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루베르 가주 (127/199)

127화. 루베르 가주2022.03.21.

16553738730505.jpg

1655373873051.jpg“어쩌면 이사나 경이, 루베르 가주일지도 모릅니다.”

잔잔한 호수에 큰 돌이 떨어지듯, 카마리의 한마디에 엄청난 파장이 밀려들었다. 아멜리아는 핏기가 가신 낯빛으로 굳어진 입술을 달싹였다.

16553738730515.jpg“……이사나 경이 루베르 가주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카마리 경, 그건 아닐 거예요. 뭔가 우연일 수도. 그래. 이사나 경은 루베르가 아니잖아요. 가주는 왕족이라며. 이사나는 루베르와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카마리도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모든 정황이 너무나도 딱딱 들어맞았다.

1655373873051.jpg“가주님이 루베르 장로를 만나셨을 때, 이사나 경은 의도적으로 루베르 장로를 만나는 걸 피한 겁니다. 라니를 포함한 다른 루베르는 이사나 경의 얼굴을 모르겠지만, 장로라면 들킬 것 같아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16553738730515.jpg“의도적으로 피한 거라고?”

1655373873051.jpg“게다가 루베르 얘기만 나와도 이사나 경의 표정이 이상했습니다. 애당초 북부에 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루베르와 관련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카마리의 말에 아멜리아는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16553738730535.jpg‘모르긴 몰라도 겁쟁이에 아주 형편없는 사람일 겁니다.’

16553738730515.jpg‘응?’

16553738730535.jpg‘결국은 도망친 거고, 숨은 거니까. 가주님처럼 이렇게 용감하게 나서지 못하고.’

16553738730515.jpg‘루베르 가주를 마치 아는 것처럼 싫어하네요.’

16553738730535.jpg‘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입니다.’

16553738730515.jpg‘그래. 이사나 경이 너무 과민할 정도로 루베르 가주에 대해서 반응하긴 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주라고?’

만약, 정말로 가주라면. 자기 자신을 그렇게까지 비난한다고? 카마리는 아멜리아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을 죄다 털어놨다.

1655373873051.jpg“이사나 경의 코드명이 루비이고, 약재상이 이사나 경을 가리키며, 그때 약을 사 간 사람과 체격이 똑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황자 전하는 이사나 경과 루베르 왕자님이 닮았다고 하시고…… 이 모든 걸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이상한 거 아닙니까?”

가만히 카마리의 말을 듣고 있던 세스가가 짤막하게 덧붙였다.

1655373876059.jpg“모든 일을 우연으로 치부하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지. 게다가 이 경우는 어떻게 봐도 우연이 아닌데? 겉모습이야 뭐,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

정곡을 찔러온 세스가의 말에 아멜리아는 자꾸만 혼란스러움이 밀려들었다.

16553738730515.jpg“하지만 이사나 경은 진심으로 피오레 공작가를 좋아했는데. 충성하는 것 같았고. 티어들을 너무 좋아해서, 티어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가주가 되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이사나가 루베르 가주라면. 대체 왜 피오레 공작가의 티어가 된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16553738730535.jpg‘피오레를 사랑하니까. 피오레에 흠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16553738730515.jpg‘이런 말도 하긴 했었지만. 설마 루베르 가주라서, 흠이 된다는 거야?’

외조부께선 이미 알고 계셨을까. 알고 계시겠지?

16553738730515.jpg‘하지만 외조부를 당장 만나거나,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어.’

아멜리아는 머릿속에서 헤집고 있는 혼란을 붙들며, 세스가를 바라보았다.

16553738730515.jpg“……정말 닮았나요? 이사나 경이.”

세스가는 아까보다 훨씬 침착하고 진지한 아멜리아의 모습에, 그 또한 진지하게 답했다.

1655373876059.jpg“닮긴 했는데, 나도 본 지 오래돼서 뭐라고 정확히 말해줄 수가 없네. 하지만 중요한 문제니까. 피오레 공은 이미 다음 해답을 알 것 같은데.”

또 한 번 제대로 찌르는 세스가의 말에 아멜리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만큼이나 불안해하고 있는 카마리를 향해 말했다.

16553738730515.jpg“이사나 경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어요. 우리끼리 얘기하고, 추측한다고 해답이 나올 게 아니니까.”

1655373873051.jpg“…….”

16553738730515.jpg“고마워요, 카마리 경. 숨기지 않고 다 말해줘서. 이다음은, 내가 할게요.”

아멜리아가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카마리가 다급하게 그녀를 붙잡았다.

1655373873051.jpg“만약!”

16553738730515.jpg“…….”

1655373873051.jpg“이사나 경이 루베르 가주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멜리아는 그녀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이사나가 루베르 가주라면. 그는 겉모습까지 바꿀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지우고 피오레의 티어로 살아온 거다.

16553738730515.jpg‘게다가 자신을 몹시 원망하고 있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 이유가 있었을 거고, 아마 그 이유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닐 터.

16553738730515.jpg‘내가 이걸 억지로 끄집어내게 되면, 전처럼 이사나 경과 지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도, 이미 알고 있었다. 카마리도 아멜리아의 잘게 흔들리는 눈빛에서 모든 걸 읽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고개 숙였다.

