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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시작은 역시 그 편지(2) (75/199)

75화. 시작은 역시 그 편지(2)2021.09.20.

1655372152274.jpg“서로 외롭지 않게 같이 기다리면 되겠네요.”

이클리트는 로사의 말이 같잖았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기 위한 입바른 소리겠지.

16553721522746.jpg‘쓸모없는 짓이야.’

애초에 마음 따위 없으니까. 이 심장은, 얼어붙은 채 이대로 부서져서 멈춰야 해.

16553721522746.jpg‘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으니까.’

이클리트는 더더욱 로사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16553721522746.jpg“내 눈에 띄지 마. 명령이다.”

그렇게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로사는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1655372152274.jpg“역시. 쉽지 않겠네. 그래도.”

로사는 어쩐지 조금 무거운 눈빛으로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1655372152274.jpg“너무 늦지 않게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자신에겐 시간이 없고, 주어진 시간 내로 꼭.

1655372152274.jpg‘저분의 마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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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클리트가 머무는 저택엔 고용인이 별로 없었다. 그가 귀찮다는 이유로 전부 내쳐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시간별로 잠깐 와서 저택을 돌봤는데, 지금 시각엔 저택 안에 아무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걸 이클리트는 알았다.

16553721522746.jpg‘전부 카힐로 짓이지.’

이클리트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후 로사와 계속 부딪히긴 했으나, 대부분 이클리트가 무시했다. 하지만 슬슬, 그 여자조차 눈에 거슬렸다.

16553721522746.jpg‘어떻게 내쫓아야 하지? 위협을 하고, 협박해도 안 먹혀. 진짜 이상한 여자야.’

심지어 카힐로 몰래 야성을 보였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정말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미친 건지. 아무리 싫은 소리를 해도 그냥 능청스럽게 웃고 넘기는 꼴에 더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따랑-! 저택으로 손님이 왔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무시했다. 그러나 계속 시끄럽게 종이 울렸기에, 이클리트는 한껏 굳어진 표정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16553721522746.jpg‘아무도 없는 건가. 하아…….’

이클리트가 문을 열자, 편지 배달부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 편지가 당도했습니다.”

16553721522746.jpg“편지? 그딴 게 올 리가 없는데?”

1655372152274.jpg“로사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데요? 체자렛 백작가에서 보냈습니다.”

16553721522746.jpg“로사? 그 여자?”

이클리트는 얼떨결에 편지를 받았다. 정말로 편지 봉투에 로사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는 더더욱 험악해진 표정으로 편지를 버리려는 순간, 잠시 멈칫하면서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6553721522746.jpg“아멜리아 체자렛.”

이름을 되뇐 순간, 그답지 않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16553721522746.jpg‘요즘 같은 세상에 마법 통신구가 아니라 편지를 보내다니. 그 여자한테 소중한 사람인가?’

이클리트는 생각이 다른 쪽으로 튀었다. 그 이상한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차라리 소중한 걸 엉망으로 만들어서 제 발로 여길 나가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못된 생각이었다.

16553721522746.jpg‘괜찮은 방법이야.’

이클리트는 거칠게 편지를 열었다. 그런데 정갈한 편지에 담긴 내용을 읽는 순간, 심장이 아릴 만큼 뛰었다. -유모, 나 아멜리아야. 편지 보낼 수 있게 주소 보내줘서 고마워. 잘 지내고 있지? 난 유모 없이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아. 밤은 여전히 나한테 너무 캄캄해. 그래서 매일매일 무서워. 언제나 유모가 보고 싶어. 우리가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약한 소리 해서 미안해. 또 하루를 잘 견뎌볼게. 하지만 유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참기 어렵기도 해.-

16553721522746.jpg“뭐야, 이 편지는.”

예쁜 필체와 달리, 편지에서 묻어나는 감정이 자꾸만 이클리트의 시선을 잡았다. 고통이 느껴지는 편지였다. 좋다는 말도, 괜찮다는 말도 없었다. 억지로라도 견뎌보겠다는 말. 참아보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도와줬으면 하는 간절한 애원. 평소의 그였다면 이딴 나약한 단어가 쓰인 편지, 무시했을 텐데. 이클리트는 계속해서 같은 문구를 보고 또 봤다.

16553721522746.jpg“또 하루를 견딘다라…….”

