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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나의 제비꽃이여 (72/199)

72화. 나의 제비꽃이여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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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미는 이클리트 앞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늘, 대공 전하께 몹시 중요한 날이었을 텐데. 저렇게 잔뜩 취해서야,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겠냔 말이다!

16553720669651.jpg“죄송합니다, 대공 전하.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근데 정말로 초콜릿만 드시고 취하실 줄은. 정말 술이 아주 소량만 들어 있거든요. 아주 살짝 기분 좋게만 하는 건데…….”

이클리트는 어느새 정신을 잃은 그녀를 아이처럼 소중히 안고서 짧게 읊조렸다.

16553720669655.jpg“기분은 좋으신 것 같군.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16553720669651.jpg“예?”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등을 토닥였다. 분명 지금 자신 때문에 몹시 괴롭고 혼란스러울 거다. 하지만 축제를 열었으니, 내색하지 못한 채 계속 웃고 괜찮은 척, 무리하고 있었을 테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가시처럼 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이들은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16553720669655.jpg‘내가 그녀를 제일 힘들게 하고 있으니까.’

선물을 준 티어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결국, 원인 제공은 자신들이 한 셈이었으니까. 이사나는 한숨을 삼키며 자신이 나섰다.

16553720669668.jpg“티어들을 대표하여, 제가 사죄드립니다. 대공 전하.”

이클리트는 이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16553720669655.jpg“다음엔 술은 절대 안 된다.”

16553720669679.jpg“예, 대공 전하!”

티어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서 한껏 경직된 태도로 답했다. 그렇게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와 함께 걸음을 뒤로 돌리며, 마미에게 말했다.

16553720669655.jpg“부인은 내가 데려가지. 마미, 넌 축제 마무리를 부탁한다. 케이트에게도 말해주고.”

16553720669651.jpg“알겠습니다.”

16553720669655.jpg“절대로 가주의 부재가 느껴져선 안 된다.”

16553720669651.jpg“예, 대공 전하.”

16553720669655.jpg“혹시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날 부르고.”

이클리트는 대충 수습을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왠지 모를 싸한 기분에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클리트가 정원을 벗어나자마자, 이사나가 그의 걸음을 잡았다.

16553720669668.jpg“선물이 잘못됐기는 했어도, 다들 가주님을 위해서 준비한 겁니다.”

16553720669655.jpg“…….”

16553720669668.jpg“다 가주님이 좋아서 그런 건데, 표정 좀 풀면서 말씀해주시죠.”

이사나는 왜 자신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는지, 내뱉고 난 뒤 후회했다. 하지만 이클리트가 아멜리아를 안고 있는 모습에. 그녀 또한 너무 당연하다는 듯 그에게 안겨 저토록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져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클리트는 그런 이사나의 모습에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속을 꿰뚫었다.

16553720669655.jpg“그 좋아하는 감정에 불순함이 섞였다면.”

16553720669668.jpg“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존경심…….”

16553720669655.jpg“그래서 그대도 존경심인가?”

예전과 달리 제법 날카롭게 묻는 이클리트의 말에 이사나는 순간 입을 열 수 없었다.

16553720669655.jpg‘왜 존경심이라고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 거지?’

이클리트는 그런 이사나를 보며 짧게 입을 열었다.

16553720669655.jpg“대답이 없군.”

이사나는 그제야 겨우 정신 차리고서 말했다.

16553720669668.jpg“존경심입니다.”

16553720669655.jpg“너무 늦다. 진심은 곧장 튀어나오기 마련이지.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진심을 감출 때나 하는 짓이야.”

16553720669668.jpg“…….”

16553720669655.jpg“하지만 그대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자신의 마음을 잘 정리하도록 해. 끝까지 존경심으로. 그렇지 않으면.”

일순, 이클리트의 시선이 날카로워지면서 아멜리아를 안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16553720669655.jpg“그 감정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테니. 그대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고, 의무를 잊지 마.”

이클리트는 이사나에게 대놓고 경고를 남긴 채 떠났다. 이사나는 그 모습에 답답한 숨을 삼키다가,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16553720669668.jpg“미쳤네, 진짜.”

그런 말은 왜 한 거야. 그것도 감히, 대공 전하이자 그분의 남편에게 이런 도발적인 말을 한 거야? 목숨이 여러 개인가?

