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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무리한 요구 (138/199)


138화. 무리한 요구
2022.04.29.


에드조프가 굳어진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충격받은 표정이어야 하는데,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다.

오히려 에드조프를 발견하곤 우아한 어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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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얀 대공 전하, 조금 늦으셨군요. 세스가 황자 전하께선 이미 도착하셔서, 폐하를 알현하고 계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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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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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대공 전하께서도 세스가 황자 전하께서 무사하신 것이 이상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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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대체 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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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그때, 아멜리아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면서, 에드조프에게서 시선이 단번에 멀어졌다.

에드조프는 떨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 이클리트, 녀석이 너무 태연한 표정으로 아멜리아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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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저놈이 감히!’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무사함을 눈으로 연신 살피며, 거리를 좁혀왔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거의 뛰다시피 그에게 달려가서는 이클리트를 와락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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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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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자신의 품에 그녀가 안겨들자, 이제야 이클리트는 제대로 숨을 들이켜며, 에드조프에게 들이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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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사고가 생겨서, 피오레의 진상품 마차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이클리트의 말에 에드조프의 미간이 더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저 말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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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쫓았던 것이 고작 진상품 마차라고? 하지만 분명 녀석들이 세스가 황자의 냄새를 찾아냈는데!’

설마, 그조차 예견하고 움직였다는 건가?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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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다들 무사하신 것이 더 중요하죠.”

그녀는 이클리트를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에드조프를 곁눈질로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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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기운만 빼셨네요. 겨우, 그런 진상품 때문에.”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비웃음을 담고서 에드조프에게 닿았다.

에드조프는 손등의 뼈마디가 하얗게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고선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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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날 속인 건가? 날 가지고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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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들을 공격한 배후가 자신이라는 걸 드러낼 수 없었기에, 에드조프는 그저 이를 악물고서 거칠게 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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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대로 물러날 것 같아? 이번 회담에서 네놈이 웃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지, 절대로!’

그때, 그의 앞을 알렉드라가 막아섰다.

에드조프는 감히 황자의 걸음을 겁도 없이 막아선 알렉드라의 모습에 분노가 치솟았으나, 가까스로 삼키며 굳어진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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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착하셨군요, 포르티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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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셨습니다, 바스티얀 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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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조금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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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믿지 못하신 겁니까?”

알렉드라의 냉한 어조에 에드조프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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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에드조프는 건방 떠는 알렉드라를 노려보았고, 알렉드라는 가소롭다는 듯 그 눈빛을 받아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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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으로 오시는 길에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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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입니다.”

에드조프는 단호한 어조로 단칼에 알렉드라의 의심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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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짐승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보시다시피 괜찮았습니다.”

알렉드라는 짐승이라는 말에 눈빛이 점점 사납게 벼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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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라니. 설마, 반인반수였던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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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가 움직이니, 당연히 저들도 움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루베르와 반인반수가 관련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으니. 평화 회담이 끝나고 반드시 어떤 성과가 있어야 할 겁니다.”

에드조프는 짜증 섞인 어조로 언성을 높이고서, 알렉드라를 지나쳤다.

알렉드라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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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수, 그들이 또 나타났다고? 루베르 때문에?’

하지만 루베르와 반인반수가 연관 있다면, 굳이 루베르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세스가 황자를 위협했다면, 더더욱 그래선 안 되고.

루베르로서는 이번 평화 회담이 어떻게든 무사히 잘 치러져야 할 테니까.

알렉드라는 에드조프가 떠난 빈자리를 보면서 묘한 의구심이 떠올랐다.

오히려 반인반수가 일으키는 사건 사고에 너무 지나친 우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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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얀 대공이 계속 눈에 띄는군.’

애당초 처음 반인반수가 신관을 죽였던 그 날.

갑자기 기도회를 함께 가자고 권한 것도 바스티얀 대공이었으니까.

***

에드조프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아멜리아는 이클리트를 안은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를 더욱 꽉 안으면서 그의 무사한 심장 소리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정말로 많이, 걱정했었으니까.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의 불안을 다독이면서,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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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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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대공 전하께서 도와주셨잖아요. 제단으로 가는 내내 바람이 한 점도 불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탄을 겨냥하기 쉬웠고요. 전부 대공 전하께서 하신 거죠? 그래서 약간의 도움은 받는다고 했던 거죠?”

이클리트는 단번에 알아차린 아멜리아의 말에 살짝 멈칫하고선,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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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면 될 것 같아서…… 사실 부인의 눈도 속이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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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그렇게 절 도와주는데 어떻게 속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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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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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계속, 대공 전하와 같이 있는 기분이었어요.”

뜻밖의 말에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다시금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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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계속 지속되는 걸 보니, 이분은 무사하시구나. 아직 괜찮으시구나. 위험하진 않은 거구나, 그렇게 안도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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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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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얼음 목걸이도 여전히 반짝반짝 예쁘게 빛나고 있고. 그때 그랬잖아요. 대공 전하가 무사하시면, 이 목걸이 역시 계속 녹지 않을 거라고.”

아멜리아는 그가 준 얼음 목걸이를 소중히 붙잡았다.

그녀에게 이건 이제 하나의 부적이자, 이클리트 자체이기도 했다.

이클리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을 생각해주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달뜬 감각이 단숨에 퍼져서는, 호흡을 들썩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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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인트는…….”

아멜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달싹이자, 이클리트는 들떴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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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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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를 이젠 아예 못 알아보던가요?”

아멜리아의 눈빛이 음울해졌다.

이클리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계속 묘하게 걸려 있는 의구심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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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가 제대로 속아서 이쪽 마차를 쫓지 않았다면, 작전은 실패했을 겁니다. 루시아 말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속아 넘어갔다는군요.”

