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끊임없이 현혹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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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끊임없이 현혹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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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끊임없이 현혹시키며
2022.04.18.
똑같은 마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호위대 역시 동시에 분산되면서, 눈을 현혹하고 있었다.
과연 어디에 세스가 황자가 있는 것일까?
에드조프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띠며, 협곡 곳곳으로 흩어지는 마차를 응시했다.
“이렇게 시선을 분산시키겠다고? 이런 단순한 방법이라니. 이클리트, 그래서 네놈이 안 되는 거야. 이딴 눈속임에 내가 현혹될 리가 없지.”
에드조프가 시선을 뒤로 돌리자, 대기하고 있던 세인트가 무표정한 눈빛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에드조프는 그런 세인트를 가볍게 쓰다듬고서는, 세스가가 황궁에서 사용했던 식기를 꺼내 세인트에게 보였다.
세인트는 그 식기에 남아 있는 냄새를 기억했다.
‘짐승의 후각은 인간보다 뛰어나지. 게다가 반인반수라면 더더욱. 절대, 속일 수 없다.’
“가라. 가서 세스가 황자를 찾아서 죽여라. 이 모든 건 신의 뜻이고, 신이 노하여 이클리트 저 괴물 자식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니!”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인트가 흑표범들을 이끌고 달렸다.
세인트는 협곡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한 마차에 반응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흑표범들과 그 마차를 뒤쫓기 시작했다.
이클리트와 카마리는 세인트가 쫓는 마차를 발견하고서는 굳어진 표정으로 재빨리 말에 올랐다.
“저 마차를 쫓는다!”
“예, 대공 전하.”
이클리트와 카마리가 세인트를 쫓아 사라졌다.
에드조프는 그 모습을 보며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저 마차로군. 쫓아가도 소용없지. 이클리트, 네놈은 절대로 이 협곡을 무사히 빠져서 나가지 못할 거다. 아니, 설령 빠져서 나가도 네놈 혼자 살아남게 될 테지. 그리되면 어차피 끝이야!’
에드조프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아멜리아가 아이냑과 함께 또 다른 마차를 이끌고서 제단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뒤를 신성회가 보낸 검은 그림자들이 추적했다.
에드조프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듯 속삭였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손을 잡았어야지. 그럼 이런 험한 꼴도 보지 않았을 텐데.”
이클리트가 세스가 황자를 지키지 못하게 되면, 아멜리아 역시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 다시 내 손을 잡을 기회를. 나는 여전히 아멜리아 그대를.’
에드조프는 더없이 짙게 입꼬리를 올리며, 눅진한 소유를 드러냈다.
“원해주고 있으니까.”
***
이클리트가 반대 방향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아멜리아는 지체 없이 제단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핏, 세인트가 흑표범을 이끌고 마차를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또다시 나타난 세인트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그것도 흑표범들을 이끌고 있는 모습이라니…….
‘에드조프가 움직인 것이겠지? 세인트. 넌 이제 완전히 너를 잃어버린 거니?’
하지만 아멜리아는 다른 곳에 정신 팔려있을 틈이 없었다.
“루베르는 태양신의 심판을 받아라!”
아마도 신성회에서 보낸 듯한 검은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아멜리아와 아이냑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마차에 매달린 채, 마탄으로 계속 검은 그림자를 위협하면서 사색이 된 마부를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멈추지 말고 제단까지 달려야 한다.”
“하, 하지만 이러다가 가주님이 위험해지십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달려!”
원거리를 조준하기 위해 꺼낸 장총이 계속해서 푸른 불꽃을 일으켰다.
협곡에서도 티어들의 총성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으나, 사방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아이냑도 말을 탄 채, 검을 휘두르며 검은 그림자를 막아내고 있었다.
전사 출신답게, 그의 검은 빠르고 냉혹했다.
아멜리아는 잘 버텨주는 아이냑의 모습에 안도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 순간.
쿵-!
“윽!”
“가주님!”
마차가 크게 흔들리면서 아멜리아는 떨어지지 않도록, 난간을 꽉 붙들었다.
녀석들이 폭약을 던지며, 마차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아이냑이 아멜리아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다급하게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충격 때문에 마차의 문이 살짝 벌어졌다.
검은 그림자는 그 틈새를 확인했다.
마차 가득 들어있는 프리메의 조각상들.
그들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검과 활을 다시 제대로 고쳐 들었다.
‘세스가 황자가 탄 마차가 아니군.’
그렇다면 마음껏 공격할 수 있다.
게다가 만약, 아이냑을 막지 못하면 저 진상품이라도 온전히 도착하지 못하게 해야 했으니까.
‘평화 회담을 망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마차가 제단에 도착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게 아니면, 진상품을 망가뜨려야 한다!”