16553720669668.jpg‘살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살고 싶어서 내가 무슨 짓을 했었는데. 고작 여기서 이런 식으로 죽으려고 한 건가?’

이게 다 카마리 경이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런 거다. 사랑에 빠지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서.

16553720669668.jpg‘당연히 이유가 필요하지. 그것도 아주 어렵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그런 이유라도 있어야, 제 마음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이사나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허탈한 미소를 그렸다.

16553720669668.jpg“이제 순수하게 생일 선물도 못 주겠네.”

아니, 사실 준비하지 못했다. 다른 티어들처럼 평범하게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16553720669668.jpg‘내가 정말 감히 주인에게 불순한 관심이 생긴 건가.’

곤란한데…… 그녀에게 남편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가까워지면 안 되니까.

16553720669668.jpg“절대 말도 안 돼.”

  ***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얼굴을 꼼꼼히 가린 채,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풀어진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선 안 됐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정신을 차린 아멜리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20754088.jpg“머, 머리가…….”

16553720669655.jpg“비올렛 궁에 당도하면 치료사를 부르겠습니다.”

아멜리아는 가깝게 울리는 이클리트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16553720754088.jpg“이게 대체…….”

자신이 왜 그에게 안겨 있는 거지?

16553720669655.jpg“싫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덤덤한 이클리트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발끈하며 발버둥 쳤다.

16553720754088.jpg“내려주세요!”

완전히 정신을 차린 듯한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이클리트는 걸음을 멈추고서,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살짝 비틀거렸지만, 이클리트가 뻗은 손을 차갑게 쳐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16553720754088.jpg“대체, 어떻게 된 거죠?”

16553720669655.jpg“부인께서 취하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영지민들에게 보일 수는 없으니까요.”

이클리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아차, 싶었다.

16553720754088.jpg‘세상에. 초콜릿에 든 술로도 취하는 거야?’

나, 정말 술에 약하구나. 하지만 이 술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여전히 온몸에 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렇기에, 취기를 핑계 삼아 그때처럼 용감해졌다. 아멜리아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남아 있는 초콜릿이 손끝에 걸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보고 있는 이클리트의 모습에 살짝 울컥하며 초콜릿을 건넸다.

16553720754088.jpg“술을 마시면, 사람이 솔직해지더라고요.”

16553720669655.jpg“…….”

16553720754088.jpg“대공 전하도 이걸 먹고, 솔직하게 말해줘요.”

16553720669655.jpg“내가 취해서 솔직해지면, 부인이 곤란해질 겁니다.”

16553720754088.jpg“그래서 또 거절인가요? 이제 내 말은 하나도 안 들어주는 거군요. 어차피 이제 다 들켰으니까?”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격앙된 감정이 점점 그녀 안에서 차오르며 밖으로 터져 나왔다.

16553720754088.jpg“나한테 복종한다더니. 진짜 하나같이 다 거짓말이었네요. 이제 나는 대공 전하에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로 나를, 그저 이용만 하고. 그렇게 황제가 되려고…….”

물론, 애초에 그렇게 시작된 관계다. 자신도 이분을 이용하고, 이분도 자신을 이용하고.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여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계약 관계.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16553720754088.jpg‘나한테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지 말았어야지. 그런 배려가 독이 되잖아. 내가, 진짜라고 믿어버리잖아.’

아멜리아는 차마 그가 하는 진심을 들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취기에 기대어,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나 보다.

16553720754088.jpg‘차라리 잘됐어. 잘된 거야. 나도 이쯤에서 마음을 정리해야…….’

그때, 이클리트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서는 그녀가 내밀었던 초콜릿을 집었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가 움찔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가 초콜릿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 혀끝으로 조금은 쌉싸름하게 번지는 맛을 느끼며 속삭였다.

16553720669655.jpg“솔직한 게 필요하다면.”

16553720754088.jpg“…….”

16553720669655.jpg“같이 더 취해보죠.”

