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거짓된 진실 위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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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거짓된 진실 위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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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거짓된 진실 위 환호성
2022.06.10.
아스란 뒤로 보이는 끔찍한 광경이 칼날처럼 아멜리아의 눈에 박혀, 온 신경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 있는 이클리트의 모습.
숨은 쉬고 있는 건지, 그저 축 늘어진 채 움직임이 없었다.
검은 날개도 붉게 보일 만큼, 피에 젖어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날카로운 비명을 겨우 삼켰다.
하지만 속으로 삼키는 고통에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이, 이클…… 이클리트…….”
그저 끊임없이 그의 이름만이 그녀의 입술에 눌려 공허하게 흩어졌다.
카마리도 너무 놀라서 눈을 떼지 못했고, 이사나는 서늘한 시선으로 아스란을 노려봤다.
황제의 계략은 이제 시작일 테니까.
그때, 이클리트를 알아본 제국민들이 경멸에 찬 눈동자로 수군거렸다.
“저거, 클리오 대공이잖아?”
“죽은 거야?”
“죽었으면 다행이지.”
“흉측해. 저 날개는 다 뭐야? 진짜 괴물이잖아.”
통신구를 통해 얼굴을 보인 아스란은 제국민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성스러운 태양의 제단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기에, 짐은 비통한 마음으로 태양신의 곁으로 떠난 그들을 위로하고자 한다.>
아스란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제국민들은 숨죽이고서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희생된 이들은 신성회 대신관이 직접 기도하여, 인도할 것이다.>
제단에서 희생된 이들의 가족들은 아스란의 말에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에 분통하고 슬펐으나, 대신관이 직접 기도해서 태양신으로 이끄는 건 평민들에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기에 큰 축복이었다.
<그리고 제단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대해 상세히 말하고자 한다. 이번 폭발은 루베르 장로이자 장군인 아이냑이 벌인 일로, 그가 가져온 루베르 폭죽에서 폭약이 발견되었다. 믿었던 루베르였기에, 짐도 실망스럽고 참혹함을 감출 길이 없다. 그렇기에 더 철저히 조사하여 심판받게 할 것이다.>
폭발의 배후가 루베르라는 말에 제국민의 분노가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루베르…….”
“믿을 수 없는 야만인!”
“저주받은 이방인인데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고!”
<그리고 나의 아들인 클리오 대공에 대한 일로 짐에 대한 실망과 황실에 대한 의구심이 많을 것이다. 이번 일은 입이 여러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짐의 실수다.>
그때, 아스란이 제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태양신 다음으로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황제께서 고개를 숙이다니…….
제국민들은 흠칫하면서 같이 고개를 숙였다.
<짐도 황실도 모두 속았다. 클리오 대공의 어미는 태생도 알 수 없었던 무희였다. 짐은 그 무희를 가엽게 여겨줬는데, 알고 보니 수인임을 숨기고, 솔라 제국을 혼란에 빠뜨리고자 이 같은 짓을 벌인 것이다.>
아스란의 말도 안 되는 거짓에 아멜리아의 낯빛이 창백해지면서, 어찌나 세게 주먹을 쥐었는지 그녀의 손끝 아래로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밀주를 통한 반인반수의 반란 시작에 클리오 대공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전부 짐의 잘못이고, 실수다. 하지만 황실은 이제라도 바로 잡고서, 엄중한 벌에 처할 것이다. 먼저 배후인 클리오 대공을 이리 체포하여, 죗값을 받을 것이다.>
통신구에 다시 한번 이클리트의 모습이 비치자, 제국민들은 분노 어린 목소리를 높이며, 눈앞에 이클리트가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죽일 듯 매섭게 손가락질했다.
<제국의 황자는 에드조프 라이엇 바스티얀 대공이 유일하며, 하나뿐인 황위 계승자이다. 다른 황자는 없을 것이다. 이어 짐은 피오레 공작가에 큰 유감을 전한다. 이클리트가 반인반수임을 숨기고, 황실을 삼키고자 피오레 공작가를 이용한 것뿐. 피오레와는 아무 관계 없다. 그렇기에 이혼에 따른 피해는 황실이 피오레에 보상할 것이다.>
아스란은 피오레 공작가를 감쌌고, 어제 공작가에서 벌어진 일을 목격했던 제국민들이 황제의 말에 덧붙였다.
“맞아. 피오레 공작 각하도 당하신 거야. 어제 저 괴물이 공작가를 공격하는 모습을 봤어.”
