 텐데.”

16553720359947.jpg“요정의 초콜릿?”

16553720473235.jpg“네! 솔라에서 엄청 유명한 초콜릿이에요. 그냥 초콜릿이 아니라, 안에 술이 들어있는데 그게 엄청 특별한 술이거든요. 요정의 입맞춤이라고 불릴 정도로 몹시 귀한 술이라고 들었어요.”

16553720359947.jpg“술이라고?”

16553720473235.jpg“그래 봤자 아주 소량이에요. 그래도 이걸 먹으면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요.”

16553720359947.jpg“그래? 엄청 귀한 거네. 더 고마워요.”

16553720388854.jpg“아닙니다. 가주님께 드리는 초콜릿인데,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인들은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제국 곳곳에 있는 티어들을 수소문하여 어렵게 구한 초콜릿이긴 했다. 아멜리아는 초콜릿 하나를 들었다. 그 순간, 이클리트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16553720359947.jpg‘나한테 절대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아니지. 왜 자꾸 그를 떠올리는 거야.’

게다가 술이 아니라 초콜릿일 뿐. 아멜리아는 뭔가 오기가 생기면서 하나만 먹어도 될 것을 연달아서 여러 개 먹어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괜찮았다. 정말로 이렇게 달콤한 초콜릿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는데, 그게 문제였다. 적당히 기분이 좋아져야 했는데…….

16553720359947.jpg“헤헷. 모야. 이거 너무 맛있잖아요. 너무 달콤해서, 내 기분도 달콤해지는 것 같앙…….”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오른 아멜리아는 온몸으로 기분 좋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티어들과 마미는 당황했다.

16553720388854.jpg“서, 설마…….”

16553720388854.jpg“초콜릿을 먹고 취하신 건가?”

16553720388854.jpg“저건 설령 애들이 먹어도 안 취하는 건데?”

16553720388854.jpg“분명 술은 소량만 들어 있다고. 그래서 적당히 기분 좋아진다고 했는데.”

16553720388854.jpg“너무 좋아 보이시는데?”

아멜리아는 정말로 초콜릿을 먹고 취해버린 것이다. 마미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16553720473235.jpg“어머, 어떡해. 저런 모습을 영지민들에게 들키면!”

가주로서의 체통이 말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으로 그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아니. 사실은 계속 생각났다. 하지만 취기에 몸을 맡긴 채, 복잡한 진실을 지워버리고 오직 그를 떠올렸다. 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그의 모습만을…….

16553720359947.jpg“필체를 써 줘야 하는데…… 헤헷. 어디 써줄까요?”

아멜리아는 눈앞에 있던 티어를 붙잡았다. 그녀에게 잡힌 티어는 당황했으나, 발그레해진 얼굴로 환하게 웃는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 예뻐서, 그대로 온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16553720388854.jpg“저, 저기. 가주님?”

16553720359947.jpg“어디 써줄까? 여기? 여기?”

아멜리아는 티어의 얼굴을 마구 더듬다가 이내 단단한 팔목을 붙잡았다.

16553720359947.jpg“아니면 여기. 여기 팔목에 써줄까? 응?”

16553720388854.jpg“아니요. 제가 종이를…….”

아멜리아에게 붙잡힌 채, 꼼짝도 못 하는 티어와 마찬가지로 다른 티어들과 칼렌도 당황스러워했다.

16553720388854.jpg“말려야 하지 않아?”

1655372055915.jpg“당연히 말려야지!”

16553720473235.jpg“가주님, 거기가 아니에요. 그리고 너무 취하셨어요!”

마미가 어떻게든 아멜리아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특히 영지민들에게 들키지 않고 말려야 하는 게 더욱더 곤욕이었다.

16553720416354.jpg“칼렌, 얼른 가주님 말려. 아니면 저 자식 죽는다.”

그때, 이사나가 나타나선 이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1655372055915.jpg“단장님!”

16553720416354.jpg“쳐다만 보지 말고, 얼른.”

1655372055915.jpg“하지만 가주님을 밀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감히 몸에 손을 대기엔…….”

그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이 따뜻한 봄날 밤에 오한이 서렸다. 마미는 눈을 크게 뜨면서 고개를 숙였다.

16553720473235.jpg“대공 전하!”

티어들은 전원 흠칫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사나는 떨리는 숨을 삼켰다.

16553720416354.jpg‘이미 늦었네.’

이클리트는 말없이 걸음을 옮겨서는, 아멜리아에게 붙잡혀 있는 티어에게 짧게 읊조렸다.

16553720359963.jpg“내 아내를 데려가겠다.”

티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바닥에 박을 기세로 숙였다.

16553720388854.jpg“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저희가 좀 더 주의했었어야…….”

이클리트는 그들을 무시한 채, 한 손으로 아멜리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멜리아는 몽롱해진 시선으로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클리트는 그대로 돌아서려다가, 여전히 고개 숙이고 있는 티어에게 말했다.

16553720359963.jpg“잠시.”

16553720388854.jpg“예?”

티어가 고개를 들자, 이클리트는 아멜리아가 티어의 팔목에 기어이 써준 필체를 그대로 쓱 지워버렸다. 그러곤 티어의 얼굴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아멜리아의 손길이 닿았던 얼굴. 하지만 이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16553720359963.jpg“……내 눈에 띄지 마라.”

16553720388854.jpg“예? 아, 예!”

이사나는 그 모습에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16553720416354.jpg‘정말이지 질투 한번 치밀하게 하시네.’

이클리트는 제게 기대어 있는 아멜리아를 소중히 품에 안고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흩어졌다.

16553720359947.jpg“이건 꿈이죠?”

16553720359963.jpg“…….”

16553720359947.jpg“꿈이면 좋겠어요. 꿈이라면, 예전처럼 대공 전하를 믿어도 되니까.”

아멜리아는 슬프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오롯이 바라보며 속삭였다.

16553720359947.jpg“그냥 마음껏, 당신만 보고 싶어…….”

1655372058689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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