1655373873051.jpg“뭔가 불안하고, 많이 위태로운 사람입니다.”

16553738730515.jpg“카마리 경…….”

1655373873051.jpg“지키고 싶습니다.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는 항상 지금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고. 카마리 경이 알고 있는 모습보다 훨씬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주변으로 선을 긋고 또 그었다. 누구도 진지하게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겉으로 보기엔 항상 헤실헤실하게 웃으면서,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그렇게 많은 사람과 허울 없이 지내고 있다고 보지만. 카마리의 눈엔 그렇게 보이게끔 위장하고, 매 순간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은 아마, 필드에서 루비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했던 저격수가 아니었을까.

1655373873051.jpg‘혹시라도 가주님이 정체를 밝혀낸다면. 그래서 완전히 숨어버리겠다면, 난 용납 못 해. 당신 멋대로 사라지게 두지 않을 테니까.’

1655373873051.jpg“가주님, 부디 저도 같이 이사나 경을 만나러…….”

  쾅-! 그때, 굉음과 동시에 저택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오싹하게 파고들었다. 아멜리아는 곧장 고개를 들었다. 불길한 느낌이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16553738730515.jpg‘설마…….’

1655373876059.jpg“무슨 일이야? 설마 장로회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저택도 공격한 거야?”

16553738730515.jpg“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리 장로회가 급해도, 이 저택을 공격하는 건 반란이에요.”

1655373876059.jpg“그럼 아까 그건 대체…….”

세스가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자, 아멜리아가 그를 막으며 말했다.

16553738730515.jpg“그래도 혹시 황자 전하를 노리는 걸 수도 있으니까, 여기 계세요. 이 저택의 책임자는 접니다. 제가 파악하겠습니다.”

1655373876059.jpg“뭐? 하지만…….”

16553738730515.jpg“여기 계십시오. 카마리 경도 여기서 황자 전하를 호위하도록.”

1655373873051.jpg“가주님 혼자선 위험합니다!”

카마리가 반발했으나, 아멜리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명을 내렸다.

16553738730515.jpg“카마리 경, 가주로서의 명령이다. 황자 전하를 지켜. 기사의 의무를 다하도록 해.”

아멜리아의 명령에 카마리는 멈칫하고는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서 고개 숙였다.

1655373873051.jpg“……예, 가주님. 명에 따르겠습니다.”

16553738730515.jpg“미안해요, 부탁해.”

아멜리아는 그대로 침실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이클리트의 집무실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아멜리아는 티어들에게 저택 바깥쪽을 살펴달라고 당부하며, 집무실 근처로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다.

16553738730515.jpg‘제발, 걱정하는 그런 일만 아니길. 제발!’

  *** 챙-! 이사나와 이클리트의 칼이 서로 격렬하게 맞부딪히고 있었다. 이클리트는 여전히 변화된 모습을 감추지 못한 채, 타오를 듯한 광기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나가 끊임없이 공격해올 때마다, 그로 인해 칼을 맞부딪힐 때마다, 그 충격을 따라서 이성이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의 모습에 비릿한 조소를 끌어올렸다.

16553738730535.jpg“분명 저는 티어라서, 대공 전하보다 약할 텐데. 게다가 지금 대공 전하의 모습으론 저 같은 건 쉽게 죽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대공 전하가 더 밀리는 모습일까요.”

이사나의 말대로 이클리트는 힘겨운 숨을 내쉬며, 조금씩 이사나의 힘에 밀리고 있었다.

16553738730535.jpg“설마 봐주시는 겁니까?”

이사나가 다시금 칼을 거세게 휘두르자, 이클리트가 또 한 번 크게 막아내며, 거칠게 긁히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16553738851839.jpg“시끄럽다.”

  쿵-! 순간 치미는 감정에 이클리트가 조금 힘을 주자, 이사나가 크게 밀려났다. 이클리트는 그 모습에 눈에 힘을 주고서 한껏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억누르고 있는 힘이 완전히 깨져버릴 듯, 위태로웠다. 이사나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이클리트의 눅진한 살기에 그 역시 힘겹게 숨을 삼키며, 계속 그를 도발했다.

16553738730535.jpg“예전엔 안 그러셨을 텐데, 가주님이 주셨다는 말에 밀주도 아무 의심 없이 마셔버리고. 대공 전하께 가주님이 너무 치명적인 약점 아닙니까? 대공 전하를 약하게 만드는?”

16553738851839.jpg“시끄럽다니까!”

이클리트는 순식간에 이사나에게 달려와서는 금방이라도 이사나를 찢어발길 듯,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이사나는 그런 이클리트 앞에 무서우리만큼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16553738730535.jpg“공격 안 하는 겁니까?”

16553738851839.jpg“……대체. 뭘 원하는 거지?”

이클리트는 몇 번이고 광기를 붙들며, 괴로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16553738730535.jpg“당신이 제대로 괴물이 되는 것. 그래야 나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이사나는 이클리트가 멈춘 빈틈을 놓치지 않고서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16553738851839.jpg“윽!”

