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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이, 아름다운 지배자를 (108/199)

108화. 이, 아름다운 지배자를2022.01.14.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 숨겨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16553732597402.jpg‘으윽!’

분명 심장의 꽃잎이 시든 거다. 시든 건데, 왜 이렇게 아프지? 이렇게까진 아프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로 심장이 도려내지는 기분이었다. 아멜리아의 안색이 파리해지다 못해 사색이 되자, 이클리트가 곧장 그녀를 안아 올렸다.

16553732597406.jpg“아멜리아!”

아멜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이클리트의 눈빛이 멎었다.

16553732597406.jpg“심장이, 아픈 겁니까? 또 아픈 거예요?”

겁이 잔뜩 배인 이클리트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16553732597402.jpg‘안 돼, 아멜리아. 정신 차려. 들키면 안 돼!’

아멜리아는 겨우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똑바로 섰다.

16553732597402.jpg“괜찮아요, 대공 전하. 정말이에요.”

이제야 심장의 통증이 가시는 듯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수건으로 젖은 몸을 감쌌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이클리트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눈동자엔 가시지 않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16553732597406.jpg“무슨 일입니까? 심장이 다시 아픈 거죠? 아까 그 모습, 절대 괜찮은 모습이 아니었어. 아픈 거, 나한테 숨기지 않기로 했잖아.”

16553732597402.jpg“아니에요. 진짜 뱃멀미 때문에 잠시 현기증이 일어난 거예요.”

16553732597406.jpg“아멜리아.”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아멜리아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16553732597402.jpg“정말 괜찮은데……. 그럼 치료사를 부를까요? 그래야 내 말 믿어줄래요?”

16553732597406.jpg“여기서 기다려요.”

아멜리아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뱃멀미로 파리해진 치료사가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16553732626173.jpg“가주님.”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손을 잡고서 치료사에게 말했다.

16553732597406.jpg“심장이 괜찮은지 살펴다오.”

치료사는 아멜리아에게 약을 먹이고서, 몇 가지 반응을 확인한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732626173.jpg“심장은 괜찮으십니다. 박동도 좋고요.”

16553732597406.jpg“정말? 정말 괜찮으시다고?”

16553732626173.jpg“예, 대공 전하.”

이클리트는 치료사의 말에도 영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듯했다. 아멜리아는 그 모습에 이클리트가 잡은 손에 힘을 주고서 이끌었다.

16553732597406.jpg“부인?”

16553732597402.jpg“따라와요. 진짜 괜찮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데리고 뱃머리에 섰다. 그러곤 리볼버를 꺼내서는 바다를 향해 물의 마탄은 연속으로 쏘아 올렸다. 허공에서 쏟아지는 물이 차가운 대기와 만나 얼음이 되어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16553732597402.jpg“봤죠? 심장이 아프면 이렇게 마탄을 만들겠어요?”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를 향해 손을 뻗어서는 와락 안았다.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그 짧은 순간, 얼마나 그가 두려워했는지 느껴져서 아멜리아의 마음이 무거웠다.

16553732597406.jpg“괜찮으면 됐어요. 괜찮으면, 된 겁니다.”

16553732597402.jpg“…….”

16553732597406.jpg“멀미로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멜리아는 그런 이클리트를 마주 안았다.

16553732597402.jpg“아니에요. 이것도 경험이고. 같이 해치워버리면 되죠.”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서,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16553732597402.jpg“조금만, 이렇게 안고 있을게요.”

16553732597406.jpg“얼마든지.”

그의 심장 소리와 자신의 심장 소리가 미묘하게 겹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둘 다 조금은 빠른 느낌이 전해졌다. 그녀는 이 소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하나하나. 지금부터 그의 모든 걸 소중히 해야 하니까. 점점 더 고통이 거세지고 있다. 아마도 그만큼.

16553732597402.jpg‘내가, 죽어가나 봐.’

  *** 다들 이제야 이 살인적인 뱃멀미에 익숙해질 무렵. 밤은 깊어졌고, 공기는 더욱 차갑고 시리게 얼어붙었다. 마치 온기 한 점 없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기에 다들 온몸을 감싸며 신기한 듯, 입김을 불고 있었다. 호흡에서 하얀 꽃이 피어난다. 아멜리아도 몇 번이고 입김을 불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저 멀리 등대의 불빛이 햇살처럼 쏟아졌다. 등대의 불빛 아래 새하얀 무언가가 흩날리기 시작하자, 다들 숨을 죽인 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16553732626173.jpg“눈이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남부에선 눈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으니까. 눈이 내린다는 건, 거의 당도했다는 뜻이었다. 남부에선 저주이자, 버려진 곳이라 불리는 얼어붙은 땅, 북부에 말이다. 아멜리아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는 손바닥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클리트가 그런 그녀의 뒤로 다가와 더 두꺼운 외투를 입혀주며 살포시 안아주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뜨거운 온기에 절로 입꼬리가 휘늘어졌다.

16553732597402.jpg“대공 전하께서 보여주신 눈이네요. 그것보단 조금 더 큰 것 같아요.”

16553732597406.jpg“그래서 쉽게 녹지 않습니다.”

