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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달 없는 밤이 되면 (94/199)

94화. 달 없는 밤이 되면2021.11.26.

아멜리아는 피오레로 돌아갈 일정을 확인했다. 현재 라니와 루베르 사람들이 새로운 영지로 이주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녀는 오늘이라도 당장 피오레로 떠나고 싶었다.

16553727775172.jpg‘에드조프는 벌써 돌아갔다지. 생각보다 너무 순순히 물러갔어.’

마미에게 에드조프가 바스티얀 공작가로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번만큼은 꽤 확실하게 충격을 준 듯했다. 하지만 에드조프와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다. 메사리나와 달리, 그자와는 마지막까지 황좌를 두고 다퉈야 했으니까.

1655372777518.jpg“부인.”

16553727775172.jpg“대공 전하.”

인기척과 함께 이클리트가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1655372777518.jpg“당장 오늘 피오레로 떠나고 싶다고 하신 걸 들었습니다.”

16553727775172.jpg“준비가 끝나면 그러고 싶은데…….”

1655372777518.jpg“오늘은 달 없는 밤입니다. 길이 더 어두울 테니, 안전하게 내일 가시죠.”

16553727775172.jpg“아. 그러네요. 달 없는 밤.”

아멜리아는 생각지도 못한 걸 떠올리며 읊조렸다.

16553727775172.jpg“달 없는 밤이면 반인반수의 야성이 드러난다고 했죠?”

이클리트는 멈칫했으나,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멜리아는 음울한 표정으로 둥이를 떠올렸다.

16553727775172.jpg“둥이는 무사할까요?”

1655372777518.jpg“무사할 겁니다. 이번 사냥 대회에서 일을 벌인 건, 그 둥이를 잡기 위한 것 같으니까요.”

16553727775172.jpg“둥이를요?”

아주 잠깐 몸으로 부딪쳐본 것뿐인데, 생각보다 전투 능력이 뛰어났다. 만약 그들이 반인반수를 이용하려고 하는 거라면.

1655372777518.jpg‘그들의 그런 능력을 사용하려는 거겠지.’

1655372777518.jpg“그들이 필요하다는 건, 적어도 살려둔다는 의미입니다.”

16553727775172.jpg“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1655372777518.jpg“카르티아 공과 만난 일은 잘된 겁니까?”

이클리트는 자꾸 우울해하는 아멜리아를 다독이며, 화제를 돌렸다.

16553727775172.jpg“아, 네. 알고 싶은 걸 알게 됐어요.”

아멜리아는 애써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미소를 그렸다. 수왕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인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둥이 문제도 있었지만……. 아멜리아는 곁눈질로 이클리트를 살폈다.

16553727775172.jpg‘자꾸만 우연 아닌 우연들이 겹치고 있으니까.’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하지만 설령 그게 뭐라고 해도, 상관없기도 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그러자 이클리트 역시 떨리는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16553727775172.jpg‘나는 이제 이 손을 놓지 않을 거야.’

카르티아 공작이 말했던 것처럼, 직접 본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믿으면 된다. 자신에겐 눈앞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대공 전하, 보이는 이 모습이 전부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 현재 이사나는 피오레 공작가에 있었다. 이사나가 붙잡은 슈란과 신관을 은밀히 공작가 지하 감옥에 가둬뒀기 때문이었다.

16553727804716.jpg“신성회랑 중앙청에 알리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낼 걸 알아내야 하는데. 어떻게 그 뺀질거리는 자식의 입을 열게 하나.”

차라리 죽이는 건 쉽다. 웃기지도 않는 의리 따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의 입을 열게 하는 게 제일 귀찮고, 힘 빠질 뿐.

16553727804716.jpg“뭔가 고문이라도 해야 하나?”

16553727833997.jpg“단장님!”

그때, 뭔가 불길한 외침과 함께 이사나는 곧장 지하 감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16553727804716.jpg“하, 이렇게 당하나?”

지하실 쇠창살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고, 그 안에 갇혀 있었던 슈란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런데 분명 그 신관 놈도 같이 있었는데, 시신은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16553727833997.jpg“죄송합니다. 순찰을 갔었는데, 벌써 이렇게.”

