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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수왕 (93/199)

93화. 수왕2021.11.22.

카르티아 공작을 만나러 가던 아멜리아와 이클리트는 갑자기 나타난 마미 때문에 걸음을 멈췄다.

16553727380957.jpg“대공 전하, 가주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미를 보았다.

16553727380963.jpg“무슨 일이야?”

16553727380957.jpg“이사나 경이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현재 피오레 공작가에서 가주님의 허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멜리아는 마미가 준 서류를 확인했다. 이건 피오레의 지하 감옥을 쓸 수 있게 허가해달라는 승인이었다.

16553727380963.jpg‘정말 그 신관을 잡았구나.’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일이 밝혀지면, 신성회는 메사리나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들의 완벽한 일에 오점을 남기게 했으니.

16553727380963.jpg‘신관을 잡아서 넘긴 건 우리라는 걸, 신성회에 확실히 해서 제대로 빚 하나를 만들어 놔야지.’

그렇게 판을 만들 때까지는, 신관을 우리 쪽에서 잡고 있어야 한다.

16553727380963.jpg‘급한 거니까, 당장 승인을…….“

순간, 아멜리아가 이클리트를 힐끔거리더니, 이내 서류를 그에게 넘겼다.

16553727380963.jpg“대공 전하, 이거 좀 부탁할게요.”

16553727380994.jpg“예? 하지만…….”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공을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이 서류도 급하니까.”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27380994.jpg“알겠습니다.”

16553727380963.jpg“죄송해요.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이클리트는 멀어지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묘하게 바라보다가,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아멜리아가 미처 확인하지 않은 두 번째 장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16553727380994.jpg“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고? 다른 한 명은 누구지?”

이름을 확인한 이클리트의 눈빛이 멎었다.

16553727380994.jpg“슈란…….”

이사나도 이자가 수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16553727380994.jpg“결국 과수원 사건은 이자의 자작극인가. 그 여우의 정체도 알고. 애초에 밀주도 이자가 사용했으니.”

16553727409304.jpg‘얼굴은 모릅니다. 밀거래 특성상, 상인도 거래자도 신상을 감추는 게 불문율이라. 근데 그날은 처음으로 그쪽에서 먼저 그 과수원 근처에서 거래하자고 했습니다.’

16553727380994.jpg‘먼저 제안했다?’

16553727409304.jpg‘예. 근데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여우를 발견한 거고.’

지난번 밀거래 꾼의 얘기를 더듬으면서, 이클리트는 확신했다. 슈란, 이자는 이 밀주를 처음 유통한 자를 알고 있다. 그것은 즉, 반인반수를 이용하는 이를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16553727380994.jpg“서둘러 공작가로 돌아가야겠군.”

  *** 아멜리아는 접견실에서 헤이츨을 기다렸다. 사실 그녀는 일부러 이클리트를 떼어놓고서, 헤이츨과 단둘이 만나고자 했다. 그에게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잠시 후, 헤이츨이 접견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헤이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공, 후야제 때 시간을 빌려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멜리아가 후야제에서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건 다 헤이츨의 배려였다. 헤이츨은 아멜리아의 인사에 정중하게 손사래를 쳤다.

16553727409328.jpg“귀족과 황실 사이에 그런 껄끄러운 소문을 쫓아서 없애는 것도 다섯 공작가가 할 일입니다. 뭐, 서로 도운 거죠. 그래도 피오레 공은 개인적으로 내게 빚을 진 거네요.”

16553727380963.jpg“언젠가 갚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의연하게 웃었지만, 속으로 살짝 긴장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는 척하면서, 빚을 졌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이자도 호락호락한 자는 아니었다.

16553727409328.jpg“그런데 굳이 따로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는 겁니까? 인사라면 하녀를 통해서 해도 상관없었는데.”

헤이츨의 말에 아멜리아는 또다시 부탁하는 입장에서 한껏 몸을 낮추었다.

16553727380963.jpg“저기, 카르티아 공에게 또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16553727409328.jpg“부탁?”

16553727380963.jpg“이곳에 솔라 제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16553727409328.jpg“당연하죠. 우린 역사를 기록하고, 지키는 가문이니.”

16553727380963.jpg“혹시 그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헤이츨은 뜻밖의 부탁에 호기심 섞인 시선을 띠었다.

16553727409328.jpg“신기하네요. 학문에 관심 있는 줄 몰랐는데.”