자조적인 어조와 함께 심장이 울컥거렸다. 그 역시 하루를 견디고, 또 견뎠으니까. 그때, 저택 안으로 로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이클리트가 들고 있는 편지를 보며 움찔했다.

1655372152274.jpg“어머, 죄송해요. 아무래도 주소를 잘못 적은 모양이에요. 그래도 이쪽으로 와서 다행이네요.”

16553721522746.jpg“무슨 말이지?”

1655372152274.jpg“모르셨어요? 대공 전하와 저희 집이 그리 멀지 않답니다.”

로사가 손을 내밀자, 이클리트는 살짝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편지를 주며 슬쩍 물었다.

16553721522746.jpg“그 여잔, 누구지?”

그러자 로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1655372152274.jpg“세상에. 처음으로 저한테 질문을 주셨네요.”

16553721522746.jpg“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1655372152274.jpg“후훗. 남부에서 제가 보살폈던 아가씨지요. 아니, 제 딸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많이 아프시답니다.”

아프다는 말에 이클리트는 움찔했다.

16553721522746.jpg“……어디가?”

1655372152274.jpg“심장이 좀 안 좋으시죠. 좀 괜찮아지셨나? 아가씨를 떼어놓고 와서 계속 맘이 걸렸거든요. 그래서 주소를 알려줬는데…….”

빠르게 편지를 읽던 로사도 이클리트와 같은 감정으로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클리트는 그런 로사의 표정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롭게 새어 나왔다.

16553721522746.jpg“딱 봐도 너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버리고 온 거야? 아프다니까, 귀찮아서? 필요 없어진 거야?”

16553721522746.jpg‘아바마마가 날 버렸던 것처럼?’

가시 돋친 말을 내뱉다가, 순간 감정이 욱해서는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할 뻔했다. 지금껏 무슨 말을 해도 변화가 없었던 로사는 처음으로 아픈 표정을 띠며, 이클리트를 응시했다. 이클리트는 그 시선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16553721522746.jpg“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내가 틀린 말 했어?”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

그때, 로사가 이클리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16553721522746.jpg“뭐, 뭐 하는 거야?”

1655372152274.jpg“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16553721522746.jpg“뭐? 그게 무슨 헛소리…….”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 저는 곧 죽어요.”

로사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깨를 붙잡은 그녀의 손길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떨리고 있었다.

1655372152274.jpg“그때도 말씀드렸잖아요?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너무 앙상했다. 그녀를 자세히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그녀는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

16553721522746.jpg“……죽는다고?”

1655372152274.jpg“그래서 고향으로 내려왔답니다.”

16553721522746.jpg“치료사는?”

로사는 허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2152274.jpg“아가씨를 두고 올 때, 정말 많이 고민했답니다. 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죠. 제가 죽는 모습을 아가씨께 보일 수는 없었어요. 왜냐면. 아가씨도 시한부니까요.”

이클리트는 그 말에 심장이 쿵 하면서 충격에 잠시 숨을 멈췄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되뇌었다.

16553721522746.jpg‘내가 왜 지금 충격받은 거지?’

1655372152274.jpg“제가 아가씨 앞에서 죽으면, 분명 아가씨는 모든 걸 포기할 거랍니다. 대공 전하와 비슷하게 외롭고, 아프신 분이에요. 제가 없으면 그 곁에 아무도 없죠. 저는 아가씨가 어떻게든 사셨으면 합니다.”

16553721522746.jpg“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 거지?”

1655372152274.jpg“제가 죽어도, 아가씨가 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강해지실 때까지. 전 살아있어야 합니다.”

이클리트는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655372152274.jpg“그러니 대공 전하, 저를 대신해서 편지를 써주세요.”

16553721522746.jpg“뭐?”

1655372152274.jpg“제가 설령 이 세상에 없더라도, 아가씨께 편지가 전해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이클리트는 냉소를 그리며, 로사의 손을 뿌리쳤다.

16553721522746.jpg“헛소리하는군. 감히 누구한테 그딴 걸 부탁하는 거지?”

로사는 이클리트에게 다시 아멜리아의 편지를 쥐여 주었다.

1655372152274.jpg“생각해보고, 결정해주세요. 이 편지는 대공 전하께 맡기겠습니다.”

16553721522746.jpg“집어치워.”

말은 그래도, 손에 잡힌 편지를 움켜쥐기만 할 뿐, 버리진 못한 채. 그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띠며 로사에게 등을 보였다. 로사는 멀어지는 이클리트의 뒷모습을 보며 떨리는 숨을 삼켰다.