다른 곳에서 달려온 티어들도 황망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사나는 쇠창살을 더듬었다.

16553727804716.jpg“과수원 자물쇠가 박살 난 거랑 비슷하네.”

그는 슈란의 시신을 살폈다. 정확히 심장을 꿰뚫은 자상. 황궁에서 죽은 늑대와 똑같은 상처 모양인 걸 보니.

16553727804716.jpg‘마체테에 당했군.’

16553727833997.jpg“아무리 둘러봐도 그 신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16553727833997.jpg“침입자가 데려간 걸까요? 목적이 그 신관이었나?”

16553727833997.jpg“하지만 대체 공작가 경비를 뚫고 어떻게 여기까지…….”

티어들이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자 이사나는 한껏 주먹을 움켜쥐고서 말했다.

16553727804716.jpg“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놈이니까.”

16553727833997.jpg“예?”

인간이 아닌 게 들어온 거다. 게다가 피오레 공작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는.

16553727804716.jpg‘그 여우 새끼…….’

  *** 지하 감옥에 붙잡힌 신관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온몸을 떨었다.

16553727833997.jpg“그 괴물, 괴물들이, 날 쫓고 있어. 쫓고 있다고…….”

16553727833997.jpg“시끄러, 조용히 해!”

16553727833997.jpg“흐으으윽!”

슈란은 짜증 날 정도로 징징거리는 신관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이 상황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16553727833997.jpg“대체 그 여자는 날 언제까지 여기 둘 셈이야?”

이사나, 그 자식 뭔가 이상하다. 반인반수에 대한 적개심 하며. 눈치도 더럽게 빠른 것 같고.

16553727833997.jpg‘이러다가 다 들키면, 가장 곤란한 건 그 여자 아니야?’

그때,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겨우 입 다물고 있던 신관이 비명과 함께 발작을 일으켰다.

16553727833997.jpg“악! 놈이야. 놈이 왔어. 그림자. 저 괴물 그림자!”

슈란이 곧장 고개를 들자, 둥이가 여우의 모습으로 쇠창살 너머에 서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6553727833997.jpg“오랜만이다, 세인트! 거봐. 우린 다시 보게 된다니까. 결국 그 여자 손에 네가 들어간 모양이지?”

16553727833997.jpg“…….”

16553727833997.jpg“아무튼,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이거나 열어. 아주 답답해 돌아가시겠으니까.”

둥이, 아니 세인트는 순식간에 이를 드러내며 쇠창살을 부숴버렸다. 슈란은 속이 시원하단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16553727833997.jpg“괴물이야, 괴물 놈이 왔어. 나를. 나를 잡아가려고!”

신관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구석에 박혀 있자 슈란은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16553727833997.jpg“일단 저 시끄러운 놈도 데려가야…… 윽!”

순간, 섬뜩한 칼날이 그대로 슈란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세인트가 사람으로 변해서는 마체테로 그를 공격했다.

16553727833997.jpg“너, 지금. 무슨!”

하지만 슈란의 말에도 세인트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이, 의지 따위도 없어 보였다. 신관은 눈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이미 졸도한 듯했다. 슈란은 치미는 고통을 삼키며 가슴을 꿰뚫은 마체테를 붙들었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16553727833997.jpg“설마. 그 뱀 같은 여자가, 날 버린 거야?”

그러고 보니, 이사나 그자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신이 저 신관 놈 뒤를 지키고 있는지 알았나, 했더니.

16553727833997.jpg“우연 따위가, 아니구나. 그 여자가 일부러 흘린 거였어…….”

함정이었다. 일부러 저 신관 뒤에 자신을 붙여서, 이렇게 없애려고! 슈란은 순간 치미는 피를 삼키지 못한 채, 입 밖으로 토해내며 여전히 마체테에 힘을 주고 있는 세인트를 노려보았다.

16553727833997.jpg“이 새끼. 그렇게 도망치고, 또 도망치더니. 결국, 그 여자의 개가 됐구나…… 그래. 결국, 너도 이렇게 이용당하다가 죽는 거야. 하긴, 이미 지배당하고 있으니. 의지를 잃은, 무기일 뿐인가? 윽!”