그가 아멜리아의 목덜미를 당기며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곧장 입안으로 지독하게 번지는 아찔한 향기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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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를 밀어내고자 바동거렸으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든 그의 손이 사슬처럼 단단히 그녀를 휘어 감았다. 이윽고 벌어진 그녀의 입술 너머로 눅진하게 내려앉는 호흡이 그녀를 온통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잘게 숨을 헐떡이다가, 결국 스스로 입을 벌려 그가 쏟아내는 향기에 함께 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살며시 입술을 뗐다. 달큼한 공기가 둘 사이에서 위태롭게 오갔다. 이클리트는 젖어 있는 시선으로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정말로 솔직하게 읊조렸다.

16553720669655.jpg“당신이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니.”

16553720754088.jpg“…….”

목덜미를 감싸던 그의 손가락이 조심조심 그녀의 뺨을 더듬으며 애타게 말했다.

16553720669655.jpg“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전부야.”

이클리트는 금방이라도 다시 그녀의 숨을 들이켤 듯, 다가와 그녀의 입술 끝에 맹세하듯 속삭였다.

16553720669655.jpg“난 언제나 당신의 수호신인데. 당신이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줄 만큼. 그렇게. 너무 원해서 그랬어.”

그때,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뜨겁게 달았던 그녀는 손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심장이 서걱였다. 그가 전한 것은 바로 편지. 바로 그녀가 그에게 원한다고 했던, 그 편지였다.

16553720754088.jpg“대공 전하…….”

16553720669655.jpg“늦었지만, 생일 축하해요.”

아멜리아는 그의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을 읽었다. 아멜리아는 천천히 편지를 열었다. 낯익은 필체. 유모의 필체라고 알고 있었던 필체는, 역시 그의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 항상 유모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다정한 속삭임. -소중하고 또 소중한- 이클리트의 떨리는 목소리 끝에서 모든 진실이 쏟아졌다.

16553720669655.jpg“나의 제비꽃이여.”

아멜리아는 그가 준 편지를 꽉 움켜쥐고서, 아무 말 없이 등을 보였다. 이클리트는 멀어지는 아멜리아를 붙잡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이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16553720669655.jpg“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한껏 슬픔과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가 아멜리아의 심장에 사정없이 박혔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서지 않은 채, 파들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서 계속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클리트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흐느끼는 숨을 삼켰다. 아직 더 큰 진실은 내뱉지 못했다. 그로 인해 그녀가 더 많이 아플 테지만. 더 미움 받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기에.

16553720669655.jpg‘하지만 이 진실을 듣는 순간은 아멜리아, 당신이 선택해야 해.’

  *** 침실로 돌아온 아멜리아는 그가 준 편지와 로사 유모가 준 편지를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헛된 짓임을 알지만. 이미 모든 진실이 그녀의 눈앞에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한 글자, 한 글자 비교하고 확인하며 마침내 인정해야 했다.

16553720754088.jpg“대체 어떻게. 언제부터. 왜…….”

생각이 자꾸만 여기서 멈춰버렸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나아가지 못한 채 그녀를 제자리로 잡아끌었다. 이 편지를 그가 썼다면. 정작 이 편지를 써야 했던 로사 유모는 지금 어디 있는 건지. 자신의 편지를 왜 로사 유모가 받지 못한 건지. 아멜리아는 지금 당장 그 진실까지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피오레 공작가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인과 하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며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를 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각각의 침실이 생겼다. 물론 신혼이 끝나면, 개인 침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언제나 두 분은 다른 이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애정 행각을 보이곤 했다. 보통은 대공 전하께서 가주님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 곁을 지켰었다. 그러나 더는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식사도 각자 하거나, 혹여나 함께 할 때도 아주 긴 식탁의 끝과 끝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만 했다. 음식의 반을 남긴 아멜리아가 나이프를 내려놓자, 마미가 곧장 이클리트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16553720669651.jpg“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그럼 후식을 준비할까요? 대공 전하께서도 거의 다 드신 것 같은데, 같이…….”

16553720754088.jpg“아니.”

아멜리아는 마미의 말을 잘라내며 먼저 몸을 일으켰다.

16553720754088.jpg“후식은 됐어. 피곤하니 먼저 쉴래.”

16553720669651.jpg“예? 아. 네…….”

이내 이클리트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아멜리아가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클리트 역시 그런 그녀를 감히 쳐다보지 못한 채, 역시나 음식의 반을 남기고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곳에 있던 하인들과 하녀들은 숨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두 분 사이에선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피오레 공작가 부부의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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