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맞춰진 퍼즐 조각 (159/199)


159화. 맞춰진 퍼즐 조각
2022.07.11.


세인트를 쫓아가던 아멜리아의 시야로 세인트가 사라졌다.

하지만 세인트가 자신을 어디로 이끌었는지는 안다.


“카마리, 아무래도 백작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위험한 것 같으니까, 그들을 대피시켜줘.”

“가주님은요? 저는 가주님을 지켜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야. 걱정 마.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부탁해.”

아멜리아는 카마리를 일부러 남겨 둔 채, 점점 더 집무실로 가까이 달려갔다.

이상하게 이쪽만 너무 조용한 느낌이었다.

스산하게 파고드는 공기.

아멜리아는 불길한 느낌에 자꾸만 총을 쥔 손아귀가 굳어졌다.

마침내 집무실 앞에 선 아멜리아는 무거운 숨을 삼켰다.

예전엔 이 앞이 거대한 철옹성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젠 다른 의미로 몸이 오싹했다.

아멜리아는 노크했다.

하지만 괴괴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피 냄새가 뒤엉킨 섬뜩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항상 온기 한 점 없는 표정으로 이곳에 서 있던 그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은 늑대 뒤로 그 역시 죽은 것처럼 늘어져 있는 아젠의 모습.

아멜리아는 순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아젠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허하게 흐트러지는 목소리를 따라서 아젠이 거의 초점 잃은 동공으로 고개를 들었다.


“……왔구나.”

이 상황에서도 아젠의 목소리는 냉랭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아멜리아는 이를 악물고서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얗게 질린 그의 주름진 손바닥 가득, 피를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도저히 그를 건드리지 못한 채, 다급하게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단 치료사를. 여길 빠져나가셔서…….”

치료사부터 부르기 위해 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아젠이 다른 손으로 강하게 아멜리아를 붙잡았다.


“바스티얀 대공…….”

뜻밖의 이름에 아멜리아는 움직임을 멈췄다.


“아버지?”

아젠은 지금까지 겨우 버티고 있었던 이유를 말하고자,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며 말했다.


“바스티얀 대공의 피는, 거짓이다…….”

“……예?”

아젠은 아멜리아를 붙든 손에 더욱 힘을 주고서, 이 말만큼은 한마디, 한마디 흐트러짐 없이 말했다.


“바스티얀 대공. 아니, 에드조프. 그자도 반인반수다.”

 

 

***

이클리트는 여전히 지하 미궁에 갇힌 채, 황궁 구석구석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바람이 전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처음엔 불확실했던 목소리가 점점 정교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멜리아에게 전했듯, 자신이 들었던 목소리를 바람을 통해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마법 도구나 매개물이 없어도, 마법이 시전되고 있다.’

그래. 이건 마법이다.

그 옛날, 정령과의 소통이 자유로웠던 시절.

고대 마법사들이 정령의 언어를 듣고 마나를 운용하여 마법을 쓰던 그때처럼.

이클리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단 황제를 비롯하여 최대한 숨기고 있긴 했지만.


‘세스가 황자가 시간의 숲이 움직이고 있다고 했지. 그것과 관련 있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자신이 열쇠라면, 그 열쇠가 곧 완성됨을 의미한다.


‘열쇠가 완성된다면, 더 강해지겠지. 그 강한 힘으로 그녀를 지킬 수 있겠지. 살릴 수 있겠지.’

그때, 갑자기 바람결에 아스란의 격분 섞인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체자렛 백작, 그자가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건지. 피오레 공작까지 끌어들여서 백작가로 돌아가다니. 도망치지는 못할 테지만. 대체 피오레 공작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둘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대체 왜 끌어들였단 말이야.>

아스란의 말에 이클리트는 눈을 크게 뜨고서 아젠을 떠올렸다.


‘그녀가 체자렛 백작가로 갔단 말인가. 그것도 아젠 백작이 불러서?’