1655372152274.jpg‘조금 더 친해진 후에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저 편지를 버리지 않은 것에 걸어봐야 하나.’

부디, 제대로 시작할 수 있기를. 그녀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1655372152274.jpg‘아가씨를 살리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침실로 돌아온 이클리트는 계속 자신의 손에 걸려 있는 편지를 한 번 더 보았다. 견뎌보겠다는 말. 참기 힘들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전부 나약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인데. 왜 이렇게 눈을 떼지 못할까.

16553721522746.jpg‘곧, 죽는다고…….’

그럼 아주 잠깐이면 되는 건가? 어쩐지,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머릿속을 맴돌면서 거슬리게 하는 건 사양이었기에. 이클리트는 짜증 섞인 한숨을 삼키곤, 다시 침실을 나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로사 앞에 편지를 집어 던졌다. 로사는 다 끝난 건가, 싶어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가 던진 건 아멜리아의 편지가 아닌 텅 빈 종이였다.

16553721522746.jpg“불러줘.”

1655372152274.jpg“네?”

16553721522746.jpg“네가 불러주면, 내가 그대로 쓸 테니까.”

잠시 멍하니 있던 로사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뻗었다.

1655372152274.jpg“정말, 정말 감사해요, 대공 전하!”

16553721522746.jpg“오지 마.”

1655372152274.jpg“에이.”

16553721522746.jpg“감히 날 안을 생각하지 마. 이걸로 친해졌다는 생각도 절대 하지 말고.”

여전히 차갑고 냉정했지만, 로사는 이 한 걸음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확신했다. 이후, 로사가 이클리트에게 편지 내용을 말해주면, 이클리트는 그대로 편지를 써서 아멜리아에게 보냈다. 편지의 마지막 문구는 항상 똑같았다.

1655372152274.jpg“그럼 마지막으로…….”

16553721522746.jpg“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제비꽃이여.”

1655372152274.jpg“오! 맞아요.”

16553721522746.jpg“귀에 딱지 앉겠어. 대체 이 문구는 왜 자꾸 넣는 거야? 완전 낯간지러운 말이야.”

1655372152274.jpg“아가씨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제비꽃이에요.”

16553721522746.jpg“아주 약해빠진 것만 좋아하는군.”

1655372152274.jpg“약하다니요. 그렇지 않아요. 제비꽃은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든 자라는 들꽃이에요.”

16553721522746.jpg“…….”

1655372152274.jpg“몹시 작고 여리어 보이는 꽃이지만, 사실은 강하고 너무 예쁜 꽃이죠. 저는 아가씨가 비록 지금은 심장이 약하지만, 꼭 건강해지셔서 이 제비꽃 같은 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련해지는 로사의 목소리를 따라서, 이클리트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1655372152274.jpg“제비꽃처럼 강하고 예쁘게. 그 심장이 피어나길 바라요.”

로사의 말에 이클리트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16553721522746.jpg“이 여자 말이야.”

1655372152274.jpg“아멜리아 아가씨요?”

16553721522746.jpg“……건강해질 수 있는 거야?”

로사는 이클리트의 말에 어쩐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1655372152274.jpg“방법이 있을 거예요.”

16553721522746.jpg“정말?”

1655372152274.jpg“예.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가씨께서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운 내셔야죠.”

16553721522746.jpg“그 방법이 뭔데? 당장 찾아서 주면 되잖아.”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께서 주실 건가요?”

16553721522746.jpg“뭐?”

1655372152274.jpg“방법이 있다면, 대공 전하께서 찾아서 주실 거냐고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짧게 속삭였다.

16553721522746.jpg“이 여자가 다 나으면. 이런 귀찮은 일 안 해도 되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로사는 이클리트의 대답에 떨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655372152274.jpg“그 약속, 잊지 마세요. 꼭. 대공 전하께서 찾아주셔야 해요.”

16553721522746.jpg“그러니까 그 방법이 뭐냐고.”

1655372152274.jpg“아직은 찾을 때가 아니에요.”

16553721522746.jpg“그게 뭐야.”

1655372152274.jpg“지금은 열심히 아가씨께 편지를 보내주세요.”