16553732597402.jpg“정말. 손바닥에 쌓이는 게, 꽃잎 같아요.”

16553732597406.jpg“춥지 않으십니까?”

16553732597402.jpg“전혀.”

아멜리아는 이클리트가 준 목걸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16553732597402.jpg“지금 이 풍경도 너무 예쁜데. 이것보다 더 예쁜 걸 제게 보여주신다는 거죠?”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16553732597406.jpg“……예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이클리트를 마주 보며, 그를 당겼다. 이클리트는 자신도 모르게 아멜리아와 시선을 맞춘 채, 끌려갔다. 그녀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다,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며,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했다.

16553732597402.jpg“예쁠 거예요, 무척. 내 시간이 멈출 만큼, 그럴 거예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16553732597406.jpg“부인?”

그때, 마미가 아멜리아를 불렀고, 그녀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클리트는 심장이 불안하게 뛰어올랐다. 그때는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었는데. 에드조프가 밀주를 건넸을 때. 그녀는 왜 대신 그 밀주를 마셨을까. 마치, 자신이 마실 수 없다는 걸 안 것처럼.

16553732597406.jpg‘설마…….’

하지만 이클리트는 도저히 무서워서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북부에 온 이유가 저기 있는데. 자신답지 못하게 자꾸만 피하면서, 미루고 또 미뤘으니까.

16553732684429.jpg

  *** 마침내 배가 북부 항구에 다다랐다. 항구에는 이미 카힐로와 대공가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클리트와 아멜리아가 함께 손을 잡고서 배에서 내리자, 그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맞이했다. 카힐로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16553732684433.jpg“클리오 대공 전하, 북부로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피오레 공작 각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클리오 대공령입니다.”

눈이 내리는 것보다 더 압도적인 풍경이 아멜리아를 사로잡았다. 태양의 가호가 스미지 못한 채, 얼어붙은 저주받은 대지. 하지만 아멜리아가 본 첫 북부의 모습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새하얀 풍경이었다. 이처럼 깨끗하고, 새하얀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부의 태양보다 더 눈이 부셨다. *** 카힐로와 이클리트, 아멜리아는 같은 마차를 타고 대공가로 향했다. 이클리트는 카힐로에게 북부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를 바로 확인했다. 카힐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클리트에게 보고했다.

16553732684433.jpg“카마리에게 이미 소식은 들었습니다. 밀주가 반인반수를 찾아내는 도구였다니.”

카힐로는 아멜리아를 힐끔 살피며 말을 이었다.

16553732684433.jpg“하지만 남부에서 사건이 벌어진 이후, 북부에선 더는 밀주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진 않았습니다. 일부러 북부에서 시작된 밀주라는 소문을 만들기 위해, 이용당한 듯합니다.”

이클리트는 카힐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32597406.jpg“내가 헤스틴 공에게 부탁한 것이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아멜리아가 되물었다.

16553732684433.jpg“헤스틴 공이요?”

16553732597406.jpg“헤스틴 공은 독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헤스틴 공이 모르는 독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독일 겁니다.”

16553732684433.jpg“아…….”

16553732597406.jpg“그래서 밀주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카힐로는 이클리트의 말을 이어갔다.

16553732684433.jpg“헤스틴 공께서 조만간 대공가로 오실 겁니다.”

16553732597406.jpg“그래. 좋은 소식이었으면 하는데…….”

이클리트는 루시아에게 꽤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눈을 구경하고 싶어서, 문득 창문을 바라본 아멜리아는 멈칫했다. 그들의 마차만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가기 시작한 것.

16553732597402.jpg“우리만 어디 따로 가는 건가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보며 속삭였다.

16553732597406.jpg“바로 만나야 하니까. 조용히 만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을 곧장 눈치챈 아멜리아의 시야가 벌써 붉어졌다. 그녀는 자꾸만 치미는 숨을 겨우 누르며, 창문을 응시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심장이 너무 뜨거워졌다. 마차가 멈춘 곳은 북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기운이 머무는 저택이었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저택이었는데, 안쪽에는 커다란 중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나 이 추위 속에 절대로 자랄 수가 없는 제비꽃이 중정에 한가득 피어있었다. 아멜리아는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안쪽에는 제비꽃이 피어 있는 이 이질적인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6553732597402.jpg“대공 전하께서 하신 건가요?”

16553732597406.jpg“부인이 좋아하는 꽃과 함께 있으면, 로사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었다.

16553732597406.jpg“가보세요. 로사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말에 떨리는 숨을 삼키고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이클리트는 그 자리에서 그런 그녀를 지켜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내디딘 걸음 끝에 침대에 누워있는 로사가 있었다. 아멜리아는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누워있는 로사의 모습에 한껏 울음을 삼키고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16553732597402.jpg“나 왔어, 유모. 내가. 내가 이렇게 왔어…….”

아멜리아는 로사의 곁에 앉아서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분명 너무 많이 변해버린 모습인데도, 아멜리아는 물기 젖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16553732597402.jpg“우리 유모 하나도 안 변했네. 여전히 너무 예뻐. 내가 아는 유모의 모습 그대로야.”

