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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역시나, 당신이었네요 (126/199)

126화. 역시나, 당신이었네요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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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아는 침실에서 계속 창문과 문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이클리트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쩐지 돌아오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16553738414621.jpg‘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시겠지?’

괜한 생각이 현실이 될까 봐, 아멜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양손을 부여잡았다.

16553738414621.jpg‘그분은 강하시니까, 괜찮으실 거야. 그래, 괜찮아.’

물론 강하다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설령 그분이 신이라고 해도 걱정할 거다. 그를 믿지만, 믿는 만큼 사랑하기에. 먼지만 한 불안에도 떨 수밖에 없었다. 똑, 똑.- 그때, 때마침 울리는 노크 소리에 아멜리아가 금세 환해지면서 곧장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이가 아닌 세스가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1655373841463.jpg“하하, 피오레 공.”

16553738414621.jpg“아…… 황자 전하.”

아멜리아의 눈매가 너무 눈에 띄게 실망감으로 가라앉자, 세스가는 자신이 뭔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아서 절로 몸을 움찔거렸다.

1655373841463.jpg“아니. 너무 대놓고 실망하는 거 아닌가? 나도 나 기다려주는 사람, 프리메에 있어!”

있을 거다. 마하, 정도? 아멜리아는 자신이 너무 심했나,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16553738414621.jpg“죄송합니다.”

1655373841463.jpg“뭐 또, 사과까지. 근데 클리오 대공은 아직 안 돌아온 건가?”

16553738414621.jpg“……괜찮을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말에 세스가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입꼬리로 아멜리아의 표정을 흉내 냈다.

1655373841463.jpg“표정이나 바로 하고 그런 말을 해야 나도 걱정 안 하지. 지금 피오레 공 표정, 딱 이렇다고.”

아멜리아는 과장되게 입꼬리를 축 늘어뜨린 세스가를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1655373841463.jpg“근데 뭐, 피오레 공 말처럼 클리오 대공은 괜찮을 거야. 그나저나 우리가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 같은데. 무슨 계획이 있나, 싶어서 찾아온 거야.”

세스가는 마치 제 방이라도 온 듯, 여유롭게 침실을 돌아다니며 아멜리아에게 말했고, 아멜리아는 다소 서늘해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38414621.jpg“장로회는 어설프지만, 포르티셰 공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1655373841463.jpg“그래. 포르티셰 공. 난 포르티셰 공이 제일 무서워.”

세스가는 진심이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16553738414621.jpg‘물론 에드조프가 가장 문제지만.’

다행히 평화 회담에 제국민과 루베르 장로의 참석을 황제 폐하께 허락받았기에. 원래라면 내일 열려야 할 평화 회담이 하루 더 미뤄졌다. 하지만 그만큼, 이쪽도 준비하겠지만 방해하는 자들도 더 철저히 준비할 것이다.

16553738414621.jpg“평화 회담이 열리는 태양의 제단은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거길 건드리는 건 솔라의 심장을 건드리는 걸 테니.”

1655373841463.jpg“그럼 태양의 제단에 도착하는 걸 어떻게든 막겠네.”

태양의 제단으로 가는 길을 몹시 험했다. 워낙 성스러운 곳이기에, 남들이 쉽게 걸음 하지 못하는 곳에 자리한 것이다. 그곳은 깊고 험한 협곡을 지나, 하늘이 맞닿을 듯 가장 높은 산맥에 천장이 뚫린 원형으로 지어진 곳이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태양과 맞닿아, 태양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나가야 할 협곡이었다.

16553738414621.jpg“태양의 눈이 달린 자작나무 협곡을 지나야 합니다.”

1655373841463.jpg“나무에 눈이 달렸어?”

16553738414621.jpg“나이테가 마치 눈동자처럼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날 때, 수천, 수만 개의 눈이 태양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심판한다고 하죠.”

그 눈을 통과해서 제단으로 갈 수 있는 건 오직 선택받은 귀족뿐이었다. 결국 이것도 제국민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조성해 경외심을 부추겨, 통제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655373841463.jpg“그럼 우리는 어떻게든 이 협곡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제단에서는 다 괜찮다는 말이군.”

