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작은 변화2021.12.31.
“전원, 댐을 지켜!”
“존명!”
아멜리아의 명에 따라, 이클리트와 카마리가 검을 들었고, 티어들은 뒤에서 그들을 엄호하며 늑대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둥이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리볼버를 쥔 아멜리아의 손끝이 차갑게 떨렸으나,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이번엔 망설여선 안 된다.
“미안해, 둥아. 널 이대로 보낼 수 없어. 널 지키기 위해서야!”
세인트가 먼저 마체테를 휘두르며 아멜리아를 공격했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재빨리 몸을 낮추며, 리볼버에 장전된 바람의 마탄을 세인트의 발목에 정확히 저격했다.
“크윽!”
강한 충격파에 세인트의 발목이 부서지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멜리아는 가쁜 숨을 삼키며, 쓰러진 와중에도 어떻게든 다시 마체테를 쥐려고 발버둥 치는 둥이를 끔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둥이 뿐만이 아니다. 늑대들이 고통 따윈 잊은 채, 피투성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싸우고 또 싸우려고 했다. 아멜리아는 이 지옥 같은 풍경에 이가 떨릴 정도로 분노했다. 그때, 쓰러진 세인트가 아멜리아를 보며 읊조렸다.
“차라리…….”
“둥아?”
“죽여. 차라리 지금 죽이라고! 흐윽!”
“둥아!”
세인트가 쓰러지고, 아멜리아는 그런 세인트를 끌어안았다.
‘대체 이들을 왜 이렇게까지……. 대체 왜!’
늑대를 전부 제압한 이클리트가 떨리고 있는 아멜리아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부인.”
“일부러 발목을 노리긴 했는데, 죽진 않겠죠?”
“이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쉽게 죽지 않아요.”
“아니요.”
“…….”
“평범한 인간이에요. 평범하게, 그저 살아가고 있었던…….”
아멜리아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았다. 지금 상황에 눈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이클리트를 똑바로 보았다.
“수고하셨어요.”
아직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기에. 이클리트도 아멜리아의 마음을 알고,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잘해냈어요.”
그 짧은 한마디에, 아멜리아는 지금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비는 거세게 내렸고, 파수꾼과 근처에 사는 피오레 영지민들이 댐으로 몰려왔다. 망가진 안전장치를 빨리 다시 손봐야 했기에,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파수꾼 중 한 명이 아멜리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주님.”
“인사받을 일이 아니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가주님. 저 반인반수들이 이 댐을 공격한 건, 근본적인 이유는 루베르…….”
쿵-! 순간, 불길한 굉음이 지반을 흔들었다. 이클리트는 곧장 아멜리아를 보호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영지민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외쳤다.
“저, 저기. 산이…….”
영지민이 가리킨 곳을 본 모두가 경악했다. 지반이 약해진 탓에, 금방이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것 같았다. 아직 안전장치가 다 고쳐지지 않았는데. 만약 산사태가 일어나서 댐을 덮쳐버리면, 수문이 열리고 말 것이다.
“재, 재앙이야. 이미 반인반수의 저주가 시작됐다고!”
“어떡해. 우린 여기서 다 죽을 거야!”
아멜리아가 바람의 마탄을 장전했으나, 저번처럼 지반을 전부 무너뜨리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이클리트를 붙잡았다.
“대공 전하, 잠깐이라도 비를 멈출 수 없나요? 아니면 저번처럼 저걸 아예 다른 쪽으로 무너지게 만든다면…….”
하지만 이클리트는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저들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네? 그게 무슨…….”
“쏟아진다!”
그때, 다시 한번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토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황급히 티어들에게 외쳤다.
“티어 전원, 사람들을 보호……!”
그녀가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아까와는 다른 폭음이 울리면서 분명 눈앞에서 쏟아지던 토사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니, 얼어붙어 버렸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토사가 쏟아지다가 왜…….”
“땅이 언 거야?”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바라보았다.
“대공 전하가 하신 거예요?”
“아닙니다.”
“하지만…… 설마!”
아멜리아가 다시 토사가 얼어붙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 끝에 너무나도 신비스러운 존재가 나타났다. 지난날, 대공 전하께서 보여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바로 루베르였다. 영지민들은 전부 굳어진 표정으로 루베르를 바라보았다.
“루, 루베르야…….”
“정말로 루베르가.”
“저 괴물들이, 반인반수를 부른 거야!”
누군가의 한 마디에 당황하던 영지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맞아. 저 산사태도 저들이 한 걸지도 몰라.”
“티어들은 뭐해. 저것들이 배후야. 얼른 죽여야 한다고!”
누가 봐도 루베르가 저 산사태를 막은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다들 루베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아우성치는 모습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루베르가 마법 도구를 쓴 거야. 다들 다시 정확히!”