타당-!
“악!”
아멜리아는 녀석들이 마차 주변으로 얼씬도 하지 못하게, 바람의 마탄으로 회오리를 만들어 발을 묶었다.
아이냑 역시 다시금 검을 휘두르며, 마차를 지켰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마탄을 장전했다.
‘누굴 걱정할 틈 없어. 여기서 나만 잘하면 돼. 반드시, 제단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말 거야!’
그녀의 마탄이 계속해서 대지를 흔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도, 아이냑도 이 그림자들의 목숨을 노리진 않았다.
계속 공격당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그저 마차를 지키기만 할 뿐.
계속 저들을 유인하고 있는 듯했다.
***
세인트와 흑표범들이 도주하는 마차의 속도를 거의 다 따라잡아서는, 흑표범이 먼저 공중으로 뛰어올라 마부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티어의 마탄이 곧장 흑표범에게 날아왔다.
흑표범은 엄청난 방어 본능으로 피했으나, 순식간에 다가온 이클리트의 검이 흑표범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크으으윽!”
흑표범이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세인트가 걸음을 멈추고서 어느새 마차를 에워싸고 있는 카마리와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이클리트는 피 묻은 검을 무심히 쥐고서 그런 세인트를 응시했다.
예전엔 조금의 이성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 마주 보는 세인트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정말로 완전히 자신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건가.’
결국, 마차가 멈추면서 루시아가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여전히 세스가는 마차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 멀미 나서 저세상 가는 줄 알았네.”
“공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카마리가 곧장 루시아를 살폈다.
루시아는 곧장 손사래를 치며, 섬뜩한 눈초리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흑표범 떼와 세인트 바라보았다.
사방의 공기가 팽팽했다.
기사들은 반인반수와 대치했고, 멀리서 티어들의 총구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루시아와 이클리트만이 표정에 여유가 묻어났다.
“이런. 걸린 것 같네요, 대공 전하. 아주 감쪽같이 마차를 숨겼는데. 역시 짐승의 후각은 이길 수가 없나 봐요.”
여유가 묻어나는 루시아의 어조에 이클리트 역시 태연하게 칼자루를 다시 붙잡았다.
“들켰다면, 지켜내는 수밖에.”
이클리트가 공격할 낌새를 보이자, 세인트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는 마체테를 쥐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 모습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오호. 잘생기긴 했는데, 눈빛이 너무 과격하네. 과격한 남자는 침실에서나 쓸모 있지.”
“루시아, 그댄 마차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물론이죠.”
이클리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서 먼저 세인트에게 달려들었다.
세인트 역시 곧장 마체테를 휘두르며,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히자마자 그게 신호탄이라도 된 듯, 흑표범과 기사들이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이클리트는 수인으로 변하지 않았음에도, 세인트에게 힘으로 밀리지 않은 채 제대로 그를 붙들고 있었다.
세인트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마치 줄 달린 인형처럼 그를 공격하기만 했다.
이클리트는 그 모습에 이 자리에 아멜리아가 없음을 감사했다.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 신경 쓰고 마음 아파했을 거야.’
“그렇기에, 그녀가 없는 지금. 이번엔 봐주지 않을 거다.”
“…….”
“나와 제대로 시간을 보내다오!”
***
아멜리아가 바람의 마탄으로 끊임없이 대지를 흔들면서 저들의 발을 붙잡으면, 아이냑이 그 뒤를 처리하면서 마차는 제단을 향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
아이냑은 끊임없이 마탄을 쏘면서 자신을 서포트해주는 아멜리아의 능력에 새삼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새로운 피오레 가주의 능력을 듣기는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특히, 정령도 봉인된 지금.
어떻게 마나를 저런 식으로 계속 시전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아이냑이 아멜리아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을 때, 아멜리아도 아이냑을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루베르의 전사라더니, 실력이 대단하잖아.’
루베르의 군사력은 대부분 마법사에게서 왔기 때문에, 검을 휘두르는 기사는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아이냑의 실력은 대공 전하만큼은 아니더라도 굉장히 힘 있고, 정확했다.
자신이 저들의 움직임을 잡으면, 실수 없이 제압하고 있었으니까.
‘특히나 죽이지 않고 티 나지 않게 제압만 하는 게 대단해.’
보통 검은 방어하거나 지키는 것이, 공격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으니까.
그런 아이냑의 노력으로 점점 제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들도 전혀 의심하지 못하고 말이야.’
하지만 계속 아멜리아와 아이냑의 뒤를 쫓던 검은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슬슬 제단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이대로 제단까지 따라갔다가 정체를 들키면 안 됐기에.
‘이 이상은 곤란하다.’