이클리트는 로사의 말이 영 이해 가지 않았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제비꽃을 제일 좋아한다는 말에. 어느 순간 편지를 보낼 때, 시들지 않는 제비꽃을 한 송이씩 넣어서 같이 보냈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수인의 능력이 발현되고, 처음으로 이 능력을 자신을 위해 써본 것은. 그토록 엄청난 능력을 고작 제비꽃 하나 피우는 데 쓰다니. 하지만 이클리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마주했다.

16553721522746.jpg‘조금은, 쓸만하구나.’

  *** 편지를 보낸 지, 여러 달이 흘렀다. 매번 로사와 편지를 의논하고, 로사가 말해주는 대로 썼는데.

1655372152274.jpg“오늘은 직접 써보시겠어요?”

16553721522746.jpg“뭐? 아니. 싫어. 난 못 해.”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는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대공 전하께서 해주셔야 하잖아요. 해주시기로 했잖아요.”

로사가 이클리트를 빤히 쳐다보면서 압박했다. 이클리트는 기가 막혔다. 대체 이 여자는 언제 이렇게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게 된 거지?

16553721522746.jpg‘아닌가. 내가 너무 이 여자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 건가.’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마음 따윈 없으니까. 아니,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로사가 아닌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멜리아, 그녀였다. 점점. 그는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게 됐다. 처음과 달리, 그녀의 편지가 달라지기 시작했으니까. 더는 견디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매일은 유모가 있어서 항상 선물처럼 특별해. 하루를 선물처럼 채워져서 고마워. 내일도 덕분에 마찬가지로 행복할 거야 유모가 주는 제비꽃이 항상 내게 힘을 줘. 느리지만 조금씩, 언젠가 나도 나만의 제비꽃을 피우고 싶어. 피울 수 있겠지? 유모가 그랬잖아. 내 심장에도 분명 씨앗이 있다고. 조금 늦어도, 늦은 만큼. 더 예쁜 꽃을 피울 거라고 말이야.-

16553721522746.jpg‘내가 줬던 제비꽃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저 막연하게 상상했던 소녀가 환하게 웃으니, 그 역시 절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께는 고마워요.”

16553721522746.jpg“갑자기 무슨 소리야?”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 덕분에 아가씨가 강해지고, 달라지고 계시니까.”

16553721522746.jpg“그건 네 편지 덕분이야.”

1655372152274.jpg“대공 전하께서 주시는 제비꽃, 그게 큰 힘이 되고 있잖아요?”

로사의 말에 이클리트는 잠시 멈칫하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16553721522746.jpg“……그게 정말 힘이 될까? 내가. 누군가에게 손 내밀 수 있다고?”

1655372152274.jpg“이미 그 편지가 증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대공 전하께서 쓰실 수 있어요. 아니 이제 대공 전하께서 하셔야 해요.”

자신이 누군가를 이렇게 달라지게 한다는 사실. 이클리트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괴물이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게.

16553721522746.jpg‘내가, 살아 있어도 되는 건가.’

이클리트는 한 문장이 계속 눈에 박혀,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하루를 선물처럼 채워져서 고마워. 내일도 덕분에 마찬가지로 행복할 거야.-

16553721522746.jpg‘내일도. 또 그다음 내일도. 나도 기다리고 싶어졌어.’

그녀가 보내는 편지 또한 그에게 위로가 되고, 유일한 온기가 됐다. 처음엔 거슬렸다가, 이후 동질감이 되고 지금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심장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했다.

16553721522746.jpg“알았어. 내가 쓸게, 이제.”

그렇게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향한 마음으로 직접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제가 아가씨께 선물 같은 순간을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의 편지를 읽고, 보내는 이 순간도 제겐 가장 특별한 순간입니다. 아니, 아가씨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조차 정말 행복합니다. 하루하루. 모든 순간을 아가씨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가씨가 피울 그 꽃을 기다립니다. 늦어도 분명, 예쁜 꽃을 피울 테니 포기하지 말아요.- 이클리트는 그녀에게 보낼 제비꽃을 소중히 피워선, 나직이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16553721522746.jpg“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제비꽃 아가씨.”

또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예전엔 지긋지긋했던 이 소리가 이제 더는 싫지 않았다. 여러 감정이 쌓이고 또 쌓였다. 처음엔 거슬리고, 귀찮았지만. 점점 기다리면서 조급해지고.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웃게 되었다. 꽁꽁 얼어 있던 심장이 마음을 얻어서 결국.

16553721522746.jpg‘살아 있어서. 이 마음에 그녀를 담을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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