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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당신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서 (144/199)


144화. 당신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서
2022.05.20.


두 번째 폭발의 위력이 더 거셌기에, 위층에서 제국민들을 구조하던 이들 대부분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구해내지 못한 제국민은 대부분 사망한 것 같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세스가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했던 카힐로는 끝내 의식을 잃은 그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대로 세스가 황자가 잘못된다면, 제국 간의 전쟁으로 번질 것이다.

카힐로는 근처에 의식이 있는 기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이클리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모든 판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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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눈앞에서 아멜리아를 데리고 이클리트가 사라졌고, 카힐로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겨우 정신을 붙들고서, 루시아 옆에 있는 헤이츨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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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아 공작 각하, 각하!”

헤이츨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온 카힐로를 바라보았다.

루시아 역시 겨우 떨림을 다독이며 카힐로에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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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로 경, 일단 진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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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카르티아 공작 각하께서 수인에 대해 남기신 말씀 없으셨습니까?”

하지만 카힐로는 뜬금없는 말을 헤이츨에게 쏟아냈다.

헤이츨은 묘한 낯빛으로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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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클리오 대공 전하를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니 이런 일에 대비해서 뭔가 집안에 남기신 것은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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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로 경, 그게 무슨 말이야? 카르티아 전 공각 각하께서 뭘 알았다는 거야? 대공 전하를 지켜달라고 했다니.”

루시아는 흥분하는 카힐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헤이츨만이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말을 아꼈다.

그때, 아래층에서 알렉드라와 황실 근위대,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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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이다! 클리오 대공과 관련된 모두를 체포해! 루베르 장로 역시 놓치지 마라!”

루시아는 황명이라는 말에 헛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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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는군. 카힐로 경, 여긴 위험해.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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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저는 황명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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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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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공 전하의 최측근입니다. 제가 도망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겁니다.”

카힐로는 이미 각오한 눈빛으로 세스가 황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카마리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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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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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 전하는 살아계십니다. 물론 상처가 깊기는 하시지만, 제때 치료하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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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넌 일단 도망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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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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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없어. 얼른 여기서 피해.”

카마리는 카힐로의 말에 멈칫했으나, 이내 완강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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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없습니다. 저도 단장님 곁에 있겠습니다!”

하지만 카힐로는 날 선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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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명령이다! 너라도 몸을 피해서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끝이야. 지금 클리오 대공 전하께선 반역자가 되신 거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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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 이사나가 카마리의 손을 붙잡으며 짧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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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로 경의 말이 맞아요. 일단 빠져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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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나는 멀리서 아이냑과 눈을 마주했다.

그는 그때처럼 피하지 않고서, 아이냑에게 속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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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루베르는 싸워야 한다.’

아이냑은 그런 이사나의 사나운 눈빛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때, 위층에 다다른 기사들이 검을 빼 들었다.

카힐로는 다급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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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라. 어서!”

카마리는 하는 수 없이 이사나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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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라! 절대로 놓치지 마!”

기사들은 그런 그들의 뒤를 쫓았다.

구석까지 몰린 이사나와 카마리는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이사나는 잠시 벽의 높이를 가늠하곤, 카마리를 안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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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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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요. 아파도 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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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윽!”

그는 바닥을 향해 바람의 마탄을 쏴서는, 그 충격을 이용해 그대로 제단 밖으로 몸을 날렸다.

간발의 차로 그들을 놓쳐버린 기사들은 곧장 카힐로와 아이냑을 체포했다.

알렉드라는 그들에게 걸어가서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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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이클리트 라이엇 클리오 대공의 측근인 너희를 황명으로 체포한다.”

특히, 그는 아이냑을 더욱 경멸스럽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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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르 역시 이번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끌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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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렉드라는 루시아와 헤이츨을 노려봤다.

루시아는 곧장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휘청였다. 그러자 헤이츨이 그런 그녀를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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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틴 공, 괜찮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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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갑자기 머리가…….”

알렉드라는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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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카르티아 공. 생각보다 눈치가 있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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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 눈치가 없는 게 이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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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라니. 벌써부터 그렇게 낙인 찍어버린 모양이지.”

헤이츨은 폐허가 되어버린 제단을 둘러보았다.

기사들이 죽은 제국민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폭발 사고는 전부 반인반수임을 숨겼던 클리오 대공의 책임이 될 것 같았다.

이미 황실의 움직임이 그러했으니까.

루시아는 서늘해진 눈빛으로 헤이츨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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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힐로 경이 했던 말, 그게 정확히 뭔지 카르티아 공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죠?”

헤이츨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뭐가 되었든, 솔라를 휩쓸 폭풍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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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가슴에 새겨진 제비꽃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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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 꽃이. 진짜 시들고 있는 겁니까?”

아멜리아는 더는 숨길 수 없음을 느꼈다.

아니, 이제는 말해야만 했다.

그녀는 자꾸만 부서지는 목소리를 겨우 끌어 모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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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내가, 대공 전하께 거짓말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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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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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 다 말하지 못했어요.”

