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깨져버린 맹약 (148/199)


148화. 깨져버린 맹약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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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의 광기가 그의 야성을 점점 들끓게 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본능 아래 똬리를 틀고 지배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그토록 차가운 감각 속에서도 아멜리아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무너지고, 그 무너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뜨겁고 다정한 온기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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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매번 마음껏 속삭였던 이름을 끊임없이 삼키면서, 이클리트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여기까지 오는 걸 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그녀를 아프게 해야 하기에.

스스로 그녀와 헤어질 것이라, 이런 말을 내뱉을 날이 올 거라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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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잃어도, 그대가 살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나락을 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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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당신의 곁에서 남편으로 있고 싶다는 그 욕심은 버릴 수 있어요.’

그래도 한순간이나마 그대의 남편으로 살았으니.

당신에게 사랑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행복을 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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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히 바랐던 욕심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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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다면, 잠시 그 순간을 잊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키르케가 건넨 밀주를 직접 마시고 여기까지 왔다.

자신은 아멜리아에게 완벽한 괴물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의 세상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녀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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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세상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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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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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수인들이 공격하고 있잖아! 그런데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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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 괴물이잖아…… 클리오 대공 전하도 수, 수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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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피오레 공작 각하를 공격하고 있는 거지?”

저택으로 몰려온 제국민들은 이클리트가 피오레를 공격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아멜리아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제국민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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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여기 왜 있는 거지? 정문을 지키던 티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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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늑대들이 제국민을 발견하고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가자 카마리와 기사들이 제국민 앞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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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밖으로 도망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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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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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칼을 휘두르던 그들이 다시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엄청난 소란을 일으켰다.

겁에 질린 제국민들이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늑대들이 제국민을 공격하려고 다가가더라도 움찔하며 자꾸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공격하는 척만 하고 공격을 자제하는 모습.

그저 요란하게 소란만 떠는 모습에 아멜리아는 얼어붙은 시선으로 이클리트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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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때, 이클리트가 불길을 뚫고서 아멜리아에게로 날아왔다.

티어들은 그 모습에 그를 향해 마탄을 쐈지만, 이클리트는 피하지도 않고서 오롯이 그녀만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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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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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님!”

이사나가 아멜리아를 부르며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그 손길이 닿기도 전에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아멜리아와 이클리트의 주변으로 거대한 바람의 장벽이 생겼다.

아멜리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제 앞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이클리트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뚫지 못하는 바람 속에, 두 사람은 온전히 갇히게 되었다.

이상하게 바람 속인 데도, 이 안은 포근했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고.

마치 이곳만 다른 세계인 것처럼.

아멜리아는 적당히 간극이 느껴지는 거리에 서 있는 이클리트를 조심스럽게 응시했다.

밀주를 마셔서 이성을 잃은 모습은 아니었다.

비록, 항상 자신이 예쁘다고 말했던 푸른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분명 지금 저 눈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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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사랑하는 눈빛이잖아요. 여전히, 내 남편이잖아…….”

눈물이 잔뜩 베인 아멜리아의 속삭임에, 이클리트는 금방이라도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서 싸늘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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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그대와의 모든 약속을 어길 테니까.”

이클리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서로에게 한 맹약과 같았던 약속을 떠올렸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절대 다치지 않겠다고 했던 말.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했던 그 약속.

그는 혹여 본심이 새어나갈까 봐,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고서 그에게 전부였던 모든 것을 스스로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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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복종하겠다는 맹약까지 전부. 이제 그대 말은 듣지 않아.”

그에게 절대적이었던 명령을 거역하는 순간이, 바로 오늘이었다.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다정한 눈빛과는 달리, 냉랭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위화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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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잡아야 해. 지금 그를 말려야 해.’

그는 떠나려는 거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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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지키기 위해. 날 살리려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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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대공 전하. 아무리 그래도 난 살 수 없어요. 살 수 없다고요!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요. 부탁할게요. 계속 내 곁에서, 날 지켜봐 줘요. 끝까지 지켜봐 줘.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으나, 아멜리아는 멈출 수 없었다.

애원이든, 부탁이든, 뭐든 해서라도 그를 지키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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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께서 피운 제비꽃을, 제게 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 꽃을…….”

아멜리아의 부탁에 이클리트는 입꼬리가 허하게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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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그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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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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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이미 난 그대의 빈자리에 제비꽃을 주었어. 그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댄 모를 거야. 그러니까 싫어. 그 요구는 이젠 그대가 도로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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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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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이든 전부 다.”

공허한 목소리에 위험한 결연함이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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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두가 날 미워하고 증오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어. 당신만 살아주면 돼.”

시종일관 싸늘하게 이어지던 그의 목소리가 결국 본심을 흘린 채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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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살아주면, 다 괜찮아. 그러니까 아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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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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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살리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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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게 해줘.’

자기 자신을 짓밟는 길을 걷겠다고 말하면서도, 부디 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그의 속삭임에 아멜리아는 더는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명치끝에 핏방울처럼 맺힌 눈물이 그대로 터질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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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제비꽃 앞에서 후회하는 게 아니라, 그 제비꽃이 시들지 않게 할 거야.”