16553727380963.jpg“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16553727409328.jpg“알고 싶은 것?”

아멜리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16553727380963.jpg“수인.”

16553727409328.jpg“…….”

16553727380963.jpg“그중 검은 독수리, 수왕에 대한 자료도 여기 있을까요?”

더더욱 생각지도 못한 말에 헤이츨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묘한 미소를 그렸다.

16553727409328.jpg‘이런 날이 정말 오는군.’

16553727409328.jpg“수왕이라…… 그게 피오레 공이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싶다면 여기보다 자료가 자세히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16553727380963.jpg“네?”

16553727409328.jpg“제 할아버님이자 선대 공작 각하께서 수왕을 본 마지막 생존자였으니까요.”

  *** 아멜리아는 헤이츨을 따라서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솔직히, 지금 몹시 긴장되고 떨렸다. 그저 수왕에 대한 자료를 조금만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16553727380963.jpg‘수왕을 마지막으로 만난 자가 루베르도 아닌 카르티아 전 공작 각하였다니…….’

16553727409328.jpg“여기입니다.”

헤이츨이 아멜리아를 카르티아의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아멜리아는 엄청난 광경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여긴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책장도 단순한 책장이 아닌 거대한 첨탑을 이루며, 창공까지 솟구쳐 있었다.

16553727380963.jpg“대체…….”

16553727409328.jpg“이곳 전체가 솔라 제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심조심, 안쪽으로 걸어가니 거대한 나무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박혀 있는 뿌리가 드러날 정도로 엄청난 나무였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나왔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잎사귀 하나마저도 시간의 흔적이 묻어났다. 헤이츨은 숭배하는 시선으로 나무를 응시했고, 아멜리아 역시 눈을 떼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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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727380963.jpg“여기만 완전히 공간이 뒤틀린 느낌이네요.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

16553727409328.jpg“여길 지키는 나무입니다. 시간의 숲이 봉인되기 전, 거기서 가져온 묘목이었죠.”

16553727380963.jpg“시간의 숲?”

16553727409328.jpg“선대 공작 각하께서 수왕에게 선물 받은 겁니다.”

16553727380963.jpg“수왕에게 직접 말인가요?”

16553727409328.jpg“예. 이 나무는 정령의 가호를 받아서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책이 상하지 않게. 절대로 이곳이 불타지 않게.”

수왕과 그 정도로 가까웠다니.

16553727380963.jpg“선대 공작 각하께서는 그저 수왕을 본 정도가 아니었군요.”

16553727409328.jpg“다섯 공작가의 가주가 수왕과 친했다고 알려지면 곤란하니, 철저히 숨긴 겁니다. 하지만 기록으로는 남기셨죠. 이 또한 역사니까.”

헤이츨은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떤 책 한 권이 그에게로 날아왔다. 오직 카르티아 공작가를 계승한 자만이 이곳을 움직일 수 있었다. 헤이츨은 아멜리아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16553727409328.jpg“수왕, 그는 시간의 숲의 수호자였습니다. 순수 수인답게 홍안이 특징이고, 그 붉은 눈빛에 압도당해 절로 경애할 수밖에 없다는, 천상 지배자라고 하죠.”

아멜리아는 책에 적힌 기록을 읽어 내리면 내릴수록, 심장이 떨렸다.

16553727380963.jpg‘날씨를 다루고, 생명을 피우며 정령과 함께 이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자. 시간의 숲은 자연의 섭리 그 자체.’

보면 볼수록 정말로 신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16553727380963.jpg‘그럼 그때 내가 본 그 검은 독수리는 뭐였을까. 수왕일 리는 절대로 없을 것 같고.’

마주친 그 눈동자는 홍안이 아닌 푸른 눈동자였다.

16553727380963.jpg‘대공 전하를 닮은, 푸른 눈동자였어.’

이상할 정도로 기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대공 전하가 생각났다. 애써 잊고 있었지만, 황궁 지하실에서 얼핏 본 홍안. 그의 특별한 능력과 자꾸 꿈에서 보았던 그 검은 새.

16553727380963.jpg‘하지만 그분은 폐하의 아들이잖아. 아무리 사생아라고 해도…….’

그때, 헤이츨의 목소리가 아멜리아에게 닿았다.

16553727409328.jpg“수왕의 짐승체인 검은 독수리, 그 거대한 날개를 뻗어 하늘과 땅을 지배하던 모습은 흡사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16553727380963.jpg“전부 전 공작 각하께서 보셨던 건가요?”

