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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수인 사냥 (81/199)

81화. 수인 사냥2021.10.11.

마을 안에서는 안전상 말을 몰 수 없었기에, 이클리트가 잠시 공동 마구간으로 간 사이. 아멜리아는 라니가 준 약의 출처를 파악하고자, 약재상을 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16553723570073.jpg“이런 약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겠는가?”

16553723570079.jpg“흠…… 이거 굉장히 고급 약품인데. 이런 걸 한두 개도 아니고, 대량으로 구매하려면 솔라리스로 가셔야 합니다, 가주님.”

16553723570073.jpg“역시 그렇겠지?”

16553723570079.jpg“예. 혹시 가주님이 필요하시면, 제가 힘 써볼 수는 있습니다.”

16553723570073.jpg“아닐세. 고마워.”

지난번, 공작가에서 열린 생일 축제 이후, 영지민들은 대부분 아멜리아의 얼굴을 익혔고, 다들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도 이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때, 상인들이 어느새 아멜리아에게 다가와 의아한 말을 했다.

16553723570079.jpg“가주님도 이번 사냥 대회에 나가시죠?”

16553723570073.jpg“사냥 대회?”

16553723570079.jpg“가서 제일 큰놈으로 잡으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

16553723570079.jpg“우리 가주님이라면 가능하지. 칼로 휙휙 하는 거랑 마탄으로 탕! 쏘는 거랑 상대가 되겠어?”

16553723570079.jpg“게다가 우리 가주님은 그 귀한 마탄을 연발로 쏘니까. 더 많이 잡으실 거야.”

아멜리아는 상인들의 말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16553723570073.jpg‘사냥 대회라고? 그게 대체 뭐지? 케이트가 그런 보고는 안 했는데?’

아멜리아의 표정에, 상인들은 그제야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16553723570079.jpg“아이고. 우리 가주님, 아직 소식을 못 들으셨나 보네.”

16553723570079.jpg“봄이 오면 귀족가 사냥 대회가 열린답니다.”

16553723570079.jpg“예. 카르티아 공작가 영지에서 열리지요. 아주 중요한 사교 모임이에요.”

16553723570079.jpg“지금은 그저 유희지만, 예전엔 수인 사냥이었답니다.”

상인의 섬뜩한 한마디에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16553723570073.jpg“수인, 사냥이라고?”

그러자 상인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16553723570079.jpg“지금이야 없어졌지만, 예전엔 그 괴물 놈들이 곳곳에서 날뛰었으니까요.”

16553723570079.jpg“다섯 공작가에서 나서서 짐승 모습을 하고 있는 그놈들을 모조리 척살했지요.”

16553723570079.jpg“그래도 여전히 반인반수는 살아있다지?”

16553723570079.jpg“더러운 것들. 사냥 대회가 유희로나마 남아 있는 것도 다 그런 놈들에게 하는 경고지요. 인간과 괴물이 어떻게 섞여서 산다고.”

16553723570079.jpg“그래서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대체 수인 같은 것들과 루베르는 어떻게 섞여서 살…….”

16553723570079.jpg“흠흠!”

말이 험하게 이어지자, 상인이 눈치껏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돌렸다. 그들은 살짝 굳어진 아멜리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루베르를 옹호하면서, 그들을 새로운 영지로 데려오려고 하니까. 아멜리아는 그들의 모습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

16553723570073.jpg‘역시. 여전히 루베르에 불만을 품고 있구나.’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 아니기에, 아멜리아는 내색하지 않았다.

16553723570079.jpg“아, 아무튼 가주님. 사슴을 잡으세요, 뭐든 크고 좋은 걸 잡아야 1등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피오레의 명예도 세우고, 우리도 덩달아 기가 살지요.”

16553723570079.jpg“예! 물론 사슴보다 좋은 건 역시 죽음의 제왕이라 불리는 검은 독수리지만.”

16553723570079.jpg“그건 불가능하지. 세상에 몇 안 남은 희귀종인데.”

그들의 얘기를 그저 듣고 있던 아멜리아는 검은 독수리라는 말에 문득, 꿈에서 보았던 그 검은 새가 생각났다.

16553723570073.jpg“검은 독수리도 있나? 보통 독수리는 갈색이지 않아?”

16553723570079.jpg“그래서 희귀종입니다, 가주님. 게다가 예전엔 수인 중 검은 독수리가 가장 포악하고 무섭기로 소문났었으니.”

16553723570079.jpg“보기에도 섬뜩한 거대한 검은 날개로 하늘을 덮으면 빛을 삼키고, 세상을 어둠과 함께 종말 시킨다는 전설이 있었지요. 죽음을 일으킨다고 해서, 죽음의 제왕이라고 불리고. 뭐, 누구는 수왕이 검은 독수리라는 말도 있지만.”

16553723570073.jpg“거대한, 검은 날개…….”

아멜리아는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저 꿈에서만 존재하는 새인 줄 알았더니.

