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사냥은 끝났어 (163/199)


163화. 사냥은 끝났어
2022.07.25.



 


“아버지는. 체자렛 백작은 메사리나, 네가 죽인 거야.”

아멜리아의 단호한 말에 장내가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더는 지켜볼 것도 없다는 듯, 기사단장은 파랗게 질려 있는 메사리나를 마주했다.


“레이디 메사리나, 아젠 체자렛 백작 사망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에 임해주셔야겠습니다.”

기사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앙청 기사들이 메사리나를 체포하려고 했다.

메사리나는 그제야 정신 차리고선 악을 쓰며 몸을 비틀었다.


“이거 놔! 감히 누구의 몸에 손대는 거야! 나는 체자렛 백작이야! 백작이라고! 내가 죽이다니. 이건 다 모함이야! 아멜리아! 네가 꾸민 짓이잖아! 가주 시험 때처럼, 괴물을 이용해서 이번에는 체자렛을 가로채려는 거잖아!”

기사들은 메사리나를 포박하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메사리나는 끌려가는 내내 아멜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저주를 퍼부었다.


“반인반수를 푼 것도 네년 짓이잖아! 네가 그랬어! 네가 그런 거야! 네가 그런 거라고!”

아멜리아는 메사리나의 비명이 아득해질 때까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번에도 이렇게 끌려갔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때와는 다르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으니. 제대로 끝장을 봐야지.’

메사리나가 끌려가자, 영지민들은 불안에 가득한 표정으로 나직이 웅성거렸다.


“저, 정말로 메사리나 아가씨가 백작님을 해, 해쳤다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아직은 모르잖아. 설마하니 정말 그러셨을까?”

“백작 부인께선 어디 계신 거지?”

이 말도 안 되는 소란 속에, 대신관은 입술을 꽉 깨물고서 상황을 염탐했다.

괜히 엮이면 끝이니까.


‘저 계집을 없애야 하는데, 레이디 메사리나가 끌려가다니.’

소란스러움이 끊이질 않자, 아멜리아는 아젠의 시신 위로 다시 흰 천을 드리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체자렛 백작의 사망은 반인반수에 의한 살해가 아닌 누군가 반인반수를 이용하여 백작을 살인한 사건으로 조사될 것이다.”

아멜리아는 대신관을 응시하며 서늘한 어조를 흘렸다.


“그렇기에 장례식을 조금 뒤로 미뤄도 되겠죠, 대신관 님.”

“무, 물론입니다, 공작 각하.”

대신관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신관과 신녀들을 데리고 서둘러 등을 보였다.

아멜리아는 시종장에게 다가갔다.

시종장은 너무 끔찍한 진실에 잘게 떨리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에게 잠시 백작가의 관리를 부탁하겠다. 백작가 식구들을 달래주고, 영지민들을 부탁한다.”

시종장은 아멜리아의 차분한 목소리를 따라서, 겨우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백작님이 생전 남겨두신 유언장이 있었습니다. 아마 공작 각하께 백작가의 상속권을 넘기셨을 겁니다.”

“그건 나중에. 지금은 아버지의 죽음에 한 치의 억울함도 있어선 안 되니까.”

시종장은 일순 울컥하는 마음을 가다듬고서 아멜리아를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

중앙청 기사들은 메사리나를 중앙청으로 데려가기 위해, 일단 그녀를 침실에 감금했다.

체자렛 가주에서 순식간에 추락해버린 메사리나는 떨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손톱을 마구 물어뜯으며 제자리를 맴돌았다.


“괜찮아. 이번에도 키르케, 그 여자가 날 도와줄 거야.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손톱을 물어뜯다 못해, 점점 살결을 뜯어내며 불안감을 고통 속에 감췄다.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야. 그 계집도 나와 똑같다는 걸 밝히면 돼. 나만 추락할 수 없어. 아니. 난 추락하지 않아.”

그때,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메사리나는 중앙청 기사들인 줄 알고 자신도 모르게 크게 몸을 흠칫했다.

하지만 침실로 들어온 이는 후지아였다.


“어, 어머니. 여긴 어떻게? 경비병은요?”

