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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너무 이상한 기적 (166/199)


166화. 너무 이상한 기적
2022.08.05.


아멜리아는 침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그녀가 백작가에서 내내 갇혀 있었던 곳이다.

이곳을 떠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멜리아는 침실을 향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떨리는 시선으로 곧장 문을 열었으나, 여기 있겠다던 이클리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침실을 마구 돌아다녔다.


‘설마 갔어? 간 거야? 여기 있겠다고 했으면서.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

그때, 창문이 크게 덜컹거리면서 이클리트가 침실로 날아들었다.

이클리트는 침실에 서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멜리아, 저기…….”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곧장 그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어디 갔었어요? 안 간다고 했으면서.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면서. 이제 진짜 내 말은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거예요?”

화내면서도, 그를 붙잡은 아멜리아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혹시라도 지금 가버리겠다고 해도,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고집이 바짝 달아올라 있었다.

아멜리아는 자신이 이토록 떼를 쓰는 사람인 줄 몰랐다.

이클리트는 그런 아멜리아의 불안에 더욱 마음 쓰면서,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미안합니다. 잠시 할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가 살짝 움직이자, 아멜리아는 번쩍 고개를 들고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지금 가려고요? 정말 갈 거예요? 안 가면 안 돼요?”

그녀의 초조함에 이클리트는 대답 대신 곧장 그녀의 턱을 잡고서 그대로 깊이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빨려 드는 그의 뜨거운 호흡에 아멜리아는 불안함에 가빠왔던 숨이 잦아들면서, 꼭 쥐고 있던 그를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입술을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몇 번이고 더듬으며 읊조렸다.


“안 갈 겁니다. 그대 곁에 있을 거예요.”

그의 완고한 속삭임에 아멜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안 간다고요? 지금 안 간다는 거예요, 아니면 계속…….”

이클리트의 대답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멜리아를 보면서, 이클리트는 그녀의 허리를 감고서 더욱 꼭 안아주었다.


“내가 그대한테 졌어요. 역시 그대와의 맹약을, 어길 수 없었어.”

아멜리아는 순간 멍해졌고, 이클리트는 그런 그녀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계속 같이 있겠습니다. 그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볼 겁니다.”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아멜리아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깜빡이는 사이에 사라지는 꿈일까 봐, 두려우면서도.

이게 정말 꿈이라면 신이 제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깜빡이고, 몇 번을 더듬어도 정말로 눈앞에 그가 있었다.

그가 정말로, 와주었다.


“계속 있어줄 거예요? 정말로?”

“정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믿어줄까?”

아멜리아는 그를 끌어당기며 더 깊이, 깊이 입을 맞추었다.

찰나의 틈조차 생기지 않도록.

그가 떠나고, 텅 비어버린 제 속을 다시금 그의 온기로 한가득 채우면서.


“얼마나. 얼마나 대공 전하를 만지고 싶었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클리트의 숨결이 거칠게 부서지면서, 뜨거워진 그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훑어 내려갔다.


“나도 그래요. 지금 내 머릿속을 알면, 무서워서 그대가 달아날지도 몰라.”

아멜리아는 발을 헛디딘 척, 그를 붙잡고 함께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멜리아에게 바짝 다가선 이클리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러다 그녀의 한마디에 탁, 불꽃이 일었다.


“아마 내 머릿속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달뜬 공기가 점차 아찔해지고, 두 사람은 무아지경으로 서로의 농밀해진 체향을 깊이 들이켰다.

분명 너무 이상한 기적이었는데.

그냥 이 기적을 믿고 싶어서, 아멜리아는 찰나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이클리트의 가슴에 한껏 몸을 기댄 채, 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로 펜던트를 놓았다.


“아일리, 내 어머니예요.”

이클리트는 아멜리아의 말에 펜던트 속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게 제비꽃이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알려주신 분이죠. 외조부님 말씀에 의하면 정말로 멋지고 강한 머스켓티어였다고 하셨어요. 이사나 경도 예전에 무척 근사한 분이라고 했었고요.”

“그대를 닮았습니다.”

“그런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멜리아는 펜던트를 소중히 움켜쥐었다.


“곧 어머니의 기일이에요. 하지만 이번 기일은 제대로 챙기지 못할 것 같아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어쩐지 서늘한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이클리트도 절로 긴장했다.


“어머니를 정말로 많이 사랑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보다 더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아멜리아의 입에서 어렵사리 아젠 백작이 나오자, 이클리트는 그녀를 안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서, 가만히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한 번 날 버렸고, 데려왔어도 이 방에 가둬놨어요. 그래도 아버지가 날 다시 데려와서 좋다고만 생각했죠.”

“…….”

“다시 아버지의 딸로 돌아왔다고. 다시 아버지의 곁에서 살 수 있다고. 마냥, 그것만 좋아했어요.”

괴로웠던 기억만 넘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설령 있었다고 해도, 이젠 떠올리지 않을 만큼 지금이 좋았다.


“체자렛 백작가를 떠나던 그날. 다시 볼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서로 뾰족하게 세웠던 감정이 무뎌지면, 조금은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

끝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는 용서하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했다는 그 한마디.

그건 자신에게 미안하기보단, 어머니에게 미안했던 게 아닐까.

끝까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남편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묻고 싶어도, 이젠 물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 또한 아버지의 선택이겠지. 용서는 내 마음이라고. 그러니 이대로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거라고.’

“마음이, 아픕니까?”

이클리트가 애써 덤덤히 묻자, 아멜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슬프지 않아요. 슬프진 않은데. 계속 원치 않는 슬픔으로 기억하고 싶진 않아요.”