세인트는 그대로 마체테를 뽑아냈다. 그러자 그나마 막고 있던 피가 쏟아져 나오면서, 슈란은 결국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세인트는 일말의 감정도 없이, 그대로 슈란을 지나쳐서는 기절한 신관을 들쳐 매고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슈란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가까스로 손가락을 들었다.

16553727833997.jpg“내가. 내가,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것 같아? 나는. 그 마녀가 만드는, 저런 무기가 아니야…….”

슈란은 피를 잉크 삼아 바닥에 뭔가를 그렸다.

16553727833997.jpg‘나한테 고마워해라, 이사나 경…… 결국 네가 원하는 걸, 내가 알려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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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727804716.jpg“그 여우 새끼.”

이사나는 신관과 슈란을 잡은 이후, 아무래도 그 여우가 불안해서 아멜리아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마미가 이미 둥이는 산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전했고, 그나마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16553727804716.jpg“하!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군.”

목적은 신관인가.

16553727804716.jpg‘이 녀석은 버림받은 거고.’

이사나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죽은 슈란의 손바닥에 가려진 뭔가가 보였다.

16553727804716.jpg‘뭐지?’

그가 슬쩍 손바닥을 치우자, 바닥에 피로 새겨진 다잉 메시지가 보였다. 뭔가를 그려 놓은 것 같은데 그 형태가…….

16553727804716.jpg“뱀?”

여우가 아닌 뱀이라고?

16553727804716.jpg“이건 또 무슨 뜻이야?”

  ***

16553727920952.jpg“말도 안 돼. 내가 왜. 아니야. 아니라고. 당장 풀어줘! 내가 누군지 알고! 난 체자렛 백작가의 영애야!”

메사리나는 중앙청 감옥에 갇힌 채, 악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귀족가 영애가 이런 곳에 갇히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대공가와 공작가에서 직접 의뢰한 일이기에. 중앙청 관리는 난감한 표정으로 메사리나에게 말했다.

16553727833997.jpg“일단 추문에 관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얌전히 계세요. 피오레 공작가의 의뢰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16553727920952.jpg“이건 말도 안 돼!”

그때, 중앙청 관리가 레베카를 끌고 갔다. 메사리나는 눈을 부릅뜨고서 레베카를 향해 소리쳤다.

16553727920952.jpg“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감히 날 건드려!”

하지만 레베카는 한껏 주눅 든 표정으로 메사리나를 보며 말했다.

16553727833997.jpg“저, 전부 자수하면. 조금은 감해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날 원망하지 말아요. 사실, 없던 일도 아니잖아.”

16553727920952.jpg“너, 너, 너!”

메사리나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6553727920952.jpg‘만약, 정말로 아멜리아 그 계집이 그 신관을 데려오면. 신성회까지 나서게 되면…….’

추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16553727920952.jpg‘대체 그 신관 놈, 왜 아직 솔라에 남아 있었던 거야. 그놈이야말로 신성회에 잡히면 끝장이면서.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그때, 메사리나의 앞으로 아젠 백작이 걸어왔다. 메사리나는 그를 보자마자 환해진 표정으로 다가갔다.

16553727920952.jpg“아버지!”

그녀는 떨리는 숨을 쉬며 안도했다.

16553727920952.jpg“아버지, 제 말 들어보세요. 이건 전부 모함이에요. 언니가, 언니가 저한테 이럴 줄은 몰랐…….”

16553727949081.jpg“함부로 체자렛 백작가의 이름을 그 입에 올리지 마라.”

16553727920952.jpg“……예?”

메사리나는 어쩐지 냉랭한 아젠의 모습에 흠칫했다.

16553727949081.jpg“내가 여기 온 이유는 원래의 네 이름을 돌려주기 위함이니까.”

16553727920952.jpg“그게, 무슨…….”

16553727949081.jpg“벌써 잊었나? 곤란한데. 처음 네가 백작가에 왔을 때. 넌 성도 뭣도 없었지.”