어깨에 칼이 제대로 박힌 이클리트는 피가 섞인 신음을 뱉으며 이사나에게서 아예 칼을 빼앗아버렸다.

16553738851839.jpg“하아, 하아…….”

그의 어깨를 타고 끈적끈적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사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무심히 쳐다보며 입술을 열었다.

16553738730535.jpg“제대로 안 하면, 정말로 죽을 겁니다.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계속 상처가 생기면 견디지 못할 테니까.”

16553738851839.jpg“끄윽…….”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가볍게 제압하는 게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이사나는 블러드 아이리스의 단장. 아무리 총이 아닌 검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기에 제대로 상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선 도저히 힘을 줄 수가 없었다.

16553738851839.jpg‘힘을 주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밀주에 섞인 뱀의 독이 호시탐탐 이클리트의 이성을 끊어내기 위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있었다. 다른 반인반수였다면 마시는 것과 동시에 광기에 사로잡혔을 거다. 이클리트이기에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하지만 버텨야 했다.

16553738851839.jpg‘저자의 속내가 뭔지는 몰라도, 쉽게 죽일 수는 없어.’

이사나는 몇 번이고 힘을 가다듬고 있는 이클리트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클리트의 눈앞으로 그의 검은 깃털을 움켜쥐었다.

16553738730535.jpg“사실. 이미 다 눈치챘었는데, 모른 척했습니다. 깨뜨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16553738851839.jpg“…….”

16553738730535.jpg“피오레 공작가가 너무 좋았고. 티어가 좋았고. 가주님도 좋았고. 정이라도 들었는지, 대공 전하도 좋았고.”

이사나는 순간 가볍게 이름조차 내뱉을 수 없는 그녀를 떠올리며 꾹 삼켰다.

16553738730535.jpg“그래서 좀 더 오래 여기 남고 싶어서, 모른 척했었는데.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과거가 결국, 제게 벌을 내리는 모양입니다.”

16553738851839.jpg“……그렇게 좋고, 소중하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둬라, 이사나 경…….”

이사나는 이클리트의 말에 쓰게 웃었다.

16553738730535.jpg“그만두기엔,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당신에게 수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난 절대 용서 못 해. 당신을, 죽일 겁니다.”

이사나는 숨겨뒀던 단검을 소매에서 꺼내고는 이클리트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이클리트 역시 이번 공격은 아까와는 달리 정확히 심장을 노린다는 걸 깨닫고서 점점 광기가 그를 삼키기 시작했다.

16553738851839.jpg‘이번엔 정말, 버티지 못한다.’

결국, 버티던 이클리트의 이성이 광기에 휩쓸리려는 찰나.

16553738730515.jpg“이사나 경!”

팽팽한 공기를 깨뜨리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이사나와 이클리트가 동시에 멈췄다.

16553738910617.jpg

  이클리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16553738851839.jpg“아멜리아…….”

그 이름 하나 머금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날뛰던 광기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사나는 아멜리아를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멜리아는 그런 이사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버석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16553738730515.jpg“지금 뭐 하는 거예요? 머스켓티어 단장이. 주인을 배신하는 거예요?”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클리트의 모습은 변해 있었고, 이사나는 그 앞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게다가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이사나의 목소리가 허무하게 날렸다.

16553738730535.jpg“제 눈앞에 있는 사람은, 주인이 아닙니다.”

16553738730515.jpg“이사나 경…….”

16553738730535.jpg“그저, 괴물입니다.”

수인을 향해 짙은 증오 앞에 아멜리아는 온몸이 떨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냑이 그랬지.  

1655373876059.jpg‘수인에 대한 원한도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수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결국 외면당해서 루베르가 멸망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루베르 가주에 대한 단서가 모두 한곳을 가리키고 있다. 도저히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도록. 그렇다는 건 결국. 그녀는 마구 흐트러지는 생각을 붙들고서,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16553738730515.jpg“이사나 경. 당신이, 루베르 가주에요? 루베르의 마지막 왕족이 맞아요?”

아멜리아의 말에 이클리트가 눈을 크게 떴다.

16553738851839.jpg‘루베르, 가주?’

그런가. 그래서 루베르를 알고, 루베르를 피한 건가. 그가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이었는지, 이클리트는 이제야 깨달았다. 더는 감출 것도 없어진 이사나는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3738730535.jpg“루비엔 루베르…… 맞습니다. 다 죽고, 저만 남았습니다. 수왕의 배신으로 우리 왕실은 끝난 겁니다.”

16553738730515.jpg“수왕의 배신이라니…….”

16553738730535.jpg“우리 루베르는 정령을 신으로 모시고, 수인과 어울리며, 그들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 또한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위험해졌을 때. 아무리 손 내밀고, 외쳐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죠.”

이사나는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그 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몇 번이고 되새겨지는 절망 앞에 말을 씹어 내뱉었다.

16553738730535.jpg“우리는 애초에 여기저기 휘둘리고, 이용당하기만 했을 뿐. 루베르는, 수왕의 제물에 불과했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