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더 벌어진 간극2021.10.01.
이클리트는 아멜리아가 무사히 마미와 합류하는 걸 본 뒤, 마미에게만 말하고서 산으로 돌아갔다. 그는 눈을 감고, 힘을 해방하면서 산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그 도적들, 포기하지 않고 있을 거다.’
게다가 아멜리아의 말처럼 저들을 소탕해야, 차후 영지로 오가는 길이 안전할 수 있었다. 바람이 그를 향해 끊임없이 불면서 정보를 알려주었다. 땅을 딛고 움직이는 그 흔들림까지 그는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티어들은 주로 나무를 타며 움직인다. 그러니 땅에서 우르르 몰려가는 이 진동.
‘찾았다.’
마침내 그가 홍안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산의 지형이 크게 진동하며 지진을 일으켰다. 쿠쿵-! 어느 누구라도, 그분을 건드리면.
“살려두지 않아.”
바람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면서 땅을 뒤엎었다. 그리고 산속에 모여 있던 도적들은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하여 멈칫하다가, 결국 땅이 무너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악!”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도망가!”
하지만 그들 모두 발걸음이 붙잡힌 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온몸이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흐으으윽!”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상황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그들에게로 이클리트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한 손에는 서슬 퍼런 검이 쥐여져 있었다. 도망칠 수도 없게 된 도적들은 이클리트의 그 섬뜩한 기운에 짓눌린 채,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용, 용서해주십시오. 저희는 몰랐습니다. 피오레 공작 각하께서 함정에 걸릴 줄은 정말로…… 윽!”
도적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이클리트의 검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끔찍한 광경에 도적들은 말문이 막힌 채, 파리하게 굳어졌다. 그는 무심히 피를 닦아내며, 짧게 읊조렸다.
“한마디도 하지 마라. 더 끝까지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지진이 나는 방향과 바람이 부는 쪽으로 계속 쫓아왔던 아멜리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떨리는 숨을 삼켰다.
‘역시, 대공 전하께서…….’
산의 지형까지 움직일 만큼 새삼 엄청난 능력이고, 너무 위험한 힘이다.
‘숨겨야 해. 감춰야 해. 아니면 대공 전하가 위험해.’
이클리트가 다시금 검을 들고서, 이들을 죄다 죽이려는 순간. 그의 칼끝이 잠시 흔들리며 멈췄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아멜리아가 서 있었다.
“부인?”
아멜리아는 칼자루를 쥔 이클리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가만있어요. 이건 명령이에요.”
“하지만…….”
“이걸 왜 대공 전하께서 처리하고 계신 거예요? 이건 티어들이 할 일이에요. 그들의 임무이자, 불명예를 씻을 기회였다고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을 이해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그녀가 그 절벽에서 떨어져 몹시 다칠 수도 있었다. 죽을 수도 있었고. 그걸 생각하면, 도저히 저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티어들에게만 맡길 수가 없어서…….”
“얼른 저들을 풀어줘요.”
“…….”
이클리트는 영 못마땅한 표정을 띠었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짐짓 엄한 눈빛으로 엄포했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요!”
방금 전까지, 마치 마왕이 군림한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띠던 이클리트는 아멜리아 앞에 완전히 풀이 죽어서는 하는 수 없이 단단했던 땅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아멜리아는 도적들을 향해 말했다.
“당장 거기서 나와.”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땅에 박혀 있던 몸을 빼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며 도망칠 궁리를 하자, 아멜리아가 곧장 바닥을 향해 마탄을 쐈다. 타당-!
“흐윽!”
“발목 날아가기 싫으면 거기 그대로 서 있어라.”
이클리트 못지않게 싸늘한 아멜리아의 기운 앞에, 도적들은 눈을 질끈 감고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하필이면 함정에 빠진 게 저 괴물 공작 부부라니! 지금 당장 죽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아멜리아는 한숨을 삼키며,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의 이클리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대공 전하, 이제 두 번 다시 내 눈앞에서 그 힘, 쓰지 마세요. 아니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쓰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이클리트는 움찔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럼 제비꽃도…….”
“이제 그 꽃도 필요 없어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더없이 냉랭하게 그의 심장에 박혔다.
“내가 대공 전하를 더 이상.”
“…….”
“신경 쓰지 않게 해줘요.”
일순,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탁, 하고 점멸되듯, 멈춰버렸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보다 더 독한 말을 해서라도 그를 막아야만 했다.
“그 능력을 세상에 들키면 안 돼요. 대공 전하는 황제가 돼야 하고, 나는 피오레 공작가를 지켜야 하니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자신의 이 괴물 같은 모습이 방해가 된다는 말. 이클리트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이든, 전부 따를게요.”
아멜리아는 도저히 그의 상처 받은 눈빛을 마주 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티어들이 몰려왔다. 이사나는 만신창이가 된 도적들 뒤로 이클리트와 아멜리아를 보며 곧장 이클리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께서 소탕하신 겁니까?”
하지만 아멜리아가 이사나에게 대신 답했다.
“내가 했어요.”
“……가주님이요?”