둘러 말해도 결국, 자꾸 신경 쓰인다는 얘기였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사람. 메사리나를 그렇게 죽인 사람. 그래서 용서할 수 없어요.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그 두 사람을 제대로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멜리아의 말에 이클리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이클리트는 알고 있었으니까.

아멜리아는 그를 향해 아예 몸을 돌리고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대공 전하, 황궁에 사는 뱀 두 마리. 그 두 마리가 에드조프의 유모인 키르케와 에드조프였어요. 에드조프도 사실, 반인반수예요. 키르케 그 여자가 대공 전하와 에드조프를 바꿔치기한 거였어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클리트에게 자신이 알게 된 진실을 말해주었다.

다른 누구보다, 그가 알아야 했다.

그의 뒤바뀐 운명을.

그로 인해 너무나도 달라져버렸던 그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서.

아멜리아는 끊임없이 이클리트와 눈을 마주한 채, 그의 뺨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진실을 속삭였다.

부질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 있다고.

대공 전하의 곁에 있다고.

그러니 부디, 이 진실 앞에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면서.


“카르티아 공 덕분에 알게 됐어요. 대공 전하의 친어머니가 사실 클로에 황후 폐하라는 사실을. 그분께서 수인, 아니 수왕이라는 사실을요.”

아멜리아는 몹시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클리트의 표정은 몹시 덤덤했다.

너무 괴로워하질 않길 바랐지만, 이토록 무표정한 모습을 보니 아멜리아는 더 마음이 쓰였다.


“대공 전하, 그러니까…….”

“그렇군요. 그럼 이제 우리가 정확히 누굴 막아야 하는지, 적이 명확해진 셈이네요. 잘 됐습니다.”

덤덤하다 못해 무심한 말이 이어지자, 아멜리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친어머니가 누군지 알게 됐는데.

어쩌면, 바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당장 바로 잡아야 하는데.

고작, 저런 반응이라고?

아멜리아는 뭔가 불길한 느낌에 언성이 높아졌다.


“황제 폐하의 친아들은 대공 전하뿐이에요. 유일한 황위 계승자가 대공 전하시라고요. 게다가 친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데! 대공 전하, 차라리 뭐라고 감정을 표현해줘요. 그럼 내가 다 감당할게요.”

“......”

“처음엔 당신이 조금이나마 덜 아프길 바랐는데, 차라리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감추지 말고 보여줘요. 내가 곁에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대공 전하를 도울 테니까…….”

오히려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리자, 이클리트가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난 괜찮습니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게, 무슨…….”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하다는 거. 내가 꼭 지켜야 할 사람이라는 거. 그것만 달라지지 않으면 돼.”

이제야 아멜리아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그는 대체 왜 갑자기 자신의 곁에 남겠다고 한 걸까.

마지막까지 곁에 있을 거라니.

대체 누구의 마지막을 말하는 거지?


“대공 전하, 잠깐만…….”

그녀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이클리트가 몸을 일으키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아멜리아, 그대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네?”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겁니다. 대신관을 붙잡아뒀어요.”

“대신관을 붙잡았다고요?”

“깨어나면 최면 상태일 겁니다. 루시아의 약을 먹였거든요. 그대가 바란다면, 모두의 앞에서 대신관의 죄를 자백하고 그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내려오게 할 수 있습니다.”

이클리트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그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상태라면 좀 더 다른 쪽으로 이용해 보기로 하죠.”

“그렇다면 따라와요.”

이클리트가 먼저 등을 보였다.

아멜리아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불길하게 바라보았다.

분명 곁에 있는데.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고. 가까이에 보이는데.

어쩐지 그전보다 훨씬, 그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

체자렛 백작에 이어, 유력한 후계자였던 메사리나까지 숨을 거두자 신성회에서 부신관인 미야가 급하게 방문했다.

사실 대신관 님이 아직 백작가에 머물러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멜리아가 급하게 미야를 불렀던 것이다.

백작가 응접실에 당도한 미야는 애써 경계심을 감추며, 아멜리아를 향해 예를 다했다.


“체자렛에 이어진 비보에 유감입니다. 곧장 장례를 치르시는 겁니까? 하지만 대신관 님이 계실 텐데 어째서 저를?”

“대신관은 이번 장례를 주관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부신관을 부른 겁니다.”

“예? 대신관 님께 무슨 일이 생기신 겁니까?”

미야의 표정이 불편해졌고, 아멜리아는 시종일관 의연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신성회에 무슨 일이 생긴 거죠.”

어쩐지 도발적인 어조에 미야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때, 아멜리아의 손짓에 카마리가 최면에 빠진 대신관을 끌고 왔다.

미야는 뭔가 이상한 대신관의 모습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대체 대신관 님께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아무리 피오레 공작 각하시지만, 대신관 님께 위해를 가하셨다면 신성회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태양의 제단으로 가는 길에 사람을 풀어서, 세스가 황자와 피오레 공작을 해하고자 했다.”

순간, 몽롱하게 이어지는 대신관의 자백에 미야의 표정이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대, 대신관 님?”

“시건방진 피오레 공작과 반인반수 사건을 어떻게든 엮어서, 추락시키고자 했다. 나의 권능을 지켜야 하니까. 나의 권력을 빼앗길 수 없으니까.”

계속 이어지는 대신관의 악행에 미야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여전히 태연하게 서 있는 아멜리아를 응시했다.


“대체, 이게 무엇입니까?”

“듣고도 모르겠습니까? 무려 대신관이 태양신의 이름을 모독하고, 그 명예를 더럽힌 것이 아닙니까. 이는 신성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아멜리아는 자못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엄청난 죄를 제국법대로 처리할지, 아니면 신성회의 법대로 처리할지. 아직 제대로 결정을 못 해서, 이렇게 부신관을 부른 겁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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