하지만 이클리트가 끝까지 아멜리아가 나서지 못하게 말렸다.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의 모습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대로 있다간 루베르의 잘못이 되고 말아요. 그러니까 제가 나서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부인이 나설 겁니까? 대체 언제까지?”
“예?”
“루베르에 대한 불신을 바꾸기 위해선, 조금은 센 계기가 필요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는 이클리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움찔했다.
“그들도 결국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할 큰 계기.”
“······.”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으세요.”
“대공 전하…….”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사태에 토사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지민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질렀다.
“저들이 우릴 죽이려고 한다. 죽이려고 해!”
“오, 태양신이시여!”
“가주님! 저희를 살려주세요! 티어들은 뭐 하는 거야!”
주변을 전부 삼킬 듯, 쏟아지는 토사에 결국 아멜리아가 다시 총을 들었으나,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안 돼요, 이대로 있다간 모두가!”
“괜찮습니다.”
여기서 가장 태연한 것은 이클리트였다. 그는 어느 순간 사라진 루베르의 빈자리를 보며 읊조렸다.
“괜찮을 겁니다.”
그때, 쏟아져 내리는 토사 앞으로 루베르가 막아섰다. 영지민들은 얼어붙은 표정으로 루베르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루베르가 토사를 향해 반짝이는 걸 던지자, 공중에서 마치 거미줄처럼 뭔가가 자아지더니, 이내 토사를 전부 붙들었다. 정말로 그 거대한 산사태가 눈앞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영지민들은 바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법인가?”
“설마, 우릴 구했다고?”
“하지만 저들은 반인반수로 우릴 죽이려고 했는데…….”
겨우 산사태를 멈춘 루베르는 이제야 안도의 숨을 삼켰다.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영지민들은 주춤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저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살결이 비칠 것처럼 창백한 피부 위로 기이한 문양에 저주받은 홍안과 흡사한 섬뜩한 선홍색 눈동자까지. 영지민과 루베르 사이로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 그 사이로 아멜리아가 서슴없이 루베르에게 다가갔다.
“도와줘서 고마워.”
루베르 중, 아멜리아를 아는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클리트를 바라보았다.
“도와달라고 부탁하셨지만, 부탁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 같이 어우러져서 살아가는데, 어려울 땐 도와야죠.”
아멜리아는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이클리트를 보며, 그제야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 루베르를 부른 거구나. 이번 일을 루베르가 해결할 수 있도록.’
루베르가 반인반수를 부려서 저주를 내리고 해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면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메사리나가 했던 방법처럼. 저들이 벌인 판을 이클리트가 이용한 것이다.
‘덤으로 루베르의 마법 도구도 알리고 말이야.’
아멜리아는 영지민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여전히 머뭇거리면서, 나서서 고맙다는 인사는 절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처럼 대놓고 불쾌하다는 적의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저 물러나 있을 뿐. 아멜리아는 이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조금씩 달라지면 돼. 서로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천천히 알아 가면 돼.’
*** 산사태는 막았지만, 언제 또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에. 파수꾼들은 서둘러 안전장치를 고치기 시작했고, 티어들과 영지민들은 주변을 청소했다. 루베르는 마법 도구를 이용하여 땅을 더 단단하게 해서, 더는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힐끔거리던 영지민과 파수꾼은 살짝 놀라워했다.
“마법 도구로 저런 것도 가능한 건가?”
“루베르는 수인과 친했으니까. 수인은 정령과 친했고. 그러니 마법을 잘 다루는 걸지도.”
물론 신기해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다. 루베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루베르와 영지민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를 도우며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 다가가 한껏 풀이 죽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를 믿지 못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대공 전하의 말이 옳아요. 루베르를 위한다면, 내가 다 해주면 안 되는데. 한편으로는 나도 초조했었나 봐요. 저들을 완전히 믿어주지 못한 채, 어떻게든 내가 해결하려고 했어요. 내 선택이 잘못돼서, 저들이 또 상처받을까 봐. 희망이 꺾일까 봐. 그게 두려워서…….”
이클리트는 점점 고개 숙이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서 눈을 마주했다.
“저들이 저렇게 나선 건, 부인께서 준 용기 덕분입니다. 부인께서 루베르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주었으니까요.”
처음, 이클리트가 루베르를 찾아가서 이번 일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루베르는 회의적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합니까?’
‘상황이 딱하긴 하지만. 계속 저희가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데, 괜히 가주님만 더 곤란해지는 거 아닙니까?’
‘이건 그대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을 긋지 말고 생각해다오. 지금은 루베르도 피오레 영지민도 아닌, 그저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야 한다.’
‘…….’
‘그걸 위해서 피오레 가주는 그대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고. 피오레 가주는, 그대들이 필요하다.’