16553738414621.jpg“예. 티어들과 계속 논의 중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황자 전하를 무사히 제단으로 모실 테니.”

아멜리아는 블러드 아이리스와 이클리트의 의견까지 모으면서 다른 것보다 세스가 황자의 호위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6553738414621.jpg‘이번엔 운이 좋아서 막았지만, 다음엔 운에 맡길 수 없어.’

생글거리던 세스가도 이번에는 진지한 시선으로 당부했다.

1655373841463.jpg“저쪽도 저쪽이지만, 우리 역시 누구도 다치면 안 돼. 난 피오레 공이 절망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거든. 평화를 지키기 위함인데, 피오레 공만 불행해질 수 없잖아.”

16553738414621.jpg“그래야죠. 감사합니다, 황자 전하.”

1655373841463.jpg“아! 그리고 황실에서 이번 회담을 위해 준비한 선물도 잘 지켜줘. 혹시 모르잖아. 선물도 엉망으로 망쳐버릴지. 그럼 곤란해. 이번 회담을 위해서 우리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거든.”

아멜리아는 괜히 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하는 세스가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16553738414621.jpg“제국에서 보내온 귀한 선물인데, 당연히 잘 보관하여 가져갈 겁니다.”

1655373841463.jpg“루베르 장로는 내일 도착하지? 꼭 나 만나게 해줘야 해.”

16553738414621.jpg“예, 알겠습니다.”

아멜리아는 보면 볼수록 세스가가 신기했다. 처음엔 아무리 온화한 분위기를 가지긴 했어도, 그 첫인상이 날카로워서 제법 예민할 것 같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호기심이 너무 넘쳐서 탈이었지만. 가끔은 황자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1655373841463.jpg“그나저나 너무 늦는데?”

무심코 내뱉은 세스가의 말에 아멜리아의 동공이 다시금 걱정과 불안함이 깃들어 부풀어진 순간.

16553738472359.jpg“가주님, 카마리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이클리트 대신 카마리가 아멜리아의 침실을 찾았다. 어쩐지 오늘 밤, 기다리는 이를 대신해서 오는 손님이 많았다.

16553738414621.jpg“무슨 일이에요, 카마리 경?”

침실로 들어선 카마리는 세스가의 모습에 멈칫했으나, 아무렇지 않게 티어들 상황을 보고했다.

16553738472359.jpg“그래서 다치거나 부상당한 티어는 없습니다.”

16553738414621.jpg“다행이네요. 다들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고 전해주세요. 아니. 근데 이걸 왜 카마리 경이 하는 거예요? 이사나 경은?”

카마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보고하니, 아멜리아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보고를 받다가 의아해져서 물었다.

16553738472359.jpg“지금 이사나 경이 자리에 없습니다. 원래는 칼렌 경에게 보고를 맡겼는데, 제가 가주님이 클리오 대공 전하와 계시는지 궁금해서 온 겁니다.”

카마리의 말에 아멜리아는 상황을 파악하고선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16553738414621.jpg“이사나 경이 대공 전하의 뒤를 따라갔군요.”

16553738472359.jpg“예…… 대공 전하 혼자 가시는 건 호위 기사로서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16553738414621.jpg“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16553738472359.jpg“대공 전하께서도 돌아오지 않으셨군요.”

결국, 두 사람 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다. 아멜리아는 아까보다 더 눈에 띄게 불안감이 낯빛을 잠식했다. 세스가는 그 모습에 재빨리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1655373841463.jpg“이사나 경도 실력 있는 티어 아니야? 그럼 다 괜찮을 거고…….”

하지만 아멜리아가 불안해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16553738414621.jpg‘대공 전하께서 설마 수인의 힘을 쓰신 건 아니겠지. 설마 쓰셨다면, 이사나 경이 눈치챈 건 아니겠지? 이사나 경이 뒤쫓아 간 건 모르실 텐데…….’

세스가는 아멜리아에게 자신의 위로가 전혀 먹히지 않는 걸 보고는 난감한 듯 한숨을 삼키며, 아멜리아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카마리를 보았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그 이사나라는 남자 때문에 저런 표정인 것 같은데…….