잘게 떨리던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서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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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가 했던 말만 기억해. 나는 이제부터 괴물이 될 테니까. 앞으로 그대가 쥔 총에 망설임이 없어야 할 겁니다.”

이클리트는 천천히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그녀가 그에게 주었던 반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그 반지를 그녀의 눈앞에서 완전히 부숴버렸다.

산산이 부서지는 반지처럼, 이클리트 역시 더는 돌아보지 않을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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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그대가 좋아하는 눈동자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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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 이클리트…….”

그와 그녀의 사이로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금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멜리아는 끝이라는 단어가 심장으로 툭, 떨어지면서 이클리트와의 거리를 좁히고자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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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요. 제발, 이클리트!”

하지만 이클리트는 날개를 펼치고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한 치도 가까워질 수 없게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이클리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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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아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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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리트! 이클리트! 안 돼요! 가지 마! 이클리트!”

바람의 장막이 사라지고, 또다시 비가 쏟아지면서 사방을 태우던 불길이 삽시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이클리트가 끌고 왔던 늑대들도 곧장 공격을 멈추고서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자리는 폐허였다.

스스로 모든 것을 망가뜨린 채, 그는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이 이별조차 그의 모습은 없었다.

일부러 수인의 모습으로 이렇게 눈에 띄게 별장을 공격한 건, 사실 별장이 아닌 피오레를 공격한 거다.

정문을 지키는 티어들을 전부 치워내고, 제국민들을 여기까지 들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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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민들은 보인 것만 믿어. 이제 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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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 피오레 공작 각하를 공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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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이제 클리오 대공이 아니야. 그냥 괴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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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작 각하께서도 당하신 거야!”

피오레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서.

아멜리아는 속을 할퀴는 울분을 삼키지 못한 채,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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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려고. 또 나만. 지키려고!”

그의 사랑에는 그의 모습이 없어서.

항상 희생만을 말하는 그 독한 사랑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그녀를 지키려는 선택에 그의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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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격대를 보내고, 아스란은 제단 신전에 남아 있었다.

황궁으로 돌아가기 전, 이클리트를 반드시 잡아서 데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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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스란은 에리얼의 목소리에 흥분 섞인 어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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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을 반드시 찾아야 해.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마침내 코앞이라고! 그래. 피오레 공작은 어디 있지? 그놈이 그 계집을 버렸을 리가 없어. 독은 나은 건가? 해독제가 필요할 텐데. 피오레 공작을 납치해서라도 이클리트를 내 눈앞에 끌고 와!”

에리얼은 격해진 아스란의 감정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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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이상 피오레 공작을 이용하는 건 눈에 띕니다. 게다가 지금 장로회와 신성회, 포르티셰 공작까지 폐하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대체 왜 클리오 대공이 반인반수냐며, 의구심이 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스란과 달리 에리얼은 이토록 대대적으로 이클리트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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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대공에 대한 계획은 전부 극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밀이 밝혀지게 되면, 수인을 이용한 황실. 아니 폐하께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폐하의 권위가 실추될 것입니다. 다섯 공작가가 당장이라도 바스티얀 대공을 선택하게 되면!”

황위에서 불명예스럽게 선위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솔라에 수인은 금기와도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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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숲을 가지면 전부 해결될 일이야. 거의 다 왔어. 이클리트가 분명 열쇠가 맞아. 시간의 숲을 황실이 가지게 되면, 더 완벽하고 굳건한 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역사에 위대한 군주로 이름을 남기겠지. 에드조프는 신성회도 장로회도 다섯 공작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황실의 황좌에 오르는 거야.”

아스란이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황권.

그런 황권을 이루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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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에를 영원히 아름다운 황후로 내 곁에 남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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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에리얼은 아스란이 클로에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마다 기분이 서늘했다.

그토록 냉철한 아스란이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이름이 바로 클로에였다.

아스란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클로에를 떠올렸다.

지금도 장로회는 클로에가 아닌 다른 황후를 세우고자 한다.

자신이 죽은 이후, 클로에의 이름을 완전히 지워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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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한 황권이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 그녀를 지킬 수 있어. 죽어서도 그녀는 내 것이야. 나의 여인이야. 평생,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한 나의 황후야.’

아스란은 치미는 감정을 겨우 다스리며 에리얼을 향해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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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먼저 황궁으로 돌아가 체자렛 백작을 잘 감시해라. 이제 다시 백작이 필요하니까. 차후 독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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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에리얼은 불안을 감추며 걸음을 뒤로 돌렸다.

홀로 남겨진 아스란은 태양신이 그려진 신전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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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이시여. 마침내 제가 바라는 것을, 제가 원하는 것을 이 손에 주십시오. 그대를 받들며, 단 하나의 태양으로 빛날 수 있도록!”

그 순간, 스테인드글라스가 와장창 깨지면서 아스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클리트가 검은 날개로 빛을 가리고, 날카롭게 부서지는 태양신을 지르밟고서, 아스란 앞에 내려앉았다.

아스란은 이클리트의 모습에 멈칫하다, 이내 입꼬리를 길게 추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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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클리트. 돌아왔구나. 네가, 돌아왔어.”

이클리트는 그런 아스란의 발아래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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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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