“무사하시려나…… 피오레 공작 각하께서는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주셨는데.”
“폭발 속에서도 끝까지 제국민을 구하셨다고 들었어.”
“충격이 크시겠지. 루베르, 그 야만인조차 믿고 감싸셨으니…….”
“너무 착하셔서 그래.”
피오레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제국민들도 어느새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스란은 마지막으로 목소리에 더 큰 힘을 주었다.
<솔라는 태양신께서 지켜주는 제국이다. 수인 따위에게 절대 당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짐과 황실을 믿어주길 바란다. 황실은 다섯 공작가와 함께 지금의 솔라를 세우며 지켜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 대륙에서 단 하나의 태양으로 영광과 번영이 함께 할 것이다. 수인에게도, 솔라를 위협하는 다른 누구에게도 우린 승리할 것이다!>
아스란의 결의가 담긴 선언 앞에 제국민들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의심을 지우고서, 아스란을 지지했다.
“폐하!”
“폐하를 믿습니다!”
“벌써 저렇게 처리하고 계시잖아. 당연히 믿을 수 있지. 게다가 우릴 위해 고개를 숙이시고!”
“바스티얀 대공 전하만이 유일한 황자 전하시지. 유일한 황위 계승자시라고!”
“괴물은 물러나라! 죽여라! 화형 시켜! 공개 화형 하라고!”
제국민들의 환호가 아멜리아의 온몸으로 오물처럼 들러붙어서는 점점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황제가 결국 대공 전하를 붙잡았다.
그것으로 모자라, 제국민들 앞에 희대의 괴물로 발겨 벗겨 난도질하고는, 뒤에서 또 끔찍한 짓으로 대공 전하를 이용하겠지.
자신들의 필요와 악을 덮어버리기 위해, 죄 없는 수인과 루베르를 더 악랄하게 몰아붙이면서!
‘폐하와 있으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멜리아는 점점 버티고 서 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야. 다 거짓이야. 저건 다, 애초에 일을 이렇게 만든 건!”
앞으로 나서려는 아멜리아의 앞을 루시아가 막아섰다.
“헤스틴 공…….”
“지금은 참아야 해. 이를 더 악물고 참아야 한다고.”
루시아는 아멜리아를 안아주면서, 피가 흐르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지만 루시아의 목소리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루시아를 붙잡고서 무너져 내렸다.
“흐으읍…… 흐윽!”
눈물이 부서져 흐르면서, 온몸을 찔렀다.
루시아가 아멜리아를 데리고 일단 걸음을 뒤로 돌렸다.
이사나는 멈춰 서서 이 거짓된 진실 위로 겹겹이 쌓여가는 환호성에 역겨운 숨을 삼켰다.
약자들의 피 비린내 나는 거짓 위로 쓰이는 추악한 평화다.
그나마 피오레는 한배를 탔다는 소문이 아닌 이용당했다는 동정으로 번지고 있었다.
물론 원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천하의 다섯 공작가의 피오레가 이용당했다니. 명예에 다소 흠이 생기긴 했으나, 한배를 탔다는 것보단 타격이 덜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주님이 제국민에게 쌓아온 신뢰도 있을 테니까.’
이 모든 건 황제의 전언도 전언이지만, 어젯밤 피오레를 공격한 이클리트 덕분이기도 했다.
‘어젯밤 그렇게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피해도 생각보다 크지 않고.’
전부, 그의 작전이겠지.
그녀가 그를 보호하지 못하게.
피오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거다.
“대단하군. 자신의 전부가 망가지는 걸 마다하지 않고, 가주님을 지키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미련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더 화가 났다.
‘왜 뭔가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렇게 조건 없이 희생하고 무모해지는 걸까.’
그 옛날, 루베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던 아바마마와 형님처럼.
이사나는 이미 사라진 아스란의 잔상을 떠올렸다.
이 황실은 또다시 루베르를 피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루베르를 지키고자 했던 그 희생으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구나. 아무것도.’
“……결국, 나 또한 희생해야 하나.”
그때, 카마리가 이사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저택으로 가.”
“…….”
“……안 갈 거야?”
“……갈 겁니다.”
이사나의 대답에 카마리는 짧게 안도하며 그를 이끌었다.
일단 그는 카마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여기서 얻을 게 있었으니까.
***
통신을 끊은 아스란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로 제국민들이 자칫하면 돌아섰을 텐데, 이클리트를 잡아서 저런 참혹한 모습을 보인 것의 효과는 컸다.