메사리나는 아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선 손끝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16553727949081.jpg“네 어머니에게 나도 속은 거야.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널 거뒀건만. 역시. 혈통은 속일 수가 없는 모양이야. 결국엔 이렇게 없는 티를 드러내고 마니까.”

16553727920952.jpg“아니에요, 아버지. 전 아버지 딸이에요. 체자렛 백작가의 영애는 저예요. 저밖에 없다고요!”

16553727949081.jpg“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오늘은 경고다.”

아젠은 한 치의 온정도 없는 시선으로 메사리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16553727949081.jpg“네가 시작한 일, 네가 해결해. 이대로 계속 체자렛의 이름이 더럽혀진다면, 영원히 너에게서 그 이름을 빼앗을 거다. 굳이 같이 오물을 묻힐 필요는 없으니까.”

16553727920952.jpg“아, 아버지. 기다려주세요! 아버지!”

돌아서는 아젠을 향해 절규했으나,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메사리나는 또다시, 온몸이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16553727920952.jpg“안 돼.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 싫어…….”

후지아는 남작과 이혼한 뒤, 체자렛 백작과 재혼했다. 하지만 메사리나는 남작의 아이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남자와 밀애 끝에 태어난 아이. 하지만 후지아는 남작의 아이라고 세상을 속였다.

16553727920952.jpg‘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계셨다고? 그래서 그렇게 날 인정하지 못했던 건가?’

처음 자신에게 마나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메사리나는 몹시 기뻐했다. 자신은 다른 사생아들과는 다르다고. 특별하고 고귀해서, 진짜 체자렛 백작가의 딸이 될 수 있다고. 절대로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16553727920952.jpg“아니야. 그래도 난 귀족이야. 체자렛 백작가의 딸이야. 유일한 후계자야. 이대로 끝일 리 없어!”

그때, 갑자기 앞을 지키던 호위병들이 영문 없이 툭툭 쓰러지기 시작했다.

16553727920952.jpg“뭐, 뭐야…….”

불안한 표정을 띠고 있는 그녀의 앞으로 검은 로브를 쓴 이가 다가왔다. 메사리나는 한껏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16553727920952.jpg“누, 누구냐.”

그자는 로브를 벗으며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16553728006039.jpg“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레이디 메사리나.”

메사리나 앞으로 나타난 이는 바로 키르케였다.

16553727920952.jpg“넌, 누구지?”

메사리나는 처음 보는 여인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뭐랄까. 몹시 기이한 분위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16553728006039.jpg“저는 키르케. 바스티얀 대공 전하의 유모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메사리나는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16553727920952.jpg“대공 전하의 유모라고? 역시. 대공 전하께서 날 버린 게 아니야. 그렇지? 대공 전하께서 보내신 것이냐? 응?”

16553728006039.jpg“대공 전하께서 보내신 건 아니지만, 제가 레이디 메사리나의 뒤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16553727920952.jpg“그게 무슨 소리야?”

16553728006039.jpg“레이디 메사리나께서 다치지 않도록, 조만간 여기서도 꺼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신성회도 안심하세요. 그 신관도 제가 처리했으니까.”

16553727920952.jpg“뭐? 그대가? 하지만 어째서…….”

키르케는 메사리나에게 미끄러지듯 다가가서는 싱긋 웃었다.

16553728006039.jpg“당연하죠. 레이디 메사리나는 바스티얀 대공 전하의 것이니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대공 전하께 복종할 거잖아요?”

뭔가, 낙인처럼 파고드는 목소리에 메사리나는 움찔했다.

16553728006039.jpg“아닌가요?”

16553727920952.jpg“아, 아니. 맞아. 난 바스티얀 대공 전하의 것이야. 그분의 여인이야.”

키르케의 손이 메사리나의 손을 힘껏 붙잡으며 음산하게 읊조렸다.

16553728006039.jpg“그러니 걱정 마세요.”

순간, 메사리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일순 피처럼 붉게 느껴지면서, 뱀 같은 시선이 자신을 옥죄는 듯했다. 이내 불안하게 흔들리는 횃불이 키르케의 그림자를 비췄다.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뱀이었다. 키르케는 새카만 어둠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16553728006039.jpg“오늘은 달 없는 밤. 긴긴 어둠이 시작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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