그녀는 천천히 로사에게 안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마음껏 이야기했다.

16553732597402.jpg“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어. 금방 와야 했는데. 미안해, 유모. 하지만 유모, 유모가 말한 것처럼 나. 나만의 꽃을 피웠어. 너무 예쁜 꽃이야.”

아멜리아는 끊임없이 환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유모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이고 싶었으니까.

16553732597402.jpg“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어. 너무나도 소중히 지켜주고 싶은 사람. 그분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너무 행복해지기만 해.”

아멜리아는 평범하게 로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분명 유모는 오랜만에 만난 자신에게 이런 걸 원할 테니까. 울고 불며 슬퍼하는 모습보단, 자신이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할 테니까.

16553732597402.jpg“숨 쉴 때마다 행복으로 넘쳐. 비록 영원이지 않지만, 영원만큼 소중한 시간이야.”

16553732597402.jpg‘나의 매일은 유모가 있어서 항상 선물처럼 특별해.’

16553732597402.jpg“유모가 항상 지켜줘서. 지켜봐 줘서. 이렇게 매 순간 특별해졌어.”

그때,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로사가 아멜리아의 손을 살포시 잡아준 것이었다.

16553732597402.jpg“유모?”

하지만 여전히 의식을 찾진 못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어느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눈물을 완전히 거둬내고 더욱 미소를 그렸다.

16553732597402.jpg‘듣고 있구나. 내가 왔다는 걸, 유모는 알고 있구나. 역시, 기다려준 거야. 유모는 항상. 항상 날 기다려줬어.’

역시 유모에겐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밖에 없다.

16553732597402.jpg“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유모.”

아멜리아는 로사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유모를 만났고, 이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진짜 그를 만나야 했다. 많이 무서워하고 있을 테니까.

16553732597402.jpg“나도 유모를 만나서 행복해졌으니까, 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줘야 해.”

  *** 카힐로는 이클리트를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북부로 아멜리아와 함께 왔다. 밀주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님을 카힐로는 느낄 수 있었다.

16553732684433.jpg“대공 전하. 설마,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클리트는 결연한 표정으로 카힐로를 보았다.

16553732597406.jpg“반인반수가 나타났고, 그들의 뒤에 있는 자가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그녀도 알아야 해.”

16553732684433.jpg“하지만 그러다가 가주님이 대공 전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카힐로는 순간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평온하게 웃었다.

16553732597406.jpg“더는 속이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지 않다.”

16553732684433.jpg“대공 전하.”

16553732597406.jpg“처음이야.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한 사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사람. 진짜 내 모습으로.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말할 거다.”

이클리트의 말에 카힐로는 표정을 숨길 수 없을 만큼, 눈동자가 흔들렸다.

16553732684433.jpg‘정말로 대공 전하께서, 살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때, 이클리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시선 끝에 아멜리아가 있었다.

16553732597406.jpg“로사는 만났습니까?”

16553732597402.jpg“네. 만났어요. 로사 유모는 역시 날 기다려줬어요.”

16553732597406.jpg“그럴 것 같았습니다.”

16553732597402.jpg“그리고 이제, 날 기다리는 다른 사람을 봐야죠.”

이클리트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으나, 이내 웃었다. 아멜리아는 그의 손을 마주 잡고서 속삭였다.

16553732597402.jpg“대공 전하께서 말한 그 아름다운 걸 보러 가요.”

카힐로는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16553732684433.jpg‘부디 저분들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설원으로 데려갔다. 탁 트인 설원에는 새하얀 꽃이 무수히 피어있었다.

16553732597402.jpg“와. 이런 곳에도 꽃이 피는 건가요?”

16553732597406.jpg“꽃이 아닙니다.”

16553732597402.jpg“네?”

16553732597406.jpg“가까이 가보세요.”

바닥에 새하얀 꽃처럼 피어 있는 것에 가까이 가보니, 정말로 꽃이 아니라 얼음이 피어있는 거였다.

16553732597402.jpg“너무 예뻐요! 하지만 이것도 꽃은 꽃이죠. 북부에서만 피는 꽃.”

아멜리아는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분명 해가 저문 것 같은데, 북부의 하늘은 여전히 새하얀 듯했다.

16553732597402.jpg“눈이 그쳤네요.”

16553732597406.jpg“다시 내리게 할까요?”

16553732597402.jpg“……보고 싶어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대답에 떨리는 숨을 삼키며 말했다.

16553732597406.jpg“잠시, 기다려주세요.”

이클리트가 자리를 비우자, 아멜리아는 긴장된 손으로 얼음 목걸이를 꼭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 소리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꽃잎처럼 날리는 눈 속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검은 독수리가 서 있었다. 너무나도 낯익은 그 검은 독소리가. 아멜리아는 끌리듯, 천천히 다가갔다. 검은 독수리 역시 그때처럼 도망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마침내 서로가 마주하게 되자, 아멜리아는 손을 뻗어 검은 독수리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독수리 역시 아멜리아의 녹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 다정하고 낯익은 시선에 아멜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16553732597402.jpg“이클리트.”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지배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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