이클리트는 루베르와 아멜리아의 사이에서 생긴 관계를 믿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일은 아멜리아 덕분이다. 게다가, 그 역시 많이 자제하고 있었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나도 엄청 참고 있습니다. 아까 부인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도와주고 싶었어요. 자꾸 부인에게 다 해주고 싶어져요.”
“대공 전하…….”
“그대가 힘들지 않게.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정말로 내가 다, 해버리고 싶어.”
이클리트는 마탄을 연발로 계속 쏜 충격으로 붉어진 그녀의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가 이런 위험한 일에 얽히지도 않게. 두 눈을 가리고. 두 귀를 막고. 그저 그녀를 제 품에 꼭 끌어안고서,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감당하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녀를 소유해선 안 된다. 그녀가 나아가는 걸음을. 그녀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그녀와 함께해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멀리서나 가까이에서나 그녀를 지켜주면서. 자꾸만 치미는 다른 욕심을 꾹 삼켰다. *** 아멜리아는 티어들이 제압한 반인반수를 바라보았다. 의식을 잃은 이들의 상처는 심해 보였다. 아멜리아는 특히 둥이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이들을 치료한 다음, 조사하도록 하죠. 이들은 밀주의 주인을 봤을지도 모르니까.”
“설령 봤어도, 협조하겠습니까? 의식을 되찾으면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이사나의 말에 아멜리아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포기해선 안 되죠. 실종된 사람들도 어쩌면 이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가장 급선무는 치료…….”
“저것들은 우리가 데려가겠다.”
뜻밖의 목소리가 아멜리아를 막아섰다. 아멜리아는 싸늘해진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알렉드라가 서 있었다. 그는 포르티셰 기사들과 무장한 상태로 이곳에 있었다. 티어들은 재빨리 아멜리아의 곁에 섰다. 이클리트 역시 표정이 굳어진 채, 그녀의 곁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마치 대립하는 구도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아멜리아는 최대한 의연하게 입을 열었다.
“포르티셰 공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죠? 공께서 오신다는 소식, 저는 못 들었는데. 그것도 무장한 기사들까지 이끌고서. 여긴 피오레 공작령 아닌가요? 마음대로 선을 넘으시는 건가요?”
“선을 먼저 넘은 건 그대지. 그리고 나도 그대와 같은 방법으로 넘어온 거고.”
“그게 무슨?”
“황명이다.”
아멜리아는 알렉드라의 말에 멈칫했다.
“황명?”
알렉드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황명을 받아오셨다. 이번 반인반수에 대해서 전적으로 내가 맡아서 수사하기로. 그러니 저 괴물들은 내가 데려간다.”
알렉드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르티셰 기사들이 늑대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황명이라니! 에드조프. 이것도 당신 짓이야?’
알렉드라는 모여 있는 루베르를 노려보았다. 루베르는 알렉드라 앞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들은 알렉드라에게 핍박받은 채, 포르티셰 공작령 그 마을에 갇혀 지냈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알렉드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필이면 반인반수가 날뛴 곳에 루베르가 있었군. 게다가 조잡한 짓도 한 것 같고.”
알렉드라가 루베르를 언급하자, 아멜리아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루베르와 상관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모르지. 반인반수와 함께 저들도 끌고 가서 조사하겠다. 끌어내.”
“포르티셰 공!”
아멜리아는 검을 겨누는 기사들을 향해 리볼버를 겨누며 외쳤다.
“반인반수는 그렇다고 쳐도, 내 영지민들을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이건 황명이라고 했습니다, 피오레 공.”
“아무리 황명이라고 해도, 이 일은 내가 직접 폐하께 여쭙겠습니다. 그전엔 누구도 데려갈 수 없습니다.”
“죄인을 데려가는 겁니다. 허락은 무슨 허락! 피오레 가주는 죄인을 옹호하는 것인가. 안 그래도 피오레의 평판이 추락하고 있던데. 영지민들도 그대의 가주 자질을 의심하고 있지 않나!”
“죄인이라니. 루베르가 범인이라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증거를 밝히겠다는 거지. 뭐해. 당장 끌어내라니까!”
“포르티셰 공!”
아멜리아가 총구를 내리지 않자, 티어들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총을 겨눴다. 특히, 아멜리아의 곁에 있는 이클리트의 섬뜩한 시선 앞에 포르티셰 기사들이 어쩌지 못하는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너희는 뭐 하는 거지?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들어!”
바로 피오레 영지민들이 마치 루베르를 보호하듯, 그들의 앞으로 나선 것이다. 아멜리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영지민들은 흔들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루, 루베르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만, 맞는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는 보이는 것만 믿겠습니다.”
“뭐?”
“저희가 증인입니다. 루베르는 저희를 해친 것이 아니라,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저희 가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가주님이 루베르도 피오레 영지민으로 보호하신다면, 루베르 역시. 피오레 영지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