후지아는 메사리나의 소매에 금화 주머니를 챙겨주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밖을 지키는 이는 없어. 그러니 지금 달아나야 한다. 도망쳐. 널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 그렇지? 그러니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어머니…….”

“시간 없다. 어서!”

메사리나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소매를 붙들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이게 다 아멜리아, 그 계집의 농간이에요. 하지만 다시 다 되찾을 거예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백작가를 부탁드려요. 그 계집에게 빼앗기면 안 돼요.”

“알겠으니까, 어서 가!”

메사리나는 후지아를 뒤로한 채, 재빨리 침실을 빠져나와서는 그대로 백작가에서 벗어났다.

이상하게 그녀를 지키는 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마을에서 로브를 사자. 그리고 말도 빌리는 거야. 키르케를 찾아가거나, 대공 전하를 찾아가면 돼. 클리오 대공을 몰아내는데, 내 공이 가장 컸어. 바스티얀 대공 전하께서 날 도와주실 거야. 맞아. 그때와는 달라. 나는 대공 전하께 필요한 사람이야!’

자신이 체자렛 백작가를 이어야, 대공 전하께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백작가에서 멀어진 메사리나는 몸을 숨기면서 마을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메사리나의 앞으로 아멜리아가 태연하게 막아섰다.


“정말 한 치의 예상도 비켜나가지 않고, 쥐새끼처럼 도망쳐주는구나.”

“아멜리아…….”

“도망치면서, 아무 의심도 안 했니? 경비가 왜 없다고 생각한 거야?”

메사리나는 자신과 달리 너무 여유로운 표정을 띠고 있는 아멜리아를 죽일 듯 노려보며 목소리를 씹어 내뱉었다.


“네가 저지른 짓이야? 이번엔 대체 무슨 비열한 짓을 꾸민 거지?”

“단순하게 생각해. 도망칠 기회를 주는 거니까.”

아멜리아는 메사리나의 발치로 장총을 던졌다.


“이게, 뭐야…….”

“너, 내가 피오레 공작가를 이어받은 게 내 실력이 아니라며. 네가 나보다 강하다며. 그러니까 기회를 주는 거야. 여기서 날 이겨. 네가 날 이기면, 도망치는 건 물론이고 체자렛 백작가까지 넘겨줄 테니까.”

메사리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결투하자고? 진심이야?”

“그냥 결투가 아니라, 기사들이 하는 피의 결투야. 혹시 공작을 해한 죄가 무서워서 망설인다면.”

아멜리아는 품에서 휴대용 필기구를 꺼내서는 뭔가를 휘갈겨 쓰고서 메사리나에게 보였다.


“여기서 설령 네가 날 죽여도, 네 잘못이 아닌 내 자살이 될 거라고. 가문의 인장까지 완벽한 진짜야.”

지난날, 에드조프가 아멜리아에게 준 적 있었던 유서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아멜리아는 지금 이 결투에 진심이었다.


“넌 나와 싸우는 걸 계속 사냥이라고 했었지. 그래. 결투보단 사냥이라고 하자. 이 지지부진한 사냥을 그만 끝내는 거야.”

아멜리아 역시 장총을 높이 세우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죽던가, 내가 죽던가. 선택은 이것밖에 없어.”

지난번처럼 절대로 빠져나가게 두지 않을 거다.

이 정도 짓을 벌였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지.

메사리나 역시 아멜리아의 말이 장난이 아님을 느끼곤 입술을 비릿하게 추켜올렸다.


“뭐야. 이제 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복수하려는 거야?”

“사람을 죽였는데. 감히 살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지.”

“좋아. 네가 쓴 그거, 아주 제대로 사용해줄게.”

메사리나는 순식간에 장총을 장전하고서 곧장 불의 마탄을 쐈다.

타당-!

사방으로 화염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공기마저도 태울 듯 속을 뜨겁게 헤집었다.

메사리나의 주 속성 마법이 바람이긴 했으나, 불의 마탄도 제법 위력을 자랑했다.

만약 아멜리아가 없었다면, 피오레 공작가의 가주는 그녀가 됐을 테니까.