“티어들의 불명예를 씻을 기회를 가로챈 건 미안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히 피오레의 가주를 공격한 일인데 역시 내가 직접 나서서 경고해줘야, 위엄 바로 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빨리, 그것도 전부 저렇게.”
이사나는 뒷수습을 시작한 티어들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십니다, 가주님. 전 대공 전하께서 하신 줄 알았습니다. 때마침 또 날씨가 도운 것 같아서요.”
이사나의 날카로운 말이 심상치 않게 이클리트에게 닿았다.
“아무래도 저 도적들, 지진 때문에 발이 묶였던 것 같은데. 대공 전하께선 항상 날씨 운이 너무 좋으셨잖아요.”
아멜리아는 괜한 오해를 꺾기 위해, 이사나에게 경고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나 보죠. 아니면 하늘이 점점 내 편이 되어주고 있던가.”
“…….”
“그것도 아니면, 이사나 경은 내 말을 의심하는 건가요? 내가 도적들 하나 소탕하지 못할 만큼, 능력이 떨어질 거라 생각해요?”
“그럴 리가요.”
이사나는 곧장 아멜리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가주님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며, 맹약했었는데.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뒷일을 부탁해요.”
“물론입니다.”
아멜리아가 먼저 걸음을 옮겼고, 이클리트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티어들에게 끌려가는 도적 중 한 놈을 붙들었다.
“거기, 너.”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닥치고, 내 말 들어.”
이사나는 그답지 않게 싸늘한 표정으로 도적의 어깨를 한껏 붙잡았다.
“혹시, 홍안을 보았나?”
“예?”
“지진이 일어났을 때. 홍안을 보았냐는 말이다.”
“저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아무것도!”
완전히 이성이 나가버린 도적의 모습에 이사나는 한숨을 쉬며,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엉망으로 헤집어진 땅을 바라보았다.
“날씨를 다룰 정도의 마나. 그 힘은 괴물인데. 그 정도 마나를 다루려면 수인뿐이고.”
이사나의 입술에서 수인이란 단어가 섬뜩하게 짓눌렸다.
‘수인이라면, 절대로 용서 못 하지.’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로 강철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 깃털이었다. 아멜리아가 절벽으로 떨어지고, 그 뒤를 이클리트가 뛰어내렸을 때. 곧장 안개와 비바람이 시야를 가렸으나, 뭔가가 크게 펄럭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바람결에 날아왔던 이 검은 깃털. 그래. 그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너무 이상할 정도로 멀쩡했다. 마치 하늘을 날았다가 착륙이라도 한 것처럼. 이사나는 그 검은 깃털을 힘껏 움켜쥐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뭐가 됐든, 클리오 대공은 정말 괴물이었네.”
*** 몇몇 티어들이 도적들을 이끌고 중앙청으로 향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동이 트는 걸 확인하고서 다시 영지로 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가 말을 살피는 걸 보고는, 그를 붙잡았다.
“대공 전하, 같이 마차에 타세요.”
“네?”
“다치셨잖아요. 다친 남편을 걱정하고 챙기는 건, 아내의 의무에요. 남들이 이상하게 보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티어들은 이클리트와 아멜리아가 다시 함께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공 전하와 가주님이 화해하신 모양이야.”
“다행이지. 요 며칠 계속 살얼음판이라서 완전 긴장했었다고.”
안도하는 티어들과 달리, 마미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다시 화해하신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방금 전, 마차까지 에스코트하는 이클리트의 행동이 어색했다. 마차 문을 열어주고, 별말 없이 올랐던 아멜리아의 모습.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던 두 사람에겐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마미는 오히려 괜찮아 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더 불안했다.
‘지금이 더 안 좋아. 차라리 대놓고 싸웠다고 티를 낼 때는, 충분히 화해할 수 있어. 서로에게 서운하다는 것도, 감정이 있을 때나 가능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서로 간의 거리감이 점점 무뎌지고, 익숙해지면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관심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인 거지? 두 분이 대체 왜…….’
자신이 그저 착각했던 걸까. 두 분의 관계는 정말로 그저, 계약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걸까. 마차에 오른 아멜리아는 곧장 눈을 감았다. 마치 이클리트가 이 안에 없는 것처럼, 그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를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색한 침묵이었고, 불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살얼음판 같은 공기라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고, 마음껏 볼 수 있으니까.
‘이걸로, 충분해.’
*** 마침내 영지에 도착하니, 미리 도착했던 카마리와 뜻밖의 인물이 함께 있었다. 바로 라니였다.
“라니?”
라니는 아멜리아에게 다가와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가주님. 오시는 길에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
아멜리아는 어울리지 않게 정중한 라니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리고 그 태도는 또 뭐야.”
라니는 쑥스러움을 참지 못하곤, 붉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촌장님 부탁으로 영지를 좀 살피러 온 거예요. 그리고 내 태도가 뭐가 어떻다고. 당연히 가주님 앞에 예의를 갖춰야지. 그때 그 모습은, 좀 잊어줘요. 기억력 너무 좋은 걸 보니까,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으신 것 같네.”
“난 괜찮아. 너도 건강해 보이네. 그리고 어색하니까, 그냥 편하게 대해도 돼.”