16553723570073.jpg‘어쩌면, 내가 꿈에서 본 그 검은 새가 검은 독수리일까?’

16553723570073.jpg“혹시 그 검은 독수리에 대한 자료가 있을까?”

아멜리아가 진지하게 묻자, 상인들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16553723570079.jpg“정말 잡으시려고요? 이제 세상에 없다니까.”

16553723570079.jpg“예, 가주님. 그냥 농담한 겁니다.”

16553723570073.jpg“아니. 그냥 궁금해서…….”

16553723570079.jpg“그럼 나중에 도서관을 가보세요. 아마 자료는 남아 있을 겁니다.”

16553723570073.jpg“그렇군. 고마워.”

그때,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영지민들은 곧장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16553723570079.jpg“대공 전하 오셨습니까.”

16553723570079.jpg“가주님과 좋은 시간 되십시오.”

16553723570079.jpg“그럼 가주님, 기대하겠습니다.”

그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이클리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16553723682796.jpg“무슨 얘기 하셨습니까?”

16553723570073.jpg“곧 카르티아 공작가 영지에서 사냥 대회가 열린 다네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살짝 눈빛이 흔들렸으나, 이내 바로 잡았다.

16553723682796.jpg“……그렇군요. 벌써 그럴 시기군요.”

16553723570073.jpg“대공 전하께선 알고 계셨나요?”

16553723682796.jpg“알고는 있습니다.”

아멜리아는 어쩐지 지나치게 낮은 그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그를 보았지만, 그의 눈동자에선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16553723570073.jpg‘뭔가, 숨기시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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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723570079.jpg“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쫓아낼 거야.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

또 사고를 친 레베카를 그녀의 이모인 비앙카가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우편물이 섞이면서, 그걸 정리하다가 뜯어진 걸 호기심에 슬쩍 보다가 걸린 것이었다.

16553723570079.jpg“그냥 뜯어진 거 넣다가 본 건데. 일부러 본 것도 아니고…….”

16553723570079.jpg“뜯어졌으면 눈 감고 다시 원상 복구시키는 거야. 그걸 훔쳐보는 게 아니라!”

비앙카는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16553723570079.jpg“레베카. 네가 하도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어렵게 메이드로 넣어준 거야. 네가 여기서 잘못하면, 나도 죽는다고. 아무리 피오레 공작가가 다른 공작가에 비해 엄격함이 덜하다고 하지만, 제발 주의해.”

16553723570079.jpg“알았어, 이모.”

16553723570079.jpg“어휴, 정말.”

비앙카가 성질을 내면서 돌아서자, 레베카는 금방 입을 쭉 내밀고서 툴툴거렸다.

16553723570079.jpg“고작 메이드로 넣어준 거로 유세는.”

이런 공작가의 메이드가 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레베카는 고마운 줄 모르고 벌써 일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16553723570079.jpg“맨날 그딴 우편물이나 봐야 하고. 가주님은 생각보다 날 싫어하는 것 같고. 하! 이래서 언제 출세해서 돈 모으지?”

사실 그녀가 메이드로 들어온 이유는 이런 공작가에서 일하다 보면 괜찮은 귀족 남자를 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잘하면 부두아르의 애첩이 되어 돈 걱정 없이 살 수도 있었고.

16553723570079.jpg“근데 뭐야. 공작가라면서 무도회 하나도 안 열고. 성격이 이상해서 무도회 열어도 아무도 안 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하녀들에게서 가주님과 대공 전하의 냉전이 끝났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16553723570079.jpg“싸웠었단 말이지? 하긴 그 성격이면…… 그런 여자를 바스티얀 대공 전하는 좋아했던 거야? 그래서 그런 반지를 줬나?”

사실 레베카는 그날 슬쩍 보고 말았다. 아멜리아에게 호되게 혼나고 돌아서서 나갔는데, 바스티얀 대공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그래서 슬쩍 훔쳐봤더니, 반지에다가 거의 사랑 고백 같은 목소리가 들렸었다.

16553723570079.jpg“설마 클리오 대공 전하와 싸운 이유가 바스티얀 대공 전하 때문인가? 에이, 설마. 그럼 두 대공 사이를 지금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잖아. 대체 그런 여자가 무슨 매력이 있어서?”

레베카는 괜한 질투심에 험담을 삼켰다.

16553723570079.jpg“됐어. 이런 게 뭐가 중요해. 나한테 남자가 없잖아. 하. 뭔가 돈 될 만한 게 필요한데…….”

레베카는 주머니에서 소식지를 꺼내 들고는, 이것보다 더 괜찮은 일자리가 없나, 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바로 남작가 영애와 기사의 야반도주에 관한 소문이었다.

16553723570079.jpg“아니. 잠깐.”

순간, 레베카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정보는 즉 돈이다. 특히 이런 높은 분들의 추문은 제법 쏠쏠한 돈이 될 수 있다.

16553723570079.jpg‘꼭 사실만 팔라는 법은 없잖아. 나중에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게다가 그건 분명 사랑 고백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바스티얀 대공은 여전히 그녀에게 진심인 거다.