16553727409328.jpg“예. 뭐, 개인적인 사심도 섞여 있으신 듯합니다.”

16553727380963.jpg“사심?”

16553727409328.jpg“몹시 아름다웠다고 해요, 그녀는.”

그녀라는 말에 아멜리아는 놀랐다.

16553727380963.jpg“여인이었다고요?”

16553727409328.jpg“예. 수왕은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이었구나. 사실 막연하게 황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16553727409328.jpg“세상은 수인을 해치고 시간의 숲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수인은 그런 인간을 피해 완전히 종적을 감췄고, 정령은 시간의 숲을 봉인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열었습니다. 인간에게서 마법이 사라진 역사였죠.”

16553727380963.jpg“…….”

16553727409328.jpg“정령은 절대로 인간들이 소유하여 무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여전히 세상은 시간의 숲을 원하고 있죠. 아무튼 이후 수인에 대한 모든 기록은 끊어지게 됩니다. 전 공작 각하께서도 이후 돌아가실 때까지 보신 적이 없다고 해요.”

어쩐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전설을 슬쩍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16553727380963.jpg“시간의 숲을 다시 열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하다고. 그 열쇠는 특별한 수인만이 가지고 있다고, 대회의에서 그러셨죠.”

아멜리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헤이츨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27409328.jpg“정확하진 않지만, 전해지는 얘기는 그렇습니다.”

16553727380963.jpg“루베르는 그 특별한 수인에 대해서 아는 걸까요?”

16553727409328.jpg“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루베르를 이용하려고 한 것뿐. 누구든 시간의 숲을 가지면, 마법을 가지는 유일한 제국이 될 테고, 그럼 단 하나의 대국이 될 테니. 아마 욕망이 끝나지 않는 한, 언젠가 전쟁은 일어날 겁니다.”

16553727380963.jpg‘전쟁.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가져야 하나.’

16553727380963.jpg“그 특별한 수인은 수왕일까요?”

16553727409328.jpg“글쎄요. 어쩌면 수왕도 그 열쇠를 찾기 위해 숨은 걸지도 모르죠. 그들은 고향을 잃은 거니까요.”

아멜리아는 고향이라고 말하는 헤이츨의 말이 묘하게 마음에 맴돌았다.

16553727409328.jpg“특별한 수인에 대해 학자의 호기심으로 조금 찾아봤지만, 자세한 건 없었습니다. 몇몇 단어는 기억에 남지만.”

16553727380963.jpg“단어요?”

16553727409328.jpg“‘해와 달이 하나가 될 것이다.’ 특별한 수인에 관한 자료에 가장 많이 나온 말입니다.”

16553727380963.jpg“해와 달.”

아멜리아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렵기만 했다.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공은 수인을 본 적 있으신가요?”

16553727409328.jpg“없습니다. 사실 이 기록도 완전히 믿진 않습니다.”

16553727380963.jpg“어째서요?”

헤이츨은 아멜리아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16553727409328.jpg“본 것만 믿는 게 역사학자입니다. 역사는 가끔 승자에 의해 이야기처럼 쓰일 때가 있죠. 전설이 그런 것이고. 이 기록은 어쩌면 전 공작 각하, 제 할아버님의 감정이 섞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16553727380963.jpg“그렇다는 건…….”

16553727409328.jpg“수인을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어서, 지켜주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멜리아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 가지 의문이 떨쳐지지 않았다.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전 공작 각하께서 그 정도로 수인과 친했다는 건 비밀인 것 같은데, 왜 저한테는 이렇게까지 말씀해주시는 거죠?”

16553727409328.jpg“전 공작 각하의 유언이었습니다.”

16553727380963.jpg“예?”

16553727409328.jpg“누군가 수왕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정확히 알려주라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피오레 공은 비슷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16553727380963.jpg“예?”

헤이츨은 기묘한 시선으로 아멜리아를 응시했다.

16553727409328.jpg“오직 피오레 공만이 루베르의 편에 서 있습니다. 물론 공이 루베르가 필요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들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수왕과 수인에 대해서 알려는 것도 그렇고.”

16553727380963.jpg“…….”

16553727409328.jpg“수인과 반인반수도 그저 살아가는 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까?”

정확히 제 생각을 꿰뚫어버린 그의 혜안에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16553727380963.jpg‘설마 날 이해하는 걸까? 그렇다면 어쩌면…….’

