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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스스로 돌아가다 (149/199)


149화. 스스로 돌아가다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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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폐하.”

아스란은 순종적인 이클리트의 한마디에 날카로운 웃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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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하하하하!”

그는 무릎 꿇은 이클리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이내 꽉 움켜쥐고서 바짝 끌어당겨 날 선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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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새장 밖으로 도망친 새가 결국 이렇게 돌아왔구나. 발칙한 것. 힘이 생겼다는 걸 알고도 숨기다니. 그런다고 네가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아스란에게 붙잡힌 채,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점점 더 온기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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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작 옆에서 대공으로 불린다고, 진짜 대공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냐? 웃기는 소리. 넌 내 거야. 내가 만들었어. 나의 고귀한 피로 만든 내 것이라고. 내게 사용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뿐이란 말이다!”

아스란은 예전처럼 무자비한 말로 채찍질하며 이클리트에게 하나하나 족쇄를 채워갔다.

이클리트는 등에 낙인처럼 새겨진 흉터가 다시금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흉터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과거도 결국 반복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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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쓰임을 다하도록 해. 황위 계승자? 차기 황제? 어림도 없지. 그렇게 정 솔라를 위해 살고 싶다면, 시간의 숲을 열어라. 봉인의 열쇠가 되어라. 그게 네가 솔라를 위해 할 역할이야. 그러니 나를 위해 더, 더 괴물이 되거라!”

지독할 정도로 변하지 않은 목소리가 지난날의 추악한 고통까지 불러일으켰다.

이클리트는 제 앞에 있는 아스란을 빤히 응시했다.

예전처럼 온기 한 점 없이 싸늘한 눈동자가 이클리트를 그날의 소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또 이용당하며 미궁에 갇혀 있었던 그 소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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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전과 똑같지 않지.’

그때는 두려움과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그와 눈을 마주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직은 살아야 했다.

악착같이 살고 또 살아서, 그녀를 살려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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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것이 아니야. 아멜리아, 그녀의 것이야.’

지킬 것이 없었던 소년은 스스로를 방치하며 죽어갔지만.

이젠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생겼기에, 어른이 되었다.

더는, 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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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땐 당신에게 붙들려 있었지만, 이번엔 붙잡힌 게 아니야. 내가 스스로 걸어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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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렇게 순순히 돌아온 이유는 피오레 공작이겠지.”

아스란의 입에서 아멜리아의 이름이 새어 나오자, 이클리트의 눈빛이 선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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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처지인 주제에 감히 소중한 것을 만들어 스스로 약점을 보이다니…… 너 때문에 피오레 공작만 곤란해지고 말았어. 네가 망치고 만 거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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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저는 관계없습니다.”

아스란은 이클리트의 단호한 말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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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없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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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작으로서 저와 얽히지 않게 해주십시오. 다섯 공작가의 공작으로서, 그 명예를 지켜주십시오.”

이클리트가 부탁이자 거래의 대가를 내걸자, 아스란은 그제야 이클리트가 자신에게 돌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그런 이유라면 예전처럼 죽을까 봐 걱정하지 않고, 녀석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피오레 공작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살아야 할 테니까.

지키고자 하는 것이 생기면, 그걸 위해 뭐든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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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 알지. 잘 알 수밖에. 나 또한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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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거래란 말이지.”

이클리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던 그의 손길에 힘이 빠지면서, 뺨을 타고 느리게 타고 내리며 턱 끝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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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피오레 공작의 명예를 지켜주지. 그렇다면 넌 이제 철저히 내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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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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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장에 갇혀서, 너의 힘을 날 위해 쓰는 거다. 평생 날 위해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오레 공작이 힘들어질 거야.”

이클리트는 말없이 그의 손길 아래 고개를 숙였다.

아스란은 그 모습에 입꼬리를 짙게 올렸다.

마침내 기다렸던 이 짐승을 손에 넣게 되었다.

완벽하게 제게 복종할 이 짐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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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케는 분주하고 움직이는 황실 근위대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걸 얻은 황제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고자, 준비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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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훗. 아스란. 넌 네 심장을 찌를 칼을 쥐고 가는 것이다. 그것도 네 아들이 널 죽이겠지.’

아스란 황제를 이클리트가 죽이고, 그 빈자리를 에드조프가 차지하면 아스란이 그토록 아끼던 세계를 완벽하게 파멸시킬 수 있었다.