1655373841463.jpg‘이사나. 이사나…… 진짜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세스가는 이대로 뒀다간 정말 땅굴까지 파고들어 갈 것 같은 이 두 여자를 보고선, 일부러 화제를 돌려보았다.

1655373841463.jpg“저기! 근데 이사나라는 남자, 티어들의 단장이야?”

아멜리아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서 세스가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16553738414621.jpg“아,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직접 보시고 인사하면 좋은데. 블러드 아이리스 단장입니다. 카마리 경과 제 명을 수행하느라, 좀처럼 황자 전하와 인사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쪽은 클리오 대공 전하의 호위를 맡은 카마리 경입니다.”

16553738472359.jpg“카마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카마리가 이사나와 계속 루베르 가주의 흔적을 찾느라고, 세스가와 제대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1655373841463.jpg“그래, 단장. 단장이란 말이지. 근데 내가 진짜 어디서 본 것 같거든. 엄청 낯이 익어.”

카마리는 세스가의 말에 곧장 반응했다.

16553738472359.jpg“이사나 경을 말씀이십니까?”

아멜리아도 세스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655373841463.jpg“내가 아는 얼굴이랑 좀 다르긴 한데……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비슷해.”

16553738414621.jpg“누굴 닮았다는 거죠?”

아멜리아의 말에 세스가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1655373841463.jpg“루베르 왕자.”

16553738530441.jpg“네?”

세스가의 대답에 아멜리아보다 카마리의 눈동자가 더 크게 경직됐다.

1655373841463.jpg“예전에 프리메는 루베르와 자주 교류했어. 그래서 왕족을 만난 적 있지. 나는 루베르 왕세자와 몇 번 마주치기도 했어.”

16553738414621.jpg“아, 아니 잠깐만요. 루베르 왕족을 만난 적이 있다면, 얼굴도 기억하시나요?”

현재 루베르 가주는 루베르의 남아 있는 왕족이라고 했다.

16553738414621.jpg‘세스가 황자가 얼굴을 알고 있다면, 가장 결정적인 걸 손에 넣게 되는 거야!’

1655373841463.jpg“당연히 기억하지. 왕세자의 동생도 본 적 있어. 어릴 적에 잠깐이긴 했지만, 이사나 경이 그 왕자와 닮았어.”

16553738414621.jpg“이사나 경?”

세스가는 이제야 떠올린 사실에 답답함이 풀리면서 신나서 말을 이었다.

1655373841463.jpg“물론 눈동자 색이 다르긴 한데, 그래도 닮긴 닮았어. 뭔가 전체적인 인상이랑 분위기 같은 게. 아…… 그리운 느낌이 드는데.”

그의 목소리 위로 어느새 상념이 젖어 들었다.

1655373841463.jpg“루베르가 솔라에 넘어가고, 왕족들 대부분이 죽은 이후론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사실 피오레 공에게 루베르와 다시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뭐, 피오레 공 덕분에 루베르 장로를 만나는 거지.”

아멜리아는 이사나를 닮았다는 말에 어쩌면 이것도 큰 단서가 되겠다, 싶어서 더 깊이 물었다.

16553738414621.jpg“현 루베르 가주가 왕세자 저하신가요?”

1655373841463.jpg“왕세자는 아닐 거야. 예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아마 동생인 그 왕자가 이어받았을걸?”

16553738414621.jpg“이사나 경을 닮았다는?”

1655373841463.jpg“맞아.”

아멜리아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16553738414621.jpg‘이사나 경을 닮았다는 말이지? 그럼 그 얼굴과 비슷한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 이사나 경의 얼굴이 그렇게 흔한 얼굴은 아니니까!’

그녀는 뭔가 묘한 우연이 마냥 행운처럼 느껴졌다.

16553738414621.jpg“혹시, 그 왕자님. 그러니까 루베르 가주의 이름은 아시나요?”

아멜리아가 잔뜩 기대하며 묻자, 세스가가 경쾌하게 답해줬다.