아젠 백작은 분명 실험에 대한 뭔가를 알고 있다.

그 뭔가를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건가?

하지만 왜?

그자는 그녀를 이미 버린 것이 아닌가.

이클리트는 지난날 백작가, 그 어두운 복도 아래 무너졌던 아멜리아를 떠올리며 초조하게 제자리를 맴돌았다.


“괜찮은 건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마는 걱정.

곁에 있어 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혹시 또 그 어둠에 혼자 남겨지게 되면…….


‘아니. 그녀도 스스로 백작가로 간 것이다.’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아멜리아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니까.

한편으론 다행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내가 더는 당신을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스스로 그녀의 곁에서 멀어졌으면서.

이클리트는 어찌하지 못하는 이 이기적인 씁쓸함에 쓴웃음을 띠었다.

***

아젠의 말을 듣자마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니, 듣고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에드조프가 반인반수라니…….’

아젠은 충격에 말을 잃어버린 아멜리아를 보면서,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겨우 쪼개며 말을 이었다.


“나는. 황제 폐하와 함께, 시간의 숲을 열 열쇠를 만들고자. 클리오 대공 전하를 실험했다.”

아멜리아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가 왜…….”

“내가 마나를 연구했으니까. 아일리를 위해서.”

“어머니?”

“아일리가, 감당하지 못할 마나 때문에. 그 심장이, 멎어가고 있었으니까.”

 

***

처음 시작은 아일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녀를 갉아먹고 있는 그 거대한 마나를 어떻게든 제어하고자, 마나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젠 혼자 연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런 와중 아스란의 눈에 띄게 되었다.


“시간의 숲을 열 열쇠를 연구하지 않겠나?”

“하, 하오나 폐하. 열쇠는 선택받은 특별한 수인에게 있다고 들었사온데…….”

“그래. 그 특별한 수인을 짐이 만들어낼 것이다. 백작, 그대에게도 좋은 기회일 텐데. 마나는 결국 정령들의 힘이니. 시간의 숲을 연다면, 그대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지 않겠나?”

아젠은 아스란의 말에 단숨에 흔들렸다.

시간의 숲이 열리고, 정령들이 다시 나타나면.

아일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살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젠은 그 지하실에서 갓난아기였던 이클리트를 만났다.

이미 죽어버린 뱀의 수인의 곁에서 울음조차 내뱉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어 잠들어 있던 아이.

황제가 모두를 속이고, 오직 열쇠를 위해 만들어낸 아이이자, 아이가 아닌 도구.

아젠은 그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래도 오직 아일리를 살리기 위해서.

온갖 실험을 강행하며 마나를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클리트에게서 아스란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아스란의 초조함이 어린 이클리트에게 끔찍한 학대의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아젠은 이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클리트를 보면 볼수록,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를 닮은 것 같았다.

아스란은 워낙 이클리트를 오직 도구로만 여기기에 제대로 보지 않아서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어쩌면 이클리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아젠이 보기엔 그랬다.


‘황후 폐하를 닮은 머리카락과 두 분을 닮은 푸른 눈동자…….’

특히나 아젠은 죽은 그 뱀의 수인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의 이 아이와 그 뱀의 수인은 닮은 점이 전혀 없어.’

하지만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황후 폐하의 아이가 이클리트라는 말이 되는데…….


“말도 안 되지. 황후 폐하의 아이는 바스티얀 대공 전하시다. 게다가 이클리트는 반인반수잖아. 내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애써 생각을 외면하던 찰나, 만나게 된 것이다.

바스티얀 대공의 유모인 키르케, 그 여자를.

아젠은 키르케를 보자마자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경솔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 수인…….”

지하실에서 죽었던 그 뱀의 수인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이었으니까.

아젠의 한마디에 키르케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곤란한 듯 웃었다.


“이런. 기억력이 너무 좋으시네요, 백작님.”

아젠은 키르케의 그림자에 서린 뱀을 보고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서, 설마. 정말 그 뱀의 수인인가? 살아 있었다는 거야?”