키르케는 그날이 멀지 않았음에 자꾸만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때, 이클리트와 함께 나갔던 늑대들이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늑대 중 하나가 사람으로 변해서는 키르케에게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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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이나 죽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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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뜻밖의 말에 키르케의 눈빛이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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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않았다고? 클리오 대공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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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이면, 우리를 죽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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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명령했단 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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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키르케는 이클리트가 명령했다는 말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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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라니. 밀주를 마신 이들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오직 나와 에드조프뿐인데. 그 암시를 깨뜨리고 복종하게 할 만큼, 클리오 대공의 힘이 강하단 말인가.’

짐승은 본디 자신보다 강한 힘을 먼저 알아봤다.

본능적으로 강한 힘 앞에 고개 숙이고 복종해야 했으니까.

그게 약육강식이었다.

수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반인반수이긴 했으나, 자신이 인간성을 지우고 수인의 야성만을 극대화시켰기에, 수인의 본능과 비슷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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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의 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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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뭐든 말씀하십시오.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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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네가 잘하는 일이다.’

 
이클리트가 키르케에게 원한 것은 늑대들을 빌려서 클로에 황후의 별장을 엉망으로 만드는 거였다.

전부 아멜리아, 그녀를 위해서.

그가 피오레를 공격하는 모습을 제국민에게 보여주면서, 거칠게 관계를 끊어내야, 피오레는 명예라도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키르케는 지금부터 이클리트가 피오레를 공격했다는 소문을 솔라 제국 곳곳에 흘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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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잘하는 짓은 이런 소문을 말하는 거였지.’

그래도 괴로울 거라며, 다독이는 척 밀주를 줬다.

밀주가 그에게 어느 정도 반응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만약, 그가 딴 맘을 먹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밀주로 그를 반인반수처럼 무기로 지배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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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밀주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거지.”

밀주를 마셔도 이성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밀주가 일으키는 광기를 자신의 힘으로 다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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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런 힘을 어디서 나오는 거야? 대체 클로에 황후의 정체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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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수왕과 관련 있는 것인가?”

그들조차 수왕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수인에게 수왕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약육강식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지배자이자 신이었으니까.

***

황궁으로 향하기 전, 이클리트는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었다.

너무나도 긴 밤이 지나고 있다.

그의 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빛에 한동안 익숙해졌었기에.

홀로 남아 있는 이 순간, 처음으로 살이 에는 듯한 쓸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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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그대가 얼마나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는지. 이런 나를 두고 혼자 가버리겠다니…… 그대도 참 잔인하네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보고픈 감정이 넘칠 듯하여, 심장이 아려왔다.

하지만 이클리트는 독하게 눈을 감았다.

이젠 이 어둠에 또다시 익숙해져야만 했다.

더는, 그녀와 가까워져서도 안 된다.

그래서 밀주의 힘을 살짝 빌리고자 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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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지 않았어.’

다른 이들이 의심하지 않기 위해서, 보다 흉포하게 보여야 했다.

또한 아멜리아의 눈까지 속이고자 했다.

하지만 밀주를 마셔도 예전처럼 지배당하지 않았기에, 그녀에겐 금방 들켜버렸던 거다.

그녀를 향하는 눈빛까지 통제할 수 없었으니까.

너무 당연한 본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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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지 않는 척할 수는 있지만, 감히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니까.’

밀주를 마셔도 예전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건,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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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좋은 뜻인가? 좋은 뜻이겠지?’

별장에서 날씨도 훨씬 자유롭게 다뤘다.

바람의 장벽을 세운 것도, 그렇게 바람을 섬세하게 지배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반인반수를 다루는 것 역시, 직접 말하지 않고도 눈빛과 기운만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이클리트는 붉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제 안의 변화를 느꼈다.

아스란 황제의 말처럼 자신이 열쇠일까?

그 열쇠가 완성되고 있는 걸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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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은 오직 그대를 위해 쓸 거야.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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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너무 아파하지 말길. 슬퍼하지 말길. 반드시 내가. 내가 그대를 살릴 테니까.”

꼭, 지켜줄 테니까.

비록 온전히 그녀에게 돌아간다는 약속은 할 수 없었다.

힘이 강해지고, 그 힘을 다룬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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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님, 이거…….”

이른 아침, 카마리와 이사나가 굳어진 표정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소식지를 전했다.

소식지를 읽은 아멜리아의 눈빛이 아프게 일그러졌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까.

태양의 제단에서 벌어진 사건이 소식지로 전해졌다.

특히, 이클리트에 대한 소문은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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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대공의 정체는 반인반수, 진짜 괴물. 솔라에서 일어난 반인반수 사건의 배후. 실종된 사람들을 죽인 것도 전부, 클리오 대공이다…….”