라니는 아멜리아의 말에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카마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아멜리아 앞에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카마리 경.”
“아닙니다. 가주님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 무겁게 받들 겁니다.”
“그건 이미 티어들이 치렀어요. 정 마음이 그러면…….”
아멜리아는 멀리, 티어들과 함께 있는 이클리트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카마리 경이 대공 전하의 상처를 좀 봐줄래요?”
“대공 전하께서 다치셨습니까?”
“조금. 근데 괜찮다면서, 치료사한테 치료받지 않으려고 하네요.”
카마리는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러십니다. 더 큰 상처도 그냥 넘어가곤 하시거든요.”
“…….”
“일단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카마리가 사라지고, 라니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께서 다치신 거예요? 그럼 가주님도?”
“난 진짜 괜찮아. 대공 전하께서, 지켜주셨으니까.”
“하긴. 대공 전하께서 가주님이 위험한 걸, 그냥 지켜봤을 리가 없지. 그 도적들, 다 잡았다면서요? 대공 전하께서 그걸 그냥 살려뒀어요?”
아멜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영지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는 땅이 제법 비옥해 보였다.
“둘러보니 어때? 물론 제대로 살펴봐야겠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아 보이는데.”
라니는 아멜리아의 말에 헛웃음을 삼켰다.
“나쁘진 않다고요? 당연히 엄청나죠! 여긴 황제 폐하께서 가주님께 하사하신 땅인데. 그냥 주신 것도 아니고, 무려 치하하면서 주신! 그런 곳을 저희에게 주다니. 처음엔 너무 믿을 수가 없어서…….”
“음. 사실 좋은 의미는 아니야. 폐하께선 이 영지를 핑계로 너희를 물건처럼 나한테 보냈거든. 그건 좀 미안해. 다음엔 내가 좀 더 노력해볼게.”
라니는 아멜리아의 말에 결국 꾹 참고 있던 눈물을 울먹이고 말았다.
“미안하긴 대체 뭐가!”
“라니.”
“처음이에요. 처음으로,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지금은 그저 말뿐이라 오히려 내가 너무 미안하지만. 절대 안 잊어요. 절대. 절대 못 잊어. 언젠가, 이 목숨을 걸고 반드시 갚을게요.”
아멜리아는 라니의 말에 조금 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함부로 그 목숨, 걸지 마.”
“…….”
“이제부터 시작이잖아.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은 거야. 아니,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어. 네가 원하는 건, 이게 끝이 아니잖아.”
아멜리아는 겨우 여기서 만족하는 라니를 조금 세게 흔들었다.
“대회의에서 루베르는 끝까지 차별이 당연한 이방인이었어. 오히려 호시탐탐 반군으로 몰아세우려고 했지.”
“반군? 말도 안 돼…….”
솔라에서 반군으로 낙인찍히면, 루베르는 끝장이었다.
“그러니까 루베르가 솔라 제국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여기서부터 시작이야. 아직 피오레도 너희를 다 인정하지 못했어.”
“……알아요. 그래서 가주님께 더 미안해.”
“이젠 너희의 능력으로 피오레 영지민으로 인정받고, 나아가 제국민이 돼야 해. 그럼 루베르 영지에 있는 그들도 제국민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생길 거야. 앞으로 할 일이 많아. 그때까지 네 목숨은 아주 소중히 아껴둬.”
아멜리아는 조금 분위기를 풀어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 미안한 게 하나 있어.”
“무슨?”
“루베르 가주를 못 만났어. 한 방 먹여주려고 했는데, 그 약속은 꼭 찾아서 지켜볼게.”
라니는 피식 웃고 말았다.
“기대도 안 했어요. 하지만 가주님한테만 맡기진 않아요. 우리도 찾아볼게요. 그자가 있어야,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황제를 만들 테니까.”
“환자들은 좀 괜찮아? 좀 더 빨리 구급 물품을 보냈어야 했는데…….”
라니는 아멜리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빨랐죠. 물품도 많이 보내줬잖아요.”
“빨랐다고?”
적어도 폐하께 치하를 받은 뒤, 피오레에 연락을 해서 물품을 보냈던 것 같은데?
“가주님이 솔라리스로 떠나고, 얼마 안 지나서 물품이 도착했었어요.”
“뭐?”
아멜리아는 라니의 말에 멈칫했다. 솔라리스에 있을 때는 하도 사건 사고가 많아서 이들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물품이라니. 무슨 물품?”
라니는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이거. 엄청 많이 보내줬잖아요.”
아멜리아는 라니가 보여준 약통을 가만히 살폈다. 하지만 이건 피오레의 물품이 아니었다.
“내가 보냈다고?”
“네. 가주님 이름으로 왔어요. 게다가 가주님이 좋아하는 제비꽃이랑 함께 왔는데?”
“제비꽃까지?”
설마 대공 전하께서 보내신 건가?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공 전하께서 굳이 자신에게 숨기고 보낼 필요는 없는데.
‘제비꽃, 제비꽃…….’
잠깐. 아멜리아는 불현듯, 뭔가가 떠올랐다.
“루베르, 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