“고생하셨습니다, 폐하.”
황궁으로 돌아갈 일정을 미룬 에리얼이 아스란에게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그 일정보다 이번 일이 더더욱 중요했으니까.
“장로회와 신성회도 알아들었겠지?”
“그렇기는 하오나, 장로회는 폐하의 실수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하! 감히 황제인 나를 꾸짖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설프게 피오레 공작을 건드려서 일을 전부 망쳐버렸던 주제에!”
“……클리오 대공의 공개 처형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신성회 대신관은 피오레 공작도 한배를 탄 거라며, 이대로 풀어주면 안 된다고 요구하고 있고요.”
“하나 같이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서는. 쓸모없는 것들.”
아스란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냥 먹잇감으로 루베르를 던져줘.”
“…….”
“아이냑, 그놈의 공개 처형 날짜를 잡아. 다른 루베르도 잡아서, 아이냑과 엮어서 처리하도록 해.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면서 시간을 벌어야지. 이클리트가 시간의 숲을 열 때까지.”
아스란은 마치 지나가는 벌레를 처리하듯, 루베르의 학살을 입에 담았다.
“포르티셰 공도 납득하겠지. 안 그래도 루베르를 눈엣가시로 여겼으니. 이참에 마음껏 날뛰게 둬.”
“알겠습니다.”
물론 루베르 폭죽에서 왜 폭약이 발견된 건지는 의아했으나…….
‘루베르가 진정 딴맘을 먹고 반역을 한 거겠지. 오히려 이용할 수 있어서 잘 된 거고. 이참에 반군으로 쓸어버리면 될 테니.’
아스란은 쇠사슬에 묶인 채, 정신 못 차리는 이클리트에게 다가갔다.
“설마 이 정도로 기절한 건 아니겠지?”
그의 목소리를 따라서 이클리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서 그를 응시했다.
엉망이 된 얼굴과 달리, 그의 눈빛은 더없이 선명하기만 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피오레 공작가는 더 이상 너와 관계없다.”
“…….”
“그러니 이제 네 차례야. 황궁으로 돌아가는 거야. 너도 그립겠지? 그 지하 미궁이. 거기서 네 일을 하도록 해. 반드시 시간의 숲을 열어라. 네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
저택으로 돌아온 아멜리아는 침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저히, 그 끔찍한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 때문에 그분이 잘못되면. 나 때문에…….”
살아달라니.
너무 쉬운 말을 했다.
이제야 그분의 마음을 알겠으니까.
심장이 통째로 뜯겨 나간 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에 숨쉬기가 버거웠다.
이대로 그분이 잘못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멜리아는 불안감에 얼음 목걸이를 찾았다.
그런데 얼음 목걸이가 반이나 녹아서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사색이 된 눈빛으로 얼음 목걸이를 꼭 쥐고서 필사적으로 읊조렸다.
“안 돼. 녹지 마. 내가 미안해요. 내가 너무 미안해…….”
‘나도. 나도 살 수 없어, 나도…….’
떨리던 그녀의 손끝에 힘이 가해지면서, 눈빛이 결연하게 얼어붙었다.
“보내지 않아. 그분을 다시 거기에 혼자 보내지 않아.”
다시 더 끔찍한 흉터를 남게 할 수 없다, 절대!
아멜리아는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곧장 장총을 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앞을 곧장 이사나와 카마리가 막았다.
“가주님.”
이사나가 그녀를 잡으려고 하자, 아멜리아가 장총으로 그 손을 치워내며 싸늘하게 읊조렸다.
“비켜.”
“…….”
“이사나 경은 더 이상 피오레 공작가의 사람이 아니니까, 내 일에 신경 꺼. 카마리 경은 감히 주인의 앞을 막지 마라. 이는 명령이니까.”
“그럼 나는 막아도 되는 겁니까?”
그때, 아멜리아의 앞으로 헤이츨이 걸어왔다.
“카르티아 공?”
헤이츨의 옆에는 루시아도 함께였다.
헤이츨은 아멜리아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께서 변하신 모습을 보고, 수왕을 떠올렸습니다.”
뜻밖의 말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닮았습니다. 예전에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모습과.”
당황하던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일순 날카로워졌다.
“무슨 말이죠? 수왕을 안다는 건가요? 그때는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전 공작 각하만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헤이츨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
“수왕의 비밀이 이 저택, 클로에 황후 폐하의 별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