그중 한 명이 추격하던 움직임을 멈추고서, 후퇴 신호를 보내려는 순간, 아멜리아가 냉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이제 와 눈치채면 곤란하지.”
쾅-!
“이, 이게 대체!”
“악!”
아멜리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충격으로 그들이 딛고 있던 땅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철저히, 자신의 손에 잡히도록.
아이냑은 아멜리아의 뒤를 지켜주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그녀의 주변으로 얼씬도 하지 못할 만큼, 패닉에 빠진 듯했으니까.
아멜리아는 당황하는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먼저 공격했으면, 끝을 봐야지.”
‘설마. 우릴 여기까지 유인한 건가?’
이제껏 죽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않고 있었던 거다.
그들은 그제야 아멜리아와 아이냑의 속내를 꿰뚫고서는, 어떻게든 저들에게서 빠져나가고자 움직였다.
“전부 후퇴해!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빠져나가!”
“안 된다니까?”
아멜리아는 사방으로 도망치는 녀석 중, 한 놈을 향해 그의 걸음 앞으로 불의 마탄을 터트렸다.
갑자기 치솟은 열기에 한 놈이 주춤하던 찰나, 아멜리아가 곧장 그의 등 뒤로 총구를 겨누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네 뒤에 배후가 신성회지?”
하지만 그놈은 상황이 여기까지 내몰렸어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쉽게 말하지 않겠지.”
그때, 녀석이 잠시 멈칫하다가 순식간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 마시려고 했다.
그러자 아멜리아가 곧장 바람의 마탄을 이용해 녀석의 팔목을 꺾어버렸다.
“흐윽!”
녀석이 팔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죽으면 안 되지. 겨우 살려서 여기까지 끌고 온 건데.”
다른 암살자들은 돈으로 움직이기에, 자결 따위 하지 않지만.
이들은 신성회를 향한 신앙심으로 움직이기에, 어떻게든 살려서 여기까지 유인했던 거다.
아멜리아는 그가 먹으려고 했던 독약을 치워냈다.
어느새 다가온 아이냑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한 놈은 생포하셨네요.”
“생포하려고 살살한 거니까.”
“살살하신 거군요.”
“그냥 제압만 한 거니까, 살살하지 않았나?”
아멜리아가 태연하게 웃으며 말하자, 아이냑은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자, 그럼. 증인도 생포했겠다. 제대로 도착해볼까요?”
***
아멜리아와 아이냑은 마침내 마차를 이끌고 무사히 태양의 제단에 당도할 수 있었다.
솔라 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지, 태양의 제단.
여기는 그 제단으로 향하는 정문 앞이었다.
어찌나 고도가 높은지, 구름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고.
태양이 유난히 가까이에서 새하얀 제단을 감싸며 빛나고 있었다.
아이냑은 일순 벅찬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서 고개 숙였다.
솔라에서 가장 밑바닥에 버려진 그들이, 마침내 솔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것이다.
아멜리아는 그런 아이냑의 기도에 자신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그 감정에 계속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프리메의 조각상은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남은 건.
‘대공 전하께서 무사히 도착하시는 것.’
그래서 함께 이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지만 기다리는 이클리트는 오지 않고, 불청객이 먼저 찾아들었다.
“조금 늦었군, 피오레 공. 그리고 그쪽인가?”
바로 제단에 먼저 도착한 알렉드라였다.
알렉드라는 일부러 아이냑을 무시하는 호칭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이냑은 의연하게 고개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포르티셰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루베르 장로, 아이냑입니다.”
“루베르 가주는 그 얼굴 한번 보기 힘든데, 장로는 이렇게 제단에서야 보게 되는군.”
알렉드라는 뼈가 있는 시선으로 아멜리아를 응시했다.
“제단이 벌써 시끌시끌해. 성지가 마치 마을 광장처럼 되어서 말이야.”
“평화 회담이 이제야 그 의미답게 모두의 앞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 같아서,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아멜리아 역시 말에 뼈를 담아 응대해주었다.
“피오레 공.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그때, 대신관이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대신관의 능청스러운 말에 아멜리아는 절로 눈빛이 싸늘해졌으나,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무사히 도착해야죠. 감히 피오레 공작가를 건드리는 도적 떼가 있겠습니까? 있다면, 태양신의 저주를 받겠지요.”
냉기가 섞인 아멜리아의 말에 대신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무, 물론입니다. 태양신께서 피오레 공을 지켜주시지요. 그런데, 세스가 황자 전하는 어디 계십니까?”
순간 파고든 대신관의 말에 아멜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관은 그런 아멜리아를 보며 더더욱 그녀를 몰아붙였다.
“피오레 공이 모셔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안 보이시는데. 혹시, 세스가 황자 전하께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