16553723570079.jpg“그러게 누가 의심할만한 짓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공작이면 행실을 똑바로 했어야지.”

레베카는 위험한 생각을 하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16553723570079.jpg‘괜찮아. 안 들킬 거야. 원래 말과 깃털은 바람에 멀리 난다고 하잖아.’

  ***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다시 말을 타고 공작가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마구간지기가 말을 정리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말과 친해지기 위해 직접 말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말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면서, 어쩐지 입을 꾹 다물어버린 이클리트를 힐끔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16553723570073.jpg“사냥 대회 말이에요.”

16553723682796.jpg“곧 초대장이 날아올 겁니다. 카르티아 공작가라면 가는 길이 그리 험하진 않을 테니까, 일정을…….”

16553723570073.jpg“아니요. 전 사냥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거예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16553723682796.jpg“그게 무슨…… 중요한 사교 모임이지 않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귀족이 모일 텐데.”

16553723570073.jpg“그냥. 짐승을 사냥하고 그런 거, 별로예요. 기분도 나쁘고. 사냥 대회에 그런 유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참, 아무것도 모르고 백작가에 갇혀 살았네요.”

16553723682796.jpg“……수인 사냥 말입니까?”

아멜리아는 어쩐지 그의 입에서 나온 수인 사냥이라는 단어가 더 싸하게 귓가에 박혔다.

16553723570073.jpg“솔라가 타 종족에 대한 배척이 심하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혐오가 깊을 줄이야. 이래선 루베르를 받아들이는 것도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이클리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묘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16553723682796.jpg“부인은, 수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6553723570073.jpg“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마주했다. 어쩐지 그의 눈동자에서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16553723570073.jpg“사실, 수인의 존재는 이번에 루베르 때문에 더 알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들을 일도 없었고. 역사를 공부해도 단 한 줄 뿐이니까.”

16553723682796.jpg“…….”

16553723570073.jpg“막연하게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잘못된 생각 같아요. 아직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 눈으로 확인된 사실만 본다면.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클리트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16553723682796.jpg“어째서입니까?”

16553723570073.jpg“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루베르가 수인들과 어울려 살지 못했을 테고. 그들과 사랑에 빠지지도 못했겠죠. 내가 만난 루베르는, 우리와 똑같았어요.”

생김새는 달랐지만 루베르는 우리와 똑같았다. 그렇다면 수인도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자연 속에서 정령과 공존하며 그저 살아갔을 뿐인데. 애초에 인간에게서 마법이 사라진 것도. 너무 큰 욕심으로 균열이 일어난 것인데.

16553723570073.jpg“어떻게 보면 우리가 망친 거죠. 그들 입장에선 오히려 우리가 괴물일걸요?”

마구간에 도착한 아멜리아는 백마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16553723570073.jpg“서로가 조금만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했다면. 분명 누구도 다치지 않았을 텐데.”

백마는 아멜리아에게 살짝 몸을 기댔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건, 신뢰의 의미였다.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안장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안장의 무게 때문에 그녀가 살짝 휘청이자, 이클리트가 곧장 그녀의 뒤에서 안장을 잡아주었다.

16553723570073.jpg“아, 고마워요.”

하지만 이클리트는 안장을 잡는 척, 붙잡은 아멜리아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16553723570073.jpg“……대공 전하?”

그녀가 떨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클리트는 어쩐 일인지 아멜리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공기 중으로 아른거리는 횃불의 붉은 기운이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서, 어쩐지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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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723682796.jpg“얽히지 마십시오.”

16553723570073.jpg“예?”

그의 목소리가 더없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16553723682796.jpg“수인이나 반인반수는 루베르와 다릅니다. 그들은, 괴물이에요. 얽히게 되면 부인이 위험해질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클리트의 표정은 어쩐지 괴로워 보였다. 아멜리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16553723570073.jpg“대공 전하, 혹시 검은 독수리를 아시나요?”

16553723682796.jpg“…….”

16553723570073.jpg“사람들 말로는 예전에 수왕이었다고 하던데.”

16553723682796.jpg“왜. 그런 걸 묻는 겁니까?”

자꾸, 꿈에 나오니까. 그리고 그 꿈에서 그 검은 새가 꼭, 당신 같아서…….

16553723570073.jpg“사실, 자꾸만 제 꿈에…….”

그때, 카마리와 이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16553723823828.jpg“대공 전하!”

16553723823833.jpg“가주님.”

이클리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아멜리아도 곧장 표정을 바로 했다. 카마리와 이사나는 두 사람 앞에 고개를 숙였다.

16553723682796.jpg“무슨 일이지?”

이클리트가 묻자, 카마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53723823828.jpg“대공 전하, 밀주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이사나 역시 카마리의 뒤를 이어 말했다.

16553723823833.jpg“가주님, 드디어 그 신관 녀석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곳을 말했다.

16553723823848.jpg“카르티아 공작가의 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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