“그건 죽은 제 동생이랍니다.”

“죽은 동생이라니. 대체 너 같은 것이 어떻게 바스티얀 대공 전하의 유모로…….”

순간, 아젠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황후와 황제를 너무 닮은 이클리트.

그리고 죽은 그 뱀의 수인의 언니가 바스티얀 대공의 유모라면…….

키르케는 순식간에 아젠에게 다가와서는 무섭게 그를 노려보며 입술을 길게 그어 올렸다.


“백작님, 위험한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접어두세요. 이미 그 실험에 황제와 당신은 얽혀 있는 거니까. 황제가 무너지면, 백작님도 무너진답니다. 체자렛 백작가를 지켜야 하지 않나요?”

“감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협박이 아니라 그 누구도 살려두지 않을 거라고 경고하는 거랍니다. 그러니 그 입 닥치고, 할 일이나 해. 당신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을 나처럼 잃고 싶지 않다면!”

아젠은 키르케의 절규에 두려움과 공포에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게다가 그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아일리.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 실험을 중단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선 이 실험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클리오 대공은 반인반수야. 수인의 피가 섞였어. 내가 착각하는 거야.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바스티얀 대공이 진짜 이 나라의 황자라고!’

아젠은 결국, 두려운 진실에서 눈을 감은 채 묵살하고 외면했다.

하지만 끝내 이클리트에게서 수인의 힘이 나타나지 않자, 아스란의 분노와 함께 실험은 중단되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었어. 귀한 피를 섞으면 달라질 줄 알았더니. 당장 치워버려!”

실험이 중단됨과 동시에 아젠은 그 순간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내고서 백작가로 돌아갔다.

***



“아일리조차 살려내지 못했지. 그 누구도 이 손으로 지키지 못한 채, 허망하게 끝나버렸어.”

아멜리아는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아젠을 바라보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계속,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믿었고. 네가 안전해지는 길은, 황실과 얽히는 거라고. 어떻게든 바스티얀 대공과 결혼시키고자 했었다.”

“…….”

“클리오 대공에게서, 반인반수의 힘이 드러났을 때. 처음엔 기뻤다. 그 뱀의 수인의 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내 위험한 생각이, 맞았던 거다.”

아젠은 섬뜩한 목소리로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그 여자가 바스티얀 대공의 유모로 있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그 여자는. 폐하께 여동생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거다. 황후 폐하의 아이와 그 수인의 아이를 바꿔치기해서. 하지만 폐하도, 그 여자도 한 가지를 간과하지 못했어…….”

“……황후 폐하께서도 수인이라고요?”

아젠은 아멜리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미. 알고 있었느냐?”

이제야, 도저히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이 맞춰진다.

대공 전하와 에드조프가 서로 바꿔 치기 됐다고는 의심할 수 없었던 게, 에드조프가 반인반수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때, 에드조프가 밀주를 두려워했구나.’

황궁에 사는 뱀 두 마리.

한 마리는 키르케, 그 여자였고.

또 다른 뱀 한 마리는.


“에드조프. 에드조프였어.”

‘대공 전하를 그토록 괴물이라고 증오했으면서. 그토록 핍박했으면서. 자신도, 반인반수였다고?’

황제는 황후 폐하께서 수인, 그것도 수왕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고.

키르케, 그 여자는 이번에 알게 된 거다.


‘대공 전하께서 몰고 왔던 그 밀주에 잠식된 반인반수들. 키르케와 대공 전하가 만난 거야. 무슨 일인지 몰라도 대공 전하께서 키르케, 그 여자와 손을 잡은 거야.’

키르케는 황제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황제의 진짜 아들인 대공 전하로 하여금 폐하를 무너뜨리려는 거다.

그리고 최후엔.


‘폐하와 폐하의 진짜 아들인 대공 전하를 없애고, 에드조프를 황제로 세워서 솔라를 삼키려는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