순간, 이클리트는 등골이 싸늘해지면서 그녀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빌고 싶어졌다.

지금, 그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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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괜찮아요. 내게 말 못 하는 거라면. 난 안 들어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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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낫지 않았어요.”

하지만 끝끝내 잔인한 말이, 도리어 그의 심장을 베고 말았다.

아멜리아는 자꾸만 외면하고자 하는 시선에 힘을 주고서, 그를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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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피하지 마. 이분을 제대로 보고 말해야 해. 그렇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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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비꽃은 내가 새긴 게 아니라, 내 심장에 피어있는 거예요. 내 생을 1년 연장하기 위해서.”

아멜리아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클리트의 눈동자에 점점 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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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서 날 구해줬던 그 날, 사실 난 죽은 거였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제비꽃이 내 심장을 건강하게 해주고 있는데. 이 꽃잎이 하나씩 시들 때마다 다시 죽어가고 있어요.”

그의 시선이 이제 반밖에 남지 않은 그녀의 제비꽃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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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년. 아니, 1년도 남지 않았어요. 대공 전하와 계속, 같이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 곁에. 나만, 나만 남으면 안 된다고요…….”

어떻게든 삼키려고 했지만, 새어 나온 눈물이 자꾸만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어쩐지 이클리트는 몹시 충격받은 표정이 아니었다.

눈동자에 빛은 사라졌으나, 오히려 침착한 어조가 느리게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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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정말로 시들고 있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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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하지만 나, 정말 괜찮아요. 나한텐 지난 생보다 더 소중한 1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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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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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에드조프를 향한 복수를 위해 주어진 완벽한 1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복수 때문에 대공 전하를 황제로 만들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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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렇게 서둘렀군요. 앞날이 없는 것처럼. 죽는 게 두렵지 않은 것처럼. 이미, 끝이 정해져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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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아니, 지금은 아니에요.”

아멜리아는 혹여 이클리트가 오해할까 봐.

더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전부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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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1년 동안, 복수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증오와 분노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심장이,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으로 미칠 듯이 뛰었어요.”

아멜리아는 겨우 눈물을 멈추고서, 이클리트의 얼굴을 선연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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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찰나의 행복도 로사 유모와 대공 전하 덕분이었어요. 복수로만 허비될 1년이었는데, 대공 전하를 만나서 달라진 거예요.”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렇게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를 향해 심장이 벅차게 뛰었다.

이 떨림에 목소리가 있다면 하고픈 말은 단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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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리트, 당신을 사랑해요. 정말 내 모든 걸 걸고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가 잠시 숨을 멈춘 사이,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나직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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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젠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당신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더 이상 복수가 큰 이유가 아니었다.

루베르의 손을 잡은 것도.

수인을 이해하고 구하고 싶었던 것도.

그를 황제로 만들고 싶은 것도.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가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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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어도, 괜찮아질 수 있도록.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러니까, 대공 전하…… 제발.”

아멜리아는 그의 손을 몇 번이고 간절히 붙잡고서,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에게 변하지 않을 맹약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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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그 약속을 지켜줘요. 솔라의 황제가 되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은, 대공 전하가 평범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제발. 남은 시간, 나랑 함께 그렇게 해줘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를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눈물이 그의 손등에 닿은 순간, 아멜리아의 뺨을 감싸며 그녀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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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세요, 부인.”

다정한 목소리가 의연하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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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이렇게 울지 말아요.”

아멜리아는 떨리는 눈동자를 천천히 올렸다.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와 눈을 맞추곤,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어쩐지, 그의 모습이 괜찮아 보였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몰라서 숨겼던 건데.

이분이 하는 사랑이 너무 독해서.

혹여 무너져 내릴까, 그게 너무 무서웠는데.

지금 이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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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말 괜찮은 건지 몰라.’

처음과는 다르다.

비록 반인반수인 것을 들키긴 했지만.

이분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 곁에 많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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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쩌면 내가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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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부인과 함께할 거니까.”

순간, 선득한 위화감이 깃든 목소리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다른 의미로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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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그는 끝까지 말갛게 웃으며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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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아니 아멜리아.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행복해질 리 없어. 그럴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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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순간, 그녀의 뺨에 닿았던 손길이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 나직한 힘에 아멜리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클리트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시선조차 집요하게 품은 채, 입술을 느릿하게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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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도 당신과 죽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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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심장이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불현듯, 그 무서운 악몽이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이.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의 모습이.

악몽이 아니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대단한 착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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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니. 정말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클리트는 하얗게 질린 그녀의 손을 잡고서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대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애틋하게 어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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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없으면 여기가 아플 겁니다. 산산조각으로 찢어질 겁니다. 그 끔찍한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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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숨 쉬듯 너무나도 당연한 결말이었다.

그를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사라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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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당신이 명령한다면. 당신이 없는 세상을 살라고 한다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있게. 그래요.”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가 무심하게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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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을 없애버릴 겁니다.”

수인의 애정은 깰 수 없는 각인.

함께하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어야지.

기꺼이,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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