불길은 어느새 시뻘건 연기를 피우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메사리나는 그 틈에 재빨리 은폐술로 몸을 숨겼다.

아멜리아는 마치 뱀처럼 뻗어 나가는 열기 속에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피오레 가주 시험 때와 똑같이 몹시 여유로운 모습.

이미 멀리서 몸을 숨긴 메사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역겨운 숨을 삼켰다.


‘괴물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그렇게 허세 부리고 있는 것도 지금이 끝이야. 반드시.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비록 아멜리아처럼 연발은 하지 못해도, 마탄을 만드는 속도가 수준급이었기에 벌써 또 다른 불의 마탄을 장전한 채,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정확히 아멜리아의 머리를 향해 뜨거운 총구가 겨눠진다.


‘네 아비는 심장을. 너는 머리를 날려주마.’

“전부. 전부 불타버려!”

메사리나가 힘껏 방아쇠를 당긴 순간, 불의 마탄이 아멜리아에게 닿기도 전에 또 다른 폭음이 천지를 갈랐다.

탕-!
 


“뭐야…….”

마치 하늘이 찢어지기라도 한 듯,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메사리나의 불의 마탄을 전부 삼켜버렸다.

메사리나는 잠시 당황했다가 날 선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타당-!

또 한 번의 총성.

그녀는 짧은 숨을 삼킬 새도 없이 곧장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러자 간발의 차이로 칼날 같은 바람이 메사리나가 있던 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느새 메사리나는 엉망이 된 몰골로 격하게 몸을 들썩였다.

그런데 이번엔 총성도 없이 시야가 흐릿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다.

메사리나는 자신이 아멜리아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느낌을 애써 지우며, 입술을 달싹였다.


“온갖 잔재주를 다 부리는군. 이러면 나만 안 보일 것 같아? 너도 내가 안 보이는 건 마찬가지야.”

메사리나는 이 틈에 침착하게 마탄을 만들기 시작했다.

괜한 허세 덕분에 자신에겐 마탄을 장전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안개가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어떤 잔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메사리나는 아멜리아라고 확신한 채 짙은 미소를 그렸다.


“네가 단거리엔 능숙할지 몰라도, 장거리에선 날 따라올 수 없어. 네 함정에 네가 걸려 넘어간 거야.”

그녀는 이번엔 더더욱 침착하고 신중하게 총구를 겨누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기척을 숨기고.

호흡마저 멈춘 채, 아멜리아에게 집중했다.


‘넌 절대로 날 찾지 못해. 절대!’

이번에야말로 아멜리아가 눈치채지 못하게, 정확히 바람의 마탄을 쐈다.

탕-!
 


“끝났어!”

메사리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마탄이 아멜리아를 정확히 휘갈기자마자, 그 모습이 사라졌다.

메사리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어딜 간……!”

순간,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총구에 메사리나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어느새 나타난 아멜리아가 메사리나를 향해 총을 겨누며, 무심히 내뱉었다.


“벌써 끝이야?”

“네가 어떻게 여기.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데!”

“신기루지. 절대로 날 찾을 수 없게, 몇 번이고 널 현혹할 수 있어.”

 

 
기분 나쁘게 여유로운 태도에 메사리나는 장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외쳤다.


“건방 떨지 마!”

메사리나는 장총의 날카로운 부위를 마치 검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에게 배운 검술 덕에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며, 메사리나의 장총을 막아냈다.


“총은 휘두르는 게 아니지.”

아멜리아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메사리나는 가까스로 피하면서 다시 한번 장전한 마탄을 쐈다.


“느려.”

하지만 아멜리아가 공중에서 연발로 메사리나의 마탄을 무참히 박살내버렸다.

쾅- 콰쾅-!

메사리나는 허무하게 바스러진 자신의 마탄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벌써 한계까지 마나를 끌어올린 탓에, 메사리나는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하아…… 으윽!”

둔탁한 신음 끝에 잇새 사이로 피가 주르르 새어 나왔다.

아멜리아는 메사리나의 그림자를 지르밟고서, 선득한 어조로 읊조렸다.


“사냥은 끝났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