아멜리아는 일말의 기대심을 품고서 헤이츨에게 말했다.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공은 누구의 편이죠?”

헤이츨은 아멜리아의 속내를 깨닫고서 차갑게 웃었다.

16553727409328.jpg“너무 앞서가지 마시죠, 피오레 공.”

16553727380963.jpg“…….”

16553727409328.jpg“피오레 공이 클리오 대공 전하를 황제로 만들려고 한다는 건, 대회의에서의 행보를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으론 순수혈통이 솔라를 이끌어야 잡음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헤이츨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냉정하게 말했다.

16553727409328.jpg“만약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황제가 되시면, 솔라는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 신성회도, 장로회도, 순수 혈통 귀족들도 반기를 들 테죠. 그렇게 되면 지금의 솔라는 무너집니다.”

16553727380963.jpg“애초에 솔라는 평등한 태양의 정신 아래, 오직 능력만으로 황제를 결정했어요. 다섯 공작가의 심판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아멜리아는 헤이츨 앞에 물러서지 않았다.

16553727380963.jpg“솔라는 벌써 조금씩 무너지고 있어요. 순수 혈통주의. 그런 좁은 생각과 차별은 진정한 태양의 정신이 아니에요.”

16553727409328.jpg“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미 뿌리 깊게 내려 있는 그 생각을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그런 능력이 있는 겁니까?”

헤이츨은 순식간에 아멜리아에게 다가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16553727409328.jpg“날 원하면, 내 마음을 설득할 걸 보여주십시오. 클리오 대공 전하의 능력을 말입니다. 솔라에 새로운 역사를 쓸 황제가 될 수 있을지.”

아멜리아는 헤이츨의 말에 엷은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에 헤이츨은 고개를 갸웃했다.

16553727409328.jpg“왜 웃는 겁니까?”

16553727380963.jpg“카르티아 공은 적어도 편견은 없으니까요. 능력을 보여주면, 제 손을 잡겠다는 거잖아요.”

16553727409328.jpg“쉽지 않을 텐데요.”

16553727380963.jpg“쉽지 않아도 기회는 주어진 거니까. 결과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할 겁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안다. 차별당하고 버려지는 이들은,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까.

16553727380963.jpg‘적어도 포르티셰 공작보다는 수월할 것 같아.’

루베르와 함께 카르티아까지 함께 한다면.

16553727380963.jpg‘대공 전하께선 완벽한 황제에 오르실 수 있어.’

헤이츨은 망설임이 없는 아멜리아의 의지에 다시금 표정을 풀었다.

16553727409328.jpg“기대하도록 하죠. 그럼, 돌아갈까요?”

16553727380963.jpg“아,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16553727409328.jpg“도움이 되었다면 저도 영광입니다.”

16553727380963.jpg“다음엔 더 가까이에서 많은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아멜리아는 의도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고, 헤이츨도 마찬가지로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27409328.jpg“과연 손을 마주 잡고 얘기할 날이 있을지, 기대되는군요.”

헤이츨은 도서관을 나가는 아멜리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16553727409328.jpg“할아버님의 유언을 지키는 날이 오다니.”

돌아가시기 전, 몹시 중요하다며 남긴 말이었다. 솔라에서 누군가 수왕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면, 전부 알려주라고. 사실 솔라에서 수왕이나 수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급하는 것조차 저주받는다며, 금기시하는데. 그런데도 궁금해한다는 건.

16553727409328.jpg‘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가령, 수인을 봤다거나. 안다거나.’

할아버님은 왜 수왕에 대해서 알려주라고 하셨을까. 거기까진, 아직 자신의 혜안이 부족한 것 같았다.

16553727409328.jpg“요즘 솔라는 참 재미있군. 생각지도 못한 여인이 피오레 공작가의 가주가 되고, 클리오 대공은 황위를 원하고.”

처음엔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클리오 대공을 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6553727409328.jpg‘과연 내가 기록하는 역사에 훗날, 새로운 황제로 누구의 이름을 쓰게 될지.’

헤이츨은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그러자 책 한 권이 그에게 날아와 펼쳐졌다. 하지만 유독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바로 클리오 대공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알려진 건 그저 비천한 무희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6553727409328.jpg‘이 정도면 폐하께서 의도적으로 숨기신 거야.’

게다가 정비인 황후의 태생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16553727409328.jpg“어찌 보면 클리오 대공도 바스티얀 대공도 모두, 불완전한 황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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