1655373841463.jpg“루비엔. 루비엔 루베르 왕자. 왕세자가 애칭으로 루비라고 불렀었지. 왕세자가 동생을 많이 좋아했고, 동생도 왕세자를 많이…….”

  쨍그랑-! 그때, 세스가의 유쾌한 목소리가 날카로운 파음에 흩어졌다. 아멜리아는 탁자에 놓인 컵을 떨어뜨린 카마리를 보고 놀랐다.

16553738414621.jpg“카마리 경! 괜찮아요?”

1655373841463.jpg“이봐, 안 다쳤어?”

세스가는 행여 아멜리아가 유리를 밟지 못하게 저지하면서 카마리를 살폈다. 그런데 카마리는 어쩐 일인지 파리해진 안색으로 탁자를 짚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뭔가 심상치 않은 카마리의 모습에 당황하며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16553738472359.jpg“……그저 닮은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버석한 입술 끝에서 새어 나온 한마디에 아멜리아가 카마리와 눈을 마주했다.

16553738414621.jpg“무슨 말이야, 카마리 경.”

카마리는 그녀답지 않게 두려운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며 아멜리아를 붙잡았다.

16553738472359.jpg“가주님, 사실. 이사나 경의 코드명, 루비입니다.”

그녀의 한마디에 아멜리아의 움직임 또한 굳어졌다.

16553738414621.jpg“코드명이, 루비라니?”

16553738472359.jpg“어쩌면 이사나 경이, 루베르 가주일지도 모릅니다.”

  *** 이클리트는 서둘러 저택에 도착했다. 일단 집무실에서 헝클어진 복장을 정리하고, 서둘러 아멜리아를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노크와 함께 이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16553738613459.jpg“클리오 대공 전하.”

16553738613464.jpg“들어와라.”

이클리트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앞에 나타난 이사나를 응시했다. 이사나는 쟁반 하나를 쥔 채, 정중하게 몸을 굽혔다.

16553738613459.jpg“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대공 전하.”

16553738613464.jpg“그대도 오늘 고생 많았다.”

뜬금없는 인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사나는 더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져온 차 한 잔을 내밀었다.

16553738613459.jpg“마미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16553738613464.jpg“마미가?”

16553738613459.jpg“피로를 풀어주는 차라고 들었습니다. 가주님이 마미에게 부탁한 모양인데, 제가 대공 전하께 여쭙게 있어서 대신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부탁이라는 말에 입꼬리가 금세 풀어졌다.

16553738613464.jpg“내가 부인을 만나러 갈 텐데…….”

그는 말간 색의 차를 보며, 찻잔을 소중히 쥐었다.

16553738613464.jpg“그런데 내게 묻고 싶은 게 뭐지?”

이클리트가 찻잔에 입을 대는 걸 보고서, 이사나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16553738613459.jpg“대공 전하,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든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이사나의 손끝에 위태롭게 들려있는 검은 깃털.

16553738613459.jpg“모른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당신의 것이니까.”

날카롭게 베이는 이사나의 목소리에 이클리트는 가까스로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38613464.jpg“이사나 경, 네가 지금…… 흐윽!”

그때, 갑자기 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 끔찍한 고통이 타고 오르면서 그는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16553738613464.jpg“하아, 하아!”

숨을 내뱉을 때마다, 불덩이라도 삼킨 것처럼 뜨거운 무언가가 그의 이성을 태워버릴 듯, 맹렬하게 솟구쳤다. 그는 너무 익숙한 느낌에 핏방울이 맺힌 시선으로 이사나를 노려보았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를 더없이 냉랭한 시선 아래 두고 있었다.

16553738613464.jpg“네가. 지금 나한테, 밀주를…… 윽!”

16553738613459.jpg“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텐데.”

밀주가 일으키는 광기. 결국, 이클리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방을 할퀴는 바람이 차오르면서 거대한 검은 날개가 주위를 압도했다. 이사나는 그 모습에 오싹해지는 감각을 가까스로 누르며, 그보다 차갑게 읊조렸다.

16553738613459.jpg“역시, 당신 것이었네. 정말 반인수인. 괴물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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