이클리트의 속내를 파악한 아멜리아가 음울했던 눈빛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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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인트가 우릴 도와준 걸까요? 일부러 속아준 걸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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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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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분명 도와준 걸 거예요. 우릴 기억하고 있는 거야. 아직은, 아직은 늦지 않았어요. 구해낼 수 있다고요.”

그 역시 세인트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한 마차와 함께 추락해버린 그 흑표범의 모습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에게 그 일까지 전부 숨김없이 다 말해주었다.

물론 조금이나마 괜찮아진 그녀의 마음이 다시 불편해질 테고, 지금보다 더 걱정이 많아질 테지만.

자신이 택한 길은, 이렇게 전부 그녀에게 말해주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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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밀주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이클리트의 말을 묵묵히 들은 아멜리아는 딱 한 마디를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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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드셨겠네요.”

아멜리아의 위로 앞에 이클리트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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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는 시선과 대공 전하께서 보는 시선은 달랐을 테니까.”

너무 당연하다는 듯,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감정을 다독이며, 안아주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이클리트는 가슴께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사실 가장 마음에 걸리고 신경 쓰이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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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인해, 당신이 다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뜻밖의 말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멈칫하다가 이내 발끈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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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 없어요. 대공 전하께서 날 해칠 리가 없잖아요.”

아멜리아는 이클리트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깨닫고선 그의 양손을 더욱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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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강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겨도 대공 전하가 날 해치지 못하게, 내가 날 잘 지킬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화내고 있는 아멜리아를 보면서, 이클리트는 그녀의 한쪽 뺨을 감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이 내뱉은 이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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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부인을 잘 지키겠죠. 그러니까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방아쇠를 당겨요.”

서늘한 그의 시선 아래, 아멜리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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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총구가 향해야 할 곳을 잃지 말고. 내가 나 자신을 증오하지 않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장난 하나 섞이지 않은 이클리트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아멜리아는 심장이 찢어질 듯 뛰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곧장 온 힘을 다해 그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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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일 없어요.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해. 절대 그렇게 안 둘 거야!”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가만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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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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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시 도로 가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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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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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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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잖아요. 부인의 명을 나는 거역할 수 없다고. 태어난 순간부터 그대에게 속해버린걸. 난 부인의 것이에요.”

아멜리아는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몸을 더 바짝 기대었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가 자신을 공격하다니.

사실, 공격받는다고 해도 자신은 괜찮았다.

그가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 아님을 아니까.

다만, 그가 정신 차렸을 때.

아마도 자신보다 더 괴로워하며 마음이 다친 채 무너져 내릴 그를, 볼 수가 없을 뿐이다.

***

일단 폐하를 알현해야 했기에, 에드조프는 의복을 정비하고서 걸음을 옮겼다.

그 빌어먹을 세스가 황자도 봐야 했으니,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은 감정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런데 그의 눈앞으로 키르케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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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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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키르케는 태연하게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에드조프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고서 곧장 벽 뒤로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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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네가 여긴 왜 있는 거지? 이클리트가 널 얼마나 의심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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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았습니까? 먼저 밝혀지는 쪽이 제물이 되면 된다고. 진짜 괴물은 추락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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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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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대공께선 날 만나는 게 더 최악일 텐데. 뭐, 기다리신다면, 만나드려야지요.”

이클리트를 만난다는 말에 에드조프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그녀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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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야? 지금 당장 내 손에 죽고 싶은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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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지 마세요, 대공 전하. 어울리지 않게 뭐 하시는 겁니까?”

키르케는 그런 에드조프의 분노 앞에서도 의연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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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제국 전부를 가지실 분인데. 함부로 겁먹지 마세요. 이 유모는 대공 전하를 그리 키우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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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년이 날 키우지 않았어. 내 어머니는 황후 폐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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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요. 자, 평화 회담은 이제부터 시작이랍니다. 대공 전하는 그저 즐기세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락으로 무너질 클리오 대공 전하를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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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스란 황제까지!’

 

***

태양의 제단에서 평화 회담의 마지막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미 제국민들이 협곡을 지나 속속 제단으로 들어오면서, 예전과 다른 평화 회담의 분위기가 흘렀다.

평화 회담은 해가 저물 때쯤 시작했다.

이곳이 워낙 태양과 가까운 곳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뜨거운 햇살에 화상을 입을 수 있었다.

태양신을 섬기지만, 태양과 가까워질 수는 없는 한낱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은 신을 경외해야 했으니까.

신녀들은 마을 소녀들이 만들어준 카렌듈라 조화를 제국민들이 머물 자리 곳곳에 장식하고 있었다.

진짜 카렌듈라는 이 높은 곳의 온도와 공기를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조화를 장식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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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 은빛 실이 루베르의 폭죽인 거야?”

조화 사이사이에 은빛 실이 마치 줄기처럼 뻗어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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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무 신기하지? 이게 터지면 얼마나 예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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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 폭죽이 그렇게 근사하다며? 하늘에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들며, 마지막엔 별처럼 반짝인다던데.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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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이번 평화 회담은 마치 축제 같아. 건국제보다 더 화려할 것 같다고.”

신녀들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서는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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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너무 덥지 않니?”

한 신녀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가쁜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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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너무 습한 것 같아. 물론 여기가 솔라에서 제일 덥긴 한데…….”

유난히 날씨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습하게 더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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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조금 어지러워.”

가쁘게 숨을 쉬던 신녀가 현기증을 호소하며 비틀거리자, 다른 신녀가 그녀에게 물을 챙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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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고 있어. 나머진 우리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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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고마워.”

어찌나 더운지, 그녀들의 피부 위로 붉은 열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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