읽어 내려가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카렌듈라 조화의 독도 알려지게 되면서, 더더욱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 조화의 독 때문에 성스러운 태양의 제단이 폭발하여 수많은 제국민이 죽게 되었으니.

문제는 이 폭발의 원인으로 루베르가 거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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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의 이유가 루베르 폭죽이라니?”

카마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사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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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티셰 기사들과 중앙청에서 폭발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루베르 폭죽에서 화약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게 폭발해서 위층에만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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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그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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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루베르가 마법 도구를 다루는 장인으로 알려져서…….”

카마리가 말을 맺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마법 도구가 사실은 솔라를 공격할 반군의 무기로 둔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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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이냑은 군인이야. 그러니 더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모든 칼날이 루베르를 향하고 있다.

아니, 루베르이기에 전부 쉽게 의심하고, 쉽게 죄인으로 낙인찍어 분노와 증오를 토해내고 있는 거다.

이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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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사나의 목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덤덤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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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에서 루베르는 항상 반군이고, 저주받은 이방인이니. 필요하면 취하고 불필요하면 버리는 존재니까.”

너무 동화 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이젠, 전쟁 같은 현실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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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루베르는 싸워야 해.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예전과 같은 역사를 반복할 수 없어. 아니, 이번에야말로 황실 놈들은 루베르를 말살할지도 모른다.’

아멜리아는 지난번처럼 바뀔 수 있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 채, 냉정하게 상황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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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제단에 초대된 제국민들의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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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숨을 거뒀습니다. 역시나 두 번째 폭발의 피해가 컸습니다.”

카마리의 말에 아멜리아는 가까스로 감정을 누르고 또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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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가 황자 전하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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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에서 회복 중이십니다. 프리메와의 분쟁을 막으려고 황실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내용이 없었다.

상황을 이렇게 최악으로 이끈 것은 그 여자인데.

카렌듈라 조화의 독도 뱀의 독이라고 했으니, 그 여자 짓이다.

폭죽에 폭발을 설치한 것도 분명 루베르 짓으로 만들기 위한 그 여자의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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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폭발 직전 보았던 그 뱀. 그래. 황궁에 사는 그 뱀은 그 여자가 확실해. 그 여자가 에드조프의 유모인가? 에드조프, 넌 대체 어디까지 관계된 거지?’

아니. 어디까지 관계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관계되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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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제국민을 희생시켰어. 그것만으로도 절대 용서 못 해.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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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황제가 되어선 안 돼.”

아멜리아는 정신 똑바로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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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오레 공작이야. 내가 이렇게 흔들리면 안 돼.’

그러니 일단 수습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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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렌 경 밖에 있으면 들어와 달라고 해줄래요?”

이사나가 칼렌을 데려오자, 아멜리아는 곧장 명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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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렌 경은 피오레 공작령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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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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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령에 있는 루베르가 걱정입니다. 이번 일에 괜히 휘말리게 할 수 없어요. 티어들에게 그쪽 경계를 강화해달라고 해주세요. 혹시 무슨 일 있다면 통신구로 바로 연락해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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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라니도 걱정되기에 당장 공작령으로 돌아가면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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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는 못 가. 대공 전하를 찾아서 함께 돌아가야 해. 그렇게 사라져서, 대체 어디 계시는 거지?’

사실 어디서 뭘 하실지, 그게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다.

분명 몹시 위험한 일일 테니까.

아멜리아는 부적처럼 얼음 목걸이를 꽉 쥐었다.

그때, 마미가 굳어진 표정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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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님! 지금 광장에서 폐하의 전언이 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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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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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구가 설치된 모양이에요.”

제국민들 앞에서 황제의 전언이라…… 뭔가 느낌이 불길했다.

***

아멜리아는 소란을 피하고자, 로브를 뒤집어쓰고서 카마리와 이사나와 함께 움직였다.

제국민들이 모여 있는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통신구가 보였다.

소식지 때문에 제국민들은 모두 불안과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포는 이클리트와 루베르, 그리고 황실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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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이 몰랐을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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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클리오 대공은 황제 폐하의 핏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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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이라니! 그 괴물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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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황실이 수인과 그런…… 말도 안 돼. 루베르도 아니고. 그런 야만적인 짓을!”

날카롭게 박히는 그들의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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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괴물이 아니야. 그분은 오히려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통신구가 번쩍이기 시작하면서 아스란의 모습이 보였다.

아멜리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아스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스란의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광경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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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이